성경강해

<聖經> 고린도후서3:1-18

<題目> 새 언약의 일꾼


<序言>

  거짓교사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해치고 있고 성도들을 다른 길로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당한 지도자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여러 추천과 자격같은 것으로 증명하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권과 교훈권을 반대하기 위해 자기들이 더 실력있는 사람이라는, 정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증명서와 추천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바울은 그에 대해 내적 증거를 중요시 한다고 변증했습니다. 내용구조는 새 언약의 일꾼 (1-5절), 새 언약의 뛰어난 영광 (6-11절), 주의 영으로 벗겨지는 수건 (12-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새 언약의 일꾼 (1-5절)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자기도 거짓교사들처럼 추천서나 증명서를 가지고 다녀야 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 자체가 편지로서 추천서와 증명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의 거듭남과 변화가 바울이 하나님의 사도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외부적 조건으로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적 증명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교회의 본질은 죽어가는 영혼을 불러내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성장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유기적 연합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성장의 수단은 성령입니다. 3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믿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고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구원과 변화와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3절에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마음에 역사합니다. 성령은 말씀으로 역사합니다.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서 역사합니다. 요한복음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을 통해서 일하고 말씀 안에서 일하십니다. 말씀으로 역사해서 말씀을 깨닫게 하고 순종하게 하여 변화하게 합니다.

 

  2절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말씀을 가르쳐 성장하게 했습니다. 교회성장의 통로는 사역자입니다. 성령이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는데 그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지도하는 사역자를 통해서 이루어 갑니다. 요한계시록2:1에 보면 주께서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일곱 별은 목회자를 말하고 일곱 금촛대는 교회를 말합니다 (계1:20). 하나님은 목회자를 통해 중생과 변화와 성장을 이루게 합니다. 거룩과 영광으로 이끕니다. 목회자가 힘써야 할 부분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성품, 사역, 원리, 섭리, 계획, 목적 등을 알게 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하나님이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알려 주는 데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영적으로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가 목회자에게 요구할 것이 이것이어야 합니다. 성도가 목회자에게 자신의 욕망에 대한 요구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바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로마서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전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거듭나게 했습니다. 또한 말씀을 가르쳐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게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울을 보내신 증거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이 자기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계획 속에서 성령으로 행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쓰임을 받기는 하였으나 자기의 능력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통해 되어진 모든 은혜는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성장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자신이 한 사역이 효과를 가져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10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2. 새 언약의 뛰어난 영광 (6-11절)  

 

  바울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면서 옛 언약의 일꾼의 영광과 새언약의 일꾼의 영광을 대조시키므로 새 언약의 일꾼의 영광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옛 언약(구약)은 율법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요구를 알아 지키므로 복을 받게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것은 돌판(돌비)에 기록한 조문(의문:γραμμα-문자, 기록된 것, 문서, 책 등의 뜻)이고 결국 지키지 못하므로 파괴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죄를 정죄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맡는 것은 정죄의 직분을 맡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맡은 자가 영광스러웠습니다. 모세는 그 옛 언약의 율법을 받아 전달하는 직분을 받았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갔을 때 하나님이 율법을 두 돌에 기록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두 율법판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율법판을 가지고 내려올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출34:29-30). 바울이 이 사실을 언급한 것은 모세가 언약의 두 율법판을 맡은 자로서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지키지 못하여 죽게 하는 옛 언약 곧 율법을 맡은 직분이지만 영광스러운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신약)은 복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을 근거로 죄를 사해주고 구원과 영생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성령이 마음(심비)에 믿게 하여 준 것으로서 절대로 실패함이 없이 완전합니다. 도중에 취소됨이 없이 영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맡는 것은 영의 직분, 의의 직분, 살리는 직분을 맡은 것입니다. 그 직분을 맡은 자는 훨씬 영광스럽습니다. 옛 언약, 율법, 돌판에 기록된, 정죄하는, 죽게 하는, 일시적인 직분도 그렇게 영광스러웠다면 새 언약, 복음, 성령으로, 마음에 새긴, 은혜로운, 의로운, 영적인, 영원한 직분은 얼마나 영광스럽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언을 받은 자는 모두 이 복음의 직분을 맡은 자입니다.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3. 주의 영으로 벗겨지는 수건 (12-18절)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바울은 3장에서 자기의 사도직을 인간적인 근거와 기준으로 증명하지 않고 그가 맡은 직분의 영광됨과 그가 증거한 복음의 능력으로 설명했습니다. 바울이 정죄의 직분을 가진 모세도 영광스러웠는데 하물며 의의 직분을 가진 복음으로 인한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는 자신은 더욱 영광스럽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이 승리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말하면서 13절 이하에서 모세의 사건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썼습니다 (출34:28-35).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할 때는 수건을 안 썼으나 이스라엘 백성을 대할 때는 얼굴에 수건을 썼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할 때는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그 광채는 결국 없어질 광채였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얼굴에 광채가 없어진 것을 보게 된다면 그들은 모세가 전하는 율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은 그 율법의 내용을 진정으로 이해해서가 아니라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이 나타내신 초자연적인 모습 때문에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뢰와 빽빽한 구름과 나팔소리 때문에 율법을 받아들였습니다 (출20:18-19).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도 그런 표상으로 보았습니다 (출34:30). 그런데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진 것을 보게 된다면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과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단지 하나님의 초월적인 현상이 있어야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 자들입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있는 것을 봐야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가는 큰 일 날줄 알고 율법의 경고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율법을 버리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할 때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것은 바로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과거 모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이 완악하여 율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율법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5:39-43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이름으로 오는 자들이 선생됨을 인정하면서도 구원하기 위해서 온 예수 그리스도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5:44-47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외적인 것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의 말을 곧이 듣고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서나 증명서를 내세우는데 고린도교인들은 그 외부적인 조건들을 보고 그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거부하려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므로 거듭나고 말씀을 가르치므로 자라나는 것이야말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 보냄을 받은 사도임을 증명하는 것인데 그들은 외적인 추천서를 크게 여기고 내적인 생명살리는 능력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이 보낸 종이라는 증거는 고린도교인 자신들이 중생하고 성화를 이룬 것보다 큰 것이 없는데 그것은 보지 못하고 바울에게 세상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신도 모세처럼 수건으로 가리는 일을 해야겠느냐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추천서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로서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보아야 할 텐데 아직도 모세가 수건을 가린 상황처럼 외부적인 것을 보고 따르는 것을 질책한 것입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처럼 자천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편지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거듭났고, 바울이 가르침 말씀을 듣고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력 있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외부적인 다른 것으로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용한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 놓고 고치지 질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보다 큰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없으니 외부적인 졸업장, 학위증, 인증서, 감사패 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 따라가면 결국 속고 맙니다. 남포교회를 담임했던 박영선 목사님 교회에 어떤 집사님이 고등학교를 제 때 졸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학창시절에 학교 가는 길에 약장수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약장수가 뱀 한 마리를 가지고 선전하는데 그 뱀이 줄타기를 한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뱀이 줄을 탄다는 말을 듣고 너무 신기해서 그 뱀이 줄 타는 것을 보고 학교에 가려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뱀이 줄을 타기 전에 광고할 것이 하나 있다고 하면서 약을 팔고는 그 다음에 또 탈 줄 알았는데 점심시간이니 점심 먹고 탄다고 하더니 내일 탄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음날 또 그것을 보다가 또 하루를 공쳤다고 합니다. 곧 탄다고 하더니 일 년이 지나도록 안타더라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사역을 한 열매가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받아서 성령으로 말씀을 전한 결과가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건으로 가린 상태에 있지 말고 수건을 벗은 상태로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시각과 요구로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와 성령에 의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건에 가려진 갇힌 상태에 있지 말고 주의 영으로 자유한 상태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結言>

  우리는 모세의 수건 쓴 상황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적 시각과 세상적인 요구로 가득 차 있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기준, 교회를 바라보는 기준, 사역자를 바라보는 기준이 세상적인 것이라면 아직 모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예수님 때에 유대인들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바울 때에 고린도교인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