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고린도후서7:1-16

<題目>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기쁨


<序言>

  본 장은 2:13에서 중단되었던 전도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당시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소동과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해 실망한 상태로 마게도냐로 건너 갔는데 그 곳에서 고린도교회에 파송되었던 디도를 만날 뿐 아니라 고린도교회의 문제 해결 소식을 접하고 기쁜 마음으로 본 장을 기록했습니다. 내용구조는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신뢰 (1-4절), 고린도교인들로 인한 기쁨 (5-16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신뢰 (1-4절)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1절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는 6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6장에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거짓교사들을 가까지 하지 말 것을 말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이 구절은 그에 대한 결론의 의미로 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거룩이란 죄에서 분리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교훈으로부터,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정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2-4절에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바울 자신과 동역자들을 속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을 비방하고 배척하는 자들은 바울이 선교헌금을 갈취해 혼자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 대해 바울은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았고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해명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을 꾸짖은 것은 그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전에 말한 대로 자식같이 생각해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줄 각오를 하고 있고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잘못을 꾸짖는 것은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근거로 한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잘못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해 자랑할 것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의 보고를 듣고 고린도교인들의 바울 자신에 대한 태도가 좋아졌다는 것을 알고 기쁨으로 한 말입니다.

  


       2. 고린도교인들로 인한 기쁨 (5-16절)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갔을 때 환난으로 인해 마음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2:12-13). 밖으로는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따르지 않는다고 괴롭게 했습니다. 안으로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디도가 돌아오지 않으므로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해 했습니다 (2:13). 그런데 디도가 돌아와 기뻤습니다. 디도가 돌아온 것만도 기쁜데 고린도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으미 더욱 기뻤습니다. 교린도교인들이 바울을 사모하고 있고, 바울에 대한 잘못과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있고,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바울의 적들을 대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책망하는 편지를 썼는데 그러고 나서 그들이 오히려 비툴어질까봐서 후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고 심히 기뻐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잠깐 근심했겠지만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해서 바로 회개하여 서게 된 것을 심히 기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이 바울로부터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9절). '해를 받다'(ζημιοω)는 '손해보다' '손실받다'는 뜻인데, 심판대 앞에서 받을 상에 대한 손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고전3:12-15).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세상 근심은 마음을 약하게 하고 신경질 나게 하고 불만이 가득하게 합니다. 분과 억울함으로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곤고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구원을 확고하게 하고 구원을 이루게 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생기게 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하고 죄를 분히 여기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렵게 하고 지도자를 그리워 하게 하고 진리 수호에 열심있게 하고 범법자를 권징하고 질서를 세우는데 열심있게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것은 바로 그런 목적에서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반응이 그렇게 된 것을 기뻐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신뢰하고 그런 편지를 쓴 것을 기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그 근심에는 꼭 대물(對物)관계 뿐 아니라 대인(對人) 관계나 대신(對神)관계로 인한 근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근심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근심에는 고통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 있고 소망을 이루게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근심이 있고 생명에 이르는 근심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근심이든 어떤 관점을 가지고 근심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룹니다. 본문에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10절). 세상 근심은 자기 육체의 소욕을 따라 하는 근심입니다.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근심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고 죄적 욕망을 따르려 합니다 (갈5:7). 육체의 욕망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을 추구합니다. 갈라디아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육체의 소욕들을 나열한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언제나 육체의 죄성을 만족케 하려 합니다. 물질에 관한 것이든 사람에 대한 것이든 하나님께 대한 것이든 죄적 욕망을 채우도록 요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육체를 살찌게 하고 아름답게 할까, 어떻게 하면 능력있는 잘난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어떻게 하면 영적인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도록 합니다. 그 욕망을 따라 근심하면 안됩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하는 근심은 항상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육체의 욕망은 거머리와 같이 끝이 없습니다. 그것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분노하게 됩니다. 원망과 미움과 다툼과 폭력과 자해를 하게 합니다. 본문에서는 사망을 가져 온다고 했습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는 고통을 가져옵니다. 디모데전서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심령을 상하게 하고 마음을 괴롭게 하고 몸까지 쇠하게 합니다 (잠15:13, 17:22). 시편31:9에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을 따라 근심하지 말고 육체의 소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벧전2:1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구원을 이루게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에 의한 근심' '하나님이 원하시는 근심'입니다. 영혼의 소욕을 따라 하는 근심입니다. 거듭난 영혼은 성령의 감동을 따르려 합니다. 갈라디아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따라 살 때 얻어진 인격적인 열매입니다. 우리의 영적 소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영적 속성을 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지시하심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기를 추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까 염려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혼이 잘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까 염려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질지 않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염려하고 근심하고 애통해 합니다. 영적 속성을 따라 하는 근심은 그보다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본문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일을 위해 살았고 그것을 위해 고뇌했습니다. 요한복음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5:7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근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서셨습니다. 바울은 최고의 관심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고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복종시키지 못하고 죄성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애통했고, 하나님의 복음 사역과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한 것 때문에 근심했습니다 (고전9:27, 롬7:15-24, 고후11:23-29). 그로 인하여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고 마음의 영적 즐거움을 얻었고 하늘의 상을 보장받았습니다 (고후12:1-11, 4:8-10, 딤후4:7-8).   

 

<結言>

  세상 근심을 절망에 빠트리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더욱 소망있게 합니다. 죄에 대해 분해 하며 하나님에 대해 두려워 하며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 일에 더욱 열심이게 됩니다 (11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떤 근심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를 생각하며 그에 합당하지 못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 인내하지 못하는 것, 만들어지지 못한 것, 죄성에 끌려 다니는 것, 즐거워 하지 못한 것을 인하여 근심하고 애통해 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