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고린도후서13:1-13

<題目> 마지막 경고와 축복기도


<序言>

  바울은 전 장에서 영적 체험을 자랑하여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계획에 대해 밝혔습니다. 본 장에서는 회개를 위한 권면과 더불어 징계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사도적 권위와 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그들이 미리 회개함으로써 교회를 방문했을 때 실제로 징계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람에서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징계의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바울의 마지막 경고(1-10절), 바울의 권면과 축복(11-1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바울의 마지막 경고 (1-10절)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두번째 들렸을 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책벌할 것을 경고했습니다. 이제 세번째 들릴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에도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세번째 들릴 때 두 세 증인을 세워 혐의를 확정짓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소문과 사실을 구별하는데 필요한 조치입니다. 이는 바울의 책벌에 관한 사상이며 성경에서 권한 방법입니다 (민35:30, 신19:15, 마18:16, 딤전5:19). 교회에서 남에 대한 비판이나 고소 사건을 접했을 때 특히 책벌을 할 때 한 사람 말만 듣고 행하거나 한쪽 원고 말만 듣고 판단하거나 결정을 하면 안됩니다. 고소나 평가나 비판을 들을 때 양편의 말을 다 듣고 다른 입장에서 선 사람의 말을 듣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땐 잘못 판단하게 되고 잘못 판단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억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적인 관점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 탄핵과 교인 징계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중요한 원리입니다.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편지를 통해 강하게 책망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그리스도께서 쓰시는 자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3-4절에 보면 바울이 편지를 통해 용서하지 않겠다고 책망한 것은 고린도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시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을 자기 말이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한 말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자를 대할 때 약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대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지만(마28:18) 그는 인성의 약한 점을 가지고 무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능력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살아 나셔서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 권세로 세상을 심판합니다 (계1:4-7, 2~3장). 주님은 죄에 대해 단호합니다. 바울도 약하게 보이지만 죄에 대해 단호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쓰시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책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복음, 교회, 몸된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귀히 여기기 때문인 것입니다.

 

  ②그리스도께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앞에서 고린도교인들이 특히 범죄자들이 바울에게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말하고 있는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5-6절에 보면 그 반대로 고린도교인 자신들이 믿음에 서 있는지 시험하여 검증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과 동역자들이 그리스도께 버림받지 않은 자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론적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는 사람 곧 믿음이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역사하므로 죄짓고는 견딜 수 없어 회개합니다. 그리고 주를 기쁘게 해 드리려 합니다. 만일 그것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버린 자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할진대 그들이 회개하고 믿음에 서면 자신들에게 온 믿음이 바울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바울이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진리를 가르치는 참 사도임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먼저 그리스도가 안에 계심을 확증하면 바울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역자를 판단하고 비판하기 전에 자신이 믿음에 서 있는지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롬8:9,16, 요일3:14, 2:29, 3:9, 5:4).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지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회개하지도 않은 자는 사역자를 바로 볼 수도 없고 판단해서도 안되고 무엇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문제는 항상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지 않고 남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자들로부터 야기되는 것입니다.

 

  ③고린도교인들이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7절에 보면 바울은 교린도교인들이 악을 행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옳은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비록 고린도교인들에게 버려진 자로 여김을 받고 있을지라도 고린도교인들은 범죄하지 않고 바로 서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인정을 받고 안받고는 둘째이고 중요한 것은 고린도교인들이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번째로 방문할 때 가능한 한 그들이 다 회개하고 옳은 일을 행하여 서로 기쁨으로 대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목회 모범입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의 영혼이 잘되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④진리를 위하기 때문입니다.

 

  8절에 보면 바울은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진리를 위해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옳은 자로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고린도교인들이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울이 진리를 위해 행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예수님을 가르칠 때도 있고 복음과 말씀을 가르칠 때도 있습니다 (요16:13, 14:16,26).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진리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그 진리를 위해 서기를 원하기 때문에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⑤고린도교인들이 강해지는 것을 기뻐하기 위해서입니다.

 

  10:10에 보면 바울은 편지는 중하고 힘이 있으나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본문 9절에 보면 바울은 그러한 비난을 받더라도 고린도교인들이 강해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범죄자가 회개하고 영적으로 강해지면 바울이 대면했을 때 진짜로 강하게 나올 것이 없으므로 약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 상황을 볼 땐 마치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을 대면했을 때 약하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고린도교인들이 강해진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온전케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르티시스(καταρτισιs)는 이미 좋은 상태를 갖는 것이라 하기 보다는 잃었던 것을 회복하는 것, 깨어졌던 것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⑥고린도교인들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10절에 보면 바울이 편지로 책망하는 것은 그들을 대면했을 때 주께서 주께서 주신 권한을 따라 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주신 권한은 고린도교인들을  넘어뜨리지 않고 세우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주께 권세를 받아 사역을 하는데 그 권세는 교인들을 파하는 것이 아니고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세우려고 편지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엄하게 한 것은 교회와 교인을 세우기 위함인 것입니다.  

 


       2. 바울의 권면과 축복 (11-13절)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

 

  ①바울은 마지막으로 권면했습니다.

 

  첫째,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기뻐하라'(χαιρετε, farewell)은 grace를 뜻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도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빌3:1, 4:4).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5:22). 기쁨은 성도들의 표지입니다. 자신을 바라볼 땐 연약하고 범죄뿐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온전하라(καταρτισιs)는 어원이 '준비를 하다' '장비를 갖추다'이고 의학 용어로 '부러진 뼈를 잇다' '삔 수족을 맞추다'이고 '여행을 위해 마련하다' '전투를 위해 군인을 무장시키다'는 뜻도 있습니다. 마태복음4:21에 나온 '그물을 깁는'과 같은 뜻입니다. 이미 좋은 상태를 갖는 것이라 하기 보다는 잃었던 것을 회복하는 것, 깨어졌던 것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잃었던 것 회복하고 깨어졌던 것 고쳐서 믿음으로 성숙하라는 것입니다. 9절에서도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적 성장 곧 건강한 삶으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S.Augustine)은 "이단자는 그릇된 교훈을 가르쳤다고 이단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고치지 않는 고로 이단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완전에 나아가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늘 고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박윤선). 셋째, 위로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위로를 받으며'에 해당하는 어원(παρακαλεισθε)은  '부르다' '청하다' '권면하다' '훈계하다' '설득하다' 등입니다. 바울의 권고를 받아 힘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권면을 받고 고맙게 생각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은 그들을 사랑하는 증거이므로 오히려 위로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고맙게 생각하고 오히려 사랑의 확신으로 여기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넷째, 마음을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분열이 많은 고린도교인들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같은 생각 같은 목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동상이몽은 몸된 교회를 생명력있게 못합니다. 다섯째, 평안하라고 했습니다. 은혜받은 결과는 회목과 평안입니다. 마음을 같이한 결과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평강이 옵니다. 웨슬리(J.Wesley)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만큼 평안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여섯째,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선정적이고 정욕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가장 친밀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입맞춤을 했습니다. 교인들은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을 때 그들을 신뢰하고 교제한다는 의미로 입을 맞추었습니다. 물론 같은 성끼리만 시행했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 복음을 위해 일할 것을 신뢰하고 확증하는 인사인 것입니다.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마게도냐 성도들도 고린도교인들에게 위에서 말한 심정으로 문안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참된 교인은 모두 그런 목적으로 사므로 그런 뜨거운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유기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서로 권면하고 붙잡아 주고 세워 주고 위로하여 힘을 얻어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한 마리 꿀벌을 키울 수 없듯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두 세명이 함께 확신을 주고 소망을 주고 함께 힘을 낼 때 넘어지지 않게 되고 끊어지지 않게 되고 성정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체된 위치를 소홀이 하고 개인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은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양은 무리를 지어 있어야 이리에게 잡히지 않게 됩니다.

 

  ②바울은 마지막으로 축복했습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14 없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길 축복했습니다. 이 축복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축도로 사용하는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구속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게 됩니다. 그 구원으로 진정한 부요를 누립니다. 하나님이 그를 보내시고 우릴 선택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 은혜입니다 (요3:16).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과 섭리하심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주의자와 우상숭배자들은 은혜보다 율법을, 사랑보다 배척을, 교통보다는 독선을 강조했습니다. 혹은 육체적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結言>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사도로서 주님이 맡긴 이방선교를 하는데 있어서 주님 앞에 어떻게 평가받을지를 생각하면서 신앙양심을 따라 사역했습니다. 그는 주께서 세운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인들에게 때론 책망과 질책을 가하기도 하고 때론 위로와 축복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