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한일서4:1-21
<題目>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序言>
본 장에서 특별히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에 대해 매우 심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즉 사랑의 본질과 본질에서 비롯되는 성도의 사랑의 필연성을 매우 강력하고도 직접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 장'으로 불리우며 본 장은 '제 2의 사랑 장'으로 불리 웁니다. 양자는 공히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바 전자는 사랑의 특성 자체를 논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사랑의 기원과 성격 및 그 의미를 말하고 있으며 아울러 사랑이 성도가 필연적으로 실천해야 할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영들에 대한 시험(1-6절), 사랑의 필연성(7-21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영들에 대한 시험 (1-6절)
①영들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사도 요한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요한은 그들에게 역사하는 영이 어떤 영인지 시험하여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속에 역사하는 영이 어떤 영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사탄에게 속한 영인지, 성령인지, 악령인지, 진리의 영인지 미혹의 영인지 시험해 보고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세상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와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벧후2:1). 요한 당시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종말에도 그럴 것입니다. 예수님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와 미혹하게 될 것을 예언했고 (마24:4-5,11,24), 요한도 종말에 거짓 선지자의 활동이 극심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계2:2,6,14,20, 13:11-18, 20:10). 그들은 하나님을 훼방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를 미혹하는 일에 전무합니다 (계12:3-17)..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적그리스도의 영'은 악령을 가리킵니다.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αντιχριστοs) '적그리스도의 영'은 악령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사람의 속에서 역사하는 영이 어떤 영인지 아는 기본적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지 부인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단인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가현설(假顯說, Docetism)을 주장했습니다. 영지주의가 주장하는 도케티즘이란 헬라어 도케오(...처럼 보인다)에서 온 말인데, 그리스도가 육체로 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육체의 모습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도케티즘을 제일 먼저 주장한 바실리데스(Basilides: A.D.117-138)은 “그리스도는 고난받지 않고 구레내 시몬이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도록 강요받고 그 순간 시몬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진 나머지 다른 사람이 그를 그리스도로 알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구레내 시몬의 모습을 취하시고 거기 계시며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을 비웃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것은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죄값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신 그리스도(메시야)임을 인정하려면 그가 역사적으로 육체를 가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한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가 육체로 오시기 전에 로고스(λγοs)로 선재하신 하나님이었다는 사실 (요1:1), 그가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 (요1:14), 그가 재림 때 육체로 다시 오실 것(행1:11, 계1:7)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단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이단'이라는 말은 한문(異端-다를이, 단정할 단)의 어의로 본다면 '다르다고 단정하는 것'을 말하고, 영어(heresy)의 어의로 본다면 '이교, 이단, 이론'을 말합니다. 헬라어(하이레시스αιρησιs)의 어의로 본다면 '파, 분파, 당파, 파쟁, 의견, 교리'를 말합니다. 헬레니즘에서는 어떤 특정 철학이나 학파의 교의(교리)를 공포하는 자나 혹은 집단을 가리켜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런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치는 일반적 교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자나 혹은 집단'을 가리키는데 사용했습니다. 현대적 의미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르친 교의(敎義)를 기준한 '정통교리를 부정하거나 변질시키거나 왜곡시켜 바른 진리를 파괴하는 개인이나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는 "이단이란 본질적으로 교리적인 문제로서, 어떤 교리에 생긴 오류와 잘못이든 성경이 말하고 있고 역사적 전통교회가 믿고 있는 교리를 변질시키고 바꾸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이단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단이란 말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말은 사이비인데 사이비는 이단과 다른 표현입니다. '사이비'(似而非-같을사, 써이, 이닐비)라는 한문 표기는 '같은 것이 아닌 것'으로서 '유사'의 의미입니다. 사이비는 출처의 측면에서 기독교가 아닌 것이 기독교 형태를 띠고 기독교 안에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는 집단이나 사람을 말합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는 "사이비란 유사 기독교로서 이단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가정 파괴, 부녀자 성폭행, 금품 갈취 등의 반사회적 반윤리적 행위를 하는 집단이나 사람을 지칭한다"고 했습니다. 곧 평가 기준이 사이비는 윤리적인 기준이고 이단은 교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을 가리는 기준은 교리입니다.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기본교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대속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예수님이 구원자이며 육체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또 육체로 오실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이단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믿지 않는 자는 이단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보면 교주를 구원자로 여기는 교단들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가 구원자임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이단입니다. 그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아니고, 악령 곧 미혹하는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라면 그리스도를 부정하게 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③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사람이 따르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 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앞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악령에 속한 자인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지 시인하지 않는 지로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외에 또 하나의 분별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따르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악령이 역사하는 자는 세상에 속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상'은 악령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악령이 역사하는 자는 사탄적이고 마귀적인 말을 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경을 모욕하는 말을 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를 타락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악령에 속한 자는 그 말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사도들처럼 성령에 속한 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하는 말을 하고 교회와 성도가 잘되는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에 속한 자는 그 말을 듣고 믿고 따르게 됩니다. 앞의 분별법이 교리적인 면이라면 이 분별법은 행위적인 면입니다 (마7:16).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수신자들이 이미 교리적으로 분별하여 이겼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행하므로 삶을 통해 이미 이겨 나가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표적에 대한 설교를 한 다음에 받아 들이지 않은 자들에 대해 세상에 속한 자, 마귀를 따르는 자라고 선언했습니다 (요8:43-45).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말씀만 듣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따릅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삽니다.
2. 사랑의 필연성 (7-21절)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①사랑해야 할 이유에 대해 밝혔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αγαπη)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7-8, 16절).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속성 자체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으로 나타났습니다 (9-11절). 인간은 아담 때부터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므로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이었습니다. 필연적으로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과 영원한 죽음이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이미 죽었고 육체도 죽게 되고 영혼과 육체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해서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죄에 대해 심판을 선고하는 율법을 이룰 수 없었고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만족시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는 영원히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죄의 결과인 죽음과 내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독생자'는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아들을 말합니다. 히브리 관념으로 볼 때 아들은 아버지를 닮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본질이 하나님이고 하나님 속성을 가진 자이고 하나님과 하나인 분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이 세상에 보냈다는 것은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온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요1:1, 14). 곧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온 형태인 것입니다. 그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진 예수 그리스도만이 율법의 요구를 완전이 이루어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만족시킬 수 있고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룰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시므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을 화목시켰습니다. 그의 대속의 결과로 하나님 백성의 죄가 없어졌고 그 결과 하나님 백성이 모든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그가 먼저 우릴 사랑한 것입니다 (19절). 그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님이 사랑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의 사랑을 삶 가운데서 실천하려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계명이 사랑하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0-21절).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출20:3-17, 신6:4-5, 레19:18). 예수님도 하나님이 주신 율법(계명)의 대강령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막12:30-31). 또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요13:34). 이미 있는 계명의 근본 핵심 정신을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해야 하고 계명을 순종하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했고 그 계명은 하나님의 계명과 동일합니다 (요14:15).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 곧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인 것입니다 (20절).
②사랑을 하는 자의 결과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12-16절).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 곧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소유하고 있고 실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인 것을 믿고 시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게 됩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자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자에게는 이미 성령으로 내주하신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는 상호 내주로 교제가 깊어집니다. 공동체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유기적인 관계로 이룬 공동체에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하십니다. 그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그 공동체와 함께 하고 그 공동체는 더욱 하나님이 가까워 집니다. 요한복음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17-18절).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자는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여 교제를 단절하실 뿐만 아니라 종말에 그에 대한 형벌을 내리실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종말 심판 때에도 형벌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습니다. 비록 실천적으로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는 못하지만 그 계명에 대한 중심을 지키는 자로서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거나 심판 때 책망 받을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비록 실수가 있더라도 아버지와의 관계에 의심하지 않고 담대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관계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담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 가는 자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結言>
요한 당시 이단 영지주의자들과 그들에게 미혹된 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죄를 짓는 것은 영이 아니라 육이니 자신들이 범죄할지라도 사람의 주체인 영이 범죄한 것이 아니니 하나님 앞에 담대하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그들을 분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하려면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과 계명의 핵심을 행해야 한다고 하므로 그들을 비판했습니다. 곧 사랑을 실천해야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앞에 담대한다는 말이 증명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들이 원리적으로 사랑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