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마태복음23:1-39

<題目>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序言>

  본장은 앞장에서 나온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에 대한 최종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장에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세 번에 걸친 질문을 받았으나 지혜로운 대답을 하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역질문을 하므로 그들 스스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듣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엄중한 경계를 했습니다. 이 일은 수난주간 화요일에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에 해당합니다. 내용구조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계(1-7),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8-12),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13-36), 예루살렘에 대한 애도(37-39)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계 (1-7)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모인 무리와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경계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1-2). '모세의 자리'는 율법을 공식적으로 맡은 자리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서기관은 회당에 공적인 율법 교사의 자리로 만들어진 석재(石材)로 만든 자리에 앉아 율법을 해석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세의 법적 계승자로서 모세의 모든 권위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율법을 해석하며 강론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율법에 대한 권위자로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는 율법 자체는 옳은 것이므로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3). 그러나 그들은 위선과 외식과 교만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① 위선을 경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3). 또한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들은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4). 그들은 가르침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언행의 불일치로 위선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율법을 세부사항으로 나누어 613개 조항으로 만들고 보통 사람이 행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짓누르는 무거움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손가락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부과하고 제한만 할뿐 사람들의 고통을 가볍게 하고나 나누거나 대신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경멸한 것입니다.

 

   ② 외식을 경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차고 다니는 경문을 넓게 하고 옷 술을 크게 했습니다 (5). '경문'(經文)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왼팔 안쪽이나 이마에 가죽 끈으로 차고 다니는 작은 사각형 상자 안에 담은 율법 글귀입니다 (13:2-10, 11-16, 6:4-9, 11:13-21). 그들은 그 경문을 아침 기도를 할 때 차고 다녔으나 점차 하루 종일 차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게 했으나 그들은 자신의 경건을 과시할 목적으로 사용했고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일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 차고 다녔습니다. '옷 술'은 바리새인들이 겉옷의 끝자락에 단청색실로 짜서 단 술(tassel)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사용하게 한 것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했고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도록 크고 길게 만들어 매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상징을 자기들의 신앙적 열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했고 더욱이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를 나타내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경멸했습니다.

  

   ③ 교만을 경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했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6-7). 바리새인들은 잔치의 상석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잔치의 상석(上席)'은 손님을 맞이하여 밤이 맞도록 즐기는 저녁식사의 상석을 말합니다. 출입구에서 맨 안쪽에는 잔치의 주인공이 앉고 좌우로 귀한 손님들이 배석하는데 우측 상단 끝에 있는 자리가 상석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회당의 상좌(上座)'는 예루살렘을 향해 비치된 회당 내부에서 가장 상석을 말합니다. 회중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궤 앞자리가 회당 관리자의 자리이고 그 바로 우측 자리는 회당 지도자급 인사들이 앉아 지혜를 설파하는 곳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상석인 회당 관리자 우측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시장에서 문안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자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랍비(ραββι)''나의 선생'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이 선생으로 부르는 것은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에게 랍비라 부름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그런 모습은 모두 사람들에게 높임 받고자 하는 교만한 행태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교만한 신앙생활을 경멸하십니다.

 


     2.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 (8-12)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경계시킨 후 무리와 제자들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선생의 위치에 있기를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생'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라고 했습니다. '아비'도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땅에 있는 아비를 아비라 하지 말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이나 아비는 하나님뿐이고 사람은 다 그의 아들로서 형제라는 것입니다 (8-9). 당시에 '랍비''아비'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자에 대한 용어로서 율법스승이나 원로교사나 학파수장 등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와 같은 자들을 절대적으로 숭상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절대적 위치와 그들이 누린 특권을 부정하고 모두가 같은 평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고 했습니다 (10). '지도자'는 당시 교사나 스승에게 사용한 용어로서 따르는 사람들을 앞서가며 그들을 인도하여 그들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권위자입니다. 참으로 책임지고 바른 길로 인도 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로 칭함을 받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리스도 위치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습니다 (11-12). 다른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면 더욱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보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섬기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낮아지시고 십자가 죽음으로 자기 백성을 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활 승천시키시고 모든 사람에게 주라 높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2:5-11). 하나님은 심판 때에 낮아져 섬긴 자를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낮아지기를 힘쓰고 섬기기를 힘써야합니다. 바울도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고 했고 (2:3),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고 했습니다 (2:17).

 

 

       3.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13-36)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13~36절까지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저주를 '7(七禍)'로 선언한 내용입니다. 7번을 선언할 때마다 '화 있을지어다'로 시작했습니다. '화 있을진저'에 해당하는 기본형 '우아이'(ουαι)'슬프다'의 뜻으로 저주나 심판을 경고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슬픔을 탄식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식(外飾)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본형 '위포크리테스'(υποκρτης)'배우'로서,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 연극을 하는 자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위선자의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① 첫 번째 화 선언 (13-14)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11:52에는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진리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바로 행하지 못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잘못된 진리 지식을 독점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 가르치므로 다른 사람도 잘못 행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가르친 것을 행하지 않으므로 자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여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진리 지식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문을 막고 있는 자는 교회 밖의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② 두 번째 화 선언 (15)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15). '교인'(προσηλυτος)은 개종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교에 적극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가르치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전통과 규범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그럼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우상숭배 습관에 잘못된 신앙관을 덧입혀 주니 더욱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잘못된 지식을 가지면 열심을 낼수록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결국 자기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더욱 망하게 하는 자가 됩니다.

 

   ③ 세 번째 화 선언 (16-2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매한 맹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누가 성전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단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예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16-18). 그러나 성전 안에 성전의 금이 있는 것이고 제단 위에 예물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전이 금보다 크고 제단이 예물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성전으로 맹세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금도 포함된 것이고 제단으로 맹세하는 것은 예물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늘로 맹세 한다는 것이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19-22). 그들이 성전보다 금으로 맹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예물로 맹세하는 것은 성전 안의 금과 제단 위에 놓인 예물에 관심을 둔 탐욕을 드러낸 가르침입니다. 실로 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우리 옛말에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는 탐욕을 갖지 않아야 하며 성도들도 탐욕에 의한 교훈을 진리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이 되어 모두 그릇된 곳으로 가게 됩니다 (15:14).

 

   ④ 네 번째 화 선언 (23-24)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경고했습니다 (23). '십일조'(十一條)는 소출 가운데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를 말합니다 (27:30, 14:22-27). ‘박하’(ηδυοσμον)는 독특한 향내를 내는 식물로서 음식물에 양념이나 약품의 재료나 방향제로 사용되는 채소입니다. '회향'(ανηθον)은 미나리과에 속한 식물로서 음식물의 양념이나 약품이나 향료로 쓰이는 채소입니다. '근채'(κυμινον)는 역시 미나리과에 속한 식물로서 향기로운 열매를 맺어 음식의 양념이나 약품에 사용되는 채소입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공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음식물을 만들 때에 사용하는 양념들입니다. ''(, κρισις)는 정의를 말하는 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근거하여 사람과의 관계에서 올바로 행해야 할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 ελεος)는 자비를 말하는 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근거하여 사람과의 관계에서 긍휼을 베풀어야 할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 πιστις)은 신뢰를 말하는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하여 사람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작은 세칙까지 만들어 지켰으나 율법의 중심내용과 근본정신을 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고 했습니다 (24). 유대인들은 '하루살이''낙타'는 부정한 곤충과 짐승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살이가 포도즙 통에 떨어졌을 때 부정한 것을 취하지 않기 위해 채로 걸러냈습니다. 가장 작은 곤충을 걸러내는 데는 철저하면서도 가장 큰 짐승인 낙타는 먹는다면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세칙은 철저히 지키면서도 율법의 중요한 정신은 지키지 않은 것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십일조가 3가지의 종류가 있었습니다. 첫째,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27:30-33, 18:20-24).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는 매년 소산의 101을 드리게 했는데, 그 십일조는 성전 봉사사역을 맡은 레위인들의 생활을 위해서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레위인은 기업(토지)를 갖지 않고 온전히 제사사역만 감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가족을 위한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14:23-27). 가족을 위한 십일조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 외에 또 101을 떼어 감사제를 드리고 가족과 종이 함께 먹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셋째, 빈민을 위한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14:28-29). 빈민을 위해 드리는 십일조는 레위인을 위해 드리는 십일조 10분의 1 외에 또 가족과 종을 위해 십일조 10분의 1을 더 드렸습니다.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 외에 10분의 1을 더 드리는 것 가운데 1~2년째의 것은 가족을 위한 십일조로 드리고, 3년째의 것은 빈민을 위한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 10분의 1 외에 10분의 1을 뗀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해를 기준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해로부터 7년째는 안식년이므로 안식년을 기준해서라고 해도 됨) 1-2,4-5년은 가족을 위한 십일조로 드리고 3,6년은 빈민을 위한 십일조로 드린 것일 것입니다. 빈민을 위한 십일조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배부르게 먹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할 때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기 위함이고, 성전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고,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게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유지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와 인과 신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근거로 사람에게 정의롭게 행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느끼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사람에게 진실히 대해야 합니다. 십일조의 외부적 세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보다 십일조의 근본정신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23). '이것'은 박하와 근채와 회향을 드리는 것으로서 십일조의 외부적 규범을 말하고, '저것'은 의와 인과 신으로서 십일조의 근본정신을 말합니다. 외부적으로 드리는 것보다 근본정신이 더욱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규범도 지킬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의 규범보다 율법의 정신이 더 중요하지만 율법의 규범이 율법의 정신을 더욱 온전케 해주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규범만 외부적으로 지키는 것은 외식하는 것이지만 율법의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에게 있어서는 율법의 규범이 그 정신을 더욱 유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⑤ 다섯 번째 화 선언 (25-26)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잔과 대접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겉도 깨끗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25-26). 누가복음11:39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잔과 대접'은 먹고 마시는 그릇에 대한 통칭입니다. 그들은 먹는 일에 대한 정결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손 씻는 일과 함께 그릇 씻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11:38). 그런 의식은 속사람을 정결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인데 그들은 외부적인 정결에 지나치게 잘 행하면서도 속마음을 정결케 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물질적인 탐욕과 도덕적인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마치 말세에 나타난 음녀의 잔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17:4"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음녀'는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동시에 말세에 나타날 세속 문화와 문명입니다. 세상 왕과 백성들이 모두 그 잔을 받아 마시고 취하게 됩니다. 그 잔 안에 든 것은 우상과 관련되어 있고 음행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 에스겔 당시 예루살렘 성전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준 예루살렘 성전은 그 안에서 각종 우상, 곧 투기 우상, 곤충과 짐승 우상, 담무스 우상, 동방태양 우상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8:1-18). 교회 안뿐 아니라 우리 개인 속에도 이런 우상과 우상 섬기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고전3:16). 우상숭배의 근본 인은 탐욕입니다 (3:5, 삼상15:22-23). 우리 속에도 각종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 찬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라고 했습니다 (7:21-22). 마음속에 각종 욕심과 탐심을 버려야 삶이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1:15).

 

   ⑥ 여섯 번째 화 선언 (27-28)

 

  예수님은 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회칠한 무덤 같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회칠한 무덤'은 평토장한 무덤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장례 풍습을 보면 바위 언덕에 판 굴 모양의 무덤을 돈으로 사서 그 안에 시체를 넣고 돌로 그 입구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덤은 영구적이어서 가족과 후손 대대로 사용하는 가족묘의 기능을 합니다 (23:9). 그렇지만 조상이 마련해 놓은 묘가 없거나 가난하여 무덤을 살수 없는 사람은 가족 중에 누가 죽으면 난처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규정에 의해 당일 어두워지기 전에 시체를 무덤에 넣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평토장을 합니다. 땅을 30~40cm를 파고 그곳에 시체를 묻습니다. 시체를 그렇게 얕게 묻는 것은 다음에 굴 모양의 무덤을 싼 다음에 정식으로 그 무덤에 매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평토장은 시체를 얕게 묻었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빗물에 흙을 쓸려가 뼈들이 노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이 모르고 밟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뼈를 밟은 사람은 율법의 규정에 의해 7일간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19:16).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각 나라와 각 지역에서 수십만 명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게 되는데 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행해 가는 순례객들이 부정하게 되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예루살렘 산헤드린에서는 그 순례객들을 위해 사람을 보내어 평토장한 무덤에 하얗게 석회 칠을 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고 지했습니다. 그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한 것은 회칠한 무덤이 겉보기는 좋으나 속에는 썩은 시체가 있는 특징을 들어 그들이 겉보기는 좋으나 속에는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8절에 보면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옳게 보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했습니다. '외식'(υποκρισις)'위선'을 말하고 '불법'(ανομια)'불의'를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좋게 보였습니다.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다녔고, 손을 높이 들고 기도를 했고, 때때로 금식을 했고, 구제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위선이었고 가식이었습니다. 속에는 사람들에게 높임받고자 하는 불의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죄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종교적 열심으로 가장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온갖 더러운 욕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가복음7:21-22"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단어를 말한다면 교만, 탐욕, 음란, 살인, 질투, 비방 등입니다. 우리 속에는 높아지려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 좋은 평가를 듣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온갖 더러운 정욕적 욕망이 있습니다. 온갖 분노와 미움과 증오를 나타내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온갖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온갖 판단과 정죄와 비난과 비방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종교적 선행으로 가장하여 의로운 체합니다. 중독환자들이 위장의 전문가인 것처럼 속에 부정적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철저한 위장을 합니다.

 

  병행구절 누가복음11:44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평토장한 무덤'(τα μνημεια τα αδηλα)'보이지 않는 무덤'을 말합니다. 평토장한 무덤은 유월절이 가까울 때 산회드린 공회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회칠을 하여 표시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전역에 평토장한 무덤을 다 찾아 표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표시가 안된 평토장 무덤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다가 밟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부정하게 되어 성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평토장한 무덤은 그 속에 더러운 시체가 있지만 지나는 사람에게 부정하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상징 의미가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도록 하는 자들입니다. 누가복음11:52"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23:13). 우리 속에는 온갖 부정한 감정들과 욕망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가치만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까지도 부정하게 합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부정한 욕망들 때문에 은혜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속에 있는 부정한 욕망들로 다른 사람들도 은혜생활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상담심리학에서 방어기재(Defence Mechanism) 가운데 '투사'(Projec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이 혼란스러울 때 그 혼란스러운 문제를 외부에 재배치하므로 안정을 찾으려 하는 데 그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투사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내 속에 음욕이 가득하여 그것을 제재할 수 없게 되면 마음이 힘들어지는데 그때 자기 마음속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투영시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음란한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혹은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속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투영시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방어기재로 다른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 대상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거나 비방하고나 험담합니다. 우리 속에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욕망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그 감정을 투사시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로 인해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들어 은혜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도 은혜생활을 못하고 다른 사람도 은혜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결과를 만듭니다.

 

  이제 압니다. 우리가 힘들어서 제도와 환경과 상황과 사건과 일과 사람을 욕하고, 심지어는 교회를 비난하고 하나님을 비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방어기재로 나타난 투사 현상들이 결국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더러운 욕망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우리는 늘 힘들었고 혼란스러운 감정들과 요동치는 욕망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쉴 자리가 없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우리에게 위로를 받고 회복하려고 오는 그들을 말로 찔렀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받아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나의 못난 자아 때문에, 나의 못된 성품 때문에, 나의 못된 감정과 욕망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더럽고 사악한 모습을 인정하며 회개하는 것이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내 주신 성령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5:16"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⑦ 일곱 번째 화 선언 (29-36)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29-30). 자기 조상들이 선지자들 핍박하고 죽였는데 자신들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상들을 비판하므로 자신들의 옳음을 나타내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31-32).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비판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그들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인 죄의 분량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고 번역했습니다. 셈족 언어에서 '아비''아들', '조상''자손'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구약에 선지자들을 죽였던 자들과 같은 자들임을 전제하고 그들처럼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까지 죽이려하는 것을 아시고 냉소적으로 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34)고 한 것은 예수님 자신 뿐 아니라 예수님이 보낼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선지자들을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지혜있는 자''서기관'은 구약의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 야고보, 스데반, 바울같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복음 전도자와 교사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선언했습니다 (33). 세례 요한도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3:7). 공동번역에는 "이 뱀같은 자들아"고 번역했습니다. '독사'는 독을 품은 뱀입니다. 뱀은 사탄의 사주를 받아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다가 저주를 받은 동물입니다 (3:1-5, 14-15). 창세기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그 후손들이 예수님을 원수로 여기고 예수님을 핍박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실패하자 교회를 핍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국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유황 불못에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12:1-20, 10:15, 21:8).

 

  예수님은 또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35-36). 아벨은 구약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4:8). 사가랴는 구약 최후의 순교자입니다 (대하24:20-22). 히브리성경에는 역대하가 구약의 맨 마지막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문의 스가랴는 '바가랴'의 아들이라고 했고, 역대하에 나오는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흔히 조상아버지로 표현되고 자손아들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런 표현들 때문에 생긴 차이일 것입니다. 아벨은 피 있는 제사곧 바른 제사를 드리다가 가인의 미움을 받아 들에서 돌에 맞아 죽은 자이고, 사가랴는 성전에서 우상 섬기는 자들을 책망하다가 그들로부터 성전 뜰에서 돌에 맞아 죽은 자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이 다 사탄의 후예 곧 뱀에게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그 후예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고 예수님까지 죽이려고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구약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죽인 세대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종말에 교회와 성도에 대한 핍박은 더욱 절정에 이를 것이나 심판도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13, 14, 20).

 

 

       4. 예루살렘에 대한 애도 (37-39)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고 예루살렘에 대해 애도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37). 예수님이 하나님 입장에서 이스라엘 전 역사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8:58).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모든 유대인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모으려고 수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사술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20:27, 17:5-7), 유대인들은 더 나아가 거짓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고 (Mishnah),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싫어하여 사전에 공모하여 돌로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던 세례 요한도 죽였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거절한 것입니다 (1:11).

 

  그러므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38-39). ''은 기본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하며 넓게는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인 죄로 성전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멸망당한 다음에도 돌아오지 않고 종말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를 즈음하여 비로소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11:25-26).

 

<結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 끊임없이 시험하여 죽음에 넘겨줄 계략을 꾸몄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심판받을 것을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메세지를 거부하였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애정을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