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마태복음28:1-20
<題目> 예수님의 부활
<序言>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오후 3시에 운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장사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무덤의 돌을 인봉하고 파수꾼들을 세워 지키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수차 말씀하신대로 사흘만에 일요일(주일) 새벽에 부활하였습니다. 이 부활 사실은 십자가 죽음 사건과 더불어 복음의 핵심 내용이 되었습니다. 본장은 그 부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장의 내용구조는 예수님의 부활과 증거(1-15절),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16-2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예수님의 부활과 증거 (1-15절)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안식 후 첫날 곧 주일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찾았습니다 (1절). 마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로 기록하고 있고, 마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로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및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인들로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목적에 대해서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무덤을 보기 위해서라고 했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향료를 바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이 무덤에 찾아왔을 때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같고 옷은 눈같이 희었다고 했습니다 (2-3절).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여자들이 무덤을 찾았을 때 빈 무덤이라고 했으나 마태복음은 여인들이 천사들의 돌 굴려 내는 모습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천사의 모습에 대해 마가복음에서는 흰 옷 입은 한 청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에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로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흰 옷 입은 두 천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지진 광경과 천사들의 광경을 보고 충격에 빠져 죽은 자처럼 되었습니다 (4절). 그 천사는 여자들에게 무서워말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찾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그의 누웠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그가 제자들보다 갈릴리에 먼저 가실 것이니 그곳에서 볼 것이라고 전하게 했습니다 (5-7절).
여자들은 천사들의 메세지를 듣고 한편으론 무서웠고 한편으론 기뻤습니다. 여자들은 교차하는 마음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려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 '평안하뇨' 물었습니다. 그말은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χαιρετε). 여자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이미 천사들에게 부활 사실을 들은 여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신적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결국 이 여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체를 보았고 만진 증인들이 된 셈입니다. 예수님은 여자들에게 무서워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도록 했습니다 (8-10절).
한편 여자들이 부활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달려간 사이에 혼절했던 파수꾼들은 성내로 들어가 대제사장들에게 되어진 일을 보고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말하게 했고, 혹 빌라도 총독에게 말이 들어가 책임을 추궁당하면 자기들이 해결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파수꾼들이 대제사장들의 가르친대로 했습니다. 그 말이 마태복음을 기록할 당시(AD 70년 전후)에까지 유대인들에게 두루 퍼졌습니다 (11-15절).
※ 예수님 부활의 증거
고린도전서15:3~4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당신께서 살아생전에 예고한대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7:14, 53:5-6, 10-12, 시16:10, 마16:21, 17:22-23, 막9:9-10, 요2:19-22, 행3:18, 벧전2:24).
만일 부활사건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생애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과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로서의 행보였던 것이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4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동력과 근거와 표준이 되기 때문이며 우리가 사탄과 죄와 죽음과 모든 고통의 환경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5:20에 “그러나 이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했습니다 (고전15:22, 51-52, 42-44, 살전4;16, 계11:11). 고린도전서15:55-57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히11:35-38, 고후4:8-9). 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5:30,32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했습니다. 만일 부활이 거짓교리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인생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19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가사설(假死說), 착오설(着誤說), 도거설(盜去說), 허위설(虛僞說), 환상설(幻象說) 등을 주장하며 부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사설(假死說)은 예수님이 완전히 죽지 않았는데 장사를 지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이후에 로마 군병들이 안식일 전에 죽게 하려고 다리를 꺾으려 했으나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고 허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물과 피가 쏟아졌으며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체를 요구했을 때 빌라도가 백부장에게 물어 이미 죽은지 오래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시체를 내어주었습니다 (막15:44-45, 요19:31-34). 착오설(着誤說)은 여인들이 새벽이라 예수님의 무덤을 바로 찾지 못하고 다른 빈 무덤을 들어갔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될 때 그 무덤에 있었으며 여인들은 여러 명이었습니다 (마27:61, 막15:47). 도거설(盜去說)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설입니다.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아둔 돌은 매우 큰 돌이어서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누구에게 돌을 옮겨달라고 할지 고민했으며 그 입구에는 군인들이 밤새 경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막16:3, 마28:11-15). 허위설(虛僞說)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놓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이 잠든 사이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허위사실은 대제사장들이 유포한 것입니다 (마28:11-15). 환상설(幻象說)은 목격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예언을 들었고 예수님이 부활할 것을 너무 고대한 나머지 환상을 보았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체를 목격한 사건은 12차례인데 그 중에는 대화를 한 사람도 있고 손과 허리를 만져본 사람도 있고 있으며 중복적으로 본 사람도 있고 대부분 여러 사람이 함께 보았고 심지어는 500명이 함께 본 때도 있었습니다 (요20:26-28, 고전15:2-8).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①역사적 유적이 증명합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의 무덤으로 알려진 정원 무덤이 있습니다. 그 정원 무덤은 영국군의 한 장군이 고고학적 증명을 통해 발견했는데 현재 예수님의 무덤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입니다. 물론 그것이 진짜 예수님의 무덤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고고학적으로 그렇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참고해 볼 만합니다. 그 정원 무덤이 있는 절벽은 해골 형상의 바위가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을 히브리어로 ‘골고다’(라. 갈보리)로서 그 뜻은 ‘해골’이라고 했습니다 (마27:33, 막15:22, 요19:17). 그곳을 골고다라고 부른 것은 그 언덕이 해골을 닮은 바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Bultman). 그 바위를 지나 정원 무덤에 가 보면 입구 왼쪽 위 바위벽에 초기 기독교인들의 표식인 앵크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무덤 입구에는 큰 원통형 돌이 있어서 그 돌을 굴려 입구를 막을 수도 있고 열 수도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구에 달아놓은 나무문에는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그는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아무것도 없고 텅 비어 있습니다.
②빈 무덤이 증거 해줍니다 (마28:1-4, 눅23:1-3).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주일) 예수님 무덤을 보기위해 예수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돌 위에 앉았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은 혼절했습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를 너희가 찾는 줄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여인들이 향품을 발라주기 위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을 때 무덤 입구를 막아두었던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③천사들의 증언이 증거 해줍니다 (마28:5-7, 눅24:4-8).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를 너희가 찾는 줄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시체가 없음으로 인하여 누가 훔쳐간 줄 알고 근심하며 울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말하고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하면서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④예수님의 증언이 증거 해줍니다 (마28:8-10, 요20:11-18).
여인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무서움과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빨리 달음질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저희에게 나타나 '평안하뇨'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 발을 붙잡고 경배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여인들이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 시체를 다른 데로 옮겨 두었거든 그곳을 알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야' 하니 마리아는 히브리말로 '랍오니여'(선생님이여)하며 만지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했습니다.
⑤수의(壽衣)의 놓인 위치가 증거 해줍니다 (요20:3-7, 20, 27).
베드로가 여인들에게 무덤이 비었다는 말을 전해듣고 무덤 속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 시체를 쌌던 세마포(수의)만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같이 놓이지 않고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 '개켜있더라'는 헬라어로 엔테튀리그메논(εντητυλιγμενον)으로서, 사용하기 전 상태처럼 둥그렇게 말린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세마포를 가지런히 개어놓고 두건도 따로 개어놓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⑥파수꾼들의 은폐 노력이 증거 해줍니다 (마28:11-15).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 지낸 후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전에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습니다. 예수님을 빌라도 정권에 넘겨 십자가형을 내리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유대교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처형을 받기 전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예수님이 부활할 것을 두려워하여 경비병을 보내 무덤을 지키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고 땅이 흔들리고 무덤 입구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부활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이 무덤을 떠난 후 성으로 들어가 자기들을 보낸 대제사장들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의논하고 경비병들에게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잘 때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그 시체를 도둑질해 갔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받은 군병들이 대제사장들의 지시대로 말하긴 했으나 대제사장들이 많은 돈을 주며 거짓말을 지시했다는 내용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유대인들에게 다 퍼졌습니다 (11-15절). 15절에는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은 A.D.70년경에 기록되었으니 약 30~40년이 지난 후에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퍼져 다 알게 된 것입니다.
⑦부활체의 현현(顯現) 사건들이 증거 해줍니다 (고전15:2-8).
예수님은 부활한 후 40일 동안 12차례에 걸쳐 나타나 부활체를 보여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루살렘에서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엠마오로 가는 2제자에게, 예루살렘에서 10사도에게 (도마 없을 때), 예루살렘에서 11사도에게 (도마 있을 때), 갈릴리 해변에서 7사도에게, 갈릴리 산에서 11사도에게, 갈릴리에서 500여 형제에게, 예루살렘에서 주의 동생 야고보에게, 감람산에서 승천할 때 사도들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보이셨습니다 (막16:9, 마28:9, 눅24:34, 막16:12, 눅24:39, 요20:26, 요21:1, 마28:16, 고전15:7, 막16:19, 행9:3-6). 여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체를 여럿이 함께 보기도 했고 중복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도 확인했습니다. 제자 가운데 도마는 그 못 자국과 창 자국을 직접 만져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요20:27). 갈릴리에서 500여 명이 함께 본 때도 있었는데 바울은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15:6에는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고 증언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A.D.55년경에 기록되었으니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때는 부활체를 목격한 때로부터 약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이므로 그 목격자들이 대다수가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확인해 볼 수 있다는 확증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⑧목격자들의 생활 변화가 증거 해줍니다 (눅24:52-53, 행4:19-20, 9:19-21).
예수님의 부활체를 목격한 제자들은 삶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다 도망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심문받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모두 낙심하여 고향 갈릴리로 갔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지시도 있었지만). 그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체를 목격한 후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눅24:52-53, 요7:5, 행1:14, 4:19-20, 행9:1-21).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4:19-20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하지 못하게 하는 공회원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로 결의하고 빌라도 정권에 넘겨 사형을 받아 죽게 한 산헤드린공회에 붙잡혔을 때 한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모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내가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강제로 본 후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몽둥이로 맞고 십자가에 묶여 방치된 채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칼에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요한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가마솥형을 받았으나 살아난 후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후에 석방되어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의 복음을 전하다가 히에라볼리(파묵칼레)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몽둥이로 맞은 다음 산채로 가죽을 벗김 당한 다음 십자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칼에 질려 죽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곤봉에 맞아 죽었습니다. 다대오는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포박당해 죽었습니다 (죽임당한 방법은 정확히 모름). 시몬은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톱으로 사타구니부터 머리까지 두 동강 내는 형벌로 죽었습니다. 맛디아(가룟 유다 대신 뽑힌 사도)는 이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후에 사도가 된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일을 하다가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을 색출하러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 회개하고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참수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⑨교회의 확장이 증거 해줍니다 (행2:41-47, 4:33-37).
부활체를 목격한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입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정해준 규례를 생명 내놓고 지켰고 성전에 모여 기도를 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예전을 행했습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 신앙 공동체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행2:41-47, 4:33-37). 그렇게 태동한 교회가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 퍼져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시대에 황제들, 종교개혁시대에 로마의 교황들, 영국의 여왕, 세계대전시대에 독일의 히틀러, 일본의 천황, 그 이후 소련의 히틀러, 중국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 등 수많은 적그리스도의 성격을 가진 권세자들이 교회를 잔해하고 성도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없어지지 않고 가장 많은 곳에 전파되어 가장 큰 종교가 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호텔에 성경책이 비치되어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영국의 사학자 토마스 아놀드(Thomas Anold)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사건 보다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이 인류 역사 가운데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한때 영국의 무신론 자였던 리틀스톤경과 길버트웨스트는 예수님의 부활과 바울의 변화를 반증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들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프랑크 모리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할 목적으로 '누가 돌을 움직였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읽다가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 오히려 부활의 사실성을 철저히 변호하는 논리를 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의 근거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20~21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 살아남은 자도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여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15:51-52). 요한계시록11:11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첫 열매'는 대표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곡식을 추수한 다음 첫 곡식단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 곡식단은 모든 수확물에 대한 대표성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이 범죄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다시 사시므로 인류가 살게 된 것입니다 (롬5:12). 또한 '첫 열매'의 대표성은 다음에 수확될 곡식도 동일한 곡식의 형태를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그를 믿는 성도들도 그와 같은 부활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곳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고전15:42-45).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삶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15:56-58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내세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오늘에 먹고 마시자 하면서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고전15:30-33절). 아무것도 이겨나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는 다릅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나갑니다 (고전15:55-57). 히브리서11:35-38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죄의 욕망을 이겨나갑니다 (롬7:24-25, 8:1-2). 또한 고난의 환경을 극복해 나갑니다. 또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을 보내어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오셔서 위로 하십니다 (요일2:1, 요14:16-17). 요한복음14:18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오늘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능히 이기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8:37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2.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 (16-20절)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1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이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님을 뵙고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16-17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언제 이 산에서 만날 것을 명하셨는지 그리고 이 산이 어떤 산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주석학자들은 이 사건을 바울이 말한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신 사건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고전15:6). 제자들이 이전에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지만 이곳에서 또 500여 형제들과 함께 본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고 경배하려 했던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500여 형제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부활체를 처음 보기 때문에 망설였을 것입니다. '의심하더라'(εδιστασαν)는 불신앙이 아니라 망설임이나 주저함을 의미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지상 최대의 명령인 선교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19-20절). 이 명령은 전도의 명령이며 선교의 명령이며 제자훈련의 명령입니다.
1) 전도 명령
① 전도는 반드시 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하신 일은 회당에서 가르치신 일,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일,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일, 이적과 기사를 베푸신 일등을 들 수 있는데 (4:17, 눅4:16). 그 근본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일 곧 전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풍병자에게 "네 병이 나았느니라" 하지 않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사건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이 일을 분부하셨습니다 (마10:1).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최후의 명령이자 지상 최대의 명령으로 주신 말씀도 전도 명령입니다. 본문 마태복음28:19-20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16:15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1:8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명령을 받아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일인 줄 알고 일평생 복음전파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디모데에게 엄격한 어조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확신시켰습니다. 디모데후서4:1-2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최후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극형이 있습니다 (막16:16). 히브리서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3:12에는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0:12에는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보좌 앞에서 생명책과 행위의 책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1:8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는 둘째 사망이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16:24부터는 부자가 뜨거운 불 가운데서 번민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그곳에는 가지 않아야 합니다. 마가복음9:43에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생과 영벌에 대한 열쇠는 복음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열쇠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10:13-14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믿지 않는 자가 어찌 부르리요 듣지 않는 자가 어찌 믿으리요 전하느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는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는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셋째, 전하지 않는 자에게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믿지 않은 죄 값으로 지옥에 가지만 그 피값은 전하지 않는 자에게서 찾습니다. 에스겔3:18에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9:16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했고, 로마서1:14에서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전하지 않는 자에게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을 알아야합니다 (마25:26~).
② 전도는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첫째, 내세에 큰 상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전도자에게 순교자 다음으로 큰 상을 주십니다. 다니엘12:3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4:7-8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로운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현세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많은 손해를 보고라도 사명을 감당하는 자는 여러 배로 받습니다. 누가복음18:19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미국이 각족 죄악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부강한 이유는 선교사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셋째, 자기의 믿음이 확고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자신의 믿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하고 그로인하여 신앙생활도 잘됩니다. 남을 전도할 때 남도 살리는 것이 되지만 자기도 사는 길이 됩니다.
③ 전도는 4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19-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명령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제자를 삼아'(Make Disciples)라는 말입니다.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은 모두 제자를 삼으라는 본동사의 보조역할을 하는 분사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으로 선교 명령을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를 삼는 방법은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는 것입니다 (Go). 소극적으로 안일하게 도피생활하지 말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선교 대상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가지 않고는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Baptize).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곧 성 삼위 하나님의 인격과 권위로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자에게 죄 사함 받은 표로 주는 것이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표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주라는 의미는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고 거듭나게 하며 주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르치는 것입니다 (Teach).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자에게 초보적 단계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신앙의 성숙을 도모하여 지속적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엡4:13-15).
넷째는 지키는 것입니다 (Observe). 가르치는데 머무르지 말고 관찰하고 보살피고 양육하고 훈련시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신앙 인격의 성장과 가치관의 전환과 생활의 변화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사역이며 선교사역이며 제자삼는 사역입니다.
전도자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18절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전도를 명령한 자는 모든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그가 전도를 명령하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전도자에게 그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를 보내시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마10:1). 믿는 자에게는 새 방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약한 것을 고치고 병든 것을 고치고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막16:17). 그리고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전도자에게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주께서 성령님으로 친히 함께 하시겠다는 초월적인 약속입니다 (요16:17).
2) 선교 명령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12차례에 걸쳐 나타나셨는데 그 중 가장 마지막에 어느 산에서 제자들을 비롯하여 따르던 자들 500여명이 모였을 때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명령은 본문 마태복음28:19-20에 나온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선교 명령입니다. 그런데 그 선교 명령에 가장 첫 번째 내용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모든 종족에게 선교를 해야 합니다. 마가복음16:15에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① 선교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목적있는 계획이었습니다. 복음전도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부터 복음전도 사역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 예언되어 있고 (사2:1-3, 미4:2). 예수님도 누가복음24:47에서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성령님도 예루살렘에 임하게 해주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사도행전1:4에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 한 후에 예루살렘에 성령님이 임할 것인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이 임하기를 기다렸다가 성령님이 임하면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증인’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암시합니다. 그런데 ‘내 증인이 되라’고 하지 않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되리라’에 해당하는 ‘에세스데’(εσεσθε)는 ‘~이다’ ‘~이 되다’에 해당하는 ‘에이미’(ειμι)의 미래형인 ‘~할 것이다’ ‘~될 것이다’의 뜻입니다. 영어의 ‘쉘’(shall)에 해당합니다. 이는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③ 하나님은 선교에 역사하셨습니다.
사도행전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어 돕게 해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성경이 사도행전입니다. 1-7장은 복음전도 사역이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8-11장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전도 사역이 어떻게 유대와 사마리아로 확장되었는지, 12-28장은 사마리아까지 확장된 복음전도 사역이 어떻게 소아시아와 빌립보와 마게도냐와 고린도와 로마에까지 확장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복음 전도사역이 어떻게 트루키예(터키)와 그리스와 이탈리아까지 확장되었는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전해진 내용이 기록되었지만 그 이후에 내용은 기독교 역사를 보면 로마시대 이후에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델란드, 스위스, 영국 등 유럽 전 지역에 퍼졌고 캐나다와 미국을 중심한 전 아메리카 대륙에 퍼졌고 중국와 일본과 우리나라 등 아시아에까지 퍼졌습니다.
④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시켰습니다.
첫째, 선교 역사입니다. 우리나라는 선교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려 했던 최초의 선교사는 네델란드 선교사 구츨라프(Karl. F. A. Gutzlaff)였고 두 번째 들어오려 했던 선교사는 영국 선교사 토마스(Robert J. Thomas)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들어와서 선교활동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직접 들어와 선교활동을 한 선교사는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y Gerhard Appenzeller)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우리나라 서울로 들어왔을 땐 이미 예수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직접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있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들어와 직접 활동하기 전에 이미 한글성경이 보급되었다는 것입니다. 번역된 한글성경이 들어온 루트는 북방루트와 남방루트가 있습니다. 북방루트는 중국이고 남방루트는 일본이었습니다. 중국에 스코트랜드 선교사 로스(John Ross)와 맥킨타이어(McIntyre)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으나 우리나라는 선교사가 들어가면 사형을 당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선교를 할 방편으로 한글 성경을 번역하고 조선인을 통해 조선에 복음을 전해야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중국 북경 고려 게이트에서 조선인을 만나려 하다가 보따리상을 하러온 이응찬을 만나 많은 돈을 주고 번역작업을 하게했고 후에 장티푸스에 걸린 서상윤을 만나 15일 동안 간호하여 살려서 번역작업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번역작업을 하다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세례를 받고 서상윤이 생명을 걸고 번역 성경을 숨겨서 조선에 들어와 황해도 소래에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고 성경이 책장사들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갔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이수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인데 우리나라 농업을 증진시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농학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갔던 사람입니다. 그는 츠다(津田仙)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일본에서 한글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y Gerhard Appenzeller)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일본에 들렀습니다. 거기에서 이수정을 만나 번역된 우리나라 한글성경을 가지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언더우드가 서울에 도착해 보니 이미 교인들이 있었고 14명의 교인에게 세례를 주어 새문안교회를 세웠습니다. 그중 12명은 이미 서상윤 등에 의해 신앙을 가진 사람 사람들이었습니다. 언더우드가 평양으로부터 교인들이 있으니 세례를 달라는 연락이 있어서 평양에 가서 세례를 주기위해 세례문답을 하는데 미국인들보다 더 확실히 대답했다고 그의 일기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교역사의 특징은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선교사가 직접 들어오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 성경이 번역되어 있었고 이미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는 속인주의(屬人主義) 방식이 아니라 속지주의(屬地主義)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세계 선교역사에서 우리나라 외에는 없는 방식입니다.
둘째, 교회 성장입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후에 한국교회는 불일듯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지에서는 우리나라의 그같은 현상을 기대하면서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남한 기독교 인구가 1,000명 가까이 됩니다. 교회 수가 78,000개(편의점 수 25,000개)입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수요예배 새벽기도 등은 우리나라 교회밖에 안 합니다. 세계에서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내고 선교비를 제일 많이 보냅니다.
셋째, 경제 부흥입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적으로 이렇게 빨리 일어선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60~70년 전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한 나라였습니다. 우리는 늘 대통령들을 욕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자유주의 국가로 세운 대통령, 산업화를 이룬 대통령, 민주화를 이룬 대통령, 정보화를 이룬 대통령, 복지화를 이룬 대통령들입니다. 시대마다 가장 필요한 리더들이 있어서 경제 대국이 되어 세계 7위가 되었습니다. 군사력도 7위입니다. 인프라에서 최강국입니다. 그래서 선교비를 조금씩만 보내도 피선교국에서는 많은 금액이 됩니다. 국가 브랜드가 높아져서 피선교국에서는 우리나라 것은 다 좋아합니다. 거기에다가 문화적으로도 한류 열풍으로 피선교국에서 우리의 것들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50억 인구 중에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인구는 2분의 1이나 됩니다. 성서가 번역되지 못한 언어도 5,000개 이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선교국으로 사용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선교에 쓰임 받을 때 우리 교회도 함께 쓰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2:9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에 맞게 선교를 위해 협력해야합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심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실 것입니다.
<結言>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복음전도자가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것은 복음 전도에 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땅 끝까지 선교하는 일에 헌신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