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사도행전 12:1-25

<題目> 헤롯의 교회 핍박


<序言>

  11장에서는 사울(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으로 이방교회인 안디옥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본 장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이방교회의 모체인 유대교회 곧 예루살렘교회가 핍박과 환난을 당한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개입으로 예루살렘교회가 영적으로 더 굳건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내용구조는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1-5절), 베드로의 탈옥(6-19절), 헤롯의 죽음(20-25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1-5절)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사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서 부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헤롯왕이 예루살렘에서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했고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는 야고보의 처형을 보고 기뻐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베드로도 붙잡았고 감옥에 투옥시켰습니다. 그리고 군사를 4명씩 4조로 나누어 지키게 했습니다. 이 날은 무교절일이었기 때문에 유월절이 지난 다음에 유대 백성들에게 끌어 내어 백성들 앞에서 처형하려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1-5절).   

 

  헤롯왕은 헤롯대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AgrippaⅠ A.D.37-44)를 가리킵니다. 이 헤롯은 친유대교적 정책을 편 인물입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야고보를 처형하기까지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야고보는 세 사람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주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여기서 순교당한 야고보는 세배대의 아들 곧 요한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마4:21, 행1:13, 15:13).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초대교회의 수장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야고보가 처형되자 기뻐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까지 붙잡아 처형하려 했습니다. 헤롯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겠는지를 생각지 않고 정치적인 지지 기반을 확고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정치인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징벌로 죽게 됩니다 (23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와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산 성도를 핍박하는 자는 현세에서든 내세에서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노아를 험담했던 함, 모세를 비방했던 미리암,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의 결국을 보아야 합니다 (계20:10).

 

  한편 베드로가 투옥되자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교회 지도자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순교한 데 이어 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까지 투옥되어 처형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다는 것은 첫째, 성도들이 베드로의 체포가 교회의 위기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 흩어진 것이 아니라 단결하여 극복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교회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의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기도를 통해 베드로가 하나님의 기적적 방법으로 구출되었고 (6-10절), 교회의 정체성이 확고해졌고, 교회가 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난과 환난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됩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걱정하고 궁구하고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기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회의와 토론보다 기도가 중요시 되어야 합니다.      

 


       2. 베드로의 탈옥 (6-19절)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헤롯이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도 처형하기 위해 투옥시켰습니다. 손에 쇠사슬을 채우고 군사를 4명씩 4조로 나누어 지키게 했습니다. 2명은 베드로를 가운데 두고 같이 잤고 2명은 밖에서 옥문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주의 사자(使者) 곧 천사가 베드로 곁에 섰습니다. 옥중에 광채가 조요(照耀)했습니다. 감방에 환한 빛이 비추었던 것입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우고 급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띠를 띠고 신을 들메고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날 때에 쇠사슬이 벗어졌고 문을 나갈 때에 문들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인 줄 알았다가 탈옥한 다음에 정신을 차리고서야 환상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베드로가 탈옥하여 마가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 집으로 갔는데 그 집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마리아 집의 대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계집아이 곧 여종이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을 알아 듣고는 문 여는 것을 잊은 채 달려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집 안의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고 그 아이가 참말이라고 힘주어 말하자 그들은 베드로의 천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베드로는 문을 계속 두드렸고 그들이 나가서 베드로인 것을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히 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옥에서 나오게 한 사실을 말하고 야고보와 그 형제에게 전해 달라고 하면서 곧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한편 날이 새어 군사들은 베드로가 없어진 일로 인해 소동했고 헤롯은 그들을 심문하고 죽이도록 명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가 거했습니다. 헤롯이 가이사랴로 간 것은 예루살렘에서의 박해가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6-19절).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베드로를 죽이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서 아예 탈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천사가 와서 탈출시켜 줄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6절에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라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양팔이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양 옆에서 2명의 군사가 함께 자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주경신학자들은 대부분 쇠사슬이 한 쪽은 베드로의 양 팔목에 채워져 있고 다른 한 쪽은 양쪽에 있는 군사들의 팔에 채워져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옥 문이 잠겨져 있었고 그 문 밖에 2명의 군사가 지키고 있었고 또한 나가는 길에 초소들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나가는 곳에는 육중한 철문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2명의 군사들 사이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은 베드로 자신이 아예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반증입니다. 7절에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라고 했습니다. '옆구리를 쳐 깨워'에서 '쳐'에 해당하는 '파탓소'(πατασσω)는 '두드리다' '치다' '때리다'는 뜻인데 무기로 때리는 것처럼 치명적으로 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세게 때려서 깨울 정도로 베드로가 깊이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탈출할 의도를 전혀 갖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한 8절에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라고 했습니다. 당시 '신'에 해당하는 '산달리아'(σανδαλια)는 밑바닥을 나무나 가죽으로 만들어 가죽 끈으로 발목에 매는 신발이었으므로 한 번 벗었다가 신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 신발을 벗고 잔 것은 아예 탈출할 의도를 갖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9절에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상황에서 생시가 아니라 환상인 줄 알았습니다. 천사가 와서 자기를 구해 주리라고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베드로는 아마 그대로 순교할 생각만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인들도 기도하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5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힌 사실을 말하면서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보면 이는 예루살렘 교인들이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고 그들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이 베드로를 탈옥시켜 주었다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가 탈옥하여 찾아왔을 때 그들의 반응입니다. 15절에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말을 전해주는 여종에게 미쳐서 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았느냐고 한 것입니다. 여종이 계속 힘 주어 참말이라고 하니 그러면 그의 천사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각 개인마다 그 사람과 닮은 수호천사가 함께 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그런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처형을 당해서 그의 수호천사가 그의 죽음을 알려 주기 위해 왔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구명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베드로가 실제로 살아 돌아올 것을 믿지는 못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은 하나님이 베드로를 살려 주실 것을 믿지 못하면서도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베드로를 살게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구원사역을 위해 베드로를 살려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이 교인 몇과 야고보가 체포되었을 때도 기도했을 것이지만 야고보는 하나님이 살려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인들이 믿지 못하고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살려 주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믿음있는 기도를 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이 기도하는 자체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관한 주권적인 의지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체포되자 예루살렘 교회의 위기로 느끼고 자기들도 체포될 위험 때문에 떨면서도 모여서 기도한 것 아닙니까? 다만 하나님이 그렇게 기적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몇 사람이 체포되었는데 그들을 위해 기도 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못했고 심지어 야고보는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기도할 때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했으면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 믿어질 수도 있습니다. 안 믿어져도 살려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기도해도 하나님이 살려 주지 않을 수 있고 믿어지지 않는 가운데서 기도해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른 의지에 맞는다면 살려 주십니다.

 

  썬다 씽(Sundar Singh, 1889-1929)은 인도에서 태어나 티벳에 선교를 한 사람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는 찬양의 원 작사자입니다. 그가 산맥을 넘어 티벳에 선교를 간 때가 있었습니다. 라자라는 마을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라마교 사원에서 파수병이 와서 체포해갔습니다. 그 곳에서 대라마승과 승려들에 의해 재판을 받았고 그리고 우물로 끌려 갔다. 우물 뚜껑이 열리고 군중들이 둘러서 때리고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머리가 거꾸로 해서 집어 넣었습니다. 뚜껑이 닫치고 자물쇠로 잠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죽어 뼈들이 있고 죽은지 얼마 안되어 썩고 있는 시체도 있었습니다.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명암이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빠져 나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한 팔은 삐었고 우물 꼭대기까지 올라갈 힘은 없고 우물 뚜껑은 막혔고 뚜껑 열쇠는 대라마승이 옆구리에 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희망도 없이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3일 밤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물쇠가 벗겨지고 뚜껑이 열렸습니다. 잠시 후 줄이 내려와 얼굴에 닿았습니다. 끝에는 고리가 있었습니다. 고리에 다리 하나를 넣고 삐지 않은 한 손으로 줄을 잡았습니다. 줄이 천천히 당겨졌고 이윽고 우물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위를 둘러 보았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픔을 참으며 시장 마당으로 가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동이 트자 목욕을 하고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수도자들이 들이닥쳐 체포하여 사원으로 끌고 갔습니다. 대라마승이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 구해 주었느냐? 남자냐 여자냐? 열쇠를 어떻게 얻었느냐?"고 했습니다. 대라마승은 자기 옷을 제치고 허리춤에 찬 열쇠를 보이면서 "이 열쇠는 하나 밖에 없는 이 열쇠인데 누가 어떻게 너를 구해 주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수도사에게 마을 밖으로 추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물 열쇠는 분명이 대라마승 허리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탄과 마귀와 귀신에 의해 영적으로 감금된 상태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와 건강 악화와 돈의 궁핍에 얽매여 결박되고 감금된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실패와 죽음에 대한 암시가 느껴져 포기하는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지지 않아도 방법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쳐서 정신이 나간 사람의 생각이라고 하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하나님은 그 미친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맞는다면 하나님이 기적도 일으켜 주실 줄 믿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신뢰감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공동체적인 기도는 공동체를 굳건하게 합니다 (마18:20).

 


       3. 헤롯의 죽음 (20-25절)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왕 이후로 유대지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롯왕은 어떤 일로 인해서 두로와 시돈에 대해 노했습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에서 헤롯에게 화친하기 위해 사절단이 왔습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영국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경기를 열었다고 하는데, 헤롯이 이 날 왕복을 입고 공식 행사에 참여하여 효유 곧 연설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 백성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고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절단도 참여했습니다. 헤롯의 왕복은 은으로 빛나는 옷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햇빛이 비췰 때는 신비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헤롯이 군중에게 연설을 하자 사절단들이 아첨하기 위해 왕의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神)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그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영광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헤롯의 의식(意識)적 범죄였습니다. 그래서 주의 사자가 그를 쳤습니다. 결국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헤롯이 갑작스런 복통으로 5일 만에 죽게 되었는데 몸이 썩어 벌레가 났다고 합니다. 헤롯이 벌레에 의해 죽어간 것입니다. 한편 헤롯의 비참한 최후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 말씀은 더욱 흥왕해져 갔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교회에 헌금을 전달하고 마가 요한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20-25절).

 

  이 사건은 적기독왕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확장은 거스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강하게 시사해 줍니다. 교회와 성도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기독왕의 결말은 비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사울왕도 교만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삼상15:23). 다니엘서에 보면 비록 이방왕이지만 느부갓네살왕도 교만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단4:30-33).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잠18:12).

 

  종말에 나타날 적기독왕(적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이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이방국가를 환상을 통해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 환상은 사자, 곰, 표범, 열뿔 달린 짐승이었습니다. 그 짐승은 왕이나 나라라고 했습니다 (단7:17,23). 곧 네 짐승은 바벨론(바빌로니아)과 바사(페르시아)와 헬라(그리이스)와 로마의 왕들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그 환상을 전승으로 한 종말적 계시를 보여 주었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 짐승은 입은 사자 같고 발은 곰 같고 몸은 표범 같고 머리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짐승은 용(사단)으로부터 능력과 권세를 받아 마흔 두달 동안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참람되게 말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을 훼방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그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계13:1-10). 하지만 마침내 그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승리하여 왕 노릇하고 (계14:1-5, 20:4), 그 짐승은 사단과 함께 유황불 못에 던지워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계20:10).

 

<結言> 

  헤롯의 핍박으로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처형당할 위기에 있었으나 하나님은 베드로를 구하고 헤롯을 죽게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욱 흥왕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는 대적자들이 득세하므로 교회와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결국 믿음 지킨 교회와 성도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성도는 승리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