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사도행전 13:1-52

<題目> 바울의 1차 전도여행 (1)


<序言>

  지금까지는 예루살렘과 유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선교가 이제는 이방으로 확대되는 분기점을 보게 된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시작으로 이방 선교가 시작된다. 본 장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이 보고되어 있다. 내용구조는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1-3절), 구브로 전도(4-12절),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13-41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핍박(42-52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1-3절)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11:19-30에 안디옥교회의 설립과 활동이 보고되었었다. 그 이후 안디옥교회는 더욱 성장했을 것이고 선지자와 교사들도 많았다.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이 대표적이다 (1절). 선지자와 교사는 가르치는 직분으로서 교회의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데 굳이 구분하자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하는 은사를 사용하는 면이 강조되고 교사는 교리를 세우고 성경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면이 강조된 것 같다. 안디옥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의 지시를 받고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웁니다. 그래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보냅니다 (2-3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라는 말은 공동번역에서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로 번역했습니다. 섬긴다는 말이 봉사한다는 의미도 있고 예배한다는 말도 있는데 예배한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예배할 때에 성령께서 이방 선교 사역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세우게 한 것이고 안디옥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순종한 것입니다. 안디옥교회 입장에서는 바나바와 사울이 주도적인 지도자였기 때문에 두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역을 위해 두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이고, 성령의 음성을 순종하는 교회이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정신은 이방선교의 모체가 될 만 합니다.

 


       2. 구브로 전도 (4-12절)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사울(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실루기아로 가서 배를 타고 구브로섬으로 갔습니다. 구브로섬의 살라미에 이르러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 때 마가 요한을 수종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구브로섬을 가운데로 지나 살라미 반대편 바보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는 로마총독 서기오 바울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혜있는 사람으로서 사울과 바나바를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서기오 바울에게는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가 있었습니다. 그를 엘루마라고도 했는데 아람어로서 번역하면 박수라는 뜻입니다. 그가 서기오 바울로 하여금 사울과 바나바의 말을 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울이 성령에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그의 정체를 드러내었습니다.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예수는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구했고 총독은 기이히 여기고 믿었습니다 (4-12절).

 

  사울을 바울이라고 한 것은 여기에서 처음입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으로서 '하나님께 청함을 받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헬라식(로마식) 이름으로서 '작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설에 의하면 사울이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것이 회심 이후라고 합니다. 예수를 만나고 새롭게 변화되어 개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울은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식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 지역에서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사울은 9장 이후 곧 회심 후에도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예수의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9:19, 22, 26, 28). 안디옥교회에서 이방 선교사로 파송받을 때도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절). 바울이라는 이름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한 구브로 섬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13절 이후부터는 사울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지 않고 바울이라는 이름만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라는 이름은 이방 선교를 시작할 때부터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방 선교 사역에서 사역의 편의를 위해 이방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울이 바울로 바뀐 것은 이방 선교 사역과 관련하여 사용한 이름으로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신접술이나 마술을 하는 박수 바예수의 정체를 들어내고 저주했습니다. 우리가 사역을 할 때에 사단은 여러 가지로 방해 합니다. 그럴 때 바울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음으로 정체를 폭로하고 그 훼방하는 역사를 끊었습니다. 예수님도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요8:44).

 


       3.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13-41절)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섬의 바보에서 구브로섬 북단 내륙에 있는 밤빌리아의 버가를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있는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이고 이 곳은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비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아직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았으나 회당예배에 참여한 자(본문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회당장의 허락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 광야를 통과한 역사,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들어간 역사, 사사들을 세운 역사, 왕을 세운 역사, 다윗을 세운 역사를 설교했고 다윗을 통해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곧 예수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세레 요한이 나와서 세례를 베풀었으나 스스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고 그리스도는 자기 뒤에 온다고 했는데 그가 바로 예수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나타나자 예루살렘 사람들과 관원들이 알지 못하여 죽였고 예수는 나무에 달려 죽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고 다시 살아난 예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셨는데 그를 믿어야 죄사함과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고 설교했습니다 (13-41절).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의 첫 행선지인 구브로에서 사역을 하고 밤빌리아 버가를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사역을 했는데 밤빌리아 버가에 도착했을 때 수종들던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13절).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에서부터 바울과 바나바를 동행하여 도왔다가 떠난 것입니다 (12:25, 13:5). 어떤 이유에서 떠났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사역 방식이 자기에게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을 수도 있고 여행 중 고난을 견디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도중에 세상적인 유혹이 들어와서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마가 요한이 떠난 일로 인해 바울은 마음이 상당히 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가자고 했으나 바울은 밤빌리아 사건을 들어 마가 요한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는 결별하고 서로 다른 곳으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신의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처럼 사역을 할 때에 가장 힘을 잃게 하는 것은 동역자의 이탈입니다. 사역이 잘 되려면 변함없이 동역하는 사역자들이 필요합니다. 아론과 훌 같은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 아비아달과 후새와 아비가일 같은 사람,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4.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핍박 (42-52절)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회당에 들어가 회당예배에 참여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설교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자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좇았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여든 무리를 보고 시기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유대인들이 영생 얻음을 합당치 않은 자로 여기니 자기들이 이방인에게 향한다고 했고, 자기들을 주께서 이방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는 자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그 말을 기뻐 찬양했고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 지방의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게 하여 쫓아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향해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한 것으로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결과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10: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기쁨이 충만했고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42-52절).

 

  바울과 바나바가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할 때 많은 무리가 호응하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인들로서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권세 있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핍박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때도 유대인들이 빌라도 정권과 야합하여 죽였습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일제시대나 공산정권 때에도 타락한 기독교인들이 정권과 야합하여 참 교회를 핍박하고 참 성도들을 혼미하게 했습니다. 종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전무후무한 핍박이 일어나는데 바다에서 나온 열 뿔 달린 짐승과 땅에서 나온 새끼양 같이 두 뿔 가진 짐승의 야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단7:17,23). 곧 적기독국가의 왕인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이 야합하여 핍박을 합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12장에 나오는 용으로 묘사된 사단이 조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습니다 (8절, 엡1:4-5). 그리고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52절).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핍박이 있을 때 더욱 믿음을 가집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시험과 핍박이 올 때 우상의 제물을 안 먹었고 하루에 3번씩 기도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도 핍박이 올 때 더욱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고 모르드개와 수산궁에 거하는 유대인들도 바사에서 핍박을 받자 금식하며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시험의 때에 악한 자는 더욱 악해지지만 경건한 자는 더욱 경건해지는 것입니다. 포도도 익고 곡식도 익는 것입니다 (계14:14-20).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택한 참 그리스도인은 핍박이 올 때 더욱 강해져 연단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종말에 하나님이 종말에 7년 대환난 중 전반기 환란 동안 사단에게 일할 권세를 주어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7인 재앙과 8-9장에 나오는 7나팔 재앙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 박해의 최절정을 보여 주는 장이 13장인데 그 때에는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는 다 굴복하게 됩니다. 거꾸로 생명책에 기록된 자, 곧 하나님이 택하여 거듭난 자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도 않고 짐승의 표 666도 받지 않고 14장에 보면 시온산에 서게 됩니다. 그들은 144,000인데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내정수로서 믿는 자의 총수입니다. 20:10에 보면 핍박의 주체인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는 유황불못에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을 당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복음 운동이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가 승리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명 감당하며 살아갈 때에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따릅니다 (딤후3:12). 그럴 때에는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생각하여 낙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련을 허락하신 것은 택자와 불택자를 가르고 택자를 더욱 연단시켜 온전하게 하려 함입니다 (약1:3-4, 벧전1:6-7). 결국 하나님이 택한 성도는 반드시 승리하고 하나님의 복음 운동은 승리합니다.

 

<結言>

  예수님은 사도들을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8).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계획을 위해 바울 선택하시고 이방 전도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끊임없이 방해했습니다. 구브로섬에서도 유대인 박수 바예수를 통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유대인과 귀부인과 유력자들을 통해 방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는 더욱 굳건해지고 복음은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섭리는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