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사도행전 17:1-34
<題目> 바울의 2차 전도여행 (2)
<序言>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은 소아시아 남부지역을 (13:1~14:28), 2차 전도여행은 소아시아 지역과 남부 유럽 지역을 (15:36~18:22), 3차 전도여행은 1,2차 여행시 복음을 전한 지역을 중심으로 (18:23~21:16) 이루어집니다. 본 장은 2차 전도여행으로서 복음이 남부 유럽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보여 주므로 전도여행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본 장은 복음 전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은 자와 복음을 대적하고 전도자를 핍박하는 무리로 확실히 대조적으로 나타납니다 (고전1:18). 내용구조는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 (1-9절), 베뢰아에서의 전도 (10-15절), 아덴에서의 전도 (16-34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 (1-9절)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7장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는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가 동행했습니다. 소아시아에서 복음 사역을 하다가 남부 유럽의 첫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사역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구원하고 귀신 들린 여종과 간수를 구원하게 되었고 그들이 루디아를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바울은 누가를 빌립보에 남겨 두고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 데살로니가로 갑니다 (1절). 데살로니가는 남부유럽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크게 번성한 도시입니다. 인구 20만의 도시로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발칸반도 전체를 복음화시킬 수 있는 복음 전도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살전1:14-16).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세 안식일(3주)에 자기 규례대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명하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습관을 따라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1-3절). 바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강론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안식일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였습니다. 거기에는 헬라인들도 모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회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완전히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는 부류였습니다. 성경에는 본서에서는 이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칭했고 본문에는 '경건한 헬라인'으로 칭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을 찾은 것은 복음전도의 유익을 얻기 위함입니다. 첫째는 그 곳에는 성경을 듣기 위해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곳에는 경건한 이방인들도 많이 모여 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 전략은 주로 선교 센타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도심지였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용이한 사람들을 우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선교의 지역과 대상과 방법을 선택할 때에 훈련 목적이 아닌 효과 목적이라면 바울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의 회당에서의 복음 전도로 경건한 헬라인들과 적지 않은 지도급 인사들의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청종했습니다 (4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소동케 했습니다. 시장 잡배들을 동원하여 요란케 한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찾아 끌어내기 위해 야손의 집을 엄습했으나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야손과 형제를 읍장들 앞에 끌고 갔습니다 (5절). '읍장'은 도시를 책임지는 행정장관을 말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이 읍장이 5명이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야손과 형제들을 고소하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6절).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도 이르렀는데 야손이 그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뿐 아니라 야손과 형제들이 가이사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왕 예수가 있다고 말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로마를 대항하는, '주'는 가이사를 대항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읍장은 그 말을 듣고 야손과 형제들로부터 보(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습니다. 고린도전서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와 그 가정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쓸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후에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을 때도 에바브로디도와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야손과 그 가정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할 때 영접하여 자기 집을 선교 센타로 사용했고 그 때문에 붙잡혀 가기도 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성장합니다 (살전1:3, 14-16). 그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 좋은 소문이 나고 남부 유럽지역을 복음화 하는 데 선교기지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대한 계획을 이루는 교회가 됩니다. 바울과 실라 같은 복음 전도자도 중요하지만 야손 같은 헌신자도 필요합니다.
2. 베뢰아에서의 전도 (10-15절)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의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괴악한 사람들이 야손의 집을 습격하고 야손과 형제들을 읍장에게 고소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방해로 인하여 바울의 일행은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베뢰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로부터 남서쪽으로 80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의 일행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많았습니다 (10-12절).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이라는 것은 고귀한 성격과 품행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첫째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11절).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했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해 그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대로 말씀을 사모하여 입을 열고 헐떡였던 것이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헐떡였던 것입니다 (시119:131, 42:1).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갈급함이 없는 것은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둘째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11절).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고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고 자기 인격과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묵상했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에 꿀과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져야 하고 그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귀하게 여겨져야 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시19:10, 119:72, 24, 요5:39).
셋째는 유대인들에게 선동되지 않았습니다 (13절). 바울의 일행이 베뢰아에서 말씀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곳이 있지 못하고 아덴으로 떠났고 실라와 디모데는 후에 그 곳으로 가서 다시 합류하게 됩니다 (살전3:1).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서부터 방해 하던 사람들이 베뢰아 까지 쫓아와서 방해할 때에도 동요하지 않았고 바울의 일행에 대해 적의를 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은혜받은 사람들은 바른 분별력을 가지기 때문에 사단의 무리들이 아무리 격동시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3. 아덴에서의 전도 (16-34절)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상고하므로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에서 피박했던 무리들이 베뢰아까지 와서 소동하는 바람에 베뢰아에 있지 못하고 아덴으로 왔습니다.
아덴은 헬라 세계의 우상이 많은 곳입니다. 아덴(Athens)이라는 이름이 아테네(Athene) 여신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고, 그 곳에는 파르테논(Parthenon)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전들과 조각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을 보면서 분히 여겼습니다 (16절). 또한 철학이 발달한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18절). '에비구레오'는 에피큐로스(Epicurus) 학파를 말합니다. 주창자 에피큐로스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 학파의 종교관은 자연신론적이며 인생의 목적을 쾌락에 둡니다. 쾌락을 고통, 공포, 죽음 등의 염려로부터 벗어난 마음의 평정으로 봅니다. '스도이고'는 스토아(stoa) 학파를 말합니다. 스토아 학파의 주창자는 제논(Zenon)입니다. 스토아 학파는 제논이 아덴의 아고라 광장에서 늘 가르치던 장소가 장식화랑(painted stoa)였던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관은 범신론적이며 인간의 정신과 이성을 주장하며 로고스론이 유명합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헬라인)과 변론하기도 하고 저자(시 중앙 광장)에서 변론을 했습니다. 특히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과도 쟁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쟁론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바울을 말장이의 말로 생각했고 무슨 이방 신들 가운데 하나를 전하는 사람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16-18절). 바울은 아덴에서 이성과 철학으로 가득한 자들과 변론했으나 별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적 지식으로 변증하다가 몇 사람 밖에 얻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는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가서는 색다른 결심을 합니다. 고린도전서2:2-5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반대할 목적으로 따지는 사삼들과 변론하는 것은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의 도는 미련하게 보일 뿐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는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한편 철학자들과 군중은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종교가 무엇인지 바울이 말하는 것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신앙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에서였습니다. 아덴은 철학이 발달한 곳으로서 그 곳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었고 오직 그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갔습니다 (19-20절). '아레오바고'는 '아레스의 평의회'라는 뜻으로 법정을 말합니다. 시의 모든 행정관들이 평의회의 구성원이었으며 종교, 도덕, 교육에 관한 재판권을 가진 최고 권력기구였습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①아덴 사람들이 종교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22-23절). 미신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두루 다녀 보니 신전과 형상들이 많았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단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알지 못하는 신을 알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의 신관은 다신론적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신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들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을 위한 단 뿐 아니라 알지 못하는 신들을 위한 단도 만들어 숭배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알지 못하는 신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헬라적 배경을 염두에 둔 설교 방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유일신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②하나님은 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24-25절).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대주제로서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스스로 만족하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키기 위함입니다.
③하나님은 인류를 한 혈통에서 나게 하여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정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26-27절). 아덴 사람들은 스스로 아티카(Attic) 본토의 흙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혈통으로 모든 사람이 생겨나게 했으므로 온 인류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아담을 염두에 둔 설교입니다. 그리고 그 인류의 연대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간과 계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종과 민족과 국가의 한계를 정했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들이 사는 거주의 한계까지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애와 환경과 생활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④인간을 신의 소생이라고 했습니다 (28-29절). 시인 중 어떤 사람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을 금과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의 소생'이라는 말은 헬라의 여러 시에 나오는 말입니다. 특히 스토아 철학에서는 인간은 자연에 의해 존재하게 되고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의 본성을 부여받아야 하며 따라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 그대로의 운명을 아는 사람이 현자(賢者)이고 그 현자는 신(神)과 같은 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용어를 인용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므로 자연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헬라인들이 사용하는 로고스(λογοs 말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습니다 (요1:1,14).
⑤하나님이 인간에게 회개를 촉구했다고 했습니다 (30-32절).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않았지만 이제는 회개하라고 명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것으로 그를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는 지나간 시대입니다 (14:16). 하나님의 게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드러나기 이전을 말합니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더라도 참으시며 자연을 통해 계속적으로 계시하였습니다 (14:16, 롬3:25).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젠 그 분이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른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회개하고 대주재이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혼은 선하여 불멸하나 육체는 악하여 소멸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의 부활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시 들어보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몇 사람은 믿었습니다. 아레오바고, 디오누시스, 다마리와 몇이었습니다 (33-34절).
<結言>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아덴에서 전도를 했는데 아덴에서는 몇 사람 외에 얻지 못했습니다. 아덴은 헬라 철학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고 우상숭배가 성했던 곳입니다. 에피큐로스(Epicurus) 학파와 스토아(stoa) 학파가 있었습니다. '철학'(哲學, philosophy)이란 지혜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φιλια+σοφα). 인간의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을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들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지식은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고 교만하게 할 뿐이고 망하게 할 뿐입니다 (갈4:3,9, 고전8:1).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거부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