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사도행전 20:1-38
<題目> 바울의 3차 전도여행 (2)
<序言>
본 장은 바울은 3년 간의 심혈을 기울인 에베소 선교를 마친 시점에서 1~2차에 걸쳐 선교했던 이방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권면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 장은 다음 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상경을 준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마게도냐에서의 사역 (1-6절), 드로아에서의 사역 (7-12절), 밀레도에서의 사역 (13-3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마게도냐에서의 사역 (1-6절)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바울은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 소동 사건이 해결되자 제자들을 불러 권면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이미 계획했던 대로(19:21)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그 지경으로 다니며 제자들을 여러 말로 권하고 헬라에 이르렀습니다 (1-2절). '헬라'는 아가야 지방을 말하는데 실제로 바울이 머문 곳은 아가야 지방의 수도 고린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부터 육로로 2타 전도여행에서 선교를 했던 마게도냐 지방 곧 빌립보(16:12), 데살로니가(17:1), 베뢰아(17:10) 등지를 거쳐 고린도에까지 온 것입니다.
바울은 아가야의 고린도에 3개월 동안 머물다가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해하려는 공모가 있어서 육로(陸路)로 마게도냐로 돌아가기를 작정했습니다 (3절). 바울이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빨리 가기 위해 해로(海路)를 이용하려 했으나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기 위해 타고 가는 순례선을 타고 가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박해하던 유대인들이 바울을 배에서 암살하려는 계획을 알아채고 부득불 노정을 변경하여 훨씬 늦기는 하지만 육로로 마게도냐를 돌아서 가려 한 것입니다 (Ramsay).
그 때 바울을 수행했던 사람들은 7명이었습니다.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데모데, 두기고, 드로비모였습니다. 소바더는 베뢰아 사람으로서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하고,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서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하고, 세군도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서 마게도냐를 대표하고, 가이오는 더베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하고,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하고,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고 드로비모는 에베소 출신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는 자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방교회들의 구제연보를 맡아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려 한 자들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이방교회들을 돌아본 이유는 그들에게 연보를 거두어 환난을 당한 예루살렘교회에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함께 교회에서 모은 연보를 맡아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고린도교회의 연보를 맡은 자가 기록되지 것은 아마 고린도후서8:6 이하로 미루어 볼 때 디도와 누가인듯 한데 누가는 본서를 기록한 자신이고 디도는 누가의 형제였기 때문에(Ramsay) 기록하지 않은 듯 합니다. 7명의 이방교회 연보를 맡은 자들과 누가를 포함한 바울의 일행은 드로아에서 만나게 되고 그 곳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됩니다 (5-6절).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이방교회를 돌아본 것은 그들에게 연보를 모아 환난을 당한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11:27-30, 19:21, 롬15:31, 갈2:8-10). 그런데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기 위해 좀더 빨리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해로를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암살 공모가 감지되자 멀지만 육로를 택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방교회의 연보를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해 주어야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2. 드로아에서의 사역 (7-12절)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바울의 일행은 드로아에 안식 후 첫날 떡을 떼기 위해 모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은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을 말합니다. 떡을 떼기 위해 모인 것은 초대교회에서 있었던 성찬과 애찬을 겸한 예배 모임을 갖기 위해 모였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주일에 모여 예배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한 날이기에 이 날을 예배일로 지킨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였습니다 (마28:1, 행2:1).
바울의 일행과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은 한 개인 집의 다락이었습니다. 그 곳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곳에서 성례전을 행하고 말씀 강론을 했습니다. 그 강론은 밤중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앉아서 바울의 강론을 듣다가 졸았습니다. 바울의 강론이 계속되자 유두고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삼층루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이 내려가 그 위에 엎드려 몸을 안고 생명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죽은 유두고를 살린 것입니다. 바울이 다시 올라가 그 곳에 모인 사람들과 애찬을 하며 날이 새도록 이야기하다가 떠났습니다 (7-12절).
유두고의 사건을 개인의 행위에 역점을 두고 행위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유두고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어떤 이는 유두고가 창에 걸터 앉은 것과 조심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합니다. 유두고가 창에 걸터 앉은 것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심령상태가 졸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잘못을 지적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나 책망하지 않았고, 그가 죽었을 때 애착심을 가지고 살렸고, 살린 직후 밤새 애찬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그 상황을 본 사람들은 살아난 아이로 인하여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12절). 여러 분위기를 보면 성경이 유두고의 잘못을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고 당시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바울을 보내기 싫어했고 얼마나 바울의 강론을 듣기를 사모했는지를 말하려 합니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노동을 한 자들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들을 수 없는 성례와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졸음이 와서 죽기까지 참여하려 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Bruce, McGavey). 오히려 바울이 그런 상황이 오기까지 말씀을 강론하고자 하는 열심을 가졌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 들으려는 열정 가운데서 피곤하여 졸다가 죽는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므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위로와 확신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의 행위에 역점을 두고 볼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시 선교 사역에 어떻게 함께 하시고 위로해 주셨는지에 대한 시각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죤 칼빈(J.Calvin)도 말씀을 듣는 시간이 한 밤중이었고 온 종일 고된 일을 한 사람이 졸음과 싸우다가 잠에 빠진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졸음 때문에 죽음의 형벌을 받았다고 유두고의 졸음을 질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주석가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3. 밀레도에서의 사역 (13-38절)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새 강론을 하고 일행을 배로 앗소까지 가게 하고 자신은 육로로 앗소까지 가서 배를 함께 탔습니다. 앗소에서 만난 바울과 일행은 첫날밤에 미둘레네에 도착들러서 둘째날에 기모 앞에 있다가 셋째날 사모에 들렸다가 넷째날 밀레도에 도착했습니다. 밀레도는 에베소 곁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밀레도에 들렀으나 에베소에에 들르지 않고 바로 예루살렘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3-16절). 바울은 유월절 전에 도착하려는 계획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오순절 안에 도착하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이유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거둔 연보를 급히 전해 주고자 함이고 이방교회에 대한 선교보고를 빨리 하기 위함이고 오순절에 도처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지역의 교회 장로들을 청해오게 하여 그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대한 관심이 많으나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에 들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한 설교는 바울이 과거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했던 정신에 대해 (18-21절),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 현재의 계획에 대해 (22-24절), 바울이 예베소 교회에 바라는 권면에 대해(25-35절) 했습니다.
① 바울이 과거에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했던 정신 (18-21절)
첫째는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19절). 바울은 권세로 압제하려고 하지 않고 겸손으로 섬기려 했습니다 (딤전1:15, 엡3:8). 또한 주와 주의 일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눈물로 섬겼습니다 (고후2:4, 빌3:18).
둘째는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19절). 유대인들 가운데 대적하는 자들은 혹독한 적개심을 가지고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바울이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괴롭혔습니다 (13:45, 14:2, 17:5, 19:9, 13, 33, 34, 고후11장). 바울은 그와 같은 온갖 시험(temptation-KJV, test-NIV, trial-NASB,RSV)에도 불구하고 잘 참았습니다. 야고보서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없이 전하여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20절). 바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에베소 회당에서나 두란노 서원에서나 열심히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을 비롯한 교인들의 집에서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장소를 불문하고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18:19, 19:8, 18:26).
넷째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21절).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구별하지 않고 죄 회개를 촉구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2:38, 3:19).
② 바울이 현재에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 계획 (22-25절)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자신의 계획을 말했습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려 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을 만날런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각 성에서 그 곳에는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증거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달려갈 길,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2-23절). 21:13에도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통과해 가는 도시에서마다 성령에 의해 예언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일들을 들은 것 같습니다 (21:10-14). 바울은 그들에 의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지금까지 당했던 환난보다 더 큰 극심한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환난은 결박과 투옥이었습니다. 바울이 지금까지는 위험이 예상될 때 행선지를 바꾸어 가면서 까지 피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은 성령이 감동시킨 일이었습니다. 환난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교회들의 연보를 전달해야 했습니다. 이방교회와 예루살렘교회를 하나임을 확인시켜 모든 교회가 주의 몸임을 인식시키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각 처에서 절기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성령이 각 처에서 행하신 일들을 증거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환난이 예상되지만 그 목적을 변경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감동시킨 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골1:29). 그것이 주께서 맡기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책임감을 강하게 가졌습니다. 환난을 피하기 위해 그 일을 포기한다면 그에게는 더 큰 심령의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일을 위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직분을 맡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대한 사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환난을 피하여 평안을 얻으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고통스러워 하고, 환난을 당하더라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신앙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께서 맡긴 사명을 위해 살고 죽기도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③ 바울이 미래에 에베소 교회에 바라는 권면 (26-35절)
바울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꺼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다 전했다고 했습니다 (26-27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깨끗하다는 말은 에스겔33:1-9의 내용에 대한 인용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은 자는 경비를 소홀히 하여 백성에게 화가 임하게 되면 그 책임이 파수꾼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경비의 책임을 다하여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듣지 않아 화를 당하면 파수꾼의 생명은 보존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복음을 밭은 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거리낌 없이 전했으므로 복음을 받지 않은 자들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양 떼를 잘 먹이라고 했습니다 (28절).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자기와 양 떼를 위해 삼가라고 했습니다. 삼가라는 말은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감독자로 삼았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장로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감독자로 삼아 교회의 양무리를 먹이고 인도하고 돌보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사람이 세운 것 같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하에서 세운 것이므로 직분자는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자의 자세로 양무리를 말씀으로 진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양 떼를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29-32절). 바울이 떠난 다음에 에베소교회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않고 자기들을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양의 탈을 쓰고 침투하는 이리와 같은 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마7:15). 에베소교회는 실제로 니골라당이 들어와 그릇된 교훈을 가르쳐 교회를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계2:1-7). 니골라당은 발람과 이세벨의 교훈을 가진 자들로서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딤후2:17-18). 그래서 바울이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르친 바른 교훈을 기억하여 그 말씀대로 가르쳐 양 떼를 이단들로부터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들을 주와 말씀에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주께서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세워 나가시기 때문에 에베소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나가기를 그 주권에 의탁을 한 것입니다.
셋째는 양 떼를 잘 도우라고 했습니다 (33-25절). 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않았고 직접 자기 손으로 일해서 얻은 소득으로 자기와 동역자들의 쓸 것을 채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효과있게 하기 위해, 비방하는 자들에게 빌미를 주기 않기 위해 자비량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교회 장로들도 바울을 본받아 그 정신으로 약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약한 사람은 영적으로 믿음이 약한 자,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 신체적으로 병든 자 등을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으므로 베풀고 섬기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바울은 드로아에서 강론을 하고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해다가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에베소교회를 위해 권면했지만 에베소교회가 그 교훈대로 바로서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달렸으므로 하나님께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울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말로 인하여 근심하면서 전송했습니다 (36-38절).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한 마음이 동일한 것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