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디모데전서 6:1-21
<題目> 각 성도들에게 주는 권면
<序言>
지난 장에서는 디모데가 각 연령층에 따라, 과부들에 대해, 장로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목회적 관점에서 권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6장에서는 교회 각 교인들이 경건생활을 위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종들에 대한 권면(1-2절), 경건한 자들에 대한 권면(3-10절), 목회자에 대한 개인적 권면(11-16절), 부자들에 대한 권면(17-19절), 끝맺는 말(21-22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종들에 대한 권면 (1-2절)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상전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1절). 당시 로마에는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학자들에 따라 다르게 보지만 당시 노예는 절반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로마는 전쟁을 통해 패전국으로부터 노예를 확보하기도 하고 주위 약소국들로부터 노예를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유민 중에서도 빛을 청산하지 못하거나 죄를 지어 노예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경우 노예의 부모로부터 태어나 노예가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노예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노예들 가운데는 요리사, 이발사, 주치의 등 전문적인 일을 하며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초대교회에도 노예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로 인한 노예제도를 인정하고 상전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노예제도 자체를 인정하기 보다는 당시 현존하는 체제 아래서 믿는 자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상전을 잘 공경해야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지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에 훼방을 받지 않게 됩니다. 즉 복음 사역을 하는 데 있어서 비방을 받거나 욕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신앙적인 배려를 받게 됩니다. 배우자 잘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벧전3:8).
특히 믿는 상전을 둔 자들은 그 상전이 믿는 자라고 해서 경히 여기지 말고 더욱 잘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일 뿐 아니라 사랑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절). '유익을 받는 자'(οι τηs ευεργεσιαs αντιλαμβανομενοι)는 상전을 가리키는 말로서 선행을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교회 안에서 종이 고용주를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는 상전이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잘 공경하여 도와야 하나님께 유익이 돌아가고 다른 성도들에게 유익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는 믿는 상전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남편을 돕거나 사역자를 돕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돕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마10:41-42).
2. 경건한 자들에 대한 권면 (3-10절)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①예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라고 했습니다 (3-5절).
'착념(着念)하라'는 말은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친 바른 교훈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교훈을 받아들이게 되고 교만하여 변론과 언쟁만 좋아하게 되고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부패해져 진리를 잃어버리고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여 다툼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철학자들인 소피스트(sophist)들은 철학적 이론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은 사도들이 가르친 바른 교훈을 거부하고 그릇된 이론을 유포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교훈을 가장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사도들이 가르친 바른 교훈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 그들에게 미혹을 당해 교회가 무질서하게 되고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지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6-8절).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유익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족(知足)'은 만족하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전도서12:3-8절에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욥1:21).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의식주를 말합니다. 바울이 말한 지족은 금욕적인 만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강으로 인한 만족을 말합니다. 최소한의 것만 취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풍족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4:11-13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 있는지 자족(自足)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궁핍할 때에도 원망하지 않고 신앙적 시각으로 연단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풍부할 때도 그것으로 허비하거나 방탕하지 않고 신앙적 시각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데 사용하므로 영적인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데에 있습니다.
바울은 풍부한 환경을 만날 때도 있었고 비천한 환경을 만날 때도 있었습니다. 풍부할 때도 허영과 방탕과 교만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지만 비천할 때도 좌절하거나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건강할 때 뿐 아니라 병들 때도 있었고, 부요할 때 뿐 아니라 가난할 때도 있었고, 존경받을 때 뿐 아니라 비방을 받을 때도 있었고, 보호받을 때 뿐 아니라 핍박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고후11:24-27,12:7,). 더욱이 빌립보서를 쓸 때의 상황은 복음전도 사역을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에 까지 호송되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족(自足)하는 일체(一切)의 비결(秘訣)을 배워 평안을 얻었습니다. 잠언의 기도 내용을 뛰어넘는 신앙입니다. 잠언30:8에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主權)적 섭리(攝理)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당한 어려운 환경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롬8:28). 그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에 하나님께 찬미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행16:25). 실제로 바울이 감옥에 갇힌 사건으로 인하여 간수와 그의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로 인하여 빌립보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빌1:18).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빌1:12-13). 실제로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복음의 길이 막힌 줄 알았지만 시위대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가까이 하는 황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후에 황제가 믿게 되어 콘스탄틴 대제 때에는 로마 전체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복음이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에게서도 그런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 형들에게 팔여 애굽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무고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비밀한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창세기45:7-8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고 한 고백에서 잘 나타납니다. 실제로 감옥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되어 왕께 천거되는 길이 열리고 왕의 꿈을 해석해 주므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흉년 때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고센 땅에서 살게 하고 팔레스틴 주변국들을 흉년의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우리는 인생 길에서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했던 고난의 현장을 만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불행한 환경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비밀에 속한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해 허락하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마침내 선한 목적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환경에 지배 당하기 보다는 환경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웨렌 위어스비의 말대로 온도계가 되지 말고 온도조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③부하려 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9절).
부(富)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부하려는 마음이 침륜(枕淪)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시험'은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시험의 원어 πειρασμον는 영어 성경에서 test(평가)과 temptation(유혹)과 trial(시련)이라는 단어로 사용되는데 본문의 시험은 temptation의 의미로 사용한 말입니다 (KJV,NIV). '올무'는 덫을 말하고, '정욕'은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육적 시각으로 기울어진 것을 말합니다. '침륜'은 물 속에 가라 앉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멸망'이라는 단어와 유사하게 함께 파멸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서4:13-14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곡식의 소출이 풍성하자 창고를 짓고 편안히 쉬려고 하지만 그 영혼이 당일에 취함을 받으면 그 재물이 되고 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고 하셨습니다 (눅12:15-21).
야고보서5:1-3에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개인적 종말이든 일반적 종말이든 반드시 죽게 됩니다. 재물이 행복을 주리라 생각하지만 심령을 만족하게 하거나 능히 창자를 채우거나 하지 못하고 오히려 죄악에 빠뜨리며, 마지막 때에 환난과 심판에서 건져 주리라고 생각하지만 능히 건져 내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주는 요소가 됩니다 (겔7:19). 예수님께서 환난 때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진 자들과 모든 영적 자양분을 재물 얻는 데에 빼앗기는 자들은 고통하게 됩니다 (마24:19).
그러므로 혹시 재물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인생의 목적삼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7:29-31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고 했습니다.
④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했습니다. 돈 자체가 악의 뿌리라거나 돈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모든 악의 뿌리라는 의미라 하기 보다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재물에 대해 지나치게 탐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탐욕을 말한 것입니다.
골로새서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했습니다. 재물을 하나님 위치에 둔 것을 말합니다. 그 결과는 죄이고 죽음입니다. 야고보서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탐심을 물리치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사는 것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눅12:15).
그러므로 돈에 얽매여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남아 있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6:27에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영혼의 구원과 만족과 성장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누리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육적인데 있지 않고 영적인데 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에 있지 않고 영원이 없어지지 않을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것은 최소한의 필요만 있으면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할 데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3. 목회자에 대한 권면 (11-16절)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섯 가지로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높이 쓰임 받던 인물들에게 붙여졌습니다. 모세, 다윗, 선지자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받은 자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는 왕같은 제사장이며 택하신 족속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1절). "이것들을 피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앞 절들에서 말한 것들로서 돈을 사랑하고 부하려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좇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1절).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의'는 곧게 사는 것입니다. '경건'은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인내'는 견디는 것입니다. '온유'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11:29, 민12:3). 셋째는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싸우라'(αγωνιζου)의 문자적인 의미는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라'는 의미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죄성과 더불어 싸우고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는 이단과 더불어 싸우고 사역을 공격하는 사단과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고 사역적으로 주께서 맡긴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행20:24). 넷째는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2절).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칭찬과 상급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딤후4:7, 마11:12). 다섯째는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14절). 예수님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도록 모든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주님 오실 때에 정결한 신부로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를 나타내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홀로 한 분이신 분, 능하신 자, 만왕의 왕, 만 주의 주, 죽지 아니함이 있는 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 아무 사람도 보지 못했고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15-16절).
4. 부자들에 대한 권면 (17-19절)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①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17절). 자랑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은 사은 재물 때문에 교만하고 다른 사람 무시하기 쉽습니다. 교만은 실력을 배경으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며 (잠16:18)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벧전5:5). 사울왕도 교만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삼상15:22-23), 느부갓네살왕도 교만해서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단4:30-33).
②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17절).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했습니다. '정(定)함이 없는'의 헬라어 아델로테티αδηλοτητι)는 '불확실한' '불명확한'의 뜻입니다. 재물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잠언23:5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내세에까지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12:16-21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얘기를 보면 재물은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합니다. 재물은 확실한 것이 아니므로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후(厚)히 주시고 또한 그것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③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18절).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동정하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 재물을 선한 데 사용해야 합니다. 나누어 주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나누기를 좋아하고 섬기기를 좋아합니다 (행2:44-45). 그것이 공동체의 삶을 균등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9절). 하늘 나라에서 상을 얻는 기초가 됩니다. 영원한 가치와 행복을 누리는 근거가 됩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마6:19-20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9:9에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길입니다. 잠언19:17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6:38에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했습니다. 전도서11:1에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5. 마지막 인사와 당부 (20-21절)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을 잘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이미 디모데게 권면한 건전한 교리와 교훈을 잘 지키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신성을 더럽히고 공허한 영지주의(Gnostics)의 그릇된 교훈들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교훈을 좇는 자들이 이미 믿음에서 벗어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당부와 함께 마지막 인사로 디모데전서를 마감했습니다.
<結言>
바울은 종들에게,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디모데에게, 부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교훈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당시 목회를 하던 디모데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