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디모데후서 2:1-26

<題目> 사역자의 자세와 임무


<序言>

  전 장에서는 담대한 자세를 가지고 복음 사역에 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2장에서는 복음 전도 사역자의 자세와 임무를 구체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내용구조는 선한 사역자의 모습(1-7절), 선한 사역자의 받을 상급(8-13절), 선한 사역자에게 주는 권면(14-26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선한 사역자의 모습 (1-7절)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강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1절). 디모데가 믿음이 신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소심했고 육체가 유약했습니다. 그래서 강하고 담대할 것을 권면했고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강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바울에게 들은 바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2절). 바울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디모데는 그런 설교를 듣고 변화되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설교를 들었던 충성된 사람들은 디모데가 가르치는 내용이 바울의 가르침과 같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자 삼는 사역인 것입니다 (마28:19-20).  

 

  ①군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3-4절).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군사는 목적이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곧 상관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생활은 일이나 직업이나 사업 등 일상적인 삶이나 세상적인 일을 가리킵니다. 복음 전도 사역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7:22-23에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6:33).

 

  ②운동선수와 같다고 했습니다 (5절).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면류관'은 왕관(διαδημα)을 의미할 때도 있고 월계관(στεφανοs)을 의미할 때도 있는데 여기서는 경기의 승리자에게 주는 월계관을 의미합니다. 승리한 자에게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4:8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기를 법대로 해야 합니다 (마7:24-27, 고전3:12-15).

 

  ③농부와 같다고 했습니다 (6절).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농부가 수고하는 목적은 곳식을 얻는 것입니다. 풍성한 수확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땀 흘리고 열심히 일합니다. 농부는 풍성한 수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힘들어서 소망을 가지고 수고해야 합니다. 시편126:6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했습니다.

 


       2. 선한 사역자의 받을 상급 (8-13절)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바울은 자신이 이미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8절). '다윗의 씨'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혈통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올 것이 예언되어 있는데 (삼하7:12-13) 예수께서 바로 그 메시야임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한 목적도 예수님이 혈통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증명하므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임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전반에 걸쳐 예수님이 일으킨 표적들도 그가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임을 증명하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그 절정은 그가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9절).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사실, 그가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 그를 믿는 자는 죄가 없어지고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복음'(기쁜 소식)입니다. 바울은 그 복음을 전하다가 죄인과 같이 되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는 가운데 있습니다. 복음을 인하여 복음을 위하여 범죄인 같이 착고에 채인 채 감옥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복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계속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갇힌다고 해서 하나님의 복음 역사가 중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갇혀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어집니다.   

 

  바울은 또 이어서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10절). '택하신 자'는 하나님이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자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을 전하다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받았는데 그것들조차도 감수하고 인내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에 영원한 영광 가운데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①주와 함께 살게 됩니다 (11절). 11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종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를 믿고 죽은 자는 다시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택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 죄값으로 죽으셨으나 자기 의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도 영적으로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육체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고전15:20-24, 52, 살전4:13-18, 요11:25). 특히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은 영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죽임을 당한 예수님을 본받아 신앙을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은 예수님처럼 영광의 부활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계20:4). 현재적 의미로 본다면 믿음 생활과 사명 감당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기 부정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께 대해 영이 살고 믿음이 부요하게 됩니다 (롬6:8-11).     

 

  ②주와 함께 왕 노릇 하게 됩니다 (12절). 12절에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종말적 의미로 본다면 참는 자는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뿐 아니라 왕 노릇 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을 받고 견딘 자는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계20:4-6). 마태복음19:28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므나 비유를 보면 종들이 주인이 맡긴 일에 충성한 대로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부여받습니다 (눅19:11-26). 주의 고난에 참여한 만큼 왕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주를 부인하게 되면 주께서도 우리를 부인할 것입니다 (마10:33, 눅9:26). 마태복음10: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 현재적 의미로 볼 때도 믿음 생활과 사명 감당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 가운데 연단을 받는 자는 영권이 생깁니다. 선을 행하므로 고난 가운데 연단을 받은 자가 악령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육체와 환경을 복종시켜 나갑니다. 고난받기 싫어서 신앙 양심을 버리게 되면 주께서도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왕입니다 (벧전2:9). 신분만 왕이 아니라 능력 면에서 왕권을 소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13절에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는 '만일 우리가 신실하지 못할지라도'(If we are faithless -NIV)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신실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에 대해 신실하시다. 이어지는 앞 절에서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12절下)고 한 말씀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시인하는 자는 시인하고 자신을 부인하는 자는 부인할 것이라고 한 말씀'(마10:32-38)에 대해 신실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분입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신이 약속하시고 선포하신 모든 말씀에 대해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받으면 주께서 다시 살게 하고 왕 노릇 하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역자가 가져야 할 정신입니다.

 


       3. 선한 사역자에게 주는 권면 (14-26절)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①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4절). 14절에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2절에서 언급한 '충성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미 가르칠 만한 충성된 사람들을 세워서 가르치게 했습니다. '이 일'은 8-13절에 언급한 내용을 말합니다. 복음 사역을 위해 수고한 자는 주와 함께 살게 되고 주와 함께 왕노릇 한다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약속을 기억시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명하게 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 내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변론과 논쟁을 하지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말다툼은 하나도 유익이 없고 듣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23절에도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②양들을 거짓 교리로부터 잘 보호하라고 했습니다 (15-19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말씀을 잘 분별해서 망령되고 헛된 말을 피하고 양 떼를 거짓 교리로부터 잘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대표적인 사람인데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하므로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헬라의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플라톤 철학의 이원론은 처음부터 선과 악이 존재했는데 영적인 것은 선하고 육(물질)적인 것은 악하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그 영향을 받아 예수님이 영으로 부활하고 육체로는 부활하지 못했고, 성도도 영은 선하기 때문에 부활하고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부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육체적으로 부활 했다는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고 그의 육체를 만져 본 제자도 있었고 500여 형제가 일제히 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부활했기 때문에 성도의 육체적 부활도 반드시 있다고 변증했습니다 (고전15:12-20, 살전4:16-17, 계20:4). 결국 그들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고 성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말이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다고 했습니다. 악성 종기가 퍼져 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거짓 교훈은 순식간에 전파되고 의혹을 부풀리고 부정하게 만듭니다. 마치 잡초와 같습니다. 논에 피와 밭에 깜부기와 같습니다. 그것이 이단 교훈의 특성이고 거짓 교훈의 특성이고 부정적인 교훈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교회는 그런 미혹이 있을 지라도 견고하게 지키시므로 성도들은 그 불의한 자들의 교훈에서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③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고 했습니다 (20-21절). 큰 집에는 금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 있는데 귀히 쓰는 그릇도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했습니다. 거룩하고 주인의 쓰기에 합당하고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된다고 했습니다. '큰 집'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은 두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본 절들이 앞 절들인 15-19절까지의 내용에 이어지는 말씀이라면 거짓 교사들이 이단들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귀히 쓰는 그릇은 바른 복음 진리를 굳게 세워 나가는 자들일 것이고, 천히 쓰는 그릇은 복음 진리를 훼손하는 후메내오와 빌레도 같은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비진리에 흔들리는 자들을 말할 것입니다. 만일 22절 이후부터 나오는 말씀에 강조점을 둔 말씀이라면 성결과 관련된 내용일 것입니다. 귀히 쓰는 거룩한 생활을 하고 선한 일을 도모하고 신앙의 덕을 잘 세워 나가는 사람을 가리키고, 천히 쓰는 그릇은 악한 생각과 행동을 가지고 신앙의 덕을 상실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깨끗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에서 깨끗게 하면' 이라는 말씀은 앞에서 말한 두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에서 분리하여 떠나는 것을 말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악한 생각과 행동을 제거해 나가는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④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22절). 청년 때는 정욕이 불일 듯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6:18에는 "음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죄는 싸워서 이겨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음행은 피해야 합니다.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은 이면에 성공한 사람이지만 삼손이나 다윗은 실패했습니다.  정욕뿐 아니라 식욕, 지식욕, 명예욕 등 무엇이든지 얻고자 하는 욕망이 큽니다. 그로 인하여 바른 신앙을 유지하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쫓아야 합니다. 안정되고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기독교의 바른 도리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청년 때는 원욕이 강할 때입니다. 그 때를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독교 도리를 세워 나가고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전도서12:1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⑤다투지 말라고 했습니다 (24절).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의 종은 목회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용어입니다. 다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빌립보2:3에도 "아무 일에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6:14에는 악한 자가 다툼을 일으키고 잠언16:28에는 패려한 자가 다툼을 일으키고 잠18:6에는 미련한 자가 다툼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입니다. 미움(잠10:12), 욕심(잠28:25), 분노(잠15:18, 29:22), 거만(잠22:10), 말장이(잠26:20) 등입니다.

 

  ⑥모든 사람에 대해 온유하라고 했습니다 (24절). 모세도 온유했습니다 (민12:3). 온유함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마11:29).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갈5:22-23). 교만과 거만과 완고와 고집은 하나님도 싫어하고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온유와 겸손한 마음과 행동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⑦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4절).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잘 가르쳐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13:52에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옛부터 세워온 진리를 잘 전하고 현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뜻을 깨달아 새로운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듣는 자들이 바른 교리 위에서 서면서도 영적인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⑧참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24절). '참으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넼시카콘'(ανεξικακον)은 아네코(ανεχω)와 카콘(κακον)의 합성어로서 악에 대해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실신한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악령들의 역사로 공격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악한 세력들이 너무 악하게 나오면 실족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⑨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고 했습니다 (25절). 거역하는 자는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하여 이단교리에 빠진 자나 신앙적인 미성숙으로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자를 가르칩니다. 그런 자들은 진리 수호와 교회의 거룩성을 위해 징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유함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혹시라도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면 진리를 깨닫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좇을까 함입니다.   

 

<結言>

  우리가 지상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에는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잘 참고 사역을 잘 감당하면 하늘에서 상이 큽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고 또 주의 위로를 바라고 복음 진리를 잘 세워 가고 교회를 잘 세워 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