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베드로후서 1:1-21
<題目> 성도의 윤리적인 삶
<序言>
베드로는 로마에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해 서신을 썼습니다. 첫번째 편지인 전서에서는 외부적으로 당한 시련에 대해 권위했다면 두번째 편지인 후서에서는 내부적으로 겪고 있는 시련에 대해 권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거짓 교사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윤리 의식 부재였기 때문에 본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생활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내용구조는 문안 인사(1-2절), 영적 성장의 요청(3-11절), 믿음의 근거 제시(12-21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문안 인사 (1-2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했습니다 (1절). 자신을 '종'이라고도 하고 '사도'라고도 한 것입니다. '종'(δουλοs)은 주인에게 예속된 하인을 말하고 '사도'(αποστολοs)는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께 예속되어 있고 주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하는 자임을 말하는 동시에, 주님의 권위를 대신 위임받은 대리인임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겸손과 권위를 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수신자를 표현하면서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1절).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가 하나의 관사인 '투'(του)의 수식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로 여겼습니다 (벧전1:18-19). 사도들과 같은 동일한 특권을 가진 자로 여겼습니다. 수신자들도 사도들과 동등하게 구원을 받아 구원 운동에 동참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고 문안했습니다 (2절). '앎'은 '그노시스'(γνωσιs)가 아니라 '에피그노시스'(επιγνωσιs)입니다. 그노시는 일반적인 지식을 말하는 반면 에피그노시스는 구원을 얻는 데에 필요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많아집니다.
2. 영적 성장의 요청 (3-11절)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베드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 영생을 암시합니다. '경건'은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자가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으로 영위하게 되는 도덕적 생활을 시사합니다. '영광과 덕'은 신적인 능력의 현시로서 하나님과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신기한 신적 능력으로 그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그리스도의 재림(3:4,9,12), 새하늘과 새땅(3:13), 영원한 나라(11절)에 참여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앎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고 (고후5:7), 성령으로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되고 (요14:16-17, 26), 장차 나타날 영광과 축복에 참여하게 됩니다 (롬8:18). 그 보배로운 약속을 위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참여하게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를 앎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시작하고 성령의 조명 하에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속성이 점점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속성을 닮아가는 것으로서 영적 성장입니다 (갈4:19, 엡4:13, 벧후3:18, 빌2:12). 영적 성장에 따라 영광과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얻게 됩니다 (벧전1:7, 4:13, 딤후4:7-7).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5-7절).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은 데에만 그치지 말고 영적 성숙과 진보를 위해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이런 덕목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영적으로 온전해 지기 위해 이와 같은 신앙 덕목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구성하는데 내장, 살, 신경, 관절, 힘줄, 피, 상합(相合), 피부가 필요한 것처럼 온전한 삶을 위해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내장에, 덕은 살에, 지식은 신경에, 절제는 관절에, 인내는 힘줄에, 경건은 피에, 형제우애는 상합에, 사랑은 가죽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①'믿음'은 구원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는 덕목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이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밑바탕이 됩니다 (롬5:1, 히1:1, 유1:20). 믿음이 성화와 관련되어 생각할 때는 순종으로 나타나야 하며 그것은 행위에 까지 나타나야 합니다 (약2:26). 믿음이 은사와 관련되어 생각할 때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는 성화와 관련된 믿음이 강조된 것 같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 몸의 뼈와 같습니다. ②'덕'은 도덕적인 탁월성입니다. 덕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얻는데 필수적입니다 (빌4:8, 벧전2:9).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얻지 못하게 되고 공동체에서 외면당하게 됩니다. 덕은 우리 몸의 살과 같습니다. ③'지식'은 하나님 뜻대로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판단력과 통찰력을 말합니다 (롬15:14, 고전13:2, 벧전3:7). 지식과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르게 되고 악령과 우상과 세상과 육체적인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식은 우리 몸의 신경과 같습니다. ④'절제'는 육체적인 죄적 욕망을 제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갈5:23). 절제가 없는 사람은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자유와 방종과 타락으로 기울어지기 쉽니다. 또 바쁘기만 하고 진짜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절제는 우리 몸의 관절과 같습니다. ⑤'인내'는 악과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참는 것을 말합니다 (눅8:15, 롬5:3, 히12:2). 인내가 없으면 연단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인내는 우리 몸의 힘줄과 같습니다. ⑥'경건'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1:27). 경건은 우리 몸의 피와 같습니다. ⑦'형제우애'는 믿음 안에서 형제 자매된 자와의 진실한 교제를 말합니다 (벧전1:22, 3:8, 롬12:10, 살전4:9, 히13:1, 요일5:1). 형제우애는 우리 몸에 있어서 상합(相合)에 해당합니다. ⑧'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희생의 행동을 말합니다 (요3:16, 롬5:5, 요일3:16, 4:8, 갈5:22-23, 딤전6:11). 사랑은 우리 몸의 피부와 같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알아 가기에 게으른 자이며 신앙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 자입니다 (8절). 이런 것을 행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고 과거 세속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는 자입니다 (9절). 그런 자는 소경과 같습니다. 원시치 못하는 자입니다 (9절). 요한복음9:39-41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보지 못한 것을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본 절에서는 생애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 곧 미래를 보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것을 소경이라고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지 않은 자, 8가지 덕목을 이루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아 거듭나고 내세에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되 성화를 이룬 만큼 영광과 칭찬과 상급이 있게 됩니다. 영적 속성이 자라난 만큼, 신의 성품에 참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이루지 않는 자는 소경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영적이 시각이 없는 자가 소경인 것입니다 (마15:14, 23:16, 눅6:39, 롬2:19).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10-11절). 주의 선택하심과 부르심을 확실하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것들을 행하므로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자기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때에 당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믿음의 근거 제시 (12-21절)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복음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알고 그 진리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항상 그 진리를 기억하고 더욱 굳게 서게 하기 위해 권면을 계속 하려 합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같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장막'은 육체를 가리키고 '장막을 벗어날 것'은 육체를 떠나 죽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순교할 것을 이미 예언하셨는데(요21:18), 그 때가 임박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생각나게 하기 위해 계속 진리를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12-15절). 사도의 열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도 교인들의 신앙적 성장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갈4:19).
16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강림'(παρουσια)은 주의 재림을 말합니다. '능력'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심판을 통해 나타낼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능력으로 임하셔서 불의한 대적자들을 심판하고 그의 의로운 나라를 온전히 완성할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하여 도덕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만든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이 거짓으로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님의 위엄을 친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17-18절에 보면 베드로는 거룩한 산에 있을 때 지극히 큰 영광 중에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변화산 사건을 두고 한 말입니다 (마17:1-9, 막9:2-10, 눅9:28-36).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과 변화산에 갔을 때 예수님이 영광 중에 변화하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였습니다. 이는 시편2:7인용입니다. 시편2:7-9에 보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구원자)는 '아들'이라 불렸고 그 아들은 시온산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대적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하늘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로 선택된 자임을 인정받으므로 존귀와 영광을 받은 것입니다. 곧 재림하여 심판할 자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19절에서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예언한 모든 말씀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변화산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예언의 말씀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들은 마치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확신이 없는 상태에 있는 자가 이 말씀을 붙들면 확실하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밤에 샛별이 떠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은 확신이 없는 자에게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그 깨달음과 확신이 올 때까지 이 사실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이론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20절에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주의 재림에 대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자신들의 뜻이나 생각에 의해서 비롯한 것이라고 했고 구약 선자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자기들 의도대로 해석을 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개인적으로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21절에 보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입니다. 곧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사실은 성경 말씀이 오류가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고, 동시에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개인이 사사롭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 성경 영감설 (聖經靈感說)
성서영감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말입니다. 영감설에는 방법면에서 세가지가 있고 범위 면에서 세가지가 있습니다.
1) 영감의 방법
①기계적 영감설(機械的靈感說)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 기록자들이 무의식 상태에서 성령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필기사처럼 기계적으로 기록했다는 설입니다.
②동력적 영감설(動力的靈感說) -동력적 영감설은 성경기록자들이 성령으로부터 동기와 힘만 제공받고 자세한 기록은 그들의 통찰력과 지혜로 기록했다는 설입니다.
③유기적 영감설(有機的靈感說) -유기적 영감설은 성경기록자들이 성령으로부터 오류없이 기록하도록 영감을 받되 그들의 성품과 기질과 은사와 재능과 지식과 교육과 교양과 용어와 어법과 문체들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여 기록했다는 설입니다.
2) 영감의 범위
①사상 영감설(思想靈感說) -사상 영감설은 성경의 언어는 영감되지 않고 사상에만 영감되었다는 설입니다.
②부분 영감설(部分靈感說) -부분 영감설은 성경 전체에 영감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신약, 교리적 사건, 예수님의 말씀, 산상보훈 등)으로만 영감되었다는 설입니다.
③완전 영감설(完全靈感說) -완전 영감설은 축자 영감설(逐字靈感說)이라고도 하는데 성경의 모든 내용이 문자 하나 하나에까지도 영감되었다는 설입니다 (원어 기준).
종류면에서 세가지 이론 중 유기적 영감설이 옳은 설이고, 범위면에서 세가지 이론 중 완전(축자) 영감설이 옳은 설입니다.
<結言>
베드로는 에베소 지역에 있는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밖으로부터 당할 환난을 대비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권면했습니다. 또한 안으로 거짓교사들의 교훈을 경계하도록 권면했습니다. 특히 주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교훈을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베드로가 죽음에 대한 암시를 느끼면서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기억나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생동안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요긴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그런 진리의 도를 부지런히 배워야 평생 하나님 앞에 옳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