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야고보서 3:1-18
<題目>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序言>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의 성숙된 삶을 위한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장은 그리스도인의 성숙된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제시된 교훈들이라면 3~5장은 그 제시된 원리들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기록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말과 지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 구조는 혀에 대한 바른 사용(1-12절), 아래서 온 지혜와 위에서 온 지혜(13-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혀에 대한 바른 사용 (1-12절)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탈무드에서 "자기 부모와 랍비가 물에 빠졌을 때 랍비를 먼저 구하라"는 말이 있듯이 유대인들은 배우기를 좋아했고 가르치는 자를 존경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자연히 선생되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말을 많이 하게 되고 그 말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선생이 되기를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2절).
① 혀의 영향력을 온 몸을 좌우합니다 (3-5절).
혀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말의 재갈과 배의 키와 나무의 불을 예로 들었습니다. 힘센 말(馬)의 입에 재갈로 말을 어거합니다. 거대한 배의 향방을 키로 조종합니다. 작은 불로 많은 나무들을 불사릅니다. 그처럼 혀도 세치 밖에 안되지만 온 몸을 주장합니다. 잠언18:21에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잠10:11-12, 19, 13:3, 15:1, 16:23, 21:23, 25:11, 26:22).
② 혀를 지키지 못할 때는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6-8절).
혀는 몸에서 작은 지체이지만 혀를 잘못 사용하면 온 몸을 굴레 씌웁니다. 온 몸을 더럽히고 불사릅니다. 혀는 '불'이며 '불의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지옥불'은 '겐네스'(γεεννηs)로서 기본형은 '게엔나'입니다 (γεεννα). 어원적으로 '불'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헬라어 '게엔나'(γεεννα)는 히브리어 '게-힌놈'(!NOhiAygE 힌놈의 골짜기)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힌놈 골짜기'는 원래 예루살렘 남동부로 뻗어 있는 골짜기를 말합니다 (수15:8, 18:16, 사31:9, 66:24, 렘7:31-32, 19:2,6, 32:35, 대하28:3, 33:6). 히브리어 지명 와디에르 라바비 (Wadier-Rababi)를 말합니다 그 곳은 황소 형상의 몰록(Moloch) 우상을 숭배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우상 숭배에는 인신제사가 뒤따랐습니다 (왕하16:3, 21:6). 불로 이글거리는 팔에 아이를 바치므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처참했습니다. 그 광경들에서 그 곳을 '게-힌놈'(힌놈 골짜기)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게-힌놈'은 정확히 말하면 '게 벤-힌놈'(!NOhiA@b, yGE 애곡의 아들들의 골짜기)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가공스러운 희생제사가 요시야 왕에 의해 폐지된 이후 그 곳을 심히 혐오하여(왕하23:10) 그 곳에 죽은 동물이나 범죄자들의 시체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들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불로 태웠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쓰레기 소각장으로서 끊임없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곳을 자연스럽게 심판의 장소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렘7:32,19:6). 최후심판에서 정죄받은 자들이 영원히 형벌받은 곳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했습니다 (막9:43, 마13:42, 50, 5:22, 23:33). 혀를 잘못 사용하면 인격을 더럽히고 인생을 힌놈 골짜기의 소각장 불처럼 파멸로 갑니다. 잘못 사용하는 혀는 불과 같아서 힌놈 골짜기의 소각장 불처럼 꺼지지 않고 인생을 불사릅니다.
또 혀는 쉬지 않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나 벌레는 길들 수 있으나 혀는 능히 길들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독이 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칼빈(Calvin)은 "혀보다 더 넘어지기 쉽고 위험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③ 혀는 일치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9-12절)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를 저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같이 나오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한 입으로 주가지를 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한 샘이 단물과 쓴물을 같이 낼 수 없고 한 나무가 두 종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음과 같아야 합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사람들도 한 입으로 한가지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살리는 말을 하고 치료하는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건설적인 말을 하고 덕이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된 삶을 살려면, 성공된 생애를 살아가려면 혀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혀를 잘 다스린다는 것은 말을 잘 절제한다는 말입니다. 말은 마음 속에서 생각한대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속에 선을 쌓으면 산을 말하고 악을 쌓으면 악을 말합니다 (마12:34-37)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합니다. 사람 마음 속에는 각종 더러운 죄악이 가득합니다 (막7:21-23).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마음입니다 (렘17:9). 그러므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잠4:23).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습니다 (잠16:32).
2. 아래서 온 지혜와 위에서 온 지혜 (13-18절)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이 성숙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선생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1~12절에서는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혀의 말을 잘 절제해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본 절에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른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지식'은 어떤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면, '지혜'는 사물에 대한 지식을 생활에 적용시켜 나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총명'은 사물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 원리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해 아는 능력을 말할 것이고,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리를 파악하여 인생에 적용하는 능력을 말할 것입니다.
① 아래로부터 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14-15절).
아래로부터 오는 지혜는 헬라적 지혜입니다. 헬라적 지혜는 인본주의적 지혜로서 마귀적이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입니다. 그 성격이 시기와 다툼입니다. 세속적인 지혜는 자기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당을 짓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 결과는 요란과 악한 일이 있습니다. 무질서와 파괴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②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17-18절).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히브리적 지혜입니다. 신본주의적 지혜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원리를 적용해 나가는 지혜입니다. 그 성격은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偏僻)과 거짓이 없습니다. 악한 동기가 없고 화목하고 용서하고 잘 순종하고 긍휼을 베풉니다. 편가름이나 위선이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화평과 의입니다.
<結言>
예루살렘교회가 처음에는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행4:32). 그러나 점점 사랑이 식어지고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박해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도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야고보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혀(말)를 잘 제어해야 하고 위로부터 나온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4장에서는 근본적으로 '정욕(욕심)'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룬 교회 공동체가 행복하려면 다툼을 그쳐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