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데살로니가후서2:1-17
<題目> 주의 재림에 대한 훈계


<序言>
  데살로니가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이 밤에 도적같이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 같이 아무도 생각지 못할 때에 갑자기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전5:2-3). 그것은 바울이 그들에게 주의 재림을 깨어 대비하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재림이 당장에 있을 것으로 오해하여 생업까지 포기한 채 종말의 임박을 주장하고 다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오해를 바로잡고 종말의 임박을 주장하는 것에 논박하기 위해 주의 재림 전에 배도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이 나올 것을 언급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기 전에는 주의 재림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본 장의 내용구조는 재림에 대한 훈계(1-12절), 감사와 권면과 축복(13-17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재림에 대한 훈계 (1-12절)


  ①'주의 날'이 임박했다는 말에 흔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바울이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구하는 것은 예수님의 강림하심과 그 앞에 모임에 관해 영으로나 말로나 바울 일행에게서 받았다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고, '그 앞에 모임'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그들 맞이하기 위해 휴거(携擧, 이끌휴 들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으로나'는 영적 은사인 예언을 통해 아는 것을 말하고, '말로나'는 말로 전해 들어서 아는 것을 말하고, '편지로나'는 편지를 통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1:7,10, 살전4:15-16). 그 때는 죽은 자가 부활하는 때이며 살아 있는 성도가 휴거하는 때입니다 (살전4:16-17).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는 주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해서를 말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가 곧 임박했다고 생각하여 걱정하고 두려워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지식을 가진 것은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했기 때문일 것인데 그렇게 오해하는 데에는 그렇게 미혹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미혹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주장이 영적 은사인 예언에 의한 것이라고 하든지 바울 자신에게 직접 들은 것이라고 하든지 바울 자신에게 받은 편지에서 본 것이라고 하든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하든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임박했다는 지식을 잘못 받아들여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②'배교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에게 누가 어떻게 말해도 주의 재림이 곧 임박했다는 말에 미혹당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주의 재림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교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3절). 바울이 예수님의 재림이 곧 임박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있어야 할 징조 2가지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배도하는 일입니다 (3절). '배도하는 일'은 믿음을 버리는 배반행위를 말합니다. 마태복음24:11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라고 했고, 마태복음24:24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많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참된 신앙을 갖지 않은 많은 지도자들이 타락하여 변절할 것이고 그들의 미혹으로 인하여 참된 신앙을 갖지 않은 많은 성도들이 미혹을 받아 배반을 하게 됩니다. 그 현상은 전 세계적인 분위기로 일어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13:11-18에 보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나옵니다. 이 짐승은 거짓그리스도나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16:13, 19:20, 20:10). 이 짐승의 외형적 특징은 어린 양 같이 생겼고 뿔이 2개가 달린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기독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두 세력과 그 지도자들을 암시한 것일 것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천주교(Catholic)과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많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의 특징은 용(사탄)처럼 말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것 같은 큰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적그리스도)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경배하게 하고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합니다. 모든 사람의 이마나 오른 손에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표 666을 받게 하고 거부하는 자에게는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짐승의 표 666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10C 아라비아 숫자가 발견되기 전 고대 히브리 풍속과 헬라 풍속에는 어떤 인격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그 방언의 문자로 수치를 표시하는 방법이 많았습니다 (*히브리어: א-1, ב-2, ג-3, ד-4, ה-5, ו-6, ז-7, ח-8, ט-9, י-10, כ-20, ל-30, ם-40, מ-50, ס-60, ע-70, פ-80, צ-90, ק-100, ר-200, ש-500, ת-400. *헬라어: α-1, β-2, γ-3, δ-4, ε-5, ζ-7, η-8, θ-9, ι-10, κ-20, λ-30, μ-40, ν-50, ξ-60, ο-70, π-80, ρ-100, σ-200, τ-300, υ-400, φ-500, χ-600, ψ-700, ω-800. *영어: a-6, b-12, c-18, d-24, e-30, f-36, g-42, h-48, i-54, j-60, k-66, l-72, m-78, n-84, o-90, p-96, q-102, r-108, s-114, t-120, u-126, v-132, w-138, x-144, y-150, z-156.). 히브리인의 묵시문학에서도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지시하는데 있어서 그 의미를 감추기 위해 상징수로 표현하는 방법 이른바 게마트리아(Gematria)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본문에서도 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표를 '666'으로 표현한 것도 그런 방법입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666'의 의미를 풀기 위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상의 이름 철자(알파벳)를 숫자로 풀려는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역사적 국가나 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666의 암호를 풀기 위해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던 국가들을 찾아 그들 이름의 철자 곧 알파벳이 의미하는 수를 알아내고 그 수들을 합산하여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로마'(λατεινοs)는 30+1+300+5+5+10+50+70+200=666이 되고, '라틴'(Ευανθαs)은 5+400+1+50+9+1+200=666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던 인물들을 찾아 그들 이름의 철자 곧 알파벳이 의미하는 수를 알아내고 그 수들을 합산하여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네로 황제'를 의미하는 라틴어 '카사르 네론'의 히브리어 음역, נרון קסר)는 50+200+ 6+50+100+60+200=666이 되고, '히틀러' (HITLER)는 107+108+119+111+104+117=666이 되고, '교황'(Vicarius Fileii Dei- 교황의 모자와 허리띠에 적힌 문구로서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뜻)은 5+1+100+0+1+5+0+0+1+50+0+1+1+ 500+0+1=666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역사적인 관습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모든 상업 문서에 로마 황제의 이름과 날짜가 있는 도장을 찍었고 주인이 노예나 짐승에게 자기 소유를 나타내기 위해 인(印)을 찍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파벳 철자에 대한 숫자의 의미를 계산하는 방법은 일관성이 없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히브리어를,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헬라어를,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라틴어를,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영어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666'은 적그리스도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어떤 수단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활동 수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17C 로마카톨릭(천주교)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풀어서 칼빈, 루터, 낙스 같은 종교개혁자들도 666으로 규정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견해는 성경에 나타난 인물 중에 '6'이라는 숫자가 관련되어 있는 인물에게 적용하는 견해입니다. 골리앗은 키가 6규빗이었고 (삼상17:4), 솔로몬은 그가 거두어 들인 세금의 총액이 666달란트였고(대하9:13), 아도니감은 그의 후손 가운데 바벨론에서 귀환한 자손 수가 666명이었습니다 (스2:13). 이런 견해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성경 권 수도 66권이므로 시편 5권을 각각 나누어서 전체의 권수를 70권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에 이라크전 파병 숫자가 우연히 666명이 되었는데 기독교단체에서 이를 반대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들은 상징의 의미를 갖지 않은 실제 수입니다. 우스겟 소리이지만 송탄 지역에는 전화 번호가 666국이 많은데 전화번호를 받지 않거나 이사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관념은 마치 한국 사회에서 '4'자를 싫어하여 사무실 빌딩이나 아파트에서 4층을 넣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컴퓨터 바코드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컴퓨터와 컴퓨터 바코드(Bar-code)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장두만). 컴퓨터 (Computer) 알파벳을 숫자로 풀면 18+90+78+96+126+120+30+108=666이 됩니다. 그리고 국제 컴퓨터 번호와 컴퓨터 고유번호가 '6'입니다. 또한 현재 각 물품에 국적과 제조원과 가격 등이 입력된 바코드 (Bar-code)가 있는데 검은 막대 무늬 3개를 중심으로 시작과 진행과 완료 코드를 '666'으로 읽습니다. 컴퓨터 바코드는 각종 신용카드 고유번호에도 있습니다. Mutual Change Card는 111, Money Card는 222, Visa Card는 333, Master Card는 444, American Express Card는 555, Diners Club Card는 777, Carte Blanche Card는 888, Universal Change Card는 999입니다. 현재 666만 비어 있는데 앞으로는 이 바코드를 소형 전자칩으로 만들어 이마나 손에 수술하여 넣고 레이저 검사기로 판독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벨기에 부르쉘에 있는 EU(유럽경제공동체) 본부에 있는 초대형 컴퓨터 이름이 '짐승'(BEAST- Biometric Enctyption And Satellite Tracking)이라고 합니다. 장차 13장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10뿔 가진 짐승이 상징하는 유럽공동체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와 이 초대형 컴퓨터로 세계 모든 인구를 통제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짐승이 10뿔이 달렸기 때문에 그 짐승을 EU로 보는데 현재 EU 회원국은 28개국에 이르며 현재 많은 컴퓨터 전문가들은 바코드에서 666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컴퓨터이든 신용카드이든지 물질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666'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광복 목사까지도 "이 숫자의 의미에 대하여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등의 문자적 수치로 계산하거나 오늘날 상품 판매에 흔히 사용하는 바코드(Bar-code) 등으로 보는 이론은 반대한다"고 하였고, "오늘날 상업의 원할을 위하여 활용되고 있는 바코트를 666으로 주장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바 바코드는 상업용이지 믿음과 연관시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베리칩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주장은 컴퓨터 바코드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주장입니다. '베리칩'(Verichip)은 '식별용 반도체'(Verification+Chip)의 합성어로서 개인정보를 입력해 놓은 초소형 마이크로칩(Microchip)입니다. 이는 쌀알보다 조금 작은데 겉이 실리콘 유리 튜브에 싸여 있습니다. 그것은 주사기로 사람의 피부에 주입하며 주입받은 사람이 스캐너 근처를 지나면 그 사람에 대한 개인 정보가 읽힙니다 (약1.2m). 기능 면에서는 과거 Bar-code나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식별장치)와 비슷하지만 성능 면에서는 훨씬 우수합니다. 현재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료용이나 동물(애견, 안내견, 제주조랑말, 진돗개, 지리산반달곰, 물고기 등)을 대상으로 한 관리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2010년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개혁법안 이른바 '오바마 헬스 케어'(Health Care Reformation) 법안(H.R 4872)이 등장하면서 극단적인 종말론적 세대주의자들이 그 법안에 언급된 베리칩이 짐승의 표인 666이라는 주장을 했고 그로 인해 미국 한인교회들이 떠들썩했고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10뿔은 EU(유럽경제공동체)이고 그 가운데서 적그리스도가 나와 세계단일정부를 세우고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슈퍼컴퓨터 BEAST로 세계를 통제하게 될 것이고 베리칩 주입을 의무화 해서 인공위성으로 베리칩이 주입된 사람들을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엔 666이 컴퓨터 바코드가 등장하자 바코드라고 했다가 전자태그(RFID)가 나오니까 전자태그라고 했다가 베리칩이 나오니까 베리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EU는 27개국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바마 헬스케어 법안 HR4872에 ClassⅡDevice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 베리칩은 의료보험의 자원인 미국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서, 환자의 보호와 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 통제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는 베리칩 이식을 강제로 한다거나 강제 집행한다는 내용도 없으며 이 법이 통과되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인본주의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666'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영적으로 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수암, 이병규, 천정웅, W.Hendriksen, G.E.Ladd, Petingill, Gaebelein, C.L.Morris etc). 18절에 짐승의 수 '666'은 '사람의 수'라고 했기 때문에 666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최고로 발달한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상징수(數)로 봅니다. '7'수가 하나님의 수 곧 신본주의 수라고 한다면, '6'수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세상의 수 인간의 수 곧 인본주의 수라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수인 '6'이 발달하면 신본주의 수인 '7'이 되는 것이 아니고 '66'이 되고 더 발달하면 '666'이 된다는 것입니다. '666'은 세상의 문화와 문명에 있어서 최고로 발달한 의식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예술과 교육과 체육과 이성 등 모든 삶의 형태에서 인간적 정의와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에서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의식처럼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용어는 모두 상징의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666'은 짐승의 수로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상이 반영된 수로서 적그리스도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는 가치관입니다. 사탄적이고 우상적이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입니다 (딤후3:1-5). 그것을 이마나 오른 손에 받게 한다는 것은 사고와 행동을 적그리스도의 가치관에 일치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삶에서 모든 삶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적그리스도의 목적과 가치와 이념과 이상과 신념을 따라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적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가치관을 따라 사는 자가 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신앙적인 진리를 인본주의 사상으로 바꾸어 적그리스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요구하는 운동이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통합운동인 에큐메니컬운동(Ecumenical movement)과 무신론 운동인 뉴에이지 운동(New-Age movement)과 물질주의의 사상인 맘모니즘(Mammonism) 같은 부분에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는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절).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에 대해 '멸망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마침내 멸망받기도 결정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했고 신이라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운다고 했습니다 (4절). 그는 신(神)으로 불리는 어떤 대상들이나 숭배를 받는 어떤 대상들보다 자기를 더 높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고 교회를 정복하여 군림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 요한이 말한 바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의 통치는 전 세계를 향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13:1-10에 보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있습니다. 그 짐승은 몸은 표범 같고 발은 곰 같고 입은 사자 같습니다. 그 짐승은 7머리가 있고 10뿔이 있는데 7머리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고 10뿔에는 왕관들이 있습니다. 그 머리 중 하나가 죽게 된 것 같다가 상처가 나으니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짐승은 용에게 권세를 받아 42달 동안 일을 하는데 하나님과 천사들을 비방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기므로 살아 있는 자들 중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용'은 사탄을 상징하고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7머리'가 있는 것은 지식과 지혜가 많을 것을 가리키고, '뿔'이 10개인 것은 능력과 권세가 많을 것을 가리킵니다. 머리에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을 가진 것은 자신에게 신적 명칭을 사용하여 우상화할 것을 가리키고, '왕관'을 쓴 것은 명예와 영광이 있을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이 본 계시는 다니엘7:1-25에 나오는 다니엘이 본 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4짐승이 나옵니다. 사자, 곰, 표범, 괴물(괴이한 짐승)입니다. 10뿔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작은 1뿔이 나와 3뿔을 뽑아 버립니다. 그 뿔을 '8번째 뿔'이라고 합니다 (단7:7-8). 이 '8번째 뿔'은 요한계시록13:3에 나오는 '상하여 죽게 되었다가 상처가 나은 머리 하나'를 가리킵니다. 다니엘7:17에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고 했고, 다니엘7:23-24에는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짐승'은 나라나 그 나라의 왕을 상징합니다. '사자'는 역사적으로 바벨론(Babylonia, B.C.606-537)을 가리키고, '곰'은 메데바사(Persia, B.C.536-332)를 가리키고, '표범'은 헬라(Greece, B.C.331-64)를 가리키고, '괴물'(괴이한 짐승)은 로마(Rome, B.C.64~)를 가리킵니다. 괴물에 '10뿔'이 있는 것은 강력한 권세로 기독교를 핍박할 왕이 많이 나올 것을 가리킵니다. 그 중에 1뿔이 나와 3뿔을 뽑고 8번째 뿔이 되는데, 그 '8번째 뿔'은 마지막에 일어날 강력한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8번째 나온 왕은 때와 법을 변개하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괴롭게 하고 성도와 싸워 이기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때반=3년반=42달) 동안 성도를 주장합니다 (단7:21-25). 바로 이 '8번째 뿔'이 종말에 있을 적기독국가의 왕으로서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입니다. '4짐승'은 과거에 일어난 적기독국가이고 4번째 짐승의 '10뿔'은 4번째 일어난 짐승 이후에 나타난 적기독국가의 왕들이고 '8번째 뿔'이 바로 종말에 나타날 적기독국가의  왕인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 종말에 나타날 적기독국가의 왕인 적그리스도는 온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 단일 정부를 이루어 온 세상을 다스릴 자이고 (계13:3,8), 과거 어떤 국가의 왕보다 강력하여 대적할 자가 없고 (단7:8,24, 계13:4), 사탄에게 권세를 받아 능력을 행사하고 (계13:4), 자신을 신격화하여 경배를 받고 (계13:1,8), 하나님을 대적하여 모독하고 (단7:25, 계13:1,5-6), 성도를 대적하여 핍박합니다 (단7:25, 계13:7-8). 그 적그리스도는 과거에 강력한 권세로 세상으로부터 추앙을 받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적극적으로 핍박하던 그 모든 왕들의 특성을 다 가진 자로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강력한 왕입니다. 그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계시한 특성들을 기억해서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본서를 통해 주장하려는 것은 그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에 나타날 것이므로 아직 그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재림이 급박할 정도로 임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절에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고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에게 배교하는 일(거짓선지자들)과 불법의 사람(적그리스도)이 나타나기 전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이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3절).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携擧: 이끌휴, 들거)가 있기 전에는 배교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곧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가 있기 전에 대환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 전에 환난이 있기 때문에 성도도 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곧 성도가 대환난 기간에 있는 모든 환난을 다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와 세대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가 대환난 전에 있기 때문에 성도가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구원역사를 세대로 나누고 각 세대마다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다비(Darby), 스코필드(Scofield), 차퍼(Chafer), 월부어드(Warvoord)가 있습니다. 현재 그 신학의 본산지는 미국의 달라스(Dallas)신학교과 탈봇(Talbot) 신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대주의 신학은 구원론뿐 아니라 교회론과 종말론 등에서도 우리 개혁주의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종말론에서 휴거와 666에 대해 현저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우리 나라 극단적인 종말론자들과 오순절교단에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도가 종말에 있을 대환난을 거치지 않고 하늘로 들림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서 주장하는 환난전휴거설(患難前携擧說)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몇 근거성구가 있습니다. a. 요한계시록4:1입니다. 요한계시록4:1에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종말에 있을 휴거에 대한 상징으로 봅니다. 그래서 종말에 있을 환난은 6장부터 나오는데 벌써 그 전에 4장에서 휴거에 대한 상징이 있으니 성도가 환난을 당하기 전에 휴거를 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본문 4:1의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은 휴거의 상징이 아니라 계시를 보여 주기 위한 초대입니다. 종말에 있을 성도의 휴거는 4:1의 내용이 아니라 11:11 내용입니다. 11:11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b. 마태복음24:37입니다. 마태복음24:37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종말의 때도 노아의 때와 같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근거하여 노아시대에 홍수심판 전에 하나님이 노아를 건져 주신 것처럼 성도도 심판을 받기 전에 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말은 환난 전에 미리 구원해 준다는 의미로 사용한 말씀이 아니고 그 다음절부터 보면 사람들이 주의 재림 전까지 깨닫지 못하고 방탕할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마24:38-39). c. 데살로니가전서1:10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1:10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이 장래 하나님의 노하심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재림 직전에 있는 심판을 면해준다는 의미이지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해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도 종말에 있을 환난을 경험합니다. 성도가 종말에 있을 모든 환난을 다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난을 전혀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종말에 성도의 휴거는 대환난 전이 아니라 대환난 중간입니다. 그 근거성구가 많이 있습니다. a. 요한계시록11:11입니다. 요한계시록11:11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3일반 후에' 휴가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3일반 후'는 종말에 있을 7년 대환난의 전반기입니다. 종말에 있을 대환난을 '7년 대환난'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7년'은 실제 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정한 상징수입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7년 대환난'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서 '3년 반, 3년 반' 혹은 '42달, 42달' 혹은 '1,260일, 1260일' 혹은 '3일 반, 3일 반' 혹은 '3때 반, 3때 반' 등으로 표현합니다. b. 다니엘12:11-12입니다. 다니엘12:11-12에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1,260'은 7년 대환난의 전반기이기 때문에 '1,290일'은 전반기에서 30일이 더 지난 것이고 '1335일'은 거기에서 45일을 더 지난 것입니다. 곧 대환난이 시작되어 적그리스도 세력이 교회를 점령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한 때로부터 1,290일을 지나고 1,335일을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것은 대환난의 전반기가 지나서 휴거가 있다는 말입니다. c. 마태복음24:13,22,29-30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이 종말에 있을 대환난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1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말세에 있을 징조를 말씀하시다가 13절에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고, 22절에는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창세 이후로 전무후무한 환난이 있을 것인데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한 표현이나 택한 자들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해주신다고 한 표현은 환난을 전혀 거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환난을 다 당하지는 않지만 환난을 거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9-30절에는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일어나는데 여기에 보면 환난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d. 데살로니가후서2:3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2:3에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고 했습니다. 종말에 있을 대환난의 절정은 적그리스도와 거짓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일어나고 (계13장) 성도의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일어나는데 (살전4:16) 여기에 보면 거짓그리스도의 세력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나타난 다음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도가 종말에 있을 대환난을 다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기 환난을 당합니다. 
  성도에게 환난을 주신 것은 유익을 위함입니다. 요한계시록에 환난 때 있을 재앙을 3가지로 말합니다. 6장에 나오는 '7인 재앙' 7-8장에 나오는 '7나팔 재앙' '16장에 나오는 '7대접 재앙'입니다. 그 중에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은 대환난 전반기에 있을 재앙이고 '7대접 재앙'은 대환난 후반기에 있을 재앙입니다.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은 부분적인 재앙으로서 '7대접 재앙'은 전면적인 재앙입니다.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은 하나님이 심판할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불신자들의 심판 근거를 마련하고, 참 성도와 거짓 성도를 나누고, 참 성도를 연단시키기 위한 재앙입니다. '7대접 재앙'은 적그리스도와 거짓그리스도와 불신자를 심판하기 재앙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7대접 재앙'은 당하지 않지만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은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도가 전반기 대환난 기간에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을 경험하게 된 것은 육체적으로 보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성도의 유익을 위해 허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6장부터 대환난에 대해 말하기 전에 4~5장에서 하늘 보좌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펼쳐질 모든 환난과 구원 계획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성도에게 유익을 위해 환난을 경험하게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허락하고 감당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고 성령으로 도우시고 아주 실패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아예 경험하지 않게 합니다. 고린도전서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 전에 환난을 경험하게 되는 원리는 성도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성도에게 환난과 고난이 필요합니다. 그 고난을 통해 성도는 신앙인격의 연단과 성장이 있게 되고 주의 재림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약1:3-4, 벧전1:6-7). 다윗은 시편119:71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6:24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성도가 마땅히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8:17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고, 빌립보서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하나님이 신령한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해 주신 줄 알고 그 목적대로 믿음으로 연단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서 큰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는 고난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허락된 것,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허락되었다는 사실, 믿음으로 반응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신념, 감당할 수 없을 때는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매일 매일 승리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빌4:3). 
 

  ③'불법의 사람'은 예수님이 폐한다고 했습니다.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왔을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행17:1-14). 바울은 그 때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종말론에 관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5절). 친밀하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6절). 3-4절에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주의 날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불법의 사람'은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야 할 때에 나타나게 하시려고 그가 나타나는 것을 막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을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7절). '불법의 비밀'은 '불법의 사람'의 배후 곧 사탄을 지칭합니다. 사탄이 이미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사탄이 '불법의 사람'을 나타내려는 것을 하나님이 막기 때문에 아직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는 것을 거두시면 그 때 사탄이 '불법의 사람'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 하나님께서 사탄이 '불법의 사람'을 나타내는 때를 정하셨습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사탄이 '불법의 사람' 나타내는 것을 막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엔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그의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므로 폐한다는 것입니다.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19:11-16에 보면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라고 했습니다. 첫째, 백마를 타고 오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는 백마(白馬)를 타고 있었습니다. 서신서들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이 계시에서는 흰말을 타고 오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말'은 전쟁을 상징하고 '흰'색은 의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말을 타고 오신 것은 악의 무리와 싸워 이기고 공의대로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심은 짐승(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을 심판하시는 영광스런 승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주께서 백마를 타고 나타나실 때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도 백마를 타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따랐습니다. 이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주의 재림 때 천사들도 따르지만 순교자를 비롯한 죽은 성도들도 그 뒤를 따르며 주의 심판과 영광에 동참합니다 (17:14). 그들이 입은 세마포는 주의 보혈의 피로 입혀진 의(義-'옳다' 인정함을 받은 의)이며 그들의 옳은 행실로 보존된 의입니다 (19:8). 셋째,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옵니다. 예리한 검은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계1:16) 주는 예리한 칼로 만국 곧 악인을 심판합니다 (사11:4). 그 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히4:12). 주께서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심판합니다 (요12:48, 렘5:14, 23:29). 넷째,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립니다. 주께서 세상을 심판할 때에 그 파괴력이 철장으로 질그릇 깨트리듯 할 것입니다 (시2:9, 계2:26-27, 렘1:18-19). 다섯째,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를 밟습니다. 주께서 세상을 심판할 때에 포도즙 틀을 밟음과 같을 것입니다 (사63:1-6, 계14:19-20, 마25:31, 요5:22, 행17:31). 


  종말에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가 득세하여 교회와 성도를 적극적으로 박해하겠지만 마침내는 주님이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던 자들을 완전히 멸하여 유황 불 못에 쳐 넣게 됩니다. 요한계시록19:20-21에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마지막에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를 심판하는 원리를 그 전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됩니다. 마지막 때에 있을 심판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세력을 일시적으로 멸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인내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종말에 있을 일이든 현재에 있는 일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④'악한 자'의 활동을 허락함은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9-10절上). '악한 자'는 3절에서 말한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사주로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 등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을 미혹합니다. '능력'(δυναμιs)은 이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리키고, '표적'(σημειον)은 이적에 의미를 나타내는 표시를 가리키고, '기적'(τεραs)은 이적에 경이로움을 갖게 하는 의도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는 '큰 붉은 용'이 나오고 13장 전반부에는 '바다에서 나온 10뿔 달린 짐승'이 나옵니다. '큰 붉은 용'은 사탄에 대한 상징 표현이고 (계12:9), '바다에서 나온 10뿔 달린 짐승'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상징표현입니다 (단7:17,23-24). 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부여 받습니다. 요한계시록13:4-5에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계13:2). 적그리스도가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42달'은 7년 대환난의 전반기 환난 기간으로서 예수님이 재림하기 전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사탄에게 힘을 받아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까지 세상을 정복하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성도들을 박해합니다. 요한계시록13:6-8에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나온 10뿔 달린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13장 후반부에 나오는 '땅에서 올라온 2뿔 가진 짐승'을 앞세워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2뿔 가진 짐승'은 거짓선지자들을 가리키는 상징 표현입니다 (계16:13, 19:20, 20:10). '땅에서 올라온 2뿔 가진 짐승'은 거짓 선지자들은 앞에 나온 '바다에서 나온 10뿔 달린 짐승'인 적그리스도가 부여한 권세를 받아 적그리스도의 우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로 그 우상에게 절하게 하고 절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고 짐승의 통제 아래 있게 하는 짐승의 표 666을 받게 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는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계13:11-18). 그런데 그 '땅에서 올라온 2뿔 가진 짐승'인 거짓선지자들이 미혹하는 수단은 능력행사입니다. 요한계시록13:13-14에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종말에 있을 재림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미혹을 가장 경계하도록 강조했습니다 (마24:4-5,11). 종말에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권세를 받아 거짓선지자들을 앞세워 미혹합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와 그를 사주한 사탄과 그의 앞잡이 노릇한 거짓선지자들과 그들의 미혹을 받아 적극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우상을 숭배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최후심판을 통해 유황 불 못에 집어 넣게 됩니다. 요한계시록19:20에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라고 했고, 요한계시록20:10에도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사탄)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에게 미혹을 받아 적극적으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유황 불못에 던져집니다.


  10절 하반절에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사랑을'(την αγαπην τηs αληθειαs)은 '사랑을'을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진리를 사랑하는 것을'의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진리'는 의미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갈2:5, 골1:5). 적그리스도의 나타남은 사탄의 역사로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들어서 멸망하는 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유황 불못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여 함이라고 했습니다 (11-12절). 사탄의 사주를 받은 적그리스도가 활동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미혹의 역사를 허락한 것은 스스로 거짓 것을 믿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미혹의 역사가 있을 때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이 제시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반응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따르므로 스스로 심판받은 자임을 증명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런 점을 보면 하나님이 7년 대환난의 전반기 환난 기간 동안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활동을 허락한 것은 심판받은 자임을 스스로 드러내게 하는데 있습니다. 곧 불택자들이 스스로 심판받을 자임을 드러내므로 심판에 항의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이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7인 재앙과 8-9장에 나오는 7나팔 재앙은 7년 대환란 전반기에 있는데 그 재앙들의 첫번째 목적 가운데 하나가 불택자들로 하여금 심판받을 조건을 쌓으므로 스스로 심판을 받을 자임을 증명하게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에 굴복할 뿐 아니라 자신들이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원리는 꼭 종말에 있을 최후심판과 관련되어서만 아니라 그 전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원리입니다. 신명기13:1-3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혹하는 자들을 허락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지 그 여부를 알기 위해 시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험하심이니라'에 해당하는 기본형 '나사'(נסה)는 '시험하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는 '페이라조'(πειραζω)에 해당합니다. '시험'은 영어 성경에서 4가지로 번역됩니다. test(평가), trial(시련), temption(유혹), prove(증명)입니다. 여기에서 '시험'은 NIV에서는 test(평가)로 번역되었지만 KJV과 NASB에서는 prove(증명)로 번역되었습니다. prove(증명)의 의미로 받아들일 경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혹하는 자들을 허락한 것은 그들 마음 속에 그들의 미혹을 따르려는 성향이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증명하려는 의도에서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 속에 불신앙이 있는 것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징계를 받을 때에 항거하지 못하게 하고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미혹에 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인 증거를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과 말씀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감사와 권면과 축복 (13-17절)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①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 항상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들을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해 일행의 복음으로 그들을 부르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13-14절). 첫째, 하나님이 처음부터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그들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으로 진리를 믿어 구원을 받게 한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신다는 복음 진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죄와 칭의와 중생과 성령의 내주와 하나님의 양자됨 등을 의미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자자들에게 미혹을 받아 멸망할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들의 미혹에 들지 않는 자들로서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과 구원과 영광에 참여할 자들임에 대한 확신에서 감사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선택을 받아 구원을 얻고 영광을 얻게 되어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사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1:4-6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2:8-9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요3:8). 


  ②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편지로나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15절). 첫째, 굳건하게 서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당시 배경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면 현재에 받는 박해와 핍박으로 인해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1-12절 내용을 염두에 둔 권면이라면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 악의 세력이 강하거나 그들의 핍박과 유혹이 크더라도 두려워 하거나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은혜와 목적을 생각하여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둘째 전통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로 가르치기도 하고 편지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 전통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전통'에 해당하는 기본형 '파라도시스'(παραδοσιs)는 '전달' '교훈' 등의 뜻이고, '지키라'에 해당하는 기본형 '크라테오'(κρατεω)는 '붙잡다' '붙들다' '간직하다' 등의 뜻입니다. 여기에서 전통을 지키라는 말은 바울과 그 일행이 가르친 교훈을 굳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큰 환난이 있을 것,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 때에 성도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가르친 바른 교훈을 굳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받아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말에 있을 환란을 두려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여 소망 가운데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교훈을 깨달아 바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른 교훈을 가진 신앙적 스승들 신뢰하고 그 교훈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보내 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고, 여러 종류의 환난과 시련과 유혹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신앙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③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축복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데살로니가 교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16-17절). 하나님에 대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분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베푼 선택과 구원과 영광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무조건적으로 구원할 자로 선택해 주신 것, 스스로는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죄를 대속하게 해 주신 것, 성령님을 보내어 거절할 수 없는 역사로 믿음을 지게 해주신 것,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주실 목적을 가시신 것, 그 목적을 위해 참아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연단시켜 주시고 성장시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입니다. 그 하나님은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사랑하여 구원의 위로와 영광의 소망을 주신 분입니다. 바울은  구속사적으로 위로와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서 현재에 경험하는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위로해 주시고 굳건하게 해 주시길 바란 것입니다. 그 위로는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나 고난에서도 견디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말일 것입니다.


<結言>
  데살로니가 교회에 환난과 고난과 유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속사적으로 은혜를 베푼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전 삶에 나타나기를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며 소망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1:3-4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 했습니다 (롬1:11).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