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한계시록7:1-17
<題目> 인(印)침을 받은 자
<序言>
요한계시록의 중심주제는 6-18장에 나오는 '대환난'입니다. 그 대환난의 내용은 6장에 나오는 7인 재앙과 8-9장에 나오는 7나팔 재앙과 16장에 나오는 7대접 재앙입니다. 이 모든 재앙의 구조는 4+2+1입니다. 6장에서는 첫 번째 인부터 여섯 번째 인까지 나왔습니다. 일곱 번째 인은 8:1에 나오고 그 일곱 번째 인(印) 안에 7나팔 재앙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7장은 7인 재앙에서 7나팔 재앙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넣은 이른바 삽경입니다. 6:17에 여섯 번째 인 재앙인 천지변동이 있을 때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했는데, 7장은 그 질문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는 가운데서도 능히 구원을 받을 자에 대한 언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인칠 천사의 등장(1-3절), 인침을 받은 자들의 수(4-8절), 인침을 받은 자들의 정체(9-14절), 인침을 받은 자들의 복락(15-17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인(印)칠 천사의 등장 (1-3절)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①네 천사가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1절에 보면 4천사가 나왔습니다. 1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4천사는 땅의 4모퉁이에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4천사'는 바람을 다스리는 천사들입니다. 후에 불을 다스리는 천사도 등장하고 (14:18), 물을 다스리는 천사도 등장합니다 (16:5). '땅 네 모퉁이'는 땅의 모서리 4방향 끝으로서 땅 전체를 다스리는 위치를 의미합니다 (20:8, 사11:12). 그 천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역할은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람'(ανεμους)은 복수로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여러 재앙들을 상장합니다. 묵시문학에서는 바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요소로 빈번히 나타납니다 (단7:2-3, 렘49:36, 슥6:5).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동서남북 정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유익한 바람으로 여긴 반면 각 모서리에서 대각선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해로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R.H.Charles). 요한은 그런 묵시문학에서 사용되는 바람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재앙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8:6에서 9장까지 일어날 7나팔 재앙으로 말미암은 큰 환난에서 나타납니다.
4천사는 사방의 바람이 땅이나 바다나 각종 나무에 불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다스리는 권세를 위임받은 천사가 세상에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에는 세상에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환난이든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제아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천로역정에 나오는 묶인 사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길을 가는데 2사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사자들은 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환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섭리하시다가 계획한 환난의 때가 임박하면 천사들을 통해 환난이 일어나도록 섭리하십니다. 큰 자연재해나 전쟁 등의 환난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정치력에 달린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향력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환난과 평안이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전도서9:11에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고 했고, 시편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고 했고, 예레미야29:17-18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②한 천사가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서 올라왔습니다.
2절에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라고 했습니다. 이 ‘다른 천사’는 4천사에게 튼 소리로 외치는 것으로 보아 4천사보다 상위에 있는 천사인 것 같습니다. 그 천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해 돋는 데로부터'(απο ανατολης ηλιου)는 문자적으로 '동쪽으로부터'이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부터 온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에스겔43:2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라고 했습니다 (겔43:1-4 44:1-2, 47:1). 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왔다는 것은 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치는 사역을 하는 천사로서 그가 인치는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곧 인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印)에 해당하는 ‘스프라기스’(σφραγις)은 ‘표식’이라는 뜻으로서 주로 소유를 나타내는 표식을 말합니다. 곧 소유물에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한 표식을 말합니다 (9:4, 14:1, 겔9:1-7, 고전1:22, 딤후2:19, 엡1:13). 고대 근동에서는 문서, 가축, 노예, 군인, 조합회원 등에 사용했습니다. 문서에 사용할 때는 도장을 찍지만 가축이나 사람에게 사용할 때는 화인(火印)으로 표시했습니다. 사람에게 사용할 때는 신체 부위 중 가장 잘 보이는 손이나 이마에 사용했습니다. 본문에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친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 선택받은 백성임을 표시하는 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을 치는 것은 실제 도장이나 화인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선택한 자에게 성령님으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에게 성령님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고 영을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되는 확신이 생기게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에베소서1:13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엡4:30).
그런데 3절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치는 천사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가진 4천사에게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땅이나 바다나 나무'는 전 세계의 국가와 사람들에 대한 상징입니다 (단7:2, 사10:18-19, 겔31:3-5, 16-17). 세상 어디에서도 마지막에 있을 재앙에 해당하는 환난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 위함입니다. 세상 끝이 오기 전에 성령님으로 택함 백성이 모두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겔9:3-4).
오늘날 하나님의 인치는 사역은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역은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지만 그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선택하시고 세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평안을 주신 것은 이 생명 살리는 일을 하기 원해서입니다. 그 일은 주님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사도행전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고, 마태복음28:19-20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인치는 사역에 동참하고 헌신해야합니다 (딤4:2).
2. 인(印)침을 받은 자들의 수 (4-8절)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2-3절에서 한 천사가 해 돋는 데서부터 인(印)을 치기 위해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등장했습니다. 4-8절에는 그 인침을 받은 자의 수(數)가 나왔습니다. 그 수는 이스라엘 지파마다 각각 12,000명씩이었는데, 모두 합하여 144,000명이었습니다. 그 숫자에 대한 해석은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간에 상당한 이견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세대주의는 그 수를 유대인에 국한하고 그 숫자도 실제 수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에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전 세계 교회의 성도들에게 확대하며 그 숫자도 상징수로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19C 등장했던 극단적 보수주의 성경이해 사조로서, 성경과 교회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각 시대마다 다르며 구원의 방법들도 다르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교회를 유대인 교회와 이방 교회로 나누고, 세대를 무죄시대 양심시대 인류통치시대 약속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 왕국시대로 구분합니다. 개혁주의(改革主義, Reformism)는 16C에 일어난 프랑스 종교개혁자 칼빈(칼뱅)을 비롯한 기독교 개혁자들이 세운 사상으로서, 신학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신앙생활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경향을 가졌습니다.
①인침을 받은 대상은 이스라엘 12지파였습니다.
4절에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대상들은 이스라엘 12지파였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실제적으로 해석하여 유대인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증인(럿셀)이나 신천지(이만희) 집단 같은 이단(異端)단들에서는 자기들의 협회나 교단에 속한 신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은 언약백성에 대한 상징용어로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로마서2:28-29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라고 했고, 갈라디아서3:7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6:16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대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있는 모든 택한 백성에 대한 총칭입니다. 곧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구약시대 사람이든 신약시대 사람이든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받은 모든 성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영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님이 내주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거기에도 영적으로 12지파의 개념이 있습니다. 신앙의 성향에 있어서 구약의 12지파가 각기 다르고 신약의 12제자가 각각 다른 것처럼 오늘날도 각 교파와 교단과 교회와 성도도 신앙의 형태가 각기 다릅니다. 성경을 깨달은 부류대로, 신앙생활의 형태대로, 사역의 추구점대로 나누어져있습니다. 어떤 부류에 속하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형태가 달라도 모두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로서 영적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물론 외부적인 기독교회의 울타리 안에 있어도 단 지파가 빠진 것처럼 적그리스도적인 생활을 하는 자는 빠지게 될 것입니다.
②인침을 받은 자의 수는 144,000명이었습니다.
4절에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수(數)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각 지파마다 12,000명씩 해서 모두 144,000명이라고 했습니다. 이 숫자에 대해서도 세대주의자들은 실제수로 해석하여 유대인 가운데 구원받은 숫자라고 합니다. 이단 종파들은 자신들의 교파에 등록된 숫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수는 상징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된 다음해에서 광야에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각 지파대로 군대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계수했습니다. 계수한 결과 각 지파마다 수가 달랐고 그 수를 다 합쳐서 603,550명이었습니다 (민1:19-46). 그런데 본문에서는 12지파의 수가 모두 12,000명씩 같았고 전체 수가 144,000이었습니다. 이는 그 수가 상징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144,000명은 12×12,000으로서 선택받은 영적인 이스라엘의 총수에 대한 상징수인 것입니다. 곧 구원받은 자의 총수를 의미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구약사람이든 신약사람이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모든 택한 백성의 총수입니다 (Alford, Swete, Backwith, Vincent, Greijdauns, Lohmeyer, Ladd, Lohmeyer, Hendriksen). 요한계시록14:3에서는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습니다.
③인침을 받은 12지파는 구약성경과 다르게 기록되었습니다.
5-8절에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고 했습니다. 인침을 받은 12지파는 유다, 르우벤, 갓, 아셀, 납달리, 므낫세, 시므온, 레위, 잇사갈, 스블론, 요셉, 베냐민지파였습니다. 이는 구약에 나온 12지파와 다릅니다.
창세기49장(신33장)에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블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베냐민이었습니다. 창세기49:3-28에 나온 12족장과 요한계시록7:5-8에 나온 12지파 목록은 모두 12지파라는 점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단지파가 빠졌습니다. 단지파를 뺀 것은 우상숭배에 빠진 지파로서 적그리스도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창49:17, 삿18:18-19,30, 왕상12:29-30, 렘8:16-17). 둘째, 장자인 르우벤지파가 첫 번째에서 두 번째로 물러났습니다. 르우벤지파가 뒤로 밀린 것은 아비의 침상을 더럽히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창49:3-4, 대상5:1). 셋째, 시므온지파가 두 번째에서 일곱 번째로 물러나고 레위지파가 세 번째에서 여덟 번째로 물러났습니다. 시므온지파와 레위지파가 뒤로 밀친 것은 살인으로 가정을 위기에 빠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창35:25,30, 49:5-7). 넷째, 유다지파가 네 번째에서 첫 번째로 올랐습니다. 유다지파가 가장 앞 선 것은 언약적 관점이 있었기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신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창49:9-10, 대상5:2, 히7:13-14). 다섯째, 요셉지파가 2지파로 올랐습니다. 명단에 오른 12지파는 야곱의 12아들 지파들인데 야곱의 아들 요셉지파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아들 므낫세지파가 또 기록되었습니다. 단지파를 뺀 대신 요셉의 아들 므낫세지파를 넣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요셉지파는 2몫을 차지한 것입니다. 요셉지파가 2몫을 차지한 것은 육신적으로는 장자가 아니지만 장자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창47:1-12, 48:6, 49:22).
하나님 나라에서는 단지파처럼 외부적으로 기독교인일지라도 사탄 역할을 하는 자들은 아예 제외되고, 르우벤지파처럼 외부적으로는 장자축복을 받을 조건을 가졌어도 범죄한 자들은 밀려나게 되고, 레위지파처럼 직분을 가진 자라도 범죄한 무리는 밀려날 수 있습니다. 유다지파처럼 외부적으로 평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중심의 신앙생활을 한 자들은 앞서게 되고, 요셉지파처럼 축복이 보장된 위치에 있지 않을지라도 신앙적으로 신앙적인 장자역할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다 같은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유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로 내려오는 구원자(메시아,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그대로 믿고 언약적 계대를 이어 내려가는 정신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이 죽게 되었을 때 요셉을 살린 것을 보면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과 전체를 생각하는 성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에게 도시락을 가져갔을 때 형들이 요셉을 잡아 죽이려 하다가 구덩이에 빠뜨렸습니다. 형들이 그를 구덩이에 그대로 둔채로 돌아온다면 요셉은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 가운데 유다가 요셉을 살리기 위해 애굽으로 가는 상인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말자는 제의를 해서 요셉이 그들에게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37:26-27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가속 전체가 애굽에서 보호받아 창성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한 요셉을 살리므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큰 유익을 준 사람입니다. 유다뿐 아니라 유다의 계대에 참여한 4여인(다말, 라합, 룻, 밧세바)도 이방여인이거나 범죄한 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지 구원자의 계대에 참여하려는 신앙을 가지므로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마1:2-6).
또한 요셉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것을 이루는 것을 비전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섭리를 순종하므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가속을 애굽 고센 땅으로 인도하고 그들이 흉년 가운데서도 이민족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살게 했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제사장적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창성케 했습니다. 그의 그러한 신앙은 애굽에서 형들을 만나 고백한 말과 임종 시에 했던 유언에서 잘 나타납니다 (창45:4-5, 50:24-25). 창세기45:5-6에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고 했고, 창세기50:24-25에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는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인친 자로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삶의 계획과 실행과 비전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 기독교 3대 교파의 역사
기독교 3대 교파는 카톨릭(천주교), 정교회, 개신교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전도 사명을 부여받은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전도를 시작하여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세계 패권을 가진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까지 교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인정하는 공인을 했습니다. 330년에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지금의 이탈리아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트뤼키예 이스탄불)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380년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가 데살로니가 칙령으로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선언했습니다. 그로인해 로마와 로마제국 하에 있는 나라들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395년 로마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서로마의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방교회와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교회를 중심으로 동방교회 사이에도 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204년 4차 십자군전쟁 때 이슬람군대를 물리치러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것이 계기가 되어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서방교회는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여기고 베드로가 순교한 로마에 있는 로마교회가 적통이라 주장했습니다. 로마교회는 모든 교회 위에 있는 모든 교회의 머리되는 교회라 하면서 로마교회의 우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보편’이라는 의미를 가진 ‘카톨릭’(Catholic)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방교회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로마교회의 성상숭배를 우상숭배라 정죄하고, 수도가 콘스탄티노플에 있으니 수도가 있는 동방교회가 정통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정통’이라는 의미로 ‘정교회’(正敎會)라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정교회’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Osman Turk)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청동대포로 함락시켰습니다. 그로인해 동로마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교회가 그곳에 있지 못하고 러시아로 넘어갔습니다. 그것이 러시아정교회입니다. 오늘날 정교회는 그리스정교회도 있지만 러시아정교회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방교회인 로마카톨릭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부패해져 15-16세기에는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기까지 했습니다. 교회에서 면죄부(속죄표)를 만들어 그것을 사면 연옥에 가있는 조상이 천국으로 간다는 이론을 만들어 판 것입니다. 그로인해 점점 개혁의 열기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불씨를 당긴 사람이 독일의 마르틴 루터(M.Luther)였습니다. 루터는 로마카톨릭의 신부였습니다. 그는 1,517년 자신이 재직하던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정문에 로마카톨릭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므로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신득의(以信得義),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 성경의절대적권위(聖經絶對的權威)를 주장하면서 개혁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1,521년에 로마카톨릭에서 축출을 당했습니다. 그로인해 로마카톨릭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저항운동하는 자들이 세운 교회를 ‘항의하다’의 뜻을 가진 프로테스트(Protest)라는 말을 인용하여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개신교’(改新敎)입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으로부터 개혁한 교회들을 모두 프로테스탄트(개신교)라고 한 것입니다.
※ 개신교 8대 교파의 역사
개신교(Protestant, 改新敎)는 로마카톨릭에서 개혁한 교회들 말합니다. 개신교의 8대 교파는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하나님의 성회)라 할 수 있습니다.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자신이 재직하던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정문에 로마카톨릭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므로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신득구, 오직성경, 만인제사장을 주장하면서 개혁운동을 했습니다. 그 루터를 따르는 사람들이 세운교회를 ‘루터교’라고 합니다. 루터교는 교리적으로는 로마카톨릭에서 개혁을 했지만 의식에 있어서는 로마카톨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예전, 성례전, 예식순서 등의 전통적 의식은 중요시했습니다.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위스에서도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울리히 쯔윙글리(U.Zwingli)입니다. 쯔윙글리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1,51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로마카톨릭의 개혁에 대해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1,522년 67개 신조를 발표하면서 스위스 종교개혁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던 쯔윙글리가 취리히 시의 모든 부모는 자녀의 출생 후 8일 만에 모두 유아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이에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1,925년에 거부하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재세례파입니다. 그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했고 공동체생활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쯔윙글리가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했지만 개혁을 완수하지 못하고 47세에 카톨릭과의 전투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의 종교개혁을 존 칼빈(J.Calvin, 장 칼뱅)이 이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원래 프랑스 사람으로서 독실한 로마카톨릭 집안에서 자랐는데 루터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받아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다가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자 1,532년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가 거기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며 구원에 대한 예정론을 주장했습니다. 칼빈의 5대 강령은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 속죄(Limited Atomement), 불가항력적 은총(Irresitible Grace), 궁극적 구원(성도의 견인, Perseverance)이었습니다. 그가 또 주장한 것은 직업 소명설이었습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 동등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칼빈이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자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나라 사람들이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와 칼빈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 개혁운동을 했습니다. 영국 위에 있는 스코트랜드에서 존 낙스(J.Knox)가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가 칼빈의 영향을 받고 스코트랜드로 돌아와 ‘장로교’를 세웠습니다. 개혁주의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했고, 교회정치를 장로정치를 했습니다. 장로정치는 대의민주주의 방식으로서 서구 민주주의 제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코트랜드의 장로교는 이웃 나라 영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들 중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가 장로교를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존 위클리프(J.Wycliffe)가 독일의 루터보다 훨씬 먼저 로마카톨릭을 비판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보급하면서 개혁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개혁을 실현한 사람은 영국 국왕 헨리 8세(Henry VIII)였습니다. 당시에서 로마교황청에 있는 교황이 유럽 나라들의 국왕을 지배할 때였습니다. 영국의 국왕 헨리 8세가 왕비와 이혼하고 새장가를 들려 했는데 교황이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헨리 8세가 로마카톨릭과 결별을 선언하고 1,534년 영국의 왕은 영국 국가의 수장일 뿐 아니라 영국 교회의 수장이라는 수장령을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에서 독립한 영국 교회를 ‘성공회’라 했습니다. 영국 왕이 개혁을 주도한 국가교회라는 의미로 ‘국교회’라 하기도 했습니다. 성공회는 정치적으로 로마카톨릭으부터 독립했으나 교리적으로는 일부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로마카톨릭의 미신적인 요소들을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는 개신교와 흡사하지만 정치와 의식에 있어서는 로마카톨릭과 흡사했습니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가 로마카톨릭에서 완전히 개혁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 민중들은 더욱 철저한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가리켜 엄격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퓨리탄(Puritan) 곧 ‘청교도’(凊敎徒)라 불렀습니다. 그 청교도 가운데서도 성공회에 남아서 개혁을 하자는 비분리파가 있었고 성공회는 사탄의 뿌리이니 거기에서 나와 완전히 분리하여 개혁을 하자는 분리파가 있었습니다. 분리파는 성공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독립적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상회의 지재를 받지 않는 회중 중심의 개교회를 주장하며 회중 중심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회중교회입니다. 그 회중교회가 힘을 얻자 국교회(성공회)에서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일부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의 청교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리파 회중교회 일부가 네델란드에도 가게 되었는데 그들이 스위스 쯔윙글리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나타난 재세례파를 만나 ‘침례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가 침례교를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는 교정의 분리를 주장하고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침례를 강조하고 회중정치를 지향합니다. 회중정치는 상회의 지배를 받지 않는 개교회주의이며 회중의 권한을 중시하여 직분자들이라 해서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영국에서 18세기에 요한 웨슬레(J.Wesley)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성공회 신부의 15번째 아들이었는데 옥스퍼드대학에 다녔습니다. 그때 옥스퍼드대학에는 신앙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을 규칙주의라 해서 메소도스라고 했습니다. 웨슬레가 그 모임에 참여하면서 크게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체험을 강조하고 완전성화 가능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전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교파를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감리교’입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가 감리교를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경건생활과 성화를 강조했습니다. 교회정치는 감독제를 채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19세기에 영국에 윌리엄 부스(W.Bouth)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심했습니다. 그때 윌리엄 부스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는데 감리교 안에서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 목사직을 사임하고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1,865년 선교단체를 설립하고 가난한 자와 노동계층에 선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를 해서 그들이 회심을 해도 갈 교회가 없었습니다. 결국 구원하는 군대라는 의미로 ‘구세군’을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서 미국에서 감리교가 강조한 성결한 삶에 대한 강조가 약화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성결한 삶을 강조하는 성결운동이 있었습니다. 그 흐름이 일본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때 일본에 유학을 갔던 사람들이 그 흐름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와 ‘동양선교회’라는 선교단체를 설립하고 그 선교단체가 발전하여 ‘성결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결교는 한국의 자생교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감리교와 마찬가지로 신학에서 있어서 웨슬리의 주장을 따라 웨슬리의 성화운동을 근거로 완전성화론을 주장했습니다.
또 19세기에 미국에서 성결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 성결운동 중에서도 특별한 성령의 기적과 은사를 강조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세운 교파가 ‘오순절’입니다. 공식 명칭은 ‘하나님의 성회’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순복음’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세례를 중생 후 성화의 과정에서 받는다고 주장하고, 성령세례의 일차적 증거를 방언으로 주장하고, 은사 발전을 강조했습니다.
개신교의 교파는 8개 교파 외에도 그 외에도 여러 교파가 더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등의 여러 나라로부터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선교를 하므로 한국의 개신교 교파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한국 장로교 6대 교단의 역사
기독교 3대 교파는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 개신교는 로마카톨릭에서 개혁한 교회를 말합니다. 그 개신교 가운데 대표적으로 8개 교파가 있습니다. 개신교의 8대 교파는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하나님의 성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교파들 안에서 노선을 달리하여 총회를 조직한 단체를 교단이라 합니다. 한국의 장로교 안에 대표적인 6대 교단은 고신, 기장, 통합, 합동, 백석, 합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교단들은 교파가 같아도 교단은 다른 것입니다.
1,880년대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1,900년대 초에 각 교파별 총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장로교는 1,885년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된 언더우드(H.G.Underwood)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893년 미국 북장로교와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선교부 공의회’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모페트(S.H.Moffett: 마포삼열) 선교사가 사택에서 평양신학교를 개교했습니다. 그리고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이때는 노회가 하나 뿐이었으므로 독노회라(獨老會)라 했습니다. 당시 회장은 사무엘 모페트 선교사였습니다. 1,910년 독노회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축소한 12조 신조와 소요리문답을 수용하여 신경을 제정했습니다. 그것은 칼빈주의 신앙을 골자로 한 것이었습니다. 1,91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조직했습니다. 당시 회장은 언더우드 선교사였습니다. 당시 신학교는 평양신학교였습니다.
1,925년 일본 제국주의는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서울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세우고 각 주요 도시 읍 면 소재지 등에 신사를 건립하고 그곳에 참배를 하게 했습니다. 일본은 대륙침략을 강화하면서 국력과 국민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한국민을 신민화하면서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입니다. 신사(神社)는 일본인의 조상신 곧 국조신과 무사신 등을 모시는 사당이었습니다. 신사참배는 일본 천황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난 신(神)이라 하여 천황숭배가 이루어지면서부터는 천황에 대한 충성과 존경을 나타내는 종교행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1,931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북지역에서는 기독교 학교장 회의에서 신사참배를 정죄했습니다. 호남지방에서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를 중심으로 선교사 회의를 갖고 ‘신사참배는 우상이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영남지방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산하 경남노회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결의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기독교 학교들이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를 당했고, 평양신학교도 폐교되었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카톨릭(천주교)과 감리교와 성결교는 일제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가의식이라 하면서 신사참배를 허락했습니다. 일본은 장로교만 굴복시키면 된다는 생각에 장로교를 여러 형태로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렇게 일제 총독부의 압력에 의해 1,938년 2-3월에 열린 노회에서 23개의 노회 중 평북 순천노회를 필두로 17개의 노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했습니다. 그리하여 1,938년 9월 평양 서문밖교회 열린 27차 총회에서 193명의 총대가 참여했는데 일본 경찰 97명이 사이사이에 끼어 앉아 압력을 가하므로 신사참배를 가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총회장은 홍택기 목사였는데 신사참배에 대한 가(可)만 묻고 부(否는) 묻지 않고 가결시켰습니다. 그때 한부선(B.F.Hunt), 방이량(W.N.Blair) 목사는 사회자의 불법적인 진행에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가결 후 총회장 홍택기 목사와 부총회장 김길창 목사의 안내로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를 했습니다.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보수주의 신앙을 고백하던 선교사들이 떠났습니다. 보수주의 신학을 주도했던 박형룡 박사도 만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장로교 목회자와 성도들은 총회의 신사참배 가결에 저항하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했습니다. 평양의 주기철 목사, 평북의 이기선 목사, 평남의 이주원 전도사, 호남의 손양원 목사, 경남의 한상동 목사와 주남선 목사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여성 가운데서는 안이숙, 조수옥, 최덕지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된 사람이 해방될 때까지 2,000여명에 달했고, 순교당한 사람은 50여명에 달했고, 패쇠된 교회가 200여 교회에 달했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때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었던 목회자들과 성도들도 출옥하게 되었습니다. 이북의 노회 대표들이 모여 이북 5도 연합회를 조직하고, 이기선 목사를 대표로 교회 재건 운동을 펼쳤으나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남에서도 교회 재건 운동을 벌이면서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친일파가 장악하고 있던 교권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일제 때 부역했던 관료, 군인, 경찰, 재계 인사들을 재등용했습니다. 그래서 친일 세력들이 정권의 기반을 다쳤습니다. 교회도 그런 영향을 받아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자들이 교회 지도자로 나섰습니다. 그때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목사들이 회개를 부르짖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에서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신사참배자들의 회개와 근신을 촉구했습니다. 친일파 김창일과 일본 기독교단 총리를 지냈던 김관식은 신사참배를 합리화했고 회개를 촉구하던 자들을 교활하게 소외시켰습니다. 교권주의자들의 횡포에 실망한 한상동, 주남선, 손양원 목사 등은 청교도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세워 교회를 재건하려고 1,946년 부산에 고려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초대교장은 박형룡 박사였고 이후에는 박윤선 박사였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36차 총회에서 조선신학교(한신대학원 전신)과 총회신학교(총신대학원 전신)만 직영신학교로 인정하고, 고려신학교(고려신학대학원 전신)는 부결시켰습니다. 고려신학교측 인사들은 1,951년 법통노회(경남노회)를 조직하고 경남 지역(호주 선교부의 선교지역)을 중심으로 총회에서 분열했습니다. 그것이 1,952년 ‘고신’(고려파) 교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신 교단은 1,952년 신사참배 문제로 분열한 교단입니다. 그것이 장로교의 1차 분열이었습니다.
일제는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를 폐교시켰습니다. 그리고 채필근 목사의 제안으로 조선신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조선신학교에는 김재준 박사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학문적 연구에서 자유주의 신신학의 사조를 가진 역사적 비평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신화적 요소 등 인간의 오류를 제하고 남아있는 내용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재준 박사는 성경의 완전영감을 부인하고 사상영감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조선신학교 학생 51명이 총회에 김재준 신학의 문제에 대해 제소했습니다. 총회는 1,951년 조선신학교의 직영을 취소하고 1953년 김재준 박사를 정죄하여 면직시켰습니다. 김재준 박사는 총회의 치리에 반발하고 그들 따르는 자들이 총회를 이탈하여 함경도 지역(캐나다 선교부 선교지역)을 중심으로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을 조직했습니다. 기장 교단은 1,953년 조선신학교 신학적인 문제로 나뉘어진 교단입니다. 이것이 장로교 2차 분열입니다.
한편 1,959년 9월 24일 대전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44차 총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WCC 가입문제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우리말로 ‘세계교회협의회’입니다. 세계 모든 교회가 하나 되어야한다는 기치아래 만들어진 연합체입니다. 이른바 에큐메니컬운동(Ecumenical Movement)입니다. 당시 총회는 WCC에 가입해야한다는 측과 WCC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측이 있었습니다. 가입해야 한다는 측은 WCC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든 기독교가 하나 되어야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자들로서, 거기에 참여하여 시대적 조류를 파악해야 한다는 측이었습니다. 가입하면 안 된다는 측은 바른 진리를 고백하는 자들은 하나이지만 바른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과는 하나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로서, 거기에는 카톨릭교회와 공산국가교회가 참여해있고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절대 가입하면 안 된다는 측이었습니다. 격론이 계속되자 증경회장단의 제의로 11월 24일까지 정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가입해야한다는 측은 임원 불신임안을 제출한 후 서울 연동교회에서 속개하여 회의를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연동측이라 했습니다. 반면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측은 법대로 11월 24일에 서울 승동교회에서 모여 회의를 속개했습니다. 그래서 승동측이라 했습니다. 연동측은 다음해 2월에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세력의 일부와 통합을 하면서 통합 총회를 열었습니다. 그것이 ‘통합’ 교단이 된 것입니다. 승동측도 같은 해 9월에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고신측(고려파)과 합동할 것을 결의하고 12월 승동교회에서 합동총회를 열었습니다. 그것이 ‘합동’ 교단이 된 것입니다. 물론 승동측과 고신측은 승동측의 교권주의와 고신측의 신앙생리 차이로 하나 되는데 실패했습니다. 결국 통합은 WCC에 가입을 했고, 합동은 WCC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통합과 합동 교단은 1,960년 WCC에 가입 문제로 갈라진 교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장로교 3차 분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신'교단은 승동측(합동)에서 갈라진 교단입니다.
합동 교단은 교세가 많아지자 교권주의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교권주의자들은 세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지연에 호소했습니다. 결국 영남지방(평안도)을 중심으로 한 주류와 호남지방(황해도) 중심의 비주류가 형성되었습니다. 주류는 영남지방 목사들이었고 대표적인 인물은 이영수 목사였습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 대구와 경북 인사를 묶어 교단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지지세력을 심어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주류는 호남지방 목사들이었는데 대표적 인물은 정규오 목사였습니다. 비주류파는 1,979년 서울 사당동에 있는 총회신학교(총신대학원 전신)가 신정통주의로 변질되었고 자유주의자들처럼 문서설을 주장한다고 매도했습니다. 그래서 비주류파는 사당동에 있던 총회신학교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고 방배동에 총회신학교(백석대학교 전신)를 세웠습니다. 초대 교장은 박아론 박사였습니다. 결국 1,979년 합동에서 분리하여 교단 이름을 ‘합정’(합동정통, 백석 교단의 전신)이라고 했습니다. 합정(백석) 교단은 영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권주의에 반대하여 분립한 교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합정 교단의 서울 방배동에 있었던 총회신학교는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다수의 신학생을 모집했습니다. 이에 합동 교단의 사당동에 있었던 총회신학교도 이에 지지 않기 위해 이사회가 교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신학교 자체의 검정시험제도를 도입하여 신학교 시험에 응시한 학생은 자격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다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신학생 자격 문제로 시작된 총회신학교 이사회와 교수들 간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운영의 책임을 물어 이영수 목사와 학장 김희보 박사의 퇴진을 주장했습니다. 그때 이사회는 학생대표를 재적하도록 교수회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로인해 교수들은 교수직을 사퇴했습니다. 이에 박윤선 박사는 이사회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신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수원에 합동신학교(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전신)를 세웠습니다. 1,980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합동에서 이탈하여 ‘합신’ 교단을 세웠습니다. 합신 교단은 이사회에 휘둘리는 총회신학교 운영에 회의를 느끼고 세운 교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에 여러 교파들이 있고 장로교에 여러 교단들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6개 교단 외에도 작은 교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교단으로 나뉜 것은 대부분 교리적인 문제였고 일부는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각각 공과가 있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많이 나뉜 것은 그만큼 계속해서 개혁하려 했다는 의미입니다.
3. 인침을 받은 자들의 정체 (9-14절)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이 볼 때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 보좌 앞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해 찬양했습니다. 9-10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4절에서 하나님의 인(印)침을 받아 구원받은 144,000을 가리킵니다 (Beckwith, Morris, Eller). 천사들과 인간들이 볼 때는 그 수를 능히 셀 수 없기 때문에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흰 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하나님과 어린양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찬양했습니다. '흰 옷'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으로 말미암아 입혀 주신 의(稱義)를 말하고 (3:4) '종려 가지'는 승리와 기쁨을 표시합니다 (요12:13).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수 있는 어떤 이유나 근거나 조건이 전혀 없는 전적 부패한 자들을 사랑과 긍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통해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주신 것을 찬양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으로 대환난과 핍박자들로부터 구원해주신 것을 찬양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노력과 의지와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그 큰 구원을 얻은 것에 대해 하나님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던 모든 천사들도 이에 동의하고 화답했습니다. 11-12절에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아멘’(αμην)은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진실로’ 등의 뜻을 가진 단어의 음역인데, 앞에 '아멘'은 진실과 동의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뒤의 '아멘'은 확신과 성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을 도왔던 천사들도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고 그 내용을 들으면서 그 내용이 합당하다고 화답하는 것입니다 (히1:14).
①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9절).
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라고 했습니다.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이는 유대인이든 이방이든 전 세계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5:9, 13:7, 17:15). 이는 각 국가별, 인종별, 집단별, 언어별로 볼 때 세계 각처에서 나온 자들임을 말합니다.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은 외부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부색의 유무와 지식의 유무와 지위의 고저와 물질의 유무와 남녀노유를 무론하고 택함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성령님으로 인침을 받아 구원을 받게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6:38-39). 우리는 구원받은 수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정확히 아시고 그 중 한 영혼이 어느 위치 어느 환경에 있을지라도 찾아 복음을 믿게 하시는 분입니다. 셋째, 구원받은 자는 한 무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는 어떤 지역과 위치와 환경에 있더라도 모두 하나님의 구원받은 무리 곧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를 두고 모두가 한 성전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고전3:16, 엡2:21-22). 그리고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엡4:3). 우리는 교회의 일원이 누구이든 서로 한 지체라는 의식을 가져야합니다.
②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14절).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던 장로 중 하나가 요한에게 흰옷 입은 자들이 어디서 누구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13절). '흰 옷 입은 자들'은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며 '144,000'과 같은 무리를 말합니다. 요한은 당신이 아신다고 했습니다 (14절).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요한이 장로의 해석에 대한 신뢰를 표한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장로에게 ‘내 주여’라고 한 것은 신적 경배의 의미로 한 표현이 아니라 단순히 천상 존재에 대한 경외심으로 한 말입니다 (19:10, 22:8-9). 그때 장로는 14절에 보면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1-8절 내용을 보면 대환난 전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로서 종말에 있을 대환난을 겪은 자들입니다 (3:10, 단12:1, 막13:19, Charles, Walvood, Mounce). 그들이 인침을 받은 후 대환난을 통과하고 하늘에 오른 자들이기 때문에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 재림 전에 있는 대환난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성도라 해도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대환난(전반기 환난)은 받고 휴거합니다. 마태복음24:29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했고, 마태복음24:21에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했고, 요한계시록11:11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고, 다니엘12:11-12에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인 재앙(6장)과 7나팔 재앙(8-9장)은 경험하고 7대접 재앙(16장)은 경험하지 않습니다.
대환난 때에 받을 고난은 예수 믿는 믿음과 그의 말씀을 인하여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대환난을 겪기 전에도 부분적인 고난과 시련을 많이 겪게 됩니다. 사탄과 그에게 이용된 세상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미워하는 고로 그의 자녀된 성도를 핍박하게 되어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말씀은 상반되기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살려하면 고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디모데후서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환난과 고난이 결코 재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인내를 통해 연단되어 소망이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롬5:3-4). 고난을 통해 영이 거룩하게 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란만큼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게 됩니다 (벧전4:12-13). 그 원리를 아는 자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위해 고난을 자초했습니다. 믿음의 선진인 모세, 아브라함, 다니엘과 세 친구, 욥이 그러했습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골로새서1:24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정신입니다 (요16:33, 고후4:11).
③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14절).
14절에 보면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의롭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일서1:7에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에 모든 죄를 용서 받아 의롭게 됩니다 (赦罪, 稱義). 그리고 이미 법적으로 의롭게 된 자도 현재의 지은 죄를 회개하므로 더욱 의롭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갑니다 (聖化). 고난과 연단을 통해 진정한 회개와 인격성장이 있게 됩니다 (요13:10).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오는 고난 속에서도 날마다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죄를 회개하고 연단된 인격을 만들어 갈 때 더욱 희어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각 다른 처소와 위치와 환경에서 선택을 받아 구원받았습니다. 모두가 환난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를 위해 우리를 고난 가운데 훈련시키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고난이 올 때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느끼며 고난 가운데서 선한 목적을 이루어야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로 인하여 감격하고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4. 인침을 받은 자들의 복락 (15-17절)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인(印)침을 받은 144,000인은 구원받은 무리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9-14절). 본문 15절에서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라고 했습니다. ‘성전’(ναος)는 성소를 가리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여기에서 성전은 역사적으로 있었던 건축물 성전의 실재로서 하나님이 보좌에 계신 곳을 의미합니다 (21:22). 그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밤낮으로 예배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구원받은 자들은 그곳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①영원한 보호가 있습니다 (15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쳐주신다고 했습니다. 1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 위에 장막을 친다는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친다는 말은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21:3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라고 했습니다. 16절에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해’에 해당하는 ‘헤리오스’(ηλιος)는 태양(sun)을 가리킵니다. ‘뜨거운 기운’에 해당하는 원형 ‘카위마’(καυμα)는 (불타는 뜨거운) 열을 가리킵니다. 광야에서 한낮의 볕과 더위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줍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사탄과 악의 무리로부터 받은 핍박으로 인해 그와 같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특히 대환난을 거칠 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므로 완전하게 보호하시므로 안전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49:10에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②영원한 평안이 있습니다 (16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장막을 쳐 주시므로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16절에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원한 평안을 누릴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로마시대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산이나 굴에서 숨어 살았기에 제대로 먹지못하고 마시지 못했습니다. 종말에 대환난을 거치는 성도들도 굶주림과 배고픔 가운데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오른 그들에게 진정한 평안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 있을 때는 배고프고 목말랐습니다. 죽음, 질병, 사고, 가난 등으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핍박으로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평안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1:4에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③영원한 만족이 있습니다 (17절).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 예수님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17절 상반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원한 만족에 대한 상징입니다. 시편23:1-2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가 양 떼를 초장과 시냇가로 인도하여 풍성함과 만족함을 누리게 한 것처럼 주님께서 택한 백성을 영원한 만족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는 무엇이든지 흡족함이 없습니다. 결핍과 부족과 유한성으로 인해 항상 부족함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원한 만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④영원한 위로가 있습니다 (17절).
17절 하반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원한 위로에 대한 상징입니다. 이사야25:8에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의 인용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억울한 일들로 인해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영혼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눈물을 많이 흘려야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눈물 흘리는 원인을 완전히 제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눈물 흘림에 비교할 수 없는 상급으로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結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완전한 보호와 평안과 만족과 위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의 신앙생활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생활의 음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평안과 만족과 위로를 조금은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은혜는 받는 자만이 아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반복적으로 경험할 때에 더욱 깊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