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누가복음24:1-53

<題目>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序言>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오후 3시에 운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장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수차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일요일(주일) 새벽에 부활하였습니다. 본장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그 부활에 대해 보고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가 확신시켜 주시므로 믿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도록 명령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내용구조는 빈 무덤과 예수님의 부활(1-12), 엠마오로 가는 제자와의 만남(13-35), 열한 제자 및 함께한 자들에게 나타남(36-43), 최후 분부와 승천(44-53)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빈 무덤과 예수님의 부활 (1-12)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3).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인들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 장사할 때 그 무덤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안식일(금요일 6시 경부터 토요일 6시 경까지)을 지키고 안식일이 끝난 토요일 저녁에 향품을 구입해서 일요일 새벽에 무덤을 찾았습니다 (16:1-2). 여인들은 무덤에 가면서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심히 큰 돌을 누구 굴려줄 것인지 걱정을 하면서 갔습니다 (16:3-4).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고 있었던 돌은 심히 큰’(μεγας σφοδρα) 돌로서 폭이 약 2m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 큰 돌을 무덤 가져다가 입구를 안전하게 막도록 두었다면 다시 옮기는 데에는 장정들의 힘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여인들로서는 그 돌을 누구에게 옮겨달라고 해야 할지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무덤 입구가 이미 열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8:2-3에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시체σωμα’()라는 용어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자 두려워 근심했습니다. 그 때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댔습니다. 두 사람이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4-7).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 당황하여 근심했는데 그 때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습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은 천사를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마태복음28:2-3에서는 형상이 번개 같고 옷이 눈같이 흰 주의 천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 천사의 수에 대해 마태와 마가는 1사람으로 말하고 있는 반면 (28:2, 16:5) 누가와 요한은 2사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4, 20:12).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여튼 여인들은 갑작스런 천사들의 출현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 마태는 여인들이 놀라서 죽은 자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28:4).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어찌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느냐고 하면서 예수님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기억하라고 하면서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 이미 자신이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버림받아 죽게 되고 죽은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9:22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18:32-33에도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모든 것을 11사도와 모든 이에게 알렸습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였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렸습니다 (8-10). 여인들은 부활을 확인한 후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 11사도와 성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전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님이 처형된 직후에 죄책감으로 인해 목매어 자살을 했기 때문에 (27:3-5) 11제자만 남았고 여인들은 그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해해 들은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였고 그 외에 또 다른 여인들이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7귀신이 들렸다가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은 자입니다 (8:2).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로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던 자입니다 (8;3).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는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일 것입니다 (27:56).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1-12).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을 듣고 얼토당토 않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중에도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가 무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세마포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만 남아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는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요한복음20:3-8에는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고 했습니다.

 

  ※ 예수님 부활의 증거


  고린도전서15:3~4"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당신께서 살아생전에 예고한 대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7:14, 53:5-6, 10-12, 16:10, 16:21, 17:22-23, 9:9-10, 2:19-22, 3:18, 벧전2:24).

  만일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생애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과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로서의 행보였던 것이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동력과 근거와 표준이 되기 때문이며 우리가 사탄과 죄와 죽음과 모든 고통의 환경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5:20그러나 이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했습니다 (고전15:22, 51-52, 42-44, 살전4;16, 11:11). 고린도전서15:55-57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11:35-38, 고후4:8-9). 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5:30,32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했습니다. 만일 부활이 거짓 교리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인생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가사설(假死說), 착오설(着誤說), 도거설(盜去說), 허위설(虛僞說), 환상설(幻象說) 등을 주장하며 부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사설(假死說)은 예수님이 완전히 죽지 않았는데 장사를 지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이후에 로마 군병들이 안식일 전에 죽게 하려고 다리를 꺾으려 했으나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고 허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물화 피가 쏟아졌으며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체를 요구했을 때 빌라도가 백부장에게 물어 이미 죽은지 오래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시체를 내어 주었습니다 (15:44-45, 19:31-34). 착오설(着誤說)은 여인들이 새벽이라 예수님의 무덤을 바로 찾지 못하고 다른 빈 무덤을 들어갔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될 때 그 무덤에 있었으며 여인들은 여러 명이었습니다 (27:61, 15:47). 도거설(盜去說)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설입니다. 예수님 무덤 입구를 막아둔 돌은 매우 큰 돌이어서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누구에게 돌을 옮겨 달라고 할지 고민했으며 그 입구에는 군인들이 밤새 경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16:3, 28:11-15). 허위설(虛僞說)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 놓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이 잠든 사이에 제자들이 예수님 시체를 훔쳐갔다는 허위 사실은 대제사장들이 유포한 것입니다 (28:11-15). 환상설(幻象說)은 목격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부활 예언을 들었고 예수님이 부활할 것을 너무 고대한 나머지 환상을 보았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체를 목격한 사건은 12차례인데 그 중에는 대화를 한 사람도 있고 손과 허리를 만져본 사람도 있고 있으며 중복적으로 본 사람도 있고 대부분 여러 사람이 함께 보았고 심지어는 500명이 함께 본 때도 있었습니다 (20:26-28, 고전15:2-8).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①역사적 유적이 증명합니다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의 무덤으로 알려진 정원 무덤이 있습니다. 그 정원 무덤은 영국군의 한 장군이 고고학적 증명을 통해 발견했는데 현재 예수님의 무덤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입니다. 물론 그것이 진짜 예수님의 무덤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고고학적으로 그렇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참고해 볼 만합니다. 그 정원 무덤이 있는 절벽은 해골 형상의 바위가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을 히브리어로 골고다’(. 갈보리)로서 그 뜻은 해골이라고 했습니다 (27:33, 15:22, 19:17). 그곳을 골고다라고 부른 것은 그 언덕이 해골을 닮은 바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Bultman). 그 바위를 지나 정원 무덤에 가 보면 입구 왼쪽 위 바위벽에 초기 기독교인들의 표식인 앵크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무덤 입구에는 큰 원통형 돌이 있어서 그 돌을 굴려 입구를 막을 수도 있고 열 수도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구에 달아놓은 나무문에는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그는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아무것도 없고 텅 비어 있습니다.

  ②빈 무덤이 증거해 줍니다 (28:1-4, 23:1-3).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후 첫날(주일) 예수님 무덤을 보기 위해 예수님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그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돌 위에 앉았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은 혼절했습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를 너희가 찾는 줄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여인들이 향품을 발라주기 위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 갔을 때 무덤 입구를 막아 두었던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③천사들의 증언이 증거해 줍니다 (28:5-7, 24:4-8).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를 너희가 찾는 줄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시체가 없음으로 인하여 누가 훔쳐 간 줄 알고 근심하며 울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말하고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하면서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④예수님의 증언이 증거해 줍니다 (28:8-10, 20:11-18). 여인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무서움과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빨리 달음질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저희에게 나타나 '평안하뇨'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 발을 붙잡고 경배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여인들이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 시체를 다른 데로 옮겨 두었거든 그 곳을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야' 하니 마리아는 히브리말로 '랍오니여'(선생님이여)하며 만지려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했습니다.

  ⑤수의(壽衣)의 놓인 위치가 증거해 줍니다 (20:3-7, 20, 27). 베드로가 여인들에게 무덤이 비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무덤 속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 시체를 쌌던 세마포(수의)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같이 놓이지 않고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 '개켜 있더라'는 헬라어로 엔테튀리그메논(εντητυλιγμενον)으로서, 사용하기 전 상태처럼 둥그렇게 말린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세마포를 가지런히 개어 놓고 두건도 따로 개어 놓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⑥파수꾼들의 은폐 노력이 증거해 줍니다 (28:11-15).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 지낸 후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전에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습니다. 예수님을 빌라도 정권에 넘겨 십자가형을 내리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유대교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처형을 받기 전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예수님이 부활할 것을 두려워하여 경비병을 보내 무덤을 지키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고 땅이 흔들리고 무덤 입구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부활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이 무덤을 떠난 후 성으로 들어가 자기들을 보낸 대제사장들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의논하고 경비병들에게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잘 때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그 시체를 도둑질해 갔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받은 군병들이 대제사장들의 지시대로 말하긴 했으나 대제사장들이 많은 돈을 주며 거짓말을 지시했다는 내용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유대인들에게 다 퍼졌습니다 (28:11-15). 마태복음28:15에는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은 A.D.70년경에 기록되었으니 약 30~40년이 지난 후에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퍼져 다 알게 된 것입니다.

  ⑦부활체의 현현(顯現) 사건들이 증거해 줍니다 (고전15:2-8). 예수님은 부활한 후 40일 동안 12차례에 걸쳐 나타나 부활체를 보여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루살렘에서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엠마오로 가는 2 제자에게, 예루살렘에서 10사도에게 (도마 없을 때), 예루살렘에서 11사도에게 (도마 있을 때), 갈릴리 해변에서 7사도에게, 갈릴리 산에서 11사도에게, 갈릴리에서 500여 형제에게, 예루살렘에서 주의 동생 야고보에게, 감람산에서 승천할 때 사도들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보이셨습니다 (16:9, 28:9, 24:34, 16:12, 24:39, 20:26, 21:1, 28:16, 고전15:7, 16:19, 9:3-6). 여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체를 여럿이 함께 보기도 했고 중복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도 확인했습니다. 제자 가운데 도마는 그 못 자국과 창 자국을 직접 만져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20:27). 갈릴리에서 500여 명이 함께 본 때도 있었는데 바울은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15:6에는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고 증언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A.D.55년 경에 기록되었으니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때는 부활체를 목격한 때로부터 약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이므로 그 목격자들이 대다수가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확인해 볼 수 있다는 확증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격자들의 생활 변화가 증거해 줍니다 (24:52-53, 4:19-20, 9:19-21). 예수님의 부활체를 목격한 제자들은 삶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다 도망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심문받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모두 낙심하여 고향 갈릴리로 갔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지시도 있었지만). 그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체를 목격한 후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24:52-53, 7:5, 1:14, 4:19-20, 9:1-21).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4:19-20에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지 못하게 하는 공회원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로 결의하고 빌라도 정권에 넘겨 사형을 받아 죽게 한 산헤드린 공회에 붙잡혔을 때 한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모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내가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강제로 본 후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몽둥이로 맞고 십자가에 묶여 방치된 채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칼에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요한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가마솥형을 받았으나 살아난 후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후에 석방되어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의 복음을 전하다가 히에라볼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몽둥이로 맞은 다음 산채로 가죽을 벗김 당한 다음 십자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칼에 질려 죽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곤봉에 맞아 죽었습니다. 다대오는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포박당해 죽었습니다 (죽임 당한 방법은 정확히 모름). 시몬은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톱으로 사타구니부터 머리까지 두 동강 내는 형벌로 죽었습니다. 맛디아(가룟 유다 대신 뽑힌 사도)는 이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후에 사도가 된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일을 하다가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을 색출하러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 회개하고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참수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교회의 확장이 증거해 줍니다 (2:41-47, 4:33-37). 부활체를 목격한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입어 예수를 믿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정해준 규례를 생명 내놓고 지켰고 성전에 모여 기도를 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예전을 행했습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 신앙 공동체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2:41-47, 4:33-37). 그렇게 태동한 교회가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 퍼져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황제들의 박해, 종교개혁시대에 로마의 교황들, 영국의 여왕, 세계대전시대에 독일의 히틀러, 일본의 천황, 그 이후 소련의 히틀러, 중국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 등 수많은 적그리스도의 성격을 가진 권세자들이 교회를 잔해하고 성도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없어지지 않고 가장 많은 곳에 전파되어 가장 큰 종교가 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호텔에 성경책이 비치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영국의 사학자 토마스 아놀드(Thomas Anold)"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보다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이 인류 역사 가운데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한때 영국의 무신론 자였던 리틀스톤경과 길버트웨스트는 예수님의 부활과 바울의 변화를 반증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들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프랑크 모리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할 목적으로 '누가 돌을 움직였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읽다가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오히려 부활의 사실성을 철저히 변호하는 논리를 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의 근거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20~21"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여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15:51-52). 요한계시록11:11"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첫 열매'는 대표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곡식을 추수한 다음 첫 곡식단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 곡식단은 모든 수확물에 대한 대표성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이 범죄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다시 사시므로 인류가 살게 된 것입니다 (5:12). 또한 '첫 열매'의 대표성은 다음에 수확될 곡식도 동일한 곡식의 형태를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그를 믿는 성도들도 그와 같은 부활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곳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고전15:42-45).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삶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15:56-5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내세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오늘에 먹고 마시자 하면서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고전15:30-33). 아무 것도 이겨 나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는 다릅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나갑니다 (고전15:55-57). 히브리서11:35-38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죄의 욕망을 이겨 나갑니다 (7:24-25, 8:1-2). 또한 고난의 환경을 극복해 나갑니다. 또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을 보내어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오셔서 위로 하십니다 (요일2:1, 14:16-17). 요한복음14: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오늘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능히 이기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8: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2. 엠마오로 가는 제자와의 만남 (13-35).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 날에 제자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그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13-14). ‘그들 중 둘은 여인들로부터 증언을 들은 자들 가운데 두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11사도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9절의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에서 다른 모든 이에 포함된 사람들입니다. 그 두 사람은 22절과 24절에서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과 베드로와 요한에 대해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처럼 일정하게 제자 공동체 생활에 참여한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의 12제자에 속하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Emmaus)는 정확히 어느 장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루살렘 북서쪽 약 11km 지점에 위치한 엘 쿠베이베(El Kubeibeh), 예루살렘 서쪽 6.4km 지점에 있는 칼로니에(Kaloniyeh), 예루살렘 서쪽 14.4km 지점에 있는 아부고슈(Abu Ghosh) 중 한 곳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을 열심히 따랐던 자들로서 유월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갔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좌절과 침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면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 곧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빈 무덤 증언 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며 갈 때 예수님이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했는데 그들이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5-16). 두 사람이 지난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갈 때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 가까이 있어 예수님의 얼굴을 매우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옆에 다가와 같이 걷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예수님이 부활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혹시 여인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이 부활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라도 자기들 옆에 함께 걷는 자가 예수님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마가는 마가복음16:12에는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 모습과는 다른 형태였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본질적으로는 죽기 전과 같았을 것이나 보기에 조금 다른 형태를 띤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누가는 16절에서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무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의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부활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으면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9:22, 18:32-33).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길 가면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두 제자는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습니다 (17).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말을 걸었을 때 두 제자는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반응이 얼굴 표정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은 일로 인해 슬픔과 우울과 침울한 기분을 보였고 실의와 좌절에 빠진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두 제자 중 하나인 글로바라는 제자가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일이냐하니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18-24).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글로바였습니다. ‘글로바’(Cleopas)는 요한복음19:25에 언급된 마리아의 남편이라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Alford, Gilmour) 그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다른 제자는 유월절 행사에 참여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바의 아내나 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글로바는 예수님의 물음에 핀잔 섞인 어투로 같은 곳에 머물렀으면서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들처럼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행사에 참여하다 온 순례객인 줄 알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바로 가르쳐 주기 위해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글로바는 예수님에 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과 일에 권능이 있는 선지자라는 견해는 당시 보편적인 견해였습니다 (9:19).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전직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와 현직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입니다. 그들이 주범이었습니다. 관리는 로마 총독 빌라도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 제국의 식민지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여 다윗의 왕국을 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바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할 줄 알고 추종했고 그렇게 하기를 계속 기대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여 그 기대와 소망이 좌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사흘째라고 했습니다. 죽은 지 3일이나 지났으니 그 기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 중에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를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한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자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님은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인들과 두어 제자가 무덤을 보았으나 무덤은 비어있었고 시체는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증거를 접하면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9:22, 18:32-33)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25-27). 구약의 선지자들은 오실 구원자가 대속을 위해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실 것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시편에 오실 그리스도께서 친구에 의해 배반당할 것, 거짓 증인들에 의해 고발당할 것, 십자가에 못 박힐 것, 십자가상에서 일어날 일들, 뼈가 보존될 것 등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22:5-7,16,18, 27:12, 34:20, 35:11, 41:9, 55:12-14, 69:3,21, 109:2,4,25). 이사야에는 오실 그리스도께서 침 뱉음을 당할 것과 곤욕을 당하시나 입을 열지 않을 것과 강도들과 함께 못 박히실 것과 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과 고난에 관한 많은 일들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50:6, 53:3-12). 그 외에도 스가랴, 다니엘, 미가 등에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7:13,26, 9:26, 11:12-13, 12:7-8,10,13:7, 14:10,16,21). 예수님은 생전에 그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9:22, 18:31, 22:37). 예수님이 고난을 받아 대속의 죽음을 죽은 후 부활하므로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칭송받아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21:27, 2:5-11, 딤전3:16, 벧전1:11,21). 그래서 예수님은 두 제자가 구약의 말씀들을 이해하지 못하여 믿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고 구약 모세오경과 예언서들을 자세히 가르치면서 예수님이 고난 받아 죽어야 하는 사실에 대해 가르쳐 준 것입니다.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두 제자가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님은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을 강권하여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고 했고 그에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셨습니다 (28-29). 두 제자는 갈릴리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갈릴리였을 것이나 일차적으로 유하려 했던 곳은 엠마오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엠마오에 거의 도착하자 날이 저물어 저녁 때가 가까웠습니다. 두 제자는 엠마오에서 유숙을 하려 했는데 예수님은 계속 길을 더 가려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을 강하게 설득하여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엠마오에서 유숙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두 제자와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가 예수님인 줄 알아보았는데 그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제자는 서로 말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했습니다 (30-32). 일행은 엠마오에서 여관이나 민박 같은 숙소를 잡고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 때에 예수님이 축사하고 떡을 떼어 주었습니다. 두 제자는 들판에서 오병이어로 5,000명을 배불리 먹게 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9:10-17). 그 때서야 눈이 열려 떡을 떼어준 이가 예수님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걸어오면서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성경을 주해를 받아오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텐데 식사 때 축사를 들으면서 그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시각에서 사라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때에 두 제자는 길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겁게 감동되었던 기억을 이야기했습니다.

 

  두 제자는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가 보니 11제자와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고 말했습니다. 두 제자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님이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했습니다 (33-35). 두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때가 저녁 먹는 시간이라 어두워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제자들은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고 천사의 말을 들은 일,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확인하고 세마포만 놓인 것을 보고 온 일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제자가 도착하자 제자들이 그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고전15:5).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제자도 자신들이 길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구약 성경을 주해 받은 일과 저녁 식사 때 축사하며 떡을 떼어 주신 일과 예수님이 사라진 일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감격과 기쁨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11제자들과 함께 전심으로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위해 결단했을 것입니다 (1:4,8).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른 이유가 예수님이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왕이 되어 다윗 왕국을 건설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낙심하여 고향 갈릴리로 가기 위해 엠마오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들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가 깨닫게 하고 확신을 갖게 하고 사명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육신적인 목적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낙심하여 처음 생활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성령님으로 찾아와 성경을 깨닫게 하고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과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고 다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14:16-18).

 

 

       3. 열한 제자 및 함께한 자들에게 나타남 (36-43)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증언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36-37).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엠마오에서 돌아온 글로바 일행과 또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난 것입니다. 요한복음20:19에 보면 문을 꼭 닫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축복의 인사를 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은 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없는 유령 같은 존재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영(πνευμα) 대신에 유령(φαντασμα)이라는 단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38-41).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왜 의심하느냐고 하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혔던 손과 발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육체로 부활한 존재임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0:25-27). 예수님은 손과 발을 만져보게 하므로 자신이 육체를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보고 놀라워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20:20에는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20:27-28에는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놀랍게 여길 때 예수님은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했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아서 그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41-43). 예수님은 구운 생선을 잡수셨다고 했는데 어떤 사본에는 꿀 찍은 떡이라는 구절을 첨가했습니다 (Metzger). 예수님이 먹을 것을 잡수신 것은 유령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부활한 존재를 최종적으로 확인시킨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눈이나 손으로 확인을 해야만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믿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은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긴 것입니다. 그 부활의 능력은 종말에 우리로 부활하게 하는 동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부활의 능력은 현재의 삶에 적용되는 능력입니다. ‘죽음은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증후군들의 대표적 단어입니다. 질병과 가난과 곤고와 고통과 고난 등의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부활의 능력은 오늘날 성령님에 의해 전달됩니다. 우리가 그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진정한 신앙입니다.

 

 

       4. 최후 분부와 승천 (44-53)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44-45).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구약 율법서와 예언서와 시문서를 가리키는바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오실 구원자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예언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2:5-7,16,18, 27:12, 34:20, 35:11, 41:9, 55:12-14, 69:3,21, 109:2,4,25, 50:6, 53:3-12, 7:13,26, 9:26, 11:12-13, 12:7-8,10,13:7, 14:10,16,21). 예수님은 생전에 그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9:22, 31, 18:31-33, 22:37).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이 사건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서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46-47). 구약 성경에 오실 구원자가 고난 받아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 기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구원자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습니다 (2:3, 4:1-2). 이는 예루살렘에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시므로 예루살렘에서부터 구원 운동이 시작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48-49).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목격한 자들로서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해야 할 증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낼 것이니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15:26, 1:4-5, 2:1-5).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계획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대속 사역을 이루게 하고 예루살렘에 성령님이 임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목격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덧입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땅 끝까지 전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을 위해 제자들을 선택했고 가르쳤고 훈련시켰고 부활체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 구원역사의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예루살렘에 임하실 성령님의 인재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서 손을 들어 축복하시고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50-51). ‘베디니’(Bethany)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km거리에 있는 감람산 동쪽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베다니에서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해 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는 부활하신지 40일 후가 되는 때였고 (1:3), 지리적 위치는 감람산이었습니다 (1:12).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구름이 그 몸을 가리었고 주위에는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호위했습니다 (1:9-10). 마가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16:19). 예수님이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치에서 비하하셨다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승귀하셨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였음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2:6-11, 110:1).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52-53).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한 것은 예수님을 부활하신 구원자로 확신한 중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실망과 좌절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지만 (17, 20:19)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경험하면서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늘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늘 성전에 모여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예수님께서 분부한대로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린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가 요한의 다락방일 것입니다 (1:14). 그런데 누가가 성전이라고 한 것은 앞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했듯이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기독교 교회 공동체의 시작도 구약 제도의 연장으로 보려는 의도 때문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結言>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 택한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12차례에 걸쳐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전파를 명령하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믿는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약속을 믿고 그의 명령인 전도와 선교에 헌신해야 합니다 (28:19-20, 16: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