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요한계시록11:1-19

<題目> 두 증인의 예언


<序言>

  11장은 마지막 환난기에 교회가 맡은 사명과 교회가 당한 운명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성전 측량(1-2)과 두 증인의 사명(3-6)과 두 증인의 피살(7)과 두 증인의 주검(8-10)과 두 증인의 부활(11-13)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9장에서 이어지는 대접재앙의 예고(일곱 번째 나팔재앙)가 나왔습니다 (14-19). 11장은 본서 전체의 개요가 되는 부분이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면서도 가장 난해한 장이기도 합니다. 알포드(Alford)"이 장은 수수께끼 같으며 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것 중의 하나"라고 표현했듯이 문자적 해석과 상징의 해석 간에 충돌이 심한 난해 장 가운데 한 장입니다.

 

<本論>

       1. 하나님의 성전 척량 (1-2)

 

  10장에서 한 힘센 천사가 손에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등장했었습니다. 요한이 하늘에서 그 두루마리를 가지라는 음성을 듣고 그 힘센 천사에게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힘센 천사는 두루마리를 주면서 갖다 먹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백성에게 예언해야한다고 했습니다 (10:1-11). 이제 11장에서는 그 힘센 천사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습니다.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①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습니다.

 

  1절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요한에게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갈대'(καλαμος)는 건물을 재는 도구로서, 길고 곧은 장대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한 장대는 6(규빗)이었으므로 약 3m정도 되는 장대였습니다 (1규빗=45.6cm). 그런 갈대는 요단 계곡에 무성히 자라있었습니다 (11:7). 이 갈대는 하나님이 가지신 절대적인 기준에 대한 상징입니다.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을 하게 한 이유는 그곳과 그곳에 있는 자들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31:39-40, 2:1-5, Johnson, Hendriksen, Ladd). 그래서 마지막 때에 구원사역에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이른바 구약에서 말한 '남은 자' 곧 사명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측량의 대상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전''나오스'(ναος)로서 성소를 말합니다. ‘히에론’(ιερον)이라는 단어는 성소와 뜰(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전체의 성전(聖殿)을 말하고, '나오스'(ναος)는 그 성전 안에 있는 성소(聖所)를 말합니다. 이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로서 (40:34-35, 왕상8:10-11, 대하5:14), 교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9-21, 고전3:16, 6:19, 고후6:16, 2:21). 그리고 '제단'은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을 말합니다. 제단은 흔히 뜰(마당)에 있는 번제단도 있으나 본절의 제단은 성소와 함께 언급한 것으로 보아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분향단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자들이 기도를 하는 장소로서, 죽기까지 믿음과 말씀을 지키는 신앙을 가진 자들이 있는 장소의 암시라 할 수 있습니다 (6:9). 그리고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성소 안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구속을 통해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헌신적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7:9-10.14-15).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는 한마디로 말하면 참된 신앙 공동체와 참된 성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하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성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왕정시대에 바알과 아세라에 무릎 꿇지 않은 자들과 같고, 바벨론포로시대에 바벨론에서도 신앙을 지키다가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성을 중수한 자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른 바 '남은 자'에 속한 자들입니다 (12:17). 하나님은 그들을 종말에 특별히 사용하기 위해 환난 가운데서도 보호하고 연단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나 교회와 성도를 측량하십니다.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표준에 들어오는지 달아 보십니다 (5:25-28). 그리고 그 표준에 들어온 대상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표준 안에 들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해야 하며 예수님의 구속과 하나님 말씀을 중심해야 하며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장소에서 살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생활을 해야 합니다 (11:16, 29:12-13, 5:21-24, 4:24, 12:1). 그럴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출애굽기13: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고 했고, 신명기8: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29:5, 9:21). 시편121:4-8에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6:18에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②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절에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했습니다. 힘센 천사가 요한에게 하나님의 성전은 측량하되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성전 바깥마당'은 성소(ναος) 바깥마당으로서 이방인의 뜰을 말합니다. 당시 헤롯(예루살렘) 성전의 마당()은 크게 안마당과 바깥마당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성전 안마당에는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의 뜰, 남자의 뜰, 여자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바깥마당에는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이 두 마당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바깥마당인 이방인의 뜰에 있는 자가 성전 안마당에 있는 뜰로 넘어오면 죽임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Johnson). 본문에서 말하는 '성전 바깥마당'은 바로 이 이방인의 뜰을 말합니다. '성전 바깥마당'에 있는 자들은 이방인들로서 유대교에 들어온 자들을 말하는데, 이는 참된 교회와 참된 성도가 아닌 대상들을 상징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내주, 동행)가 없고, 믿음을 양보하고, 말씀을 지키지 않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는데 그것은 이방인에게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했습니다 (2). 성전 바깥마당과 그곳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환난 때에 이방인들에게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곧 이방인이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게 될 때 그들에게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불신자나 이교도나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11:18, 19:15, 20:3). 누가복음21:24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고 했습니다. '42'(42개월)7년 대환난중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으로서, 7년 대환난의 전반기를 가리킵니다 (3년반=42=1,260=3일반=3때반, 7:25, 12:7, 11:3, 12:6,14). 이는 하나님의 내정수로서 실제로는 얼마의 기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기간은 환난이 시작된 때로부터 적그리스도의 최후활동이 있기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9:24-27).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있을 환난 기간을 가르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숫염소에 관한 계시 환상이 나옵니다. 숫염소에게 4뿔이 있었는데 그 뿔 중에서 한 작은 뿔이 일어나 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8:10에 보면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다니엘8:11-12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 작은 뿔은 헬라(Greece) 제국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B.C.175-163)를 가리킵니다. 그는 애굽영토와 구 바벨론영토와 예루살렘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스룹바벨성전을 불태우고 매일 드리던 제사를 폐하고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들을 죽였고 성도들을 심히 박해했습니다. 또한 제우스신상을 세워놓고 제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그런 종교말살 정책이 B.C.171년에서 B.C.165년까지 약 6(2,300주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처럼 신약시대에도 예루살렘을 이방인이 짓밟았습니다. A.D.688년에는 사라센(Saracen) 제국의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이슬람성전을 건축했습니다. A.D.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중동전에서 4차례나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루살렘성전은 이슬람교도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이방인에게 짓밟힌 것입니다.

 

  그처럼 종말에도 교회와 성도가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21:24에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환난 때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불신자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점령하여 핍박할 것인데 그때에 속화된 교회와 타락한 성도들은 그들에게 짓밟혀 모욕을 당하도록 내버려둘 것입니다. 참된 교회와 참된 성도들은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성령님으로 강하게 붙들어 구원사역에 사용하시려고 친히 보호하지만, 그들은 보호하지 않고 내버려둘 것입니다.

 

  이 원리는 종말의 환난 때뿐 아니라 어느 때에나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이방인에 속한 삶을 살면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탄과 사탄에게 이용된 이방인들에게 붙들리고 맙니다. 마태복음5: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고 (21:18-19), 요한계시록3: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 안에 들어있는 언약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속화된 자들처럼 살지 말고 현재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간섭과 권고와 보호 속에서 살아야합니다.

 

 

       2. 두 증인의 사명 (3-6)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1장은 '두 증인'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 중에 3-6절은 두 증인의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두 증인'은 교회에 대한 상징입니다. 3절에 나오는 '두 증인'4절에 나오는 '두 감람나무''두 촛대'로 나와 있습니다. 3-4절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고 했습니다. '두 증인''두 감람나무''두 촛대'는 모두 한결같이 '교회'에 대한 상징 용어들입니다. '증인'은 교회의 사명이 강조된 용어이고 (1:6-8), '감람나무'는 교회의 본질이 강조된 이름이고 (11:17-25), '촛대'는 교회의 영광을 강조하는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1:12-20). 증인의 수가 둘인 것은 실제로 두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증거하는 내용의 신실성을 강조하려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증인의 수가 둘이라는 것은 그 증언의 진실성과 충분성을 나타냅니다 (17:6, 19:15, 8:17-18, 22:6).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사역을 위해 보냄 받은 사자(천사)도 둘인 경우가 많고,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도자들도 둘씩 보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19:1, 2:1, 6:7, 10:1, 7:19, 24:5, 1:10). 그래서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는 한마디로 말세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참된 교회들과 참된 성도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Bruce, Morris, Johnson, Minear, Hendriksen).

 

   ①두 증인이 1,260일 동안 예언을 합니다.

 

  두 증인은 1,260일 동안 예언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예언서들에서는 종말에 7년 대환난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7은 실제 숫자가 아니라 상징수로서 하나님이 내정하신 기간에 대한 만수입니다. 예언서들에서는 7년을 절반으로 나누어 전반기 3년 반과 후반기 3년 반으로 나누어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은 다양한데 3년 반 3년 반, 4242, 12601260, 3일반 3일반, 3때 반 3때 반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표현들은 상징수에 대한 문학적 변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언'(豫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습니다 (22:7,10,18). 그래서 예언을 한다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된 교회와 성도는 마지막 때에 말씀선포 사역에 전무할 것입니다. 참된 교회와 성도는 마지막 때에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절대적 사명으로 여기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케뤼그마적 과업이라고 합니다.

 

  해방신학자 칵스(Cox)'세속도시'(世俗都市)에서 교회의 3가지 과업을 케류그마적 과업과 디아코니아적 과업과 코이노니아적 과업이라고 했습니다. 케뤼그마(κηρυγμα)는 말씀 선포를,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는 봉사를,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는 교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케뤼그마적 과업을 설명하면서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부정에 대해 불평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정하고 타개하도록 권유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케뤼그마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케뤼그마적 사역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여 택함받은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며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게 하는 일입니다. 이는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역입니다. 이는 디아코니아사역과 코이노니아 사역보다 앞서는 사역입니다. 봉사와 교제의 사역은 말씀선포 사역이 전제되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Calvin)도 교회의 참된 표지를 말씀 선포와 성례 시행으로 말하면서 말씀 선포를 가장 강조했습니다 (말씀선포, 성례시행, 권징시행).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부여된 사명이 복음전파라고 했습니다 (1:8, 18:18-20). 교회와 성도의 절대적 사명은 말씀선포 곧 복음전파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참된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전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택한 백성들이 회개하며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게 할 것입니다.

 

   ②두 증인은 하나님께 권세를 받아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서 1,260일 동안 예언을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3절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교회와 성도가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 능력을 부여해주십니다 (10:1). 참된 교회와 성도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권세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5-6절에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 능력은 원수가 해하려 하면 입에서 불이 나와 소멸하는 능력이고,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고,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구약시대에 모세와 엘리야와 예레미야가 행했던 표적들입니다 (7:20, 왕상17:1, 왕하1:10, 5:14, 4:25, 5:17). 마지막 때에 쓰임 받는 참된 교회와 성도는 그들이 나타냈던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말씀선포라는 사역에 대적하여 방해하는 이들에 대해 선언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왕하2:23-24, 5:3-5). 하나님께서 그들이 전한 말씀을 권위 있게 하기 위해 그들이 말한 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16:19, 18:18). 하나님이 종말에 참된 교회와 성도를 그렇게 능력있게 붙들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③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합니다.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다고 했습니다. 3절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굵은 베옷'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입었던 옷으로서 탄식과 애곡과 겸비와 회개를 상징하는 옷으로서 (20:2, 13:4), 증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4:8이로 말미암아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했고, 마태복음11:21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증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다는 말은 예레미야와 바울의 심정으로 말씀을 전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예레미야20: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고 했고, 고린도전서9: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참된 교회와 성도가 가진 태도와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참된 교회와 성도를 참 선지자들의 심정을 가지고 사역을 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데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사역을 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범죄하고 자신들이 죽게 된 심정으로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사역을 한 세례 요한의 심정으로 감당할 것입니다 (4:5, 1:17).

 

  1절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사도요한에게 갈대를 주며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습니다. 성소와 분향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곳을 보존하고 그곳에 있는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사역이 있고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곳은 보존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죽기까지 지키는 신앙을 가진 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마지막 때에 구원역사에 강하게 사용하기 위해 환난 가운데서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교회와 성도를 보호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마지막 때에 구원사역에 사용하려는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도 사명이 있는 자들입니다. 베드로전서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고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한 것은 구원 사역에 대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위해 환난 가운데서도 지키실 것을 확신해야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사용하실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면서 준비해야합니다.

 

 

       3. 두 증인의 피살 (7)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11장은 '두 증인'에 대한 계시입니다. 두 증인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 동안 예언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3-6). 이는 마지막 때에 사명을 위해 부름받은 교회와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최종 활동이 있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두 증인''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두 증인의 죽음은 마지막 때에 교회가 위기에 처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①두 증인은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7절에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짐승'은 요한계시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 짐승은 13:1-1817:1-8에 나오는 짐승과 동일한 짐승입니다 (Morris, Mounce). 본문의 '짐승'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토 데리온'(το θηριον, the beast)입니다. 앞에 관사 ''(το)가 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된 '짐승'으로서, 사도 요한뿐 아니라 수신자들이 능히 알고 있는 '짐승'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니엘7:1-25에 보면 사자, , 표범, 괴물('괴물'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짐승이기 때문에 임의로 붙인 이름임) 4짐승이 나옵니다. 그 짐승은 당시 시제로 볼 때 미래에 일어날 제국과 왕이었습니다 (7:17,23). 곧 바벨론(Babylonia), 바사(Persia), 헬라(Greece), 로마(Rome)가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 중에 네 번째 나온 짐승은 1,260일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한다고 했습니다 (7:25). 그 네 번째 짐승은 10뿔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다른 작은 1뿔이 나와 3뿔을 뽑아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뿔은 여덟 번째 뿔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여덟 번째 뿔이 가장 강력한 뿔이었습니다 (7:7-8). 이는 로마제국이 적기독국가로서 모든 왕들이 기독교를 핍박할 것을 가리키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가장 심한 박해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로마제국의 왕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무수히 죽였는데 그중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가 가장 심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13:1-10에 보면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곧 '짐승'이 다니엘7:1-25에 나타난 '짐승'과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에서 예언된 내용이 일차적으로 예수님 초림 전후에 로마제국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곧 네 번째 나온 짐승은 궁극적으로 종말에 나올 적기독국가를, 여덟 번째 뿔은 적기독국가의 왕인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바로 두 증인이 1,260일 동안 예언사역을 하다가 그 사역을 마쳤을 때 그 적기독국가의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종말에 계속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해하려 하지만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해하지 못하다가 그 사명을 마친 다음에야 적극적으로 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세력이 교회와 성도를 해하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②짐승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짐승'이 나온 곳은 무저갱이었습니다. 7절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무저갱(無底坑, αβυσσος)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 '끝이 없는 갱(구멍)'을 말합니다 (bottomless pit -KJV, abyss NASB, NIV). 이곳은 사탄이나 마귀나 귀신 등 악령들의 임시 처소입니다 (8:31, 20:2-3, 10). '짐승'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왔다는 것은 짐승이 사탄의 처소에서 올라왔다는 말로서 짐승이 사탄의 사주를 받아 행동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13:2,4에는 ''이 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다고 했는데 12:9에는 그 용을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곧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사탄의 사주로 사탄으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아 교회와 성도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사탄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므로 누구도 그 세력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사탄의 주장을 받은 적기독국가와 그 왕들은 언제나 교회를 잔인하게 공격했는데, 종말에 일어날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더욱 잔인하게 공격할 것입니다. 로마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적인 죄를 뒤집어 씌워 불로 태워 죽이기도 하고, 짐승에게 찢겨 죽이기도 하고, 톱으로 켜서 죽이기도 하고, 태양에 말려 죽이기도 하고, 가죽을 벗겨 죽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공동묘지의 지하나 산의 굴에서 숨어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11:36-38). 그 이후 독일의 히틀러는 독가스로 유대인을 말살했고, 소련의 스탈린은 동유럽 기독교인들을 무참히 죽였고, 일본 천황은 조선의 기독교인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목사와 장로들을 무수히 잡아 전기의자에서 죽게 했고, 제암리에서는 교인들을 모두 예배당에 가두어 놓고 불태워 죽이기도 했습니다. 제암리 교회는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에 있는 교회로서 1,905년에 안종후라는 사람이 아펜젤러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11년 정식으로 설립한 교회입니다. 1,919년 제암리에서 가까운 발안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만세운동에 보복하기 위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제암리 교인들을 학살했습니다. 보병 11명과 순사 2명이 제암리로 가서 22명을 교회에 몰아넣은 후 출입문을 잠그고 총칼로 학살한 후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일제의 박해는 3.1운동 후에 심해졌는데 당시에 핍박이 얼마나 컸으면 대문에 '나 오늘부터 예수 안 믿소!'라고 써놓은 사람이 다 있었겠습니까. 6.25전쟁 당시 김일성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목회자와 교인들이 견디다 못해 남한으로 내려와 신학교를 세우고 교회들을 이루었습니다. 북한은 전쟁이후에도 계속 기독교인들을 숙청시켰습니다. 그것이 적기독국가들의 특징입니다.

 

  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더욱 큰 권세와 능력으로 핍박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핍박보다 더욱 강하고 잔인하고 광범위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교회와 성도가 패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공격이 너무 심하여 모든 신앙행위와 복음사역이 완전히 중단될 것입니다 (12:11). 사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라고들 합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난이 있을 때입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적그리스도의 가혹한 박해는 쇠퇴하거나 전멸의 위기를 맞게 합니다.

 

   ③두 증인이 공격을 받는 때는 증거를 마칠 때라고 했습니다.

 

  7절 상반절에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라고 했습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두 증인'과 전쟁을 하는 때는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입니다. 그때는 두 증인이 증거를 마칠 때, 예언사역을 마칠 때, 예언에 대한 사명이 끝날 때를 말합니다. 3절에 보면 두 증인이 예언을 하는 기간이 1,260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3년 반'에 해당하는 날로서 '7년 대환난'의 전반기를 말합니다. 그 기간은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증거하는 기간입니다.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을 촉구하는 기간입니다. 그때에 불택자들은 더욱 완고해지겠지만 택자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수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두 증인의 사명은 끝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그때를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될 때라고 했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다 찬 때라고 했고, 이방인의 때가 찰 때라고 했습니다 (24:14, 11:25, 21:24). 곧 두 증인이 사명을 다한 때입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두 증인'을 죽이는 때는 1,260일에 해당하는 전반기 환난이 끝날 무렵부터 30일 동안입니다. 두 증인이 사명을 감당할 때는 1,260일입니다 (3). 그런데 다니엘12:11에서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고 했습니다. 1,290일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1,290일은 1,260일로부터 30일 동안의 기간으로서 이 기간은 종교활동에 대한 금령기간입니다. 그 기간에 적그리스도 세력의 적극적인 박해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니엘도 이 기간에 기도를 하다가 사자굴에 들어갔습니다 (6:7).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30일은 적그리스도의 공격이 가장 심할 때입니다. 물론 그 기간은 하나님의 내정수로서 실제로는 알 수 없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두 증인이 '증거를 마칠 때'에 박해가 있다는 것은 반대로 두 증인이 증거를 마치기 전까지는 전면적인 박해가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사탄이 교회와 성도를 해할 권세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통해 끊임없이 방해하겠지만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를 통해 이루시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결코 넘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레미야에게 함께 하여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였던 것처럼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는 모든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지속적으로 깊이 하다보면 갈등이 있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신앙의 공동체와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순수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생각지 못했던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갈수록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신앙환경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사탄이 쉴 새 없이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론 위기감을 느낄 만한 공격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 하는 목적이 다 이루어지기까지는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치 말고 사명을 감당해야합니다.

 

 

       4. 두 증인의 주검 (8-10)

 

  11장은 '두 증인'에 대한 계시입니다.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3-7). '두 증인'은 참된 교회나 성도들에 대한 상징이고, '짐승'은 적기독국가에 대한 상징입니다 (7:17, 23). 그런데 '두 증인'의 죽음은 땅에 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됩니다 (10). 이는 마지막 때에 교회가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울러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입니다.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①두 증인의 시체는 큰 성 길에 방치되어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8절에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했습니다. 두 증인이 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 시체가 큰 성 길에 버려져 있다고 했습니다. '큰 성()'은 바벨론을 지칭하는 말로서 (16:19, 17:18, 18:2,10,16,18-19,21) 로마를 가리킵니다. 이는 사악한 세상에 대한 총칭으로 사용된 상징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길에 있으리니는 넓은 거리 위에 있다는 말로서 두 증인이 짐승에게 패하여 멸망한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시체가 길 위에 버려져 있는 것은 그 죽음이 비참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인들의 관념에 의하면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6:3). 그래서 마지막 때에 두 증인이 짐승의 공격으로 죽어 그 시체가 큰 성 바벨론 거리에 있게 된다는 것은 참된 교회와 성도가 적그리스도의 공격으로 멸망하게 되어 그 흔적들이 비참하게 방치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한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은 (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 -Phillips) 그곳을 소돔이나 애굽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소돔'은 죄악이 관영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곳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19:4-11, 벧후2:6-7). '애굽'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고역을 시키고 학대한 곳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1:8-16). 그리고 그곳은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바 그곳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곳입니다. 소돔과 애굽과 예루살렘은 적그리스도의 제국인 바벨론의 영적 성격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곳으로서, 그 공통점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대적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적기독국가의 왕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없어지고 그 남겨진 흔적들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대적하는 세상에서 구경거리와 모욕거리가 될 것입니다.

 

   ②두 증인의 시체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9절에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두 증인이 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되고 시체가 큰 성 길에 널 부러져 있게 되자 모든 사람들이 3일 반 동안을 보며 그 시체를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3일 반 동안'7년 대환난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3년 반(42, 1260)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보는 것 보다는 매우 짧은 일정한 기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Ladd, Mounce, Hendriksen). 7년 대환난 기간 중 전반기 3년 반은 교회가 적그리스도에게 핍박을 받는 기간이지만 여기에서 '3일 반'은 교회가 죽은 후에 시체가 거리에 방치된 기간으로서 두 기간이 동일시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짐승을 따른 온 세상 사람들이 큰 성 길에 있는 두 증인의 시체를 장사하지 못하게 한 것은 짐승의 승리와 두 증인의 죽음을 만끽하기 위함이며 두 증인에게 더욱 모욕을 가하기 위함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사람을 죽인 후 장사하지 못하게 하고 시체를 방치하는 것은 최대의 모욕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전쟁에서 시체나 해골을 걸어두는 것은 승리의 힘을 과시하고 원수를 모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죽어서 생명력을 완전히 상실해 있을 때에도 외부적 형태는 그대로 두기를 원합니다. 복음사역을 전혀 하지 못할 때에도 종교적 형태를 보존시키려 합니다. 그것은 비방과 모욕으로 만족하려는 의도입니다. 마치 바벨론의 벨사살왕이 전리품으로 노략한 성전그릇들로 잔치 날 술을 마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입니다.

 

   ③땅에 거하는 자들이 두 증인의 죽음을 인해 자축한다고 했습니다.

 

  10절에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두 증인이 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되어 그 시체가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게 되자 땅에 사는 자들이 즐거워하며 서로 예물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두 선지자'는 앞에서 언급한 두 증인과 동일한 대상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땅에 사는 자들은 하나님과 두 증인을 적대하는 불신세력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괴롭게 하는 고로는 두 증인의 선지자적 사역 때문에 불신세력이 받는 양심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모세는 애굽왕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선포는 애굽의 바로왕과 권세자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엘리야도 북이스라엘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과 바알선지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선포 역시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언제나 참된 교회와 성도들의 충성스러운 복음선포 사역은 하나님과 그들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에 양심을 괴롭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사(Persia)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적개심을 갖고 모르드개와 바사의 127도에 있는 전 유대인을 죽이려는 계략을 베푼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수산궁의 유대인들이 금식기도를 하므로 오히려 하만이 처형을 당하고 아말렉 족속을 도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유대인이 서로 예물을 주며 즐거워했습니다 (9:19). 그리고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을 제정했습니다. 본문에는 그 반대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던 두 증인이 죽게 되자 짐승을 따른 모든 땅의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예물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승리의 축제를 벌인다는 말로서 그들이 얼마나 두 증인에 대해 증오와 분노와 적대감을 가졌는지 알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이렇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기뻐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게 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싫어한 이유는 두 증인이 자기들을 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은 3년 반(42, 1260)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했습니다 (3). 두 증인이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그들은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증인을 대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증인에게 권세가 있어서 그들이 하는 선언이 그들을 죽게 할 정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5). 그래서 함부로 대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두 증인이 싫었겠지만 두 증인에게 나타난 능력 때문에 어떻게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두 증인이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자 즐거워하다 못해 축제를 벌인 것입니다. 종말에 교회는 생명 내놓고 복음사역을 할 것입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미워하여 대적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더욱 힘있게 나가므로 어떤 해를 가하려 하나 소용이 없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마지막에 교회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의해 생명력을 완전히 잃게 될 때에는 안티크리스챤들이 모두 잔치를 벌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된 교회와 성도를 싫어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실패하고 망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교회가 망하게 되면 기뻐합니다. 서로 확인하고 모욕하면서 즐거워합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는 목회자나 성도가 망하기를 바라다가 망하게 되면 말로 다할 수 없이 기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토록 우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길 것은 아닙니다. 요한일서3: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5: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고 그의 말씀이 있는 교회를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실현되는 몸된 교회를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산 사랑의 대상자인 성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5: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들에게 속하지 않은 이질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과 가치관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래서 동질의식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세상의 죄를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3: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죄를 지적합니다 (2:7, 딤후4:2). 그로 인하여 자신들의 옳지 못함이 드러나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싫어합니다. 반드시 메시지 선포 때문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모습에서 자신들의 불의가 드러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영적 생명력을 잃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생명력을 잃지 않으면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마치 애굽이 번성하는 이스라엘을 두려워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합니다. 영원한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경건한 생활 하는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두 증인이 죽어서 모욕거리가 되는 기간은 '사흘 반'(3일 반)입니다. 그 기간은 상징수로서 분명히 그 기간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분명히 정해져있는 기간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기간이 그리 긴 기간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교회가 당할 위기와 모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현재에 당하는 모든 실패와 그로 인한 멸시도 잠깐이라는, 반드시 회복될 때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겨나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방해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해야합니다.

 

 

       5. 두 증인의 부활 (11-13)

 

  11장은 '두 증인'에 대한 계시입니다.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3일 반 동안 장사되지 못한 채 모욕을 당했습니다 (3-10). 그런데 '두 증인'3일 반 후에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두 증인의 부활은 하나님의 교회에 큰 소망이 되게 하는 장면입니다. '두 증인' 은 교회와 성도의 상징이고, '짐승'은 적기독 국가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7:17,23).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①두 증인이 3일 반 후에 부활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11-12절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는 문맥상 본장 전체가 천사의 전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하나님의 대리자인 한 천사의 음성일 것입니다 (Kraft). 하늘에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이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아 일어난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에스겔 37장의 반영입니다. '두 증인'3일 반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아서 일어나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두 증인''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여 3일 반 동안 장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가 3일 반 후에 부활하여 승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휴거(携擧: 이끌 휴, 들 거)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증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생기가 속에 들어가 발로 일어선다고 했는데 '생기'는 문자적으로 '생명의 영'입니다 (πνευμα ζωης -GTS). 영역본들에서는 '생명의 성령' '생명의 호흡'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the Spirit of life -KJV, the breath of life NASB, RSV, NIV). 아마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로 살아나게 하신 것을 말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두 증인이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올라간다고 했는데 '구름'은 실제 구름을 타고 올라간다는 말이 아니라 올라갈 때 구름이 가린 상태를 표현한 말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1:9-11). 구름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와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16:10, 19:9,16, 24:15,16, 34:5, 16:2, 10:12, 11:25, 16:42).

 

  그리고 두 증인이 3일 반 후에 생기를 받아 부활했다고 했는데 '3일 반 후'는 두 증인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후 방치되어 있는 기간입니다. 9절에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종말에 교회(성도)가 적그리스도의 박해로 죽게 되고 그 시체가 모욕을 당하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예수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가운데 재림하게 되고 그 때에 모든 죽은 성도가 부활하여 들림 받게 되고 살아있는 성도도 변화되어 들림 받아 예수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살전4:14-18). 고린도전서15:51-52"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엔 들림 받는 자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자도 있을 것입니다 (24:40-41).

 

  교회(성도)가 부활하고 휴거한 때는 문자적으로 보면 7년 대환난 중 전반기 환난 기간인 3년 반 이후입니다. 7년 대환난의 절반인 3년 반은 42달이며 1,260일입니다. 전반기 1,260일에서 지난 30일 기간에는 가장 극심한 환난이 있고, 그때로부터 45일 동안은 포기한 상태이고, 그 다음에 성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다니엘12:11-12"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1,290)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1,335)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전반기 1,260일 기간에는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7인 재앙과 8-9장에 나오는 7나팔 재앙이 있습니다. 그리고 30일 기간에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극한 환난이 있고, 45일 기간에는 두 증인이 피살되어 방치되어 있는 것처럼 체념한 기간입니다. 그리고 나서 성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주의 재림과 죽은 성도와 살아있는 성도의 부활과 휴거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나온 숫자는 모두 실재 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내정수에 속한 수들로서 실제로는 그 기간을 알 수는 없습니다.

 

  7년 대환난 가운데 전반기 환난 지나서 주의 재림과 죽은 성도의 부활 그리고 살아있는 성도의 휴거 사실은 여러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성도가 환난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患難後携擧說). 어떤 이들은 성도가 대환난을 경험하지 않고 휴거한다고 주장합니다 (患難前携擧說). 그 근거는 6장에서부터 환난이 계시되어 있는데 4:1에서 벌써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4:1에는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를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종말에 성도들을 휴거시키는 장면이 아니고, 사도 요한에게 종말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기 위해 사도 요한을 초대하는 내용입니다 (40:1-2). 성도의 휴거에 대한 내용은 본문 11:11-12의 내용입니다. 벌써 6장의 7인 재앙과 8-9장의 7나팔 재앙을 성도들도 경험을 하고, 11장에서 휴거를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다니엘12:11-12에서도 7년 대환난의 전반기 환난 기간인 3년 반 곧 1,260을 지나야 하는 것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종말에 환난을 당해야 할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4:13,22,29-30에 보면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고,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했고,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2:3에서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고 했는데 이는 적그리스도와 거짓그리스도가 출현하여 박해가 있은 후에야 주께서 오실 것임을 시사하는 내용입니다. 본서의 구조상으로 보아도 6장의 7인 재앙과 8-9장의 7나팔 재앙 다음에 11장에서 성도의 휴가가 있고 16장에서 7대접 재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가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은 경험한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가 환난을 경험하게 하신 이유는 교회와 성도를 연단시켜 더욱 정결케 하고 능력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7인 재앙''7나팔 재앙'은 하나님이 심판할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불신자들의 심판 근거를 마련하고, 참 성도와 거짓성도를 나누고, 참 성도를 연단시키기 위한 재앙입니다.

 

  둘째, 성도가 환난을 다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환난을 면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12:11-12에서도 7년 대환난의 전반기 환난에서 30, 45일 지나서 주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가 있을 것을 암시했습니다. 그러므로 후반기에 있을 환난은 경험하지 않는다고 보아야합니다. 마태복음24:21-22"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본서의 구조로 보아도 휴거 내용이 11장에 나왔으니 6장의 7인 재앙과 8-9장의 7나팔 재앙은 경험하지만 16장에 나오는 7대접 재앙은 경험하지 않습니다. 7대접 재앙은 불신자를 심판하기 위한 재앙이므로 긍휼이 없는 전면적인 재앙으로서 창세 이후로 전무후무한 재앙이며 육체의 생명을 가진 자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이 재앙을 면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심판은 받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고전10:13).

 

  셋째, 성도는 궁극적으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교회(성도)가 죽어있는 상태 그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본서에서 두 증인이 짐승에게 피살되지만 며칠 후에 하나님이 다시 살려 휴거시킨 것처럼 다시 살리십니다. 본문의 모티브(motive)인 에스겔 37장에서 에스겔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일제히 살게 한 것처럼 다시 살리십니다. 교회와 성도가 환난과 고난을 당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반드시 살리십니다. 정한 기간이 지나면 부활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역사의 한 부분에 있는 교회도 환난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의 역사로 다시 일어나곤 합니다. 개인도 때로는 죽은 것처럼 무력해있는 기간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연단을 목적으로 허락한 환난기간이 끝나면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②두 증인의 부활로 사람들이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두 증인이 부활하고 휴거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구경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원수들도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12절에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고 했습니다.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은 일부만 목격할 수 있는 은밀하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핍박하던 자들도 목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게 됩니다. 11절에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두 증인의 죽음을 축하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런데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나는 광경과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보고 그들이 참 선지자인 것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두 증인의 휴거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증거가 됩니다.

 

  마태복음27:50-54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해가 어두워지고 지진이 나고 예루살렘 근처의 무덤이 열리고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보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백부장과 예수님 무덤을 지키던 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 되어진 일들을 보고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불신사회는 기독교를 윤리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많은 멸시와 모욕을 합니다. 하지만 종말에 교회가 부활하고 휴거하는 것을 볼 때 모든 핍박자들도 교회가 갖는 권위에 두려워할 것입니다. 어느 때에나 교회가 신앙이 죽은 것 같다가도 말씀을 순종하여 다시 회복되면 교회를 멸시하고 조롱하던 자들도 교회를 두려워하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가질 때 교회의 무력한 모습을 보면서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근거로 여겼던 자들도 교회가 가진 복음과 교회가 높이는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것은 생명력을 상실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려면 생명력을 가져야합니다. 죄에 대해 두려워하고 말씀을 철저히 지키고 복음 전하는 사명을 생명 내놓고 감당해야합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③두 증인의 부활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두 증인이 부활할 때 큰 지진이 있어 성 십분의 일이 파괴되고 7,000명이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13절에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고 했습니다. ‘칠천’(7,000)은 많은 수에 대한 상징표현으로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일부를 표현한 것입니다. 두 증인이 부활할 때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 원수들은 그 광경을 보고 큰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숨는 자들도 생기게 됩니다. 누가복음23:30"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 광경들을 보는 사람 가운데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도 생기게 됩니다.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표현은 두려워하여 피상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일 수도 있으나, 16장에 나오는 7대접 재앙에서 네 번째 재앙이 내릴 때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보아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Ladd, Johnson, Morris, Mounce). 16:8-9"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교회의 부활은 그 광경을 보는 자들로 하여금 후회하고 회개하며 돌이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상황을 연출할 것입니다. 역사속의 교회도 생명력을 가질 때에 믿지 않는 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사실 복음의 권위는 외부적 선교와 전도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 확신과 부흥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할 때에 사람들이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사탄의 역사와 그에게 이용되는 환경은 우리로 더욱 좌절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지라도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땐 모든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고 영적 생명력을 유지해 가야합니다. 사탄과 세상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6. 대접 재앙의 예고 (14-19)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1-13절은 '두 증인'에 대한 계시를 통해 종말에 있을 교회의 역할과 운명과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14-19절은 일곱 번째 나팔 재앙에 대한 언급입니다. 7나팔 재앙 중 첫 번째 나팔 재앙에서 여섯 번째 재앙은 8:3~9:21까지 나왔었습니다. 본문은 일곱 번째 나팔 재앙에 관한 언급입니다. 14절에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첫째 화는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이었고, 둘째 화는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이었고, 셋째 화는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을 말합니다 (8:13, 9:12, 11:14). 본문은 셋째 화인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을 서곡 차원에서 예고하는 부분입니다.

 

  요한계시록에 큰 재앙 3가지는 인 재앙(6)과 나팔 재앙(8-9)과 대접 재앙(16)입니다. ''()은 계시가 강조된 용어이고, '나팔'은 경고가 강조된 용어이고, '대접'은 심판이 강조된 용어입니다. 그런데 3가지 재앙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원리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일곱 번째 인 재앙은 나팔 재앙을 부르고,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은 대접 재앙을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곧 일곱 번째인 재앙 안에 나팔 재앙이 들어 있고, 일곱 번째 나팔 재앙 안에 대접 재앙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은 대접 재앙과 같은 내용으로서 16장에 자세히 나타납니다. 본문은 단지 그 재앙을 예고하는 차원에서만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오히려 재앙 자체보다는 재앙의 주체와 목적에 더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①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15절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렸는데 그 내용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였습니다. 이 음성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라는 표현을 보아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음성은 아닙니다. 또한 16절부터 24장로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24장로들의 음성 아닙니다. 그렇다면 4-5장의 하늘보좌를 연상해 볼 때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이나 다른 천사들의 음성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하늘의 천군천사의 음성으로 봅니다 (Morris, Mounce).

 

  그 음성의 내용은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가 영원히 왕 노릇 한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의 내용은 16장에 나오는 대접 재앙입니다. 대접 재앙은 성도의 연단을 위한 재앙 수준이 아니고, 세상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재앙입니다.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 후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성도의 휴거가 있고, 그 다음에 이 세상에는 불택자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7대접 재앙이 내립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불자 이 세상이 7대접 재앙으로 완전히 멸망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고 한 선포한 것입니다. 이는 전천년설 입장에서 보면 지상에 이루어질 천년왕국의 도래를 의미한 것일 것이고 무천년설 입장에서 본다면 영원무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때에는 사탄과 죄와 적그리스도와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지 못합니다 (20:1-3). 그 나라는 죽음도 고통도 슬픔도 미움도 없습니다 (21:1-4).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2:4, 11:6-9). 피조물도 그 나라를 고대하고 우리의 몸도 그 나라를 고대합니다 (8:21-23).

 

  로마서8:18-23"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 심지어 우리의 육체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회복되기를 고대합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뿐 아니라 우리 육체까지도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고 헛된 것에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도 죄의 영향력(오염) 아래 있고 우리 육체도 죄성이 지배하여 죄의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성을 행하길 원하나 항상 죄를 짓는 것, 그 체계화된 원리 안에 갇혀 있어서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7:15-24). 그래서 그 체계화된 죄성의 원리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소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곧 우리가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길 고대하는 것입니다 (11:16, 21:3-4). 이는 전천년설 입장입니다. 무천년설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죄성과 더불어 피 흘리는 영적 싸움을 한 만큼 탄식이 크고 재림을 고대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죄성과 더불어 영적 싸움을 하지 않는 자는 그만큼 마음이 편하겠지만 탄식도 없고 성장도 없고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죄성과 더불어 영적 싸움을 하는 만큼 성화(聖化)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성화)이 이루어지고 영이 자라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2:12, 벧후3:18, 4:13). 그 성화를 이룬 만큼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과 영광과 존귀가 있게 됩니다. 바울은 평생 그 영적 싸움을 하고 세상을 마감하기 직전에 그 상을 기대했습니다 (딤후4:7-8). 그 영적 싸움을 하느라고 고난당한 것에 비하면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8:18).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7인 재앙과 7나팔 재앙이 있을지라도 7대접 재앙을 안 받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죄성과 더불어 싸워 연단된 신앙인격을 가지는 계기로 삼아야합니다. 아무리 인생이 살기가 힘들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기다리되, 부지런히 죄와 더불어 싸워야합니다. 결과적으로 항상 죄성에 지겠지만 그 싸움으로 인하여 점점 거룩해지고 정결케 되고 연단되고 성숙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소망 가운데 인내로 선한 싸움을 싸워가야 합니다.

 

   ②이십사 장로들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리스도가 왕 노릇하게 되었다고 선포했다고 했습니다. 15절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7나팔 재앙 가운데 일곱 번째 나팔은 16장에 나올 7대접 재앙을 말합니다. 7대접 재앙은 세상을 완전히 심판하는 전면적인 재앙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나팔을 불자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게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던 24장로의 경배와 찬양이 있었습니다. 24장로의 경배와 찬양도 같은 그런 맥락에서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17절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라고 했습니다. ‘24장로는 성도들의 대표로서 승리한 교회(성도) 전체를 상징합니다. 24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창세전부터 홀로 계셔서 친히 계획하셨던 대로 주장해 나가신 것, 친히 세상을 심판하시고 약속한 나라를 이루심을 찬양하는 것, 악인을 심판하고 성도를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감사하며 친히 권능으로 왕 노릇할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죽은 자를 심판할 때라고 했습니다. 18절에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를 심판할 때'는 모든 죽은 자를 심판할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한 다음에는 모든 죽은 자를 심판하게 됩니다. 전천년설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이 지상재림을 하고 천년왕국이 있고 그 다음에 모든 죽은 자를 부활시켜 심판을 합니다. 무천년설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지상재림 후에 바로 모든 죽은 자를 부활시켜 심판을 합니다. 그 심판을 흰 보좌 심판 혹은 백 보좌 심판이라고 합니다 (20:11-15). 그때는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라고 했습니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과 무릇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멸망시키는 때라는 것입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을 말한 것입니다. 곧 의인은 상을 주고 악인은 멸망시킬 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의인은 천국에 보내어 영생을 누리게 하시고 악인은 지옥에 보내어 영벌을 받게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곧 일곱 번째 나팔인 7대접 재앙이 예고되자 하나님이 악인은 멸망시키고 의인은 상을 주시므로 하나님이 왕 노릇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일시동안 의인이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의인에게 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5:19, 12:3, 고전3:15, 고후9:6 참조). 반면에 악인은 반드시 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9: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라고 하였고, 21:8에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의를 행하되 낙심치 말아야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3"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③하나님의 성전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19절에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24장로들의 경배에 이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습니다. 이 성전(ναος)은 하늘 성소로서 땅에 있는 성전의 실체입니다 (9:23-28, 10:1).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들로서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권세를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의 언약궤를 보이신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된 것임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모세의 두 돌 비석 곧 율법판이 들어있었습니다 (9:3-4, 왕상8:9과 대하5:10, 16:33-34과 민17:10-11 참조). 그 율법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언약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고 성도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은 말씀의 핵심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임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언약궤에는 율법판이 들어있었다고 했습니다. 율법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이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궤를 보이신 것은 일곱 번째 나팔재앙(7대접 재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의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복음이 이 땅에 제시될 때부터 이 땅에 이미 심판은 시작된 것입니다. 요한복음3:17-18"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9:39-41).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으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2:28). 그 나라는 성령과 말씀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말씀에 지배를 받도록 복종시켜야 합니다. 성령님과 말씀이 우리 삶의 지배 원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환경에서 세력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結言>

  11장은 두 증인에 관한 예언입니다. 두 증인은 교회(성도)에 대한 상징입니다. 성도들이 사역을 하다가 박해를 받아 죽게 되지만 마침내 하나님이 주의 재림 때에 세상 사람들은 재앙으로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성도는 구원하여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말고 계속해서 복음사역, 말씀사역을 해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