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한계시록12:1-17
<題目> 한 여자와 붉은 용
<序言>
12장은 한 여자와 붉은 용에 대한 환상으로서 교회의 수난에 대한 묘사입니다. 12장에서는 '여자'로 상징된 교회와 '용'으로 상징된 사탄과의 치열한 싸움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와 용의 싸움을 통해 교회가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11장 전반부와 연결하여 본다면 말세에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핍박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역사적 관점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를 알게 하고,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하는 근거를 알게 해줍니다. 내용구성은 한 여자의 해산(1-2절), 한 여자의 피난(3-6절), 붉은 용의 출처(7-12절), 붉은 용의 박해(13-17절)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한 여자의 해산 (1-2절)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①한 여자가 등장했습니다.
1절에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였는데 해를 입은 한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이적'(σημειον)은 표징(sign)을 말합니다. 환상 가운데 한 표징이 보인 것입니다. 일반적 상식을 넘는 신기한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이적은 그 기적에 상징성과 표적성을 목표로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적에서 한 여자가 나타난 것은 그 여자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여자'는 마리아에 대한 상징이나 유대교에 대한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교회'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Mounce, Johnson, Morris, Alford, Bengel, Charles).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여자로 비유했고 (렘2:2, 3:14, 31:32, 사50:1, 54:1,4-6, 호2:16), 신약성경에서 예수님도 교회를 자주 여자로 비유했고 (마13:33, 25:1-13, 눅15:8-10), 신약성경에서 사도들도 교회를 여자에 비유했고 (고후11:2, 엡5:25-27, 32), 특히 본서 요한계시록에서도 교회를 신부나 여자로 묘사했습니다 (계19:7, 21:2,9).
'교회'는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들의 총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야기가 '교회'의 개념 중 구약시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을 전제한 채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았는데 그 아들에 관한 묘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은 그런 사실을 더욱 확증해줍니다 (5절, 시2:9).
②여자는 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1절에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몸은 해를 옷 입고 발에는 그 아래 달이 있고 머리에는 12별의 면류관을 쓴 모습이었습니다. '여자'는 교회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해'(태양)'는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입니다 (시19:1-6, 계1:16).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과 의지와 계획과 목적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교회는 언약적 진리를 입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계획과 목적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달'은 자연만물의 상징입니다 (엡1:22).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자연만물을 발아래 두고 있습니다. 교회는 자연만물을 발등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계시의 특성상 구약 교회가 자연만물보다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교회가 나타내는 특별계시가 자연만물이 나타내는 자연계시보다 앞서 있습니다. '별'은 권세의 상징으로서 '12별의 면류관'은 교회의 영화로움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창15:5, 37:9). 구약 이스라엘 공동체는 택함 받은 12지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지파들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새예루살렘성 성곽의 12기초석에 12사도의 이름이 기록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계21:14, 엡2:20). 교회는 영화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만물을 복종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로 묘사된 참된 사역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7절).
오늘날 '교회'의 한 부분인 지역교회도 그와 같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인간의 허영과 외식과 부패함이 계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과 사역과 목적을 계시해야합니다. 모든 자연 은총을 그 역할에 이용해야합니다. 성도는 교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헌신된 삶을 살아야합니다 (단12:3, 살전2:19).
③여자는 아이를 배어 해산을 하려 했습니다.
2절에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자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교회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기독교나 교회로 보는 이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Mounce, Ladd). 그것이 본장의 문맥상으로도 맞습니다 (5,10절). ‘배어’에 해당하는 기본형 ‘에코’(εχω)는 ‘소유하다’ ‘간직하다’의 뜻으로서 엄마가 아이를 잉태한 것처럼 구약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는 구약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해 그 언약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을 쓰며 그로인한 고통으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했다는 말은 구약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가 그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 해산하는 고통과 같은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것을 말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때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있었습니다. 창세기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창세기13:16에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고 했고, 창세기15:5에도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갈라디아서3:16에는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고, 갈라디아서4:4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미 아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아 가지고 있었고, 아브라함 때에 그 약속을 정식으로 받았고, 다윗 때에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삼하7:12). 또한 모세와 다니엘과 이사야 등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더욱 자세히 알게 하셨습니다 (사26:1,18, 66:7, 미4:10, 5:3). 그것은 예수님도 인정하셨고 사도들도 인정했습니다 (눅24:44-45, 벧전1:10-11, 엡2:12).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구약교회는 이미 언약적으로 그리스도를 품고 있었고 때가 되매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언약적 축복을 계승하고 대망하고 성취하려 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그 영광만큼이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이 언약적 축복을 가지게 되자 이스마엘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롬9:7, 갈4:28-29). 이스라엘 민족이 언약을 성취하려 하자 애굽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출1:8-22). 이스라엘 공동체는 메시야 시대의 도래에 대한 메시지를 나타낼 때마다 언제나 해산하는 고난을 겪어야했습니다 (사26:17, 66:7, 미4:10, 5:3).
교회가 세상에서 복음을 제시할 때마다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생명을 살리려고 할 때마다 사탄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성취하려 할 때도 많은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라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합니다 (히10:36, 약1:3-4). 신약의 교회도 하나님의 구속계획의 완성하려 할 때 고난을 받게 되고 희생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해를 입고 달을 밟고 12별의 면류관을 쓴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해산의 고난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계획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보편적 교회이든 개별적 교회이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위해서는 아들을 낳는 어머니의 심정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인이 해산의 고통을 참는 것은 아들 낳을 소망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2. 한 여자의 피난 (3-6절)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①한 붉은 용이 등장했습니다.
3절에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라고 했습니다. 이상 가운데 한 큰 용이 보였습니다. '용'(δρακων, dragon)은 뱀의 전설상 동물로서 악령인 사탄을 가리킵니다 (9절). 사탄은 용으로 불리기도 하고 (욥7:12, 겔29:3-6, 32:2-8, 렘51:34,36,42), 뱀(사27:1, 암9:3), 라합(사51:9-10, 시89:10, 욥26:12-13), 리워야단(시74,12-19, 사27:1), 악어(겔29:3), 하마(욥40:15-24)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붉은' 색은 그 색이 피, 혈기, 분노, 전쟁 등을 나타내는 색으로서, 용을 붉은 용이라고 한 것은 사탄의 살인적인 잔인한 성격을 보여줍니다 (6:4, 요8:44). '큰' 은 거대함을 가리키는바 큰 용이라고 한 것은 아무나 거슬리기 힘든 거대한 힘과 세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한 큰 붉은 용은 7머리와 10뿔을 가졌고 머리에는 왕관이 있었습니다. '머리'는 권세를, '뿔'은 힘을, '왕관'은 영광을 상징합니다. '7'과 '10' 수는 만수로서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그래서 큰 붉은 용이 머리가 7이고 뿔이 10이고 그 머리에 7왕관을 썼다는 것은 사탄이 완전에 가까운 지혜와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사탄의 세력은 가는 곳마다 승리하며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습니다. 애굽 바로의 박해, 로마 네로의 박해, 독일 히틀러의 박해, 소련 스탈린의 박해가 그런 예입니다.
그리고 4절에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고 했습니다. '꼬리'는 궤계, 간계의 상징입니다. '하늘의 별'은 타락한 천사인 마귀 세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Morris). 사탄과 함께 타락한 악한 천사들을 악령들이라고 합니다. 그 악령들에는 마귀들과 귀신들이 있습니다 (벧후2:4, 유1:6,9). 사탄은 하나님이 구속사역을 방해하기 하는 데에 그들을 총동원시킵니다. 사탄이 악령들의 일부를 하늘에서 잡아당겨 땅에 던지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4절에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고 했습니다. 용이 여자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먹어치우기 위해 여자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여자'를 교회라고 한다면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약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려 하자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삼키려한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태어나자 헤롯왕을 이용하여 그를 죽이려고 베들레헴과 그 지경에 있는 2세 이하의 모든 아이를 죽였습니다 (마2:16). 예수님이 활동하실 때도 유대인들을 격동시켜 산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려했습니다 (눅4:28-30). 공생에 마지막 부분에는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유대인들과 총독과 군병들을 이용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했습니다 (요13:37, 마26:15-16, 57, 27:20-31).
②여자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교회를 상징하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약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을 가지고 있다가 (창3:15, 13:16, 15:5, 삼하7:12) 마침내 때가 되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시편2:9에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는 말씀의 반영으로서 심판의 권세와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재림 때에 모든 대적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19:11-16에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5절에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공격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행1:10-11). 사탄은 가룟 유다와 총독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백성들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게 하고는 승리한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하늘로 이끌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했습니다. 이는 사탄이 일시적으로 승리한 것 같았으나 하나님이 혹은 예수님이 승리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의 구약교회에 대한 경계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격이 결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막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참된 사역자들과 성도들도 많은 핍박을 당하여 죽게 되나 다시 부활하여 휴거하게 될 것입니다 (살전4:17). 사탄은 생명력이 있는 개인에 대해서도 어떻게든지 넘어트리려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것을 이용하여 더 선한 것을 이루고 맙니다. 그것은 욥의 경우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래서 로마서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③여자가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6절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붉은 용은 여자가 낳은 아들이 승천하자 아들을 낳은 여자를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광야'는 보호와 양육의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안전하게 피신시키기 위해 준비한 곳이며, 1,260일 동안 양육하기 위해 준비한 곳입니다. 이 '1,260일'은 7년 대환난의 전반기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내정수로서 그 실제기간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초대교회는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키셨고, 더욱 성장하게 했습니다.
사탄이 역사적인 교회에 대해 분노한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품고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에나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있는 개체교회와 성도들도 사탄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목적하는 교회와 성도는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계14:12).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안전하게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양육하려는 목적을 함께 이룹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난 가운데서 보호하고 동시에 성장시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을 가지고 있는 야곱 족속이 환난을 당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미리 준비했던 애굽의 고센 땅으로 피신시켰고 그곳에서 성장하게 한 것과 같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박해를 받자 미리 준비한 광야로 이끌어 피신시킨 동시에 그곳에서 연단시킨 것과 같습니다 (신8:14-16).
민족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장자권(언약적 축복) 때문에 에서의 미움을 받아 죽게 될 위험에 빠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망하여 안전히 거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외삼촌 집에서 20년 동안 봉사하면서 많이 성장했고 연단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죽게 될 위경에 처했을 때 미디안광야의 르우엘(이드로)의 집에 안전히 거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그 집에 40년간 있는 동안 많이 연단되었습니다. 강퍅했던 '자기'가 깨지고 겸손해졌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나 강퍅한 성품이 그대로 있었는데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있으면서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에서 복음전도를 하면서 사역자로 성장한 것이기도 합니다. 페트라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고대유적지입니다. 바위에 도시가 형성된 곳으로서 과거 나바테아왕국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나바테아인(Nabataeans)은 아라비아 유목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아나니아 제사장에세 안수를 받고 3년 동안 그곳에서 복음전도 생활을 하다가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에서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캐나다에 가면 공원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야생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람쥐, 청솔모, 청둥오리, 염소, 사슴(앨크), 곰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원에 가는 곳마다 경고판이 붙어 있는데 그것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게 되면 벌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먹이를 주면 야생력이 떨어져 죽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방이 번데기로 있을 때는 고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번데기가 고치를 뚫고나와 나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치를 사람이 가위로 잘라 주게 되면 나방이 힘들이지 않고 고치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면 그 나방은 날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많은 환난 속에서 연단을 받아야합니다. 그 연단이 능력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교회는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선포하는 사역 때문에 많은 박해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승리하게 하고 교회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동시에 성장시켰던 것처럼 반드시 교회를 환난 중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연단을 통해 승리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예수 믿는 일과 사명 감당하는 일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더라도 그 고난을 견디면서 연단을 잘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합니다.
3. 붉은 용의 출처 (7-12절)
이 세상의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크게 세속적 관점에서 보는 역사를 세속사(世俗史)라고 하고, 구원적 관점에서 보는 역사를 구속사(救贖史)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 관점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구속사의 일관된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계획 실현과 이를 방해 하려는 사탄의 대적입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교회와 이를 방해하려는 사탄의 세력과의 영적 싸움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져야할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전투적 정신입니다. 12장은 '여자와 용'의 환상으로서 교회의 수난에 대한 묘사입니다. '해를 옷 입은 한 여자'와 '한 큰 붉은 용'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마지막 때에 교회가 받을 환난의 성격을 구속역사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여자'로 상징된 교회가 '아이'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자 '용'으로 상징된 사탄이 그 아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본문은 그 사탄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왜 교회를 핍박하는지 그 근본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①붉은 용이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늘에서 전쟁이 있었습니다.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과 용과 그의 사자들 간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7절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고 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영계를 말합니다. '미가엘'(Michael)은 전투사역을 맡은 천사장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천사의 종류는 스랍, 그룹, 미가엘, 가브리엘입니다. 스랍은 하나님 보좌 주위에서 수종드는 사역을 하고,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사역을 하고, 미가엘은 하나님의 대적과 싸우는 사역을 하고,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사역을 하는 천사로 나타납니다. 그중에 미가엘과 가브리엘은 천사장에 속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천사들입니다. 미가엘 천사장의 활동은 다니엘의 21일 기도와 관련하여, 모세의 시체를 없애는 일에서 잘 나타나있습니다 (단10:13,21, 12:1, 유1:9). '용'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9절에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라고 했습니다. 용을 '옛 뱀'이라고 한 것은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한 뱀을 이용하여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이 범죄하게 된 사건을 염두에 둔 표현 같습니다 (창3:1,13). '사탄'은 악령의 우두머리입니다. 악령에는 사탄과 마귀와 귀신이 있습니다. '사탄'(σαταναs)은 '대적하는 자'이라는 뜻으로서 가장 우두머리이고, '마귀'(διαβολοs)는 '참소하는 자'라는 뜻으로서 중간계급이고, '귀신'(δαιμονιον)은 '악한 존재'라는 뜻으로 하급계급입니다.
그런데 선한 천사장인 미가엘과 그를 따르는 사자들(천사들)과 악령의 우두머리인 사탄과 그를 따르는 사자들(천사들)이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미가엘의 군대가 사탄의 군대를 이겼고 사탄의 군대는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8-9절에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탄의 군대는 하늘에서 내쫓겨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12절에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고 했고, 13절에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사탄은 '루시퍼'(Lucifer)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선한 천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마 그때는 에스겔28:13-15을 보면 사탄이 예배찬양 사역을 맡은 권위있는 천사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과 동등된 지위를 얻기 위해 그를 따르는 천사들(마귀들과 귀신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사14:12-15, 겔28:17-18, 유1:6). 그래서 하나님은 미가엘 천사장과 그의 천사들로 하여금 그들을 물리치게 했습니다. 결국 미가엘과 싸운 사탄은 싸움에서 패하여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하고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쫓겨난 것입니다. 사탄과 그를 따르는 마귀와 귀신들이 모두 하늘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옥에 던져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크게 분 내어 이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12절에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벧전5:8). 그래서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가 된 것입니다 (엡2:2). 곧 사탄과 마귀와 귀신은 본래 선한 천사로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난 천사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악한 천사라고 하고 악령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서울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나 인천 예루살렘교회 이초석 목사 같은 이른바 귀신론자들은 귀신의 출처를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 가운데 천국가지 못한 영혼이 이 지상에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들어와 병을 유발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축사사역 현장에서 귀신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면 죽은 조상의 이름을 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 귀신을 죽은 조상으로 여기는 관념이 있기 때문에 귀신이 그 통념을 이용하여 속이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옳지 못한 이설(異說)이므로 주의해야합니다. 본문에는 분명히 악령들인 사탄과 마귀와 귀신이 하늘에서 내어 쫓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7-9절).
②붉은 용은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9절에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창3:4-5). 큰 용은 옛 뱀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옛 뱀’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한 사실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고후11:3). 큰 용은 사탄이라고 하기도 하고 마귀라고 하기도 합니다. 악령의 우두머리는 사탄이고 중간계급은 마귀이고 하급계급은 귀신입니다. '사탄'(σατανας)은 '대적하는 자'라는 뜻이고, '마귀'(διαβολος)는 '참소하는 자'라는 뜻이고, '귀신'(δαιμονιον)은 '악한 자'라는 뜻입니다. 사탄은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천하’에 해당하는 기본형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η)는 땅을 가리키는 말로서 세상을 의미합니다. ‘꾀는’에 해당하는 기본형 ‘프라나오’(πλαναω)는 ‘속다’ ‘헤매다’의 뜻으로 꾀는 자라는 말은 속여서 어지럽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탄과 그를 따르는 영들은 이 세상에서 권세를 잡고 이 세상을 미혹합니다. 10절에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고 했습니다 (욥1:7-12, 2:3-6). 사탄과 그를 따른 영들은 하늘에서부터 참소하던 자들로서 이 세상에서도 계속 참소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벌이는 사역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적극적으로 방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훼방합니다 (13:5, 16:11).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참소합니다 (12:10). 교회와 성도를 적극적으로 훼방합니다 (눅10:18, 벧전5:8). 성도와 성도 사이를 이간합니다 (약3:14-16).
그들의 특성은 교만, 욕심, 살인 거짓입니다. 이사야14:13-14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유1:6). 요한복음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거짓은 그들이 성도들을 꾀는 방법입니다. 그들은 거짓으로 속이기를 좋아합니다. 고린도후서11:14-15에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대하18:20-23, 고후4:4). 모습을 가장하기도 하고 거짓말로 속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속을 수밖에 없는 간교함을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속기 쉽습니다. 상대의 심리상태와 심리적 변화를 읽고 점차 의심과 회의와 확신이 들게 합니다 (창3:1-5).
그 방법이 너무나 지혜로워서 분별하기가 힘듭니다. 창세기3:1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했습니다. 그 '간교'의 히브리어 '아롬'(ערום)은 '교활한' '영악한'의 뜻인데 긍정적인 용어로 바꾼다면 '영리한' '지혜로운'이란 말입니다. 그 간교함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칠 때 바리새인들을 통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 고소할 조건을 얻으려했던 일 (요8:1-9),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할 때 말씀으로 미혹한 일 (마4:1-1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한다는 말씀을 가르칠 때에 베드로를 통해 만류했던 일 (마16:21-23),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리아를 통해 향유를 부음을 받을 때 제자들을 통해 그 의미를 축소시킨 일 (마26:6-12) 등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용되는 거짓선지자들도 사탄의 지혜를 받아 알지 못하도록 '가만히' 들어오는 것입니다 (갈2:4, 벧후2:1, 유1:4). 그 간교함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리를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0:16에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말씀과 양심의 기준대로 깨끗하기를 힘써야합니다. 또한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들어온 뱀은 사람을 미혹시킬 때 자기 지혜로 하지 않고 사람의 지혜를 능가하는 사탄의 지혜로 했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지혜를 능가하려면 우리의 지혜로 하지 말고 사탄의 지혜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지혜로 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로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지혜를 얻기 위해 깨어 기도해야합니다 (벧전5:8).
③하늘에서 큰 음성이 있었습니다.
10-12절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하늘에 있는 자들은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나라에 있는 성도들은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승리한 근거는 첫째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과 그 무리들이 쫓겨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밤낮으로 쉴새없이 끊임없이 성도들를 참소하던 사탄과 그 무리가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욥1:6-12, 2:1-5, 벧전5:8). 둘째는 지상에서도 예수를 믿는 믿음과 그의 말씀을 죽기가지 양보하지 않고 순교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늘에서 실패하자 지상에서 방해를 했습니다. 그 방편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했습니다. 사탄은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지상에 성도들도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히12:4, 계1:9, 6:9).
사탄은 지상에서도 진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날에도 성도들을 한편으로는 미혹하고 한편으로는 핍박합니다. 12절에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아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사탄의 기세는 급하고 맹렬합니다 (눅10:18, 벧전5:8). 최후의 발악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순교적 정신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14:12). 순교정신으로 예수 믿는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롬8:35-37). 결국은 종말에도 부분적으로는 패배한 것 같지만 종국에는 승리합니다 (20:4).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맹렬하게 공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운동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하늘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구원운동도 일시적으로 실패하는 듯 하나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영적 전투에 임해야합니다. 요한일서5:18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4. 붉은 용의 박해 (13-17절)
12장은 '여자와 용'의 환상으로서 교회의 수난에 대한 묘사입니다. '해를 입은 한 여자'와 '한 큰 붉은 용'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마지막 때에 교회가 받을 환난의 성격을 구속역사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여자'로 상징된 교회가 '아이'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자 '붉은 용'으로 상징된 사탄이 그 아이를 잡아 삼키려 했습니다. 7-12절은 그 사탄이 왜 교회를 핍박하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본문은 그 사탄이 교회를 핍박하는 것을 실패하자 그 방향을 '남은 자손'에게로 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①여자가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13절에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용이 자기가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내어 쫓긴 것을 직시하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했습니다. '용'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9절).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교회를 상징입니다 (1-2절). 사탄은 하늘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7-12절). 사탄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쫓긴 상황을 인지하고 직시했습니다. 그리고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자 그를 핍박하여 죽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4-5절).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일에 실패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교회를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추격하여 죽이는 것처럼 잔혹하게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교회를 1,260일 동안 양육하기 위해 예비하신 곳이었습니다 (6절).
14절에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뱀’은 용이라고도 하는 바 사탄을 상징합니다 (9절).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의 관심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로 날아가 피했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관심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광야 시내산으로 이르게 한 것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출19:1-4). '광야 자기 곳'은 하나님이 교회를 양육하기 위해 준비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사탄의 극한 박해로부터 피신시키는 곳인 동시에 하나님이 교회를 양육하기 위해 예비하신 곳입니다. 6절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광야로 인도된 것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하나님의 내정수로서 그 실제 기간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양육 받으매' '양육하기'에 해당하는 기본형 '트레포'(τρεφω)는 '단단하게 하다' '살찌우다' '기르다' 등의 뜻입니다. 연단과 성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뱀의 낮을 피해 광야로 날아간 것은 일차적으로 뱀의 공격을 피하는데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3때 반 동안 양육을 받기 위함입니다 (6절).
구약시대에 구약교회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바로왕의 학대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큰 관심과 능력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 이르게 했습니다 (출19:1-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한 것은 일차적으로 사탄이 이용하는 바로왕의 박해에서 피하게 하는 이유가 있었지만 이차적으로는 광야에서 일정기간 연단과 성장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최종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19:6). 신명기8:14-16에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이끌어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낮추시며'에 해당하는 기본형 '아나'(ענה)는 '누르다' '괴롭히다' '훈련하다'의 뜻으로서 고통과 고난을 당하게 한 것을 의미합니다. '시험하사'에 해당하는 기본형 '나사'(נסה)는 '증명하다'의 뜻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나사’는 보통 ‘시험’으로 번역되나 영어성경에서는 그 의미를 각기 구분하여 test(평가), temptation(유혹), trial(시련), prove(증명)으로 번역합니다. KJV에서는 여기의 ‘나사’를 prove(증명)으로 번역했습니다. 곧 믿음이 없는지를 드러내려 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비전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므로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신8:3).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서 마침내 제사장 나라가 되는 복을 받게 하려고, 그 목적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하려고 연단과 성장을 시킨 것입니다 (출19:6). 그것이 애굽의 박해에서 피하여 인도하는 동시에 고난을 통해 연단과 성장을 시킨 것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로마황제의 박해를 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관심과 능력으로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 같은 곳들로 피하게 했습니다. 히브리서11:38에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탄이 이용하는 로마황제들의 박해에서 피하게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일정기간 동안 그들을 연단시키고 성장시켰습니다. 그 목적은 신약시대에 복음을 힘 있게 전하여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종말에도 사탄은 적그리스도인 세계단일정부의 통치자를 통해 종말교회를 ‘3때 반 동안’ 극한 박해를 가할 것입니다 (13장). ‘3때 반’은 종말적 의미로 보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7년 대환난 기간 중 전반기에 해당하는 ‘3년 반’ ‘42달’ ‘1,260일을 말하는데 (단7:25, 12:7, 계11:3, 12:6,14), 이는 우리가 헤아리는 일수가 아닌 하나님의 내정수로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종말적 교회를 은밀한 곳에 피하게 할 것이고 그 기간 동안 연단을 시키며 성장을 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모든 택한 백성을 구원하게 할 것입니다 (11:3-6).
그 원리는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언약적으로 보면 야곱은 언약적 계대에 관한 권한인 장자권 때문에 형 에서에게 미움을 받아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하란(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게 하여 안전히 거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봉사를 하면서 연단을 받게 했습니다. 그로인해 언약적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요셉도 언약적 목적을 가진 자로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애굽에 팔려 위기를 피하게 했고 보디발 장군집의 종이 되어 안전히 거하게 했습니다. 또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연단을 받게 했습니다. 그로인해 언약적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도 애굽에서 바로왕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이 미디안 광야로 피하여 르우엘(이드로) 집에 안전히 거하게 했습니다. 또한 40년 동안 연단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위기를 당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후 제사장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아라비아 광야(아라비아 유목민족이었던 나바테아왕국 수도 페트라)에서 3년 동안 복음전도를 하면서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만나 안디옥교회에서의 사역과 세계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연단을 시키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성장시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롬5:3-5).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환난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인내로 연단을 받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믿음 없는 자인지 발견해야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가치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을 비전으로 삼지 않는지 발견해야합니다. 얼마나 교만한 존재인지 발견해야합니다. 아직까지 자기가 가장 잘난 존재인줄 알고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줄 알고 거드름피우는 자인지를 발견해야합니다. 신앙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해서 얼마나 공동체에 해가 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스스로도 분노와 원망과 증오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자인지 발견해야합니다.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그 어디에서도 아무 데도 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계기가 되어야합니다. 그 기간 동안 좀 낮아지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다져지고 만들어져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대로 부족함을 채워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준비가 갖추어져야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환난은 결코 손해가 아니고 오히려 유익과 복을 얻는 과정이 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②용이 여자 뒤에서 물을 강같이 토했습니다.
15절에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하려 하되”라고 했습니다. 용이 여자를 홍수에 휩쓸려 죽게 하려한 것입니다. ‘용’은 사탄을, (9절),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강물’은 홍수를 말하는데 온갖 형태의 공격을 상징합니다. 교회가 박해를 피해 하나님이 예비한 곳으로 피하면 사탄이 교회를 죽이기 위해 온갖 공격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그 공격의 형태는 크게 나누면 핍박과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관점에서 볼 때 핍박은 13:1-10에 나오는 바다에서 나온 10뿔 가진 짐승의 행동이 잘 보여주고, 유혹은 13:11-18에 나오는 땅에서 올라온 2뿔 가진 짐승의 행동이 잘 보여줍니다. 용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 박해를 가하게 하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 미혹을 합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적그리스도 세력으로서 세상 통치자 세력을 말하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 세력으로서 종교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교회를 죽게 하려고 세상 권력자들의 핍박도 이용하고, 종교 지도자들의 미혹도 이용합니다. 세상 권력자들을 통해 위협과 핍박과 박해를 가하기도 하고 (행8:1-3, 계11:8, 13:7-8),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 거짓 가르침으로 미혹을 하기도 합니다 (마24:24, 살후2:9-11, 계13:13-14).
요한계시록 관점에서 볼 때 핍박을 이기려면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13:10에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때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13:5).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과 섭리를 믿고 하나님이 허락한 때가 될 때까지 예수 믿는 믿음과 계명의 말씀을 지키면서 참는 것입니다. 또한 소명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히11:24-26, 요4:34, 빌1:20) 그리고 유혹을 이기려면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13:18에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진리의 말씀에 바로 서서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가르침과 그 현상을 분별해야 합니다 (마4:1-11, 10:16). 또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약1:14, 골3:5, 마24:19, 갈5:24).
③땅이 여자를 도와 강물을 삼켰습니다.
16절에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이 모래땅으로 되어 있어서 우기에 홍수가 내릴 때 땅이 물을 금방 흡수하여 물이 없어지는 지리적 환경을 염두에 둔 표현 같습니다. 용이 강물을 토해 여자가 홍수에 쓸려갈 위기에 놓였는데 땅이 여자를 도와 입을 벌려 용이 토한 강물을 삼켜버렸습니다. ‘땅’은 홍수를 흡수하는 모든 환경을 상징으로서 하나님이 보호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말합니다 (출15:12). 그래서 본절은 종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교회를 보호해주시고 건져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3장에서 사탄은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을 이용해 핍박과 미혹으로 교회를 전멸시키려하지만 14장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 곧 택함받은 성도 144,000명을 그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온산으로 불러올리므로 건지시겠다고 했습니다.
구약역사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고 홍해가 가로 막혔을 때 하나님이 바람을 이용해 바다를 가르고 이 가운데로 건너게 해주시고 애굽 군대가 따라오자 바닷물이 합쳐지게 해서 모두 수장시켰습니다 (출14:15-30).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찬양하면서 출애굽기15:12에서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고 했습니다. 광야에 들어왔을 때도 40년 동안 많은 위경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그에 대해 신명기32:10-12에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성도)를 환난과 고난과 고통과 위경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건져주십니다. 그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첫째는 환경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주권적인 섭리의 역사로 고난의 현장에서 나오게 하거나 고난의 상황을 바꾸실 것입니다 (단3:24-26, 6:22, 시121:1-2). 둘째는 여전히 고난의 환경에 두면서도 고난의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키실 것입니다 (마16:18, 요일5:18). 셋째는 고난의 환경에서 고난을 당하게 하면서도 믿음으로 능히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사40:31, 고전10:31).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택한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건져주셔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이용하는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고 구해주실 것을 확신해야합니다. 마태복음16:18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고, 요한일서5:18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했고, 고린도전서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④용이 남은 자와 싸우기 위해 모래 위에 섰습니다.
17절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고 했습니다. 용이 강물을 토해 홍수로 여자를 죽이려 했으나 땅이 강물을 삼켜버리자 용이 분 내어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싸우기 위해 모래 위에 선 것입니다. 사탄이 교회를 갖은 공격으로 쇠잔시키려 하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사탄이 교회를 더 이상 공격을 하지 못하게 되자 분노하여 돌아가 교회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모래 위에 선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은 여자가 용의 낯을 피해 광야로 도망했을 때 광야로 함께 피하지 못하고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실제로는 교회가 사탄의 박해를 피해 하나님이 준비한 곳으로 피할 때 피하지 못하고 남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계획과 섭리의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교회의 회복을 위해 남겨진 자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교회를 온전하게 부흥시키 위해 준비된 사명자들인 것입니다. 이른바 성경에서 관용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남은 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역사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구원계획 실현과 사탄의 방해라는 줄거리 로 되어 있는데 그 줄거리에는 항상 ‘남은 자’가 있습니다. ‘남은 자’는 히브리어로 ‘쉐아르’(שאר)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레임마’(λειμμα) 혹은 ‘로이포스’(λοιπος)라고 하고, 영어로는 ‘렘넌트’(remnant)라고 합니다. ‘남은 것’ ‘남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노아 때에도 세상 모든 사람이 타락하여 물로 심판 받아 모두 죽게 된 가운데서도 의로운 노아와 그 식구들이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창6:6-8, 눅17:26-27, 벧전3:20). 롯 때에도 소돔성이 사람들이 타락하여 불로 심판받아 모두 죽게 된 가운데서도 의로운 롯과 그 식구들은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창19:29, 눅17:28-29). 아합왕 때에도 북이스라엘이 아합왕과 이세벨의 학정으로 모든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고 많은 신앙인들이 숙청당하는 가운데서도 우상숭배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은 엘리야와 7,000명은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왕상19:18, 롬11:2-5). 포로기에도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한 가운데 사로잡혀간 자들 중에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앙을 가진 자들이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사6:13, 10:20, 11:10-12, 렘23:1-4, 31:7-8, 단1:8-9). 하나님은 음란과 우상숭배로 타락했을 때 심판을 하면서도 언제나 신앙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신실한 신앙을 가진 ‘남은 자’를 남겨두셨던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신약시대에도 ‘남은 자’가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요엘2:32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욜2:28-32, 행2:1-21). 사도 바울은 신약시대에도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11:5에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롬9:27,29). 사도 요한은 종말에도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본절 요한계시록12:17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라고 했습니다 (계6:6). 구약시대에 모두가 우상숭배에 빠지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하여 사로잡혀 간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자들이 남아 있었고 그들이 돌아와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시키고 부흥시켰습니다. 신약시대에 모두가 영적으로 침체되어 로마의 박해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들이 남아 있었고 그들이 성령의 충만하여 초대교회를 세우고 확장시켰습니다. 그처럼 종말에도 사탄의 온갖 핍박과 유혹에도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 살아남아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참 생명력을 가진 ‘여자의 남은 후손들’ 곧 ‘남은 자’와 더불어 마지막 일전을 벌이기 위해 바다 모래 위에 선다는 것입니다. ‘바다 모래 위’는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는 장소라기보다는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기 위해 여자의 남은 자손을 공격하게 할 짐승을 부르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13장에 보면 두 짐승이 나옵니다. 1-10절에는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달린 짐승이 나오고 11-18절에는 땅에서 두 뿔을 가진 짐승이 올라옵니다. 용이 그 두 짐승을 이용하여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합니다. ‘용’은 사탄을 상징하고, ‘바다에서 나온 열 뿔 달린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땅에서 올라온 두 뿔 가진 짐승은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상징합니다. 적그리스도는 기독교를 박멸하려는 정치지도자들을 의미하고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는 기독교를 타락시키는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를 세울 자들을 남겨 놓습니다. 사탄은 그들이 구원역사에 생명력을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그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을 앞세워 공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른바 ’남은 자‘들은 결코 그들에게 굴복하거나 미혹당하지 않고 신앙을 지킵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은 증거를 가지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17절에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라고 했습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 곧 이른바 ‘남은 자손’은 어떤 성격을 가진 자들이냐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가진 자들’인 것입니다.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분인 것을 믿는 믿음을 굳게 지키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양보하지 않는 자들을 말하며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증언하기를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20:4).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주되심을 부인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자를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양보하지 않고 지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탄이 이용하는 적그리스도의 박해와 거짓선지자들의 유혹속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종말에 그런 자들이 하나님께 쓰임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11:3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라고 했습니다 (11:5-6).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며 영광을 누립니다. 요한계시록20:4에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했습니다 (14:12).
지금 신약 복음시대에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 로마서11:5에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남은 자는 교회 회복과 부흥을 위해 준비된 자들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하나님이 환난 가운데서도 보호하고 원하시는 때에 영적 권세를 주어 사역을 감당하게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입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과 처지에서도 예수 믿는 믿음을 양보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양보하지 않는 자입니다. 우리가 모두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그럴 때에라도 남은 자답게 살아야합니다. 그 신실한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목적 하에 있는 대상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목적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시는 대상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結言>
다음 장 13장의 내용을 보면 종말에 사탄이 적그리스도 세력과 거짓선지자 세력을 보내어 참된 교회와 성도를 적극적으로 공격합니다. 그 공격은 육체를 가진 자로서는 아무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가혹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음영은 부분적으로 과거 시대들에서도 나타났고 지금도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지키려 하면 수많은 슬픔과 아픔과 절망과 좌절을 경험합니다. 물질과 육체와 마음과 영혼의 손해와 유린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면,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는 주역이라면, 종말에 성령께 붙들려 구원역사에 쓰임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하길 원한다면, 오늘에 믿음과 계명을 지켜야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교회와 성도가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계명 지키는 것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죽기까지 믿음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어떤 손해와 유혹이 있더라도 남은 자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시고 승리해주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14장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셔서 함께하신 것을 경험하고 시온산에 우뚝 서 새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