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한계시록14:1-20
<題目> 구속받은 자들의 승리
<序言>
7장에서 하나님의 인(印)을 받은 144,000명이 13장에서 사탄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14장에서 시온 산에 선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 144,000명이 그 시온 산에 선 모습은 종말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대환난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사탄의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의 반열에 들게 한다는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내용구조는 144,000인의 승리(1-5절), 세 천사의 경고(6-12절), 주 안에서 죽은 자의 복(13절), 인자의 곡식 추수(14-16절), 천사의 포도 추수(17-20절)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144,000인의 승리 (1-5절)
사도 요한의 당시는 네로 황제의 통치(주후 64년) 때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의 박해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잔인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미래에 닥칠 고난에 대한 암시로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늘 시온 산에 선 144,000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들에 대해 가지신 선한 의지를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① 시온 산에 144,000명이 섰습니다.
1절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환상 가운데 계시를 보는데 하늘에 시온 산이 보였습니다. 그곳에 어린양이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서 있었습니다. '시온 산'(Mt. Zion)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구릉지대로서 솔로몬 때 성전이 세워진 곳이며 점차 종교적으로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에서는 구원자가 오셔서 구속받은 자기 백성을 모으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시84:1, 사24:23, 욜2:32, 미4:1,7). 본문의 시온 산을 전천년설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지상에 이루어질 천년왕국에 대한 상징으로 봅니다 (Morris, Beasley-Murray, Becwith, Charles). 하지만 무천년설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상징으로 봅니다 (Kiddle, Bengel, Plummer). 곧 하나님 보좌가 있는 곳을 말합니다.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144,000'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144,000'은 7장에서 인(印)맞은 자의 수(數)로서 전 인류 역사를 통해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 대한 상징적인 총수입니다 (Ladd, Mounce, Caird). 7:4에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했습니다. '인'(σφραγις)은 문자적으로 도장, 인장, 표식 등의 뜻으로서 (印, seal), 소유물에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한 표식을 말합니다 (9:4, 14:1, 겔9:1-7, 고전1:22, 딤후2:19, 엡1:13). 고대 근동에서는 문서, 가축, 노예, 군인, 조합회원 등에 사용했습니다. 문서에 사용할 때는 도장을 찍지만 가축이나 사람에게 사용할 때는 화인(火印)으로 표시했습니다. 사람에게 사용할 때는 신체 부위 중 가장 잘 보이는 손이나 이마에 사용했습니다. 본문에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친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 선택받은 백성임을 표시하는 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을 치는 것은 실제 도장이나 화인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에게 성령으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고 영을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확신을 갖게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에베소서1:13에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엡4:30). 그들에 대한 표현을 보면 7:14에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했고, 14:3에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고, 14:4에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에 의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1절 하반절에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양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께 속한 백성들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들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처럼 짐승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께 속한 자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7:9에 보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라고 했습니다. ‘흰 옷’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에게 입혀주신 의(稱義)를 상징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 죄 사함의 구원을 받은 자들임을 암시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이든 전 세계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5:9, 13:7, 17:15). 이는 각 국가별 인종별 집단별 언어별로 볼 때 세계 각처에서 나온 자들임을 의미합니다.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그 수가 심히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144,000'은 12×12×1,000입니다. '12'는 구원받은 만수로서, '12×12'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로 대표되는 구약교회와 신약교회 전체에서 택함 받은 자들의 완전 상징수입니다. '1,000'은 많은 무리에 대한 상징수입니다 (시84:10, 90:4, 벧후3:8 참조). 그래서 본문의 ‘144,000’은 7장에서 인 맞은 자의 수(數)로서 전 인류 역사를 통해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 대한 상징적인 총수라 할 수 있습니다.
‘144,000’에 대해 세대주의자(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들은 문자 자체에 얽매여 유대인 가운데 구원받은 수로 보기도 합니다. 여호와증인(Jehovah's Witnesses)에서는 자신들의 협회인 미국 블루크린에 있는 '워치타워' 협회에 등록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최근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도 자기들의 회원 명단에 오른 수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은 자주 자신들이 정한 범주 안에 들어온 자들이라고 우스광스런 주장들을 하곤합니다.
② 천사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2절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하늘 시온 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도들이 섰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는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기도 했는데 거문고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많은 물소리와 뇌성처럼 우렁차고 위엄이 있는 소리였고, 그렇다고 해서 두렵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거문고 타는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거문고’(κιθαρα)는 수금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오늘날 하프(harp)에 해당하는 현악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소리는 천사들의 새 노래였습니다. 3절에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4생물과 24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는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144,000 성도들을 환영하는 천사들의 노래였습니다 (5:11, 6:1, 19:1,6, Johnson).
‘새 노래’는 기존의 노래와 전혀 다른 새로운 노래로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말합니다. '새 노래'에 해당하는 ‘오덴 카이넨’(ωδην καινην)에서 '새'(new)에 해당하는 ‘카이넨’(καινην)은 질적인 면에서의 새로움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시간적인 면에서의 새로움을 가리키는 단어 ‘네오스’(νεος)와는 구분되는 단어입니다. 새 계명,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방언 등에서 '새'(new)의 의미와 같습니다. 그래서 ‘새 노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부르는 세상의 노래들과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내용의 노래를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찬양하는 노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계획과 의지와 목적을 찬양한 것이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구원사역을 찬양한 것을 말합니다. 5:9-14에서 부른 '새 노래'는 4생물들과 24장로들이 불렀는데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2-3절에 나온 ‘새 노래’는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본장의 위치를 볼 때 하나님이 7장에서 선택한 성도들을 6장에 나오는 7인 재앙과 8-9장에 나오는 7나팔 재앙 가운데서 승리하게 해주신 것에 대한 찬양이었을 것입니다. 12-13장에 나오는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맹렬한 박해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를 통해 승리하게 하신 것에 대해 찬양이었을 것입니다.
③ 새 노래는 144,000명만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3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천상에서의 새 노래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주신 것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속을 받은 144,000인만 배워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입니다. 곧 새 노래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자들만 배워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상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새 노래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시편149:1에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고 했고 (33:3, 40:3, 96:1), 에베소서5:19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주신 것을 찬양해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능력과 지혜가 깨달아지고 경험될 때마다 그분의 하시는 모든 섭리에 대해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고난에 극복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행하신 일에 감격하고 찬양해야합니다. 또한 미래에 어떤 환난이 닥쳐도 과거에 승리케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승리케 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찬양을 해야 합니다 (시편119:164, 146:2, 150:6). 현재의 슬픔 속에서도 미래에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을 바라보고 일어서야합니다 (벧후3:13, 계20:6).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아는 자들의 새로워진 영적 속성인 것입니다.
④ '144,000'인은 신앙의 정절이 있는 자들입니다.
5절에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났기 때문에 법적으로 흠이 없는 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속성상 죄를 멀리하고 실제로 죄를 떠나는 노력을 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삶속에서 사탄과 우상과 세상과 육체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노력하는 경건한 자들입니다.
첫째,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은 순결한 자들입니다. 4절에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고 했습니다.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는 자에 대해 부절절한 성관계를 하지 않은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켜 우상숭배와 배교를 하지 않은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Johnson, Ladd, Morris, Clarke, Plummer). 이는 20:4에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그들은 모세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고, 모르드개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히11:24-26, 단1:8, 3:17-18, 에3:2). 성경에서는 자주 이스라엘 백성을 순결한 처녀로 비유하기도 하고 교회와 성도를 정결한 처녀로 비유합니다 (왕하19:21, 사37:22, 렘18:13, 암5:2, 고후11:2). 그리고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간음으로 비유합니다 (약4:4).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에서 살면서 때로 사탄과 우상과 세상과 육체와 물질의 영향을 받아서 살기는 하지만 속성상 근본적으로는 그것들에 속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사탄과 죄와 세상과 육체에 속한 것들에서 나와 거룩성을 지켜야합니다 (고후6:14-17, 사52:11, 계18:4).
둘째,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4절에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고 그의 가르침을 죽기까지 따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Beasley-Murray, Mounce). 순교적 정신을 가지고 산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죽기까지 순종한 분으로서 (빌2:5-11, 벧전2:22-25, 사53:4-6)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마가복음8:34에서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에 5,000명 이상 되는 많은 사람이 떡을 먹고 배부를 때는 예수님을 따라갔으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다 떠났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갈 때는 요한과 베드로와 야고보 3제자만 따라갔고, 심판받는 가야바 뜰에는 요한과 베드로 2제자만 따라갔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바로 아래에는 요한 1제자만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은 평안할 때에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고난이 오면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든지 심판받는 자리이든지 죽음의 자리이든지 주께서 원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행20:20-24, 1:4, 렘27:12).
신라 야사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목수 일을 하는 도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궁중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절세미인인 것을 안 임금은 도미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신하들과 모의하고 도미를 불러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두 눈을 뽑은 후 섬으로 귀향을 보냈습니다. 임금이 도미를 아내를 취하려 할 때 그 아내는 며칠간 여유를 달라고 한 후 강가에 나가 통곡을 하다가 무심코 빈 배를 타고 강으로 떠내려갔습니다. 며칠 밤낮을 울며 지내는 중 배가 닿는 소리가 나서 보니 배가 육지에 닿았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육지로 올라가 갈대밭을 헤매는데 어디서 피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따라 가니 산 밑 한 동굴에서 자기 남편이 두 눈이 뽑힌 채 버들피리를 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이게 웬일인가 하여 도미를 와락 덤벼들어 붙잡았습니다. 도미는 자기 아내인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도미의 아내는 '당신이 두 눈을 뽑힌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으니 내가 어찌 당신을 버리고 가겠습니까?'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동굴에서 함께 지내며 풀뿌리를 캐어 남편을 끝까지 봉양했다고 합니다.
셋째,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4절에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헌신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구약시대에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출23:19, 느10:35, 잠3:9). 모든 수확물을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 대표적으로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처럼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야고보서1:18에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말고 성별되게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바침이 된 나실인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생활을 한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민6:1-8).
넷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5절에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스바냐가 스바냐3:13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라고 예언한 말씀의 반영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사탄에게 속한 사람들의 속성입니다 (요8:44, 계22:15). '거짓'은 이중성(duplicity)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중성의 사고와 말과 행동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이거나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거나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진리를 왜곡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전에 이기선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목회를 하다가 일제에 의해 신사참배를 거부한 죄로 감옥에 7년 동안 갇혔다가 해방된 분입니다. 그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진실이고 둘째도 진실이고 셋째도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매력은 진실한데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도 진실해야하지만 특히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생명처럼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구원받은 144,000명의 성도들이 하늘 시온 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새 노래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144,000명의 성도들이 그 새 노래를 따라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144,000명은 7장에서 인(印) 치신 성도들이었습니다. 7장에서 인친 자가 144,000명이었는데 14장에서 하늘 시온 산에 선 자들도 그대로 144,000명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선택하여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여 인 치신 성도들을 극한 대환난의 재앙과 박해 속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잃지 않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여 자녀로 삼은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시고 결국 하늘나라에 들어가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마태복음18:14에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요6:39, 10:27-29). 디모데후서4:18에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고난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하늘나라로 이끄셔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찬양하게 할 것을 바라보아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재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반드시 승리하게 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할 것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빌1:6). 그래서 현재에 슬픔과 불안과 분노 속에서도 내적 평안과 기쁨을 유지해야합니다.
2. 세 천사의 경고 (6-12절)
13장에서 두 짐승(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이 나타나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게하고 666의 표를 받게 했습니다. 그 강요에 굴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죽이기도 하고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14장 1-5절에는 그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은 자 144,000인들이 승리의 모습으로 시온 산에 섰습니다. 본 단락에서는 '말세를 향한 세 천사의 경고'를 통해 그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를 하고 표를 받은 자들이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은 성도들을 핍박할 뿐 아니라 성도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즐거워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상황이 반전되어 성도들이 승리하고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도는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성도가 인내해야할 이유입니다. 그 구속사적인 원리가 개인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중에 고난을 받을 때에도 낙심하지 말아야하며 믿음으로 인내해야합니다.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①첫 번째 천사는 땅에 거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천사'(αγγελος)의 종류는 그룹 (겔11;22), 스랍 (사6:1-3), 가브리엘 (단8:16, 9:21, 10:5-6), 미가엘 (유9, 단10:13-21) 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이 창조했고 (골1:16, 시148:5) 능력을 소유했습니다 (행5:19, 벧후2:11). 그 사역은 율법전달 (행7:53), 교회수호 (계2:8,12,18), 성도수종 (히1:14, 고전6:3), 성도보호 (시91:11-12, 단6:12), 성도징계 (사37:36, 행12:23), 성도인도 (출23:20, 32:34, 왕상19:5, 행5:19, 행8:26, 10:3,7) 등입니다. 본절에 나오는 천사는 어떤 천사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첫째,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6절에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라고 했습니다. 공중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시급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6절 중반절에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관용적 표현으로서 요한의 어법입니다 (5:9).
셋째, 영원한 복음을 가졌습니다. 6절 하반절에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고 했습니다. '복음'(ευαγελιον)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내용으로 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을 내용으로 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다는 메시지는 불신자들에게는 나쁜 소식이지만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고 만유가 새롭게 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 소식은 다가오는 영원한 시대에 관한 복음이기 때문에 영원한 복음인 것입니다.
넷째, 그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7절에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심판할 때가 왔으니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한편 천사의 복음전달 사역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11장의 '두 증인'의 사역을 보면 말세의 복음은 사람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그러나 7장에 보면 근본적으로 천사가 복음사역을 집행하고 전달해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밀한 일들이 천사로 말미암아 집행되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행7:35, 히2:2, 갈3:19).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는 "천사는 언제나 중간역할을 해온다. 곧 하나님의 주관하시는 섭리와 우리의 생활 사이에 연락을 지어준다. 세계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사탄의 공세는 강해지는 고로 거룩한 천사들이 더욱 맹렬히 활동할 것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천사의 복음전달은 천사가 땅 위에 직접 나타나 사역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늘 위에서 하나님의 복음전도 경륜을 실행하는 사역이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복음전도자들에게 연락하고 직접적인 복음전도는 사람들이 하게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는 복음을 땅의 모든 사람에게 속히 전하기 위해 독수리처럼 신속히 날아가면서 외칩니다 (8:13).
말세를 당한 우리는 천사가 전해준 복음을 속히 전해야합니다. 복음을 듣지 않는 자들에게 얽매여있지 말고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을 찾아다니며 속히 경고해야합니다. 지식이 있는 자들에게만, 부자들에게만, 어른들에게만, 자기 식구들에게만 얽매여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식구도 구원하지 못했는데..." 자책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속히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얻게 해야합니다 (고전9:16).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 주에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②두 번째 천사는 바벨론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첫 번째 천사에 이어 두 번째 천사가 외쳤습니다. 8절에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벨론 멸망에 대한 경고로서 16-19장에 나오는 바벨론 심판을 총론적으로 언급한 내용입니다. 과거 바벨론(Babylonia)은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제국으로서 물질문명의 발달로 교만했고 향락과 사치로 타락했고 우상숭배로 배도했고 이스라엘 박해한 제국이었습니다. 모든 나라에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라고 했는데 '음행'(πορνεια)은 육체적 향락과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바벨론은 당시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서 지배하에 있는 모든 나라에 그런 사상에 물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다 그 문화에 취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했습니다 (렘51:7).
이 바벨론은 당시 정황과 묵시적 표현 방법으로 보아 요한 당시 로마제국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Morris, Swete). 로마(Rome)도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여 교만했고 사치와 허영과 향락으로 타락했고 우상숭배와 교회박해로 하나님을 대적한 제국이었습니다. 심지어 군중의 흥미와 재미를 끌기위해 원형경기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맹수들에게 갈기갈기 찢겨죽게 하는 광란의 제국이었습니다. 로마는 당시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서 영향력 아래 있는 모든 세상 나라를 그런 사상으로 오염시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했습니다.
바벨론은 요한 당시의 로마제국을 말하지만 로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걸쳐 일어나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모든 세상 세력과 국가를 포함합니다 (Johnson, Morris).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있을 모든 인본주의 세상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세 인본주의 세상은 스스로 교만합니다 (창11:1-4, 단4:28-30). 사치하며 방탕하며 연락합니다 (계11:8). 사람들을 미혹하여 취하게합니다 (계17:1). 귀신들이 들끓게합니다 (계18:1-3). 그래서 과거에 바벨탑과 소돔성과 바벨론과 로마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듯이, 종말의 인본주의 세상은 결국 망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심판당할 때에 함께 망하지 않도록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에게서 나와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51:6에는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라고 했고, 요한계시록18:4에는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라고 했고, 이사야52:11에는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라고 했고, 고린도후서6:17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③ 세 번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세 번째 천사의 경고는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오른 손에 표를 받은 자들이 받을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9절에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이라고 했습니다. 13장에 보면 두 짐승이 나옵니다. 전반부에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나오고 (13:1-10), 후반부에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나옵니다 (13:11-18).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적기독국가와 적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이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런데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절을 하게하고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표인 '666'을 이마와 오른 손에 받도록 강요합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죽이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는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짐승과 우상에게 절을 하고 짐승의 표를 받게됩니다 (13:8).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세 번째 천사가 그들이 당할 심판과 형벌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는 것입니다. 이는 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포도주로서 독주를 말합니다. 그것을 마신 자는 취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 쓰러지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강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이들이 받은 재앙은 16:2에 나오는 '대접 재앙'입니다. 대접으로 쏟는 것 같이 하나도 남김없이 쏟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조금도 기대할 수 없는 재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불과 유황불 못에 던져져 영원한 고난을 겪게 됩니다 (20:10,15, 사34:9-10, 눅16:23). 거기서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고난을 받습니다. 11절에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는 표현은 고난의 영원함을 강조한 표현이고,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는 표현은 고난의 완전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불택자, 불신자,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자들은 그런 고난을 받게 됩니다.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자들과 함께 세세토록 한순간도 쉼이 없이 고난을 받게 됩니다 (20:10). 영혼이 멸절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고난은 천사와 어린 양 앞에서 받는다고 했습니다. ‘천사’는 구원을 돕는 자들이고 ‘어린 양’은 구속을 이룬 그리스도라는 점에서 그들 앞에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 메시지가 옳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16:21-29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얘기에서 그 번민이 잘 나타납니다. 누가복음16:23-24에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9:48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로마제국 당시에 믿는 자들이 원형극장에서 맹수에게 잡혀 먹히는 모습과 불태움을 당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좋아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구경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들이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사탄을 따른 죄 값입니다.
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적그리스도와 그를 위해 만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 표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적그리스도의 그 어떤 통제와 지시와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그 어떤 미혹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 믿음 지킨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 하나님의 구원승리 찬양을 하게 되고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유황불 못에서 세세토록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13:10). 현재의 삶에서도 인내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인내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사역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일하시길 기다리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말에 박해가 극심할 때의 상황이 요한계시록12-13장에 나와 있습니다. 12장에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나옵니다. 큰 용이 하늘에서 쫓겨나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13장 전반부에 보면 바다에서 나온 10뿔 달린 짐승이 나옵니다. 그 짐승은 몸은 표범같이 생기고 발은 곰같이 생기고 입은 사자같이 생기고 7머리가 있고 10뿔이 달려있는 짐승입니다. 13장 후반부를 보면 땅에서 올라온 2뿔 가진 짐승이 나옵니다. 그 짐승은 어린 양처럼 생긴 짐승입니다. 이 세 짐승 곧 용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극심한 환난의 주체입니다. 12장에 나온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13장 전반부에 나오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 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성도들을 적극적으로 박해합니다. 또한 13장 후반부에 나오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권세를 부여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고 경배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죽입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복종하는 표를 이마와 오른 손에 받게 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매매할 생존권을 박탈시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않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삶에서 극한의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여 시온 산에 서고 구원받은 성도 144,000명이 시온 산에 선 모습이 나타납니다 (20:4). 연이어 3천사가 나오는데, 첫 번째 천사가 심판의 때가 이르렀다고 선포하고, 두 번째 천사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언하고, 세 번째 천사가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 유황불에 들어가 세세토록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에 대한 결론으로 본문 요한계시록14:12의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는 결언이 나옵니다. 이는 종말에 성도들이 극한 고난을 받지만 결국은 성도는 구원을 받아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핍박자들은 비참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인내해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2장에 나온 '큰 용'은 사탄(마귀)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12:9에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계20:2). 13장 전반부에 나온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적기독국가와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단7:17, 23-24). 이 짐승은 적기독국가의 왕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라는 의미로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13장 후반부에 나오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16:13에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3세력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3세력은 12장에 나오는 용과 13장 전반부에 나오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13장 후반부에 나오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14장에 나온 144,000명은 구원받은 자의 총수입니다. 요한계시록7:4에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고 했습니다 (7:9-17). 이는 예수님을 주로 믿어 성령님의 인침을 받은 자로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종말에 사탄의 권세를 받은 적그리스도의 박해가 있고 거짓선지자의 미혹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를 믿는 신실한 성도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때가 차면 예수님이 오셔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계명을 지킨 자들을 하늘로 올려서 구원을 노래를 부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핍박의 주체들인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을 심판하여 유황불이 타는 지옥에 보낸다는 것입니다 (계19:20, 20:10, 21:8). 성도가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과 계명을 지키면서 인내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들에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13:5에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13:7). 종말에 사탄의 사주를 받은 적그리스도의 큰 박해가 있겠지만 42개월만 일할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다니엘과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에 있을 대환난을 '7년 대환난'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7년'은 전반기 '3년 반'과 후반기 '3년 반'으로 나눕니다. 성도가 당하는 환난은 전반기 '3년 반'입니다. 전반기 3년 반 동안 환난을 당한 후에 (정확히는 3년 반인 1,260일에서 30일과 40일을 지난 후) 주님이 오셔서 성도들을 하늘로 올리고 대적자들을 심판합니다. 그 전반기 3년 반이 이 구절에서 말한 '42달'입니다. 물론 이 숫자들은 상징수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기간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고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분명한 것은 대적자들은 하나님이 허락한 42달 동안만 성도를 박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말에 성도들로 하여금 대적자들에게 핍박을 받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핍박으로 참 성도와 불신자를 갈라내고, 대적자들은 심판할 근거를 쌓게 하고, 성도를 연단하여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 목적 하에서 대적자들이 성도들을 박해하도록 허락하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허락한 기간이 있고 하나님의 목적대로 성도들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리는 종말이나 현재가 동일합니다. 전 인류와 개인이 동일합니다. 종말에 성도들이 당할 고난은 '42달'(3년 반)이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가 고난을 당하는 기간은 '70년'이었습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에 있던 서머나교회가 받는 고난의 기간은 '10일'이었습니다. 구약의 룻기서에 나오는 나오미의 가정이 고난을 받는 기간은 '10년'이었습니다.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당한 고난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은 우리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로 끝납니다. 그 기간에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면서 인내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에 대한 선한 목적을 이루십니다 (신8:16, 렘29:11, 욥23:10, 약1:3-4, 벧전1:6-7). 로마서5:3-5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고 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로 승리하길 바랍니다.
3. 주 안에서 죽은 자의 복 (13절)
이 세상은 마지막에 멸망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고 짐승에게 경배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유황불 못에 던져져서 세세토록 고통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은 시온 산에 서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안식을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에서는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은 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자들을 말합니다 (행4:12, 요5:24, 3:16).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성령님의 인침을 받은 자,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를 가리킵니다 (9, 12절, 7:14, 14:1-5). 곧 창세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고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에 가는 자를 말합니다. 2차적으로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자들입니다. 그것은 12절의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는 말씀이 확증시켜 주고 있습니다.
①수고가 그치고 쉬기 때문입니다.
13절 중반절에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섞이지 않은 포도주를 먹게 함 같은 진노의 심판이 임합니다 (10절). 심판은 포도즙 틀을 밟아 그 즙이 말굴레가지 닿고 1,600스다디온까지 퍼진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17-22절). 결국 최후심판을 거쳐 지옥에 보내져 불과 유황으로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됩니다 (10-11절). 그곳에서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함께 고통과 번민을 당하게 됩니다 (20:10, 눅16:19-31). 그들에게는 영원토록 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자는 마치 농부가 곡식을 추수하여 곡식을 창고에 들인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이고 예수님이 친히 목자가 되는 곳입니다. 다시는 죽음이나 질병이나 근심이나 걱정이나 번민이나 슬픔이나 고통이나 배고픔이나 목마름이 없는 곳입니다. 사탄과 대적들의 핍박이 없는 곳입니다. 부패한 죄악의 성품이 없는 곳입니다. 그것들로 인하여 또는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수고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오로지 위로와 만족과 평안과 안식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그곳에 간 자는 모든 수고로움이 그치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7:15-17, 21:4, 22:5).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사탄의 역사와 인간의 죄성과 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하여 그것들과 더불어 싸우느라고 쉴 날이 없었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느라고 짐승(적그리스도) 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으므로 더욱 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죽은 후에는 그 모든 고난이 그치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므로 참된 쉼이 있는 것입니다.
②행한 일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13절 하반절에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행한 일'이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핍박 속에서도 인내로서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일을 가리킵니다 (12절). 그 행한 일이 따른다는 것은 고난 중에도 믿음과 계명을 지킨 행위에 대한 상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성령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자는 천국에 가는데 천국에서는 모두 같은 것이 아니라 차등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이 각기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25:14-30, 눅19:12-27, 단12:3, 고전15:41). 이 세상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느냐에 의해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칭찬과 상급이 결정됩니다 (고후5:10). 그 행위를 기념책에 기록해 두었다가 그 행위대로 상을 받게 됩니다 (말3:16).
첫째,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대로 상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므나장사 비유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눅19:12-27). 우리의 영혼이 거듭날 때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어린아이 상태에서 점점 자라납니다 (벧후3:18). 자라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죄악된 성품을 점점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점점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벧후1:4).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라고 표현했고 (갈4:19),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빌2:12). 신앙인격이 전혀 자라나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갈지라도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고전3:12-13).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쳐 복종시켰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고후5:3).
둘째, 하나님 말씀을 지킨 대로 상을 얻게 됩니다. 천국에서 책망과 상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살려하는 자는 당연히 고난을 많이 겪게 됩니다. 디모데후서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지키는 자는 말씀을 지키느라고 고난당한 것에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상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8:18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 (마5:12, 마19:29, 10:4).
셋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대로 상을 얻게 됩니다. 하늘에서 상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에 대한 여부입니다. 그것은 달란트장사 비유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마25:14-30). 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고한 일은 절대로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고전15:58). 바울은 미래에 하나님께 받을 상을 바라보고 주의 일을 했습니다. 사도행전20:24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고, 디모데후서4:7-8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했고, 빌립보서3:14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70-80년 후에는 풀이 잠깐 있다가 시드는 것처럼 곧 죽게 됩니다 (시90:10, 벧전1:24). 어떤 노력을 해도 개인적인 죽음이든 종말적인 죽음이든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 죽음은 도적같이 생각지 않은 때에 찾아오게 되고 그 죽음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됩니다. 히브리서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은 이 세상에 있을 때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고 그 소망 중에 인내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히11:24-27, 36-38). 이 세상에서는 불신자가 잘되고 신자가 잘못될 때도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가 잘되고 믿음이 있는 자가 잘못될 때도 있습니다 (합1:12-14). 그러나 잠시 잠깐 후면 심판이 있고 그때에는 믿는 자가 복이 있고 믿음을 지킨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깐 있는 복을 따라 살지 말고 영원토록 있는 복을 바라보고 살아야합니다 (벧전1:17). 그래야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4. 인자의 곡식추수 (14-16절)
1-13절은 시온산에 선 144,000의 모습과 말세를 향한 세 천사의 경고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승리모습과 세상의 심판의 경고를 보여준 것입니다. 본절 14-20절까지는 곡식추수와 포도추수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주의 재림 때에 있을 성도구원과 불신자심판을 나타내는 계시입니다. 그중 14-16절은 곡식추수에 관한 내용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가지는 관심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국이 어떠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것들이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반드시 승리를 가져온다는 확신이 있을 때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환난 중에 있는 요한 당시 성도에게 주의 재림에 관한 계시는 큰 확신을 주었을 것이고, 본문의 '곡식 추수' 계시는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①인자 같은 이가 예리한 낫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요한은 인자와 같은 이를 보았습니다. 그는 구름 위에 앉았는데 머리에 금 면류관을 썼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4절에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고 했습니다. '인자와 같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인자와 같은 이’에 해당하는 ‘호모이오스 휘오 안드로푸’(ομοιος υιω ανθρωπου)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like unto the Son of man -KJV, one like a son of man -NIV)로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인 구원자를 말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다니엘7:13-14에 ‘인자 같은 이’가 내려와 세상을 심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인자 같은 이’에 해당하는 ‘케바르 에나쉬’(כבר אנש)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one like the Son of man -KJV, one like a son of man -NIV)로 보이는 자를 말하는데 미래에 보내실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를 말합니다. 본절에서 요한이 본 ‘인자 같은 이’는 다니엘이 본 그 ‘인자 같은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언약적 전승을 반영하여 마지막 때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문에서 '인자와 같은 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구름 위에 있었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 백성들을 이끌기 위해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으로 오실 것과 하나님의 권세(왕권)를 가지고 오실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마16:27, 24:30, 살전4:16, 계1:7). 그리고 또 그가 손에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예리한 낫을 가진 것은 곡식을 거두려는 것인데, 이는 마치 농부가 낫으로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로 이끌기 위해 모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마24:31). '예리한 낫'은 날카로운 낫으로서 (a sharp sickle –KJV), 나뭇가지나 풀뿐 아니라 곡식을 베는 낫입니다 (신16:9, 사18:5). 이는 날카로운 낫으로 거둘 때 한 이삭도 빼놓지 않거 거두는 것처럼 택한 백성들을 모으는 일에 조금도 실수가 있지 않을 것을 암시합니다.
②성전에서 나온 천사가 곡식을 거두라고 했습니다.
한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해 '네 낫을 휘둘러 거루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익었음이로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15절에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고 했습니다. 이 천사는 곡식을 추수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리스도께 전달하는 천사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전(ναος)에서 나온 것은 추수에 대한 명령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게 합니다 (7:15). '곡식'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요4:35-39). 마태복음13:24-30에 가라지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해석하면서 '씨 뿌리는 자'는 인자라고 했고, '밭'은 세상이라고 했고, '추수 때'는 세상 끝'이라고 했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했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마13:37-42).
15절 하반절에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인자 같은 이에게 낫을 휘둘러 거두라고 한 것은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거둘 때가 다 된 것은 곡식이 다 익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곡식이 다 익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성도의 수효가 다 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창세전에 선택했습니다 (엡1:4). 때가 되면 성령님으로 인을 쳐서 구원을 받게 합니다 (계7:3-9). 성령님으로 인 친다는 말은 성령께서 내주하므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확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복음이 전해질 때에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행13:48). 곡식이 다 익었다고 하는 것은 복음이 온 세상에 다 전파되어 택한 백성들이 다 돌아와 그 수가 다 찰 때를 말합니다 (마24:14,31). 그 수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상징수로 말한다면 144,000입니다 (계7:4, 14:1).
둘째, 성도가 정결케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성도가 정결케 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로 이끄십니다. 이는 개인적 정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교회의 정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13장에서 보면 교회가 용으로 상징된 사탄과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로부터 적극적인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박해 가운데서 거짓된 교회와 참된 교회가 나누이고, 참된 교회는 더욱 믿음과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로 인하여 참된 교회는 환난 가운데서 연단을 받아 흠이 없어졌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대환난이 있고, 교회는 그 대환난을 거치면서 (요한계시록에서 제시한 7년 대환난의 일부) 더욱 정결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흠 없는 신부로 만들려고 하는 계획과 섭리에 속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자는 환난 가운데서 더욱 말씀을 지키고 더욱 사명을 철저히 감당하게 됩니다 (단11:35).
③구름 위에 앉은 이가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구름 위에 앉은 이가 낫을 휘두르자 땅의 모든 곡식이 거두어졌습니다. 16절에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고 했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이'는 '인자와 같은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3:12에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했습니다 (눅3:17). 예수님께서 세상 마지막 때에 재림하셔서 가라지는 불태우고 곡식은 곳간에 들이듯이, 불신자는 심판하여 지옥에 보내고 신자는 천국으로 이끄십니다.
마태복음13:24-30에 가라지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집 주인이 밭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곡식이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종들이 집 주인에게 그 가라지를 뽑도록 허락을 받으려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가라지를 뽑을 경우 곡식도 다칠 것을 염려하여 추수 때까지 그냥 두게 했습니다. 추수 때에 가라지는 묶어서 불태우고 곡식은 곳간에 들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라지는 불신자를, 곡식은 신자를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현재 불택자와 택자를 함께 두지만 마지막 심판 때에 불택자는 지옥에 보내고 택자는 천국에 보낼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런 사실은 마태복음25:31-46의 양과 염소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인자가 천사와 함께 영광중에 임할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양은 오른편에 두고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 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하라고 했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마귀를 위해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이는 불택자는 지옥에 가고 택자는 천국에 들어갈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 나라에 이끄시되 해와 같이 빛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의지에 의해 환난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된 환난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주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정결케 된 대로 영광과 칭찬과 상을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낙심치 말고 부지런히 말씀을 지키므로 영적 속성이 자라나야하며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합니다 (눅19:11-27, 마25:14-30).
5. 천사의 포도추수 (17-20절)
14~20절까지는 곡식추수와 포도송이추수에 대한 내용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곡식추수는 주의 마지막 때에 있을 의인(성도) 구원을, 포도송이추수는 마지막 때에 있을 악인(불신자)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어떤 이들은 곡식추수와 포도송이추수를 동일하게 악한 자가 받은 심판으로서 점점 강도 높게 집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tuart, Gaebelein, Petingill, 김재준, 박수암 etc). 그러나 곡식추수와 포도송이추수는 다른 내용입니다. 첫째, 추수하는 일꾼이 다릅니다. 곡식을 수확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인자와 같은 이)이고, 포도를 수확하는 자는 천사입니다. 둘째, 추수하는 배경이 다릅니다. 곡식추수의 '익어‘에 해당하는 '에크세란데'(εξηρανθη)는 수동태로서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해 양육시킴에 대한 상징에 합당한 단어입니다. 포도송이추수의 '익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마산'(ηκμασαν)은 능동태로서 스스로 성숙함에 대한 상징에 합당한 용어입니다. 셋째, 추수의 내용과 결과가 다릅니다. 곡식추수는 곡식을 거두는 것으로만 기록되었지만, 포도송이추수는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틀에 던져져 성 밖에서 밟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①천사가 성전에서 예리한 한 낫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앞에서 나타난 천사와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7절에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고 했습니다. 그 천사는 포도를 추수하기 위해 나온 천사입니다. 14-16절에 나온 '곡식'을 신자라고 한다면, 본절에 나오는 '포도'는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곧 곡식추수는 성도의 구원완성을 의미하고, 포도송이추수는 불의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와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서도 확인됩니다 (사63:2-4, 욜3:13). 예수님이 말씀하신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도 나타납니다 (마13:41-42).
포도송이추수에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포도를 추수하기 위해 천사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곡식추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셨으나 포도송이추수는 천사가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예수님이 직접 거두는 것이고, 불신자는 당신의 것이 아니므로 버려둔다는 관점이 있기도 합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한 알맹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로 인도하시지만 불신자는 유기하십니다. 그렇지만 포도를 추수하는 천사가 성전에서 나온 것은 불신자를 심판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과 실행에 의해 되는 것임을 나타내줍니다. 천사가 추수하는 일을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되는 일입니다.
②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와 포도를 거두라고 외쳤습니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에서 나와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 포도가 있었으니 그 예리한 낫을 휘둘러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했습니다. 18절에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는 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땅에 쏟는 천사로서 심판을 유도하는 천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8:3-5). ‘불을 다스리는 천사’는 제단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순교자들의 기도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6:9절부터 보면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다가 죽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서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6:9-10, 8:3-5). 그들은 자신들을 신원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곳에서 천사가 나와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소리친 것은,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이 제단 아래서 호소하는 순교자들의 기도를 이룬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을 신원하기 위해 악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단에서 나온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 한 말은 '포도가 다 익었으니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것이었습니다. '포도'는 불신자 곧 악인을 가리킵니다. 가을이 되면 곡식도 익고 포도송이도 무르익는 것처럼 말세에는 신자도 익고 불신자도 익습니다. 선한 사람은 더욱 선하게 되고, 악한 사람은 더욱 악하게 됩니다. 의인은 더욱 의로워지고 죄인은 더욱 악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22:11에는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포도가 익을 때 포도색깔이 붉어지다가 검어지듯이 악인들도 악에 악을 더하여 죄가 관영해집니다.
세상의 악독이 노아시대처럼 하늘에 사무치게 됩니다 디모데후서3:1-5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가치관 자체가 무너집니다. 이사야5:20에 "악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했습니다.
③ 천사가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었습니다.
포도를 거두기 위해 나온 천사가 낫을 휘둘러 포도를 거두어 그 포도송이들을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포도주 틀이 성 밖에서 밟혔는데 그 피가 말굴레까지 닿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습니다. 19-20절에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고 했습니다. '성'(城)은 천성의 새 예루살렘성에 대한 상징으로 구원받은 무리들이 있는 곳입니다 (11:1-2, 20:9, 21:2,10, Murraay, Charles). ‘성 밖’은 새 예루살렘 밖 곧 이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무리가 거하는 곳을 가리키므로 ‘성 밖에서’라는 말은 구속받은 성도의 무리에 들지 못하고 멸망 가운데 처해 있게 됨을 말합니다 (Johnson, Charles).
구원받는 무리에 들지 못한 이 세상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혹 지상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한 자들이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마치 포도송이를 포도즙 틀에 넣고 밟으면 그 포도즙이 흐르는 것처럼 전쟁의 심판을 통해 모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죽은 사람들의 피가 말굴레까지 닿고 1,600스다디온까지 퍼진다고 했습니다. 이는 16:16의 아마겟돈 전쟁을 앞당겨 말한 것입니다 (16:12-20). '굴레'에 해당하는 ‘카리노스’(χαλινος)는 ‘억제’ ‘머리굴레’의 뜻으로서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가 말굴레까지 닿았다는 것은 피가 말굴레가 있는 말의 목이나 머리에까지 찼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스타디온'(σταδιον)은 거리를 측정하는 단위로서 '1,600스다디온'은 320km입니다. 이는 유다의 남북길이와 같습니다. 상징적으로 보면 1,600=4²×10²으로서 세상에 대한 만수들입니다 (7:1, 20:8). 곧 온 세상 전체를 가리킵니다.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피가 강을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입니다.
<結言>
일시적으로 악인이 의인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결국 의인이 승리합니다. 악인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포도주 틀이 성 밖에서 짓밟혔습니다. 악인들에게 재앙이 임하고 악인들에게 재앙이 임할 때 의인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17:14에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연단을 받는 기간 동안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14:12). 그 기간에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영혼이 더욱 자라나 익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