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한계시록16:1-21
<題目> 일곱 대접 재앙
<序言>
16장은 7대접 재앙이 나옵니다. 이 재앙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3가지 큰 재앙은 7인 재앙, 7나팔 재앙, 7대접 재앙입니다. 7인 재앙(6장)은 7나팔 재앙(8-9장)으로 발전하고, 7나팔 재앙은 7대접 재앙(16장)으로 발전합니다. 이 일련의 재앙들은 성도구원이라는 대주제 아래서 본다면, 첫 번째 재앙(7인 재앙)과 두 번째 재앙(7나팔 재앙)에서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이 13장에서 최절정에 이르는 고난을 받게 되지만 14장에서 승리의 표상으로 시온산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없어진 이 세상은 세 번째 재앙(7대접 재앙)이 쏟아져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7대접 재앙은 마지막에 있을 이 세상 심판에 대한 절정입니다. 본장의 내용구조는 첫 번째 대접 재앙(1-2절), 두 번째 대접 재앙(3절), 세 번째 대접 재앙(4-7절), 네 번째 대접 재앙(8-9절), 다섯 번째 대접 재앙(10-11절), 여섯 번째 대접 재앙(12-16절), 일곱 번째 대접 재앙(17-21절)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첫 번째 대접 재앙 (1-2절)
7대접 재앙은 7나팔 재앙과 비교해 볼 때 전개방법과 순서와 지역적 대상이 같으나 (땅-바다-강-천체-무저갱-유브라데-하늘 etc) 몇 가지 다른 면들이 있습니다. 첫째, 강도가 다릅니다. 나팔 재앙은 강도와 범위가 제한적이나, 대접 재앙은 막바지에 이른 전면적인 재앙으로서 강도가 더욱 세고 범위가 전 우주적입니다. 둘째, 대상이 다릅니다. 나팔 재앙은 성도들을 포함하고 있으나, 대접재앙은 땅에 남아있는 불신자를 주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셋째, 목적이 다릅니다. 나팔 재앙은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내는 것처럼 성도와 불신자를 갈라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성도를 연단시켜 구원의 성숙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대접 재앙은 성도를 핍박했던 불신자 심판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본절은 그 7대접 재앙의 첫 번째 재앙에 관한 내용입니다.
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① 땅에 악독한 종기가 발생하는 재앙입니다.
성전에서 대접을 쏟으라는 음성이 났습니다. 1절에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진노의 대접을 쏟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입니다. 그래서 15:8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겔44:1-2). 곧 성전에서 진노의 대접을 쏟으라 명령한 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재앙의 근원이 이 세상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재앙에 대한 심부름은 7천사가 하는 것이지만 재앙의 주체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심판의 집행자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려질 것입니다. 한편 '인(印)'은 재앙의 계획을 시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나팔'은 재앙에 대해 경고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대접'은 재앙을 남기지 않고 모두 심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첫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았습니다. 2절에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고 했습니다. 대접에 담긴 재앙을 땅에 쏟으니 악하고 독한 종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났다고 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는 13장에서 짐승들(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의 박해가 있을 때 그들에게 굴복한 자들로서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7장에서 성령님의 인을 받은 신자는 12장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14장에서 부활로 승리했습니다. 땅에 남은 자들은 13장에서 짐승들의 핍박에 굴복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인 곧 성령님의 인을 받은 자는 사탄의 인(666)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창세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고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었고 성령님이 내주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진리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영적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 자는 근본적으로 사탄의 인을 받아 사탄에게 속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여 사탄의 사주를 받은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표를 받지 않도록 해주십니다. 곧 대접 재앙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종말에 있을 이 재앙이 온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 번째 천사가 재앙이 담긴 대접을 쏟자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났습니다. 2절에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고 했습니다. '종기'(헌데, 독창)는 헬라어로 '헬코스'(ελκος)인데 문자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졌던 질병을 살펴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구약성경은 LXX). 이 질병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여섯 번째로 내렸던 재앙인 악성 종기이고 (출9:10), 나병환자들에게 나타난 종기이고 (레13:18), 히스기야왕이 죽게 되었을 때 나타났던 상처이고 (왕하20:7), 욥이 걸렸던 종기입니다 (욥2:7). 로마제국의 네로왕 시대에도 이런 독창이 있었고, 수리아의 안티오커스나 헤롯이나 안디바도 이런 병으로 죽었습니다 (행12:23 -벌레에게 먹혀 죽음). 성경에서 이런 독창은 징계의 방편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신28:35).
성경에서 사용된 종기가 죽음을 가져오게 하는 질병들이라는 점에서 보면 종말에 있을 종기는 과학의 의술이 감당할 수 없는 질병일 것입니다. 과거 나병이나 흑사병(페스트)이나 에이즈나 코로나 같은 종류일 것입니다. 종말에는 그 보다 훨씬 더 무서운 질병이 온 땅에 임할 것입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을 예방하는 백신이나 치료하는 의약이 없는 질병으로 재앙을 당할 것입니다.
② 사상이 파괴되는 재앙입니다.
비유적으로 볼 때 '종기'는 악영향을 주는 그릇된 사상이나 이념이나 교훈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악독한 사상도 심판의 방편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과거 막시즘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미래에는 프리메이슨(Freemason) 사상이나 뉴에이지(New-Age) 사상이나 라엘(Rael) 사상이나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사상 같은 사탄적 교훈들이 영혼들을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바울을 이들을 가리켜 악성종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2:16-18에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악한 교훈은 악성 종양과 같아서 그 폐해가 크고 전염된 자는 고침받기 힘듭니다.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옳지 않은 사탄적인 교훈에 대해서는 동조할 수 없습니다.
요한 당시 황제숭배에 동참하는 자들은 황제숭배에 동참해야 그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동참을 했습니다. 그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려면 황제를 위해 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분위기는 황제를 경배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자를 오히려 멸시하고 무시했을 것입니다. 미래에도 적그리스도(짐승)의 우상에게 절하고 그를 복종(짐승의 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관념은 현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사상을 가진 자들이 지혜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자유와 교만을 부러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합니다.
대접 재앙은 짐승을 위해 만든 우상에게 절하는 자, 짐승의 표 666을 받은 자에게 내립니다. 현재에 믿지 않는 자들은 자만하고 자긍하지만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고 재앙을 받게 됩니다. 대접 재앙이 보여주는 것은 우상숭배자들이 평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보기에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만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자유와 평안과 부요와 권세를 부러워하지 말고 경건하게 살아야합니다.
2. 두 번째 대접 재앙 (3절)
'인(印)'은 재앙의 계획을 시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나팔'은 재앙에 대해 경고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대접'은 재앙을 남기지 않고 모두 심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대접 재앙은 세세토록 지은 모든 죄에 대해 모두 쏟아 붓는 긍휼이 없는 재앙입니다. 마태복음24:22에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7대접 재앙 구조는 앞에 나왔던 7인 재앙(6장)과 7나팔 재앙(8-9장)과 마찬가지로 4+3의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는 땅과 바다와 강과 천체에 내리는 재앙이 나오고 (1-9절), 다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까지는 사탄과 유브라데와 공기에 내리는 재앙이 나옵니다 (10-21절).
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① 바다가 피로 변하는 재앙입니다.
대접 재앙을 맡은 첫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니 땅에 독종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고 그로 인하여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3절에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과 같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하수에 지팡이를 치자 물이 피로 변했고 고기들이 다 죽고 하수에서는 악취가 났습니다 (출7:17-21). 그리고 7나팔 재앙 중 두 번째 재앙과도 같습니다. 두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계8:8-9). 그런데 그 대상이 애굽에 내린 재앙은 극히 부분적이었고 나팔재앙은 ⅓이었으나 본문의 대접재앙은 전면적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전 세계의 바닷물이 피로 변하고 그로 인하여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게 될 것입니다. 이는 상징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일어날 재앙입니다. 그 가능성은 애굽의 하수가 실제 피로 변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가 어떤 형태로 파괴될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적조현상이나 화산활동 등 자연적 재앙일 수도 있고, 오염이나 전쟁 중 사용되는 핵무기 등 인위적 재앙일수도 있고, 초자연적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관련성구 8:8-9에 보면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두 번째 나팔 재앙의 내용입니다.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화산이나 핵무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거나 결과적으로 바닷물이 죽은 자의 피같이 응고되고 썩어 악취가 나면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게 될 것입니다.
② 윤리가 파괴되는 재앙입니다.
상징으로 볼 때 '바다'는 문명과 문화에 대한 상징입니다 (계17:15). 당시 로마제국은 육로로 세계를 정복했지만 로마제국의 심장부는 지중해였습니다. 우리는 로마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회교도들과 게르만족의 침략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 회교국들에 의해 지중해를 빼앗겼다는 사실입니다. 지중해는 모든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바다가 파괴되어 생물이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은 의지하던 풍요의 장소가 황폐가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덕과 윤리입니다. 국가 공동체가 도덕성을 잃게 되면 망합니다. 마지막에는 세상에 선한 도적적 윤리가 없어질 것입니다. 세상이 정직과 정의와 선과 사랑이 없어져 살수 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져 사회의 희망이 끊어질 것입니다.
'모든 생물' (πασα ψυχη ζωης)은 직역하면 '모든 살아 있는 영혼'입니다 (every living soul –KJV, every living thing -NASB, NIV). 의미상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죽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지만 영적인 부분에 대한 이중적 암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 모든 영혼이 황폐화될 것입니다. 전에 중국에서 일어났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한 부랑자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한 가정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집에는 마침 중학생 아이의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중학생이 구걸하는 부랑자를 구타했습니다. 이 부랑자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돈이 없는 것을 알고 그를 치료해주지 않았습니다. 부랑자는 시장 집 앞에 가서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문전박대였습니다. 시장이 아침에 나와 보니 쓰러져있었습니다. 시장은 사람들을 시켜 다른 곳에 버리게 했습니다. 결국 부랑자는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주요한 도덕이 파괴되어 사는 것이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인간으로서 가장 마지막에 속한 악한 행동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폭행하여 죽자 토막을 내어 냉장고에 보관해오다가 잡힌 경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목사 부부가 딸을 폭행하여 죽은 뒤 방치해 두었다가 붙잡혔습니다. 부모가 그렇고 목사가 그렇다면 기본적 윤리가 다 없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갈수록 더욱 도덕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야수의 사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살지 않는 공동체는 외부적인 조건을 잘 갖추었다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스스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행복한 것 같지만 행복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는 믿는 자들보다 세상 사람들이 더 행복해보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결코 믿는 자들보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풍요로운 것 같아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고난을 받는 것 같아도 그 속에 위로와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 고난은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풍요와 권세를 부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3. 세 번째 대접 재앙 (4-7절)
6장에는 7인 재앙이 있었고, 8-9장에는 7나팔 재앙이 있었습니다. 16장은 7대접 재앙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인 재앙과 나팔 재앙은 성도와 불신자가 같이 경험하는 재앙이고, 대접 재앙은 불신자들만 경험하는 재앙입니다. 인 재앙과 나팔 재앙은 7년 대환난 전반기에 있을 재앙이고, 이 대접 재앙은 7년 대환난 후반기에 있을 재앙입니다. 곧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 후에 있을 재앙입니다. 대접재앙은 인류에게 있어서 마지막 재앙으로서 (15:1).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쏟는 긍휼 없는 재앙입니다 (16:1). 대접 재앙 중 첫 번째 재앙은 땅의 사람들에게 종기가 나게 하는 재앙이었고 (1-2절), 두 번째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습니다 (3절). 세 번째 재앙은 강과 샘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입니다 (4-7절).
4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① 강과 물의 근원이 피로 변하는 재앙입니다.
대접 재앙을 맡은 세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니 강과 물의 근원이 피로 변했습니다. 4절에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첫 번째 내린 재앙에서는 물에서 악취가 난다고만 했고 (출7:17-21), 나팔재앙 중 세 번째 재앙에서는 ⅓이 쑥같이 쓰다고만 했으나 (계8:10-11), 이 재앙에서는 전체가 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물의 근원이 피로 변한 것은 목마름이나 굶주림의 고통을 넘는 죽음의 고통 수준입니다. 마실 물도 없고 곡식을 재배할 물도 없으니 땅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과 사람에게 죽음의 고통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엔 사람들은 목말라 견디다 못해 그 피를 마시고 죽어갈 것입니다 (시78:44). 이는 성도들을 박해한 당연한 보응입니다.
5절에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고 했습니다. '물을 차지한 천사'는 물을 주관하는 천사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천사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자연계의 일부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7:1에는 바람을 다스리는 천사가 나오고, 14:18에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나옵니다. 본문의 '물을 차지한 천사'는 물을 다스리는 천사입니다. 그 천사가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을 대행하면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고 했습니다. 영원자존하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심판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1:8, 11:7).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이 정당하고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선지자와 성도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6절에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와 성도들이 짐승(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매매를 하지 못하게 했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와 성도를 부당하게 핍박하고 살해했으므로 그들도 마땅히 그 보응으로 피를 마시며 죽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합니다. 그들을 통해 교회를 연단시키기는 했으나 그 목적을 다 이룬 다음에는 그들을 그 죄목으로 완전히 심판하는 것입니다. 종말에 뿐 아니라 전 세기를 걸쳐 하나님께서 보여준 모습입니다. 대선지서의 공식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연단시키기 위해 악의 무리들의 핍박을 허락하시기는 하지만 성도에 대한 목적을 이룬 다음에는 반드시 그 무리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 주변 강대국이 공격하는 것을 허락하여 이스라엘을 돌이키게 하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에 대해 자기들 욕망대로 행한 죄를 물어 심판합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근실히 초달하고 난 후에는 회초리를 부러뜨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7절에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물을 차지한 천사'들의 소리에 '제단'에서 화답한 것입니다. '제단'은 박해로 순교한 자들이 기도하는 곳입니다. 6:9-11에 보면 순교자들은 큰 소리로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호소하고,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8:3-4에는 그 응답의 성격으로 나팔재앙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나팔 재앙으로 인하여 그 수가 다 찬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대접 재앙으로 박해자들이 완전한 심판을 받는 것을 보고 그 심판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 천사들이 심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자 그들도 그 찬양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대해 찬양을 한 것입니다.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행한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는 반드시 위로를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공의의 속성이 보장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다가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현재 악인들이 잘되고 즐기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② 말씀이 파괴되는 재앙입니다.
상징으로 볼 때 '물'은 말씀을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암8:11, 엡5:26). 참선지자는 쓴 물을 달 물로 만들지만 거짓선지자들은 단 물을 쓴 물로 만듭니다 (출15:25, 사5:20). 예수님이 말세에는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마24:4). 그래서 점점 영적 기근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아모스8:11-13에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6:6에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고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영을 살리는 말씀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제사장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자를 보고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것처럼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눅10:30-32). 도리어 힘을 더 잃게 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중의 제사장이 솔로몬 왕을 찾는 술람미 여인을 왕에게 인도해 주지 않고 도리어 술람미 여인의 옷을 빼앗은 것처럼 영적으로 해를 줍니다 (아5:6-7). 그런데 마지막 때에는 아예 말씀 자체를 얻을 수 없으니 도무지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야말로 긍휼 없는 재앙인 것입니다.
동물에게 먹을 것이 제공되지 않는 것처럼 절망적인 경우는 없습니다. 영을 가진 사람에게 영적 양식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절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고 그에 대한 성령님의 감동이 없다면 자신들의 죄를 깨달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혼이 파멸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생명의 양식이 제공되기를 기도해야합니다 (마4:4).
4. 네 번째 대접 재앙 (8-9절)
7대접 재앙 중 첫 번째 재앙은 땅의 사람들에게 종기가 나게 하는 재앙이었고 (1-2절), 두 번째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고 (3절), 세 번째 재앙은 강과 샘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습니다 (4-7절). 이제 네 번째 재앙은 태양이 불로 뜨거워지는 재앙입니다.
8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① 해가 불로 변하는 재앙입니다.
대접 재앙을 맡은 네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니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습니다. 8-9절에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고 했습니다. 나팔 재앙에서는 해가 빛을 잃고 천계의 ⅓이 어두워졌습니다 (8:12). 그런데 대접 재앙에서는 해가 뜨거워져서 사람들을 불로 태운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존층파괴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천계의 변동일 수도 있고, 핵무기 폭발로 공기가 뜨거워지는 현상일 수도 있고, 해의 열기가 유황불 내려오듯이 내려오는 초자연적인 재앙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천계의 파괴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9절에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히 안드로포이'(οι ανθρωποι)입니다. 관사가 붙어 있어서 직역하면 '그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2절에 나온 짐승(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입니다. 2절에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재앙을 받아 고통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재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비방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대적합니다. 교만하고 완악하고 패역한 불신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요한의 언어로 말한다면 성령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자, 어린양의 피에 씻지 않은 자, 땅에서 구속함을 받지 않은 자, 예수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자,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곧 거듭나지 않은 자, 구원받지 못한 자,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않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신자들이 짓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원치 않으면서도 연약하여 어쩔 수 없이 범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하는 일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교회와 성도를 핍박한 자들입니다. 의식적으로 타락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사실상 회개하는 은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12:31-32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히6:4-6). 그래서 요한일서5:16에는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은 스스로 심판 받을 자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진노의 포도주, 섞은 것이 전혀 없는 포도주, 가득히 부은 포도주'로 묘사된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계14:10). 하나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재앙을 받으면서도 의식적으로 대적하는 모습은 그들이 심판을 받아 마땅한 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하나님은 불택자들을 심판할 때 그 죄를 밖으로 드러내어 확인시켜서 심판합니다. 로마서1:24-25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2:11-12에는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때에든지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올 때에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자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는 스스로의 행동을 따라 나누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과 같이 되지 않게 된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② 진리가 파괴되는 재앙입니다.
상징으로 볼 때 해는 진리를, 달은 교회를, 별은 사역자를, 수목은 백성들을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시119:105). 마지막 때에는 진리가 어두워지고 변질되는 때입니다. 사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요한복음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요한복음8:45-47에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그들에게 주어진다 해도 그들은 그것을 돼지가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밟아버리는 것 같이 하고 맙니다 (마7:6).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사탄적이고 세속적이고 육체적이고 동물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립니다. 로마서1:21-23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자는 진리가 없으므로 인하여 고통을 당합니다. 이어서 로마서1:24-27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이어서 로마서1:28-32에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자가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총과 궁극적 구원의 진리를 귀하게 여기고 진리를 생명 내놓고 세워가야 합니다.
5. 다섯 번째 대접 재앙 (10-11절)
7대접 재앙 중 첫 번째 재앙은 땅의 사람들에게 종기가 나게 하는 재앙이었고 (1-2절), 두 번째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고 (3절), 세 번째 재앙은 강과 샘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고 (4-7절), 네 번째 재앙은 태양이 사람들을 태우는 재앙이었습니다 (8-9절). 다섯 번째 재앙은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는 재앙입니다 (10-11절).
10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①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는 재앙입니다.
10-11절에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니 짐승의 왕좌와 나라가 곧 어두워졌습니다. ‘짐승의 왕좌’와 ‘그 나라’는 적그리스도가 위치한 핵심 주거지와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지배영역 안에 있는 온 세상이 어두워집니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문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재앙에서 내린 종기가 추가되어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자연오염으로 공기가 어두워질 수도 있고, 핵무기 폭발의 운(雲)으로 공기가 어두워질 수도 있고, 태양이 빛을 잃으므로 어두워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재앙은 애굽에서 아홉 번째 내린 재앙과 같습니다 (출10:21-23). 그 재앙은 애굽 왕 바로의 권세와 그 나라에 내린 재앙이었습니다. 요한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의 권세와 그 나라에도 동일한 재앙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는 모든 권력의 중심이 되어 나라 전체에 우상숭배를 강요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는 종말에 적그리스도의 정권에 어두움의 재앙을 내려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모든 세상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모든 세상 사람들은 혹독한 고난과 고통을 겪어야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11절에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9절에 나오는 네 번째 나오는 재앙을 받을 때에도 태양의 불에 태워지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재앙에서 어두움으로 혀를 깨무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어두움으로 인해 아픈 것뿐 아니라 첫 번째 재앙 때 나온 종기로 인하여 더욱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대접 재앙들이 첫 번째에서 일곱 번째 재앙까지 있는데 그 재앙들이 시간적으로 차이를 두고 순서대로 내려지는 재앙이라고 하기 보다는 모든 재앙이 종합적으로 임한다고 보아야합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재앙이 임할 때에 적그리스도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그 재앙들로 인하여 고통이 느껴질수록 하나님을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욕하고 대적할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심판받아 마땅한 대상들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롬2:5). 어느 때에나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이 있을수록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린 줄 알고 하나님께 비방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마12:31-32, 요일5:16).
② 사고가 파괴되는 재앙입니다.
대접 재앙은 긍휼이 없는 심판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는 때가 아닙니다. 구원하기로 선택한 자는 이미 다 구원을 받은 때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를 베풀지 않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서도 믿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영적 흑암입니다. 이사야44:18에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1:21-23에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분별력이 없어지므로 고통을 당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도 없고 성령님도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옳은 가치관이 없고 옳은 세계관이 없습니다. 무엇을 목적으로, 무엇을 위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하는지 판단기준이 서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할지 모릅니다. 오로지 자신의 육적 생리를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그 결과는 정신적인 분열과 우울과 불안과 혼돈입니다. 그 정신적인 황폐함은 삶에 많은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어느 때에나 마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하지 않는 자는 곤고한 가운데 빠지고 그 마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풍요 가운데 있게 됩니다. 예레미야17:5-8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사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하고 자부심으로 여겨야합니다.
6. 여섯 번째 대접 재앙 (12-16절)
7대접 재앙 중 첫 번째 재앙은 땅의 사람들에게 종기가 나게 하는 재앙이었고 (1-2절), 두 번째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고 (3절), 세 번째 재앙은 강과 샘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고 (4-7절), 네 번째 재앙은 태양이 사람들을 태우는 재앙이었고 (8-9절), 다섯 번째 재앙은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는 재앙이었습니다 (10-11절). 여섯 번째 재앙은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 재앙입니다 (12-16절).
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①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 재앙입니다.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으니 유브라데 강이 말라 동방에서 왕들이 올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개구리 같은 세 영이 온 천하 왕들을 꾀어 전쟁을 위해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모이게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에 있던 기독교인들은 온 천하의 왕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 모여온다는 말씀을 듣고 한편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이 위로와 격려와 안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첫째, 유브라데강 물이 말랐습니다. 12절에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유브라데'(Euphrates)는 이스라엘과 이방국가의 경계였습니다 (창15:18, 수1:4, 신1:7). 그러나 본문에서는 로마제국과 동방국가들 간의 경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으니 강물이 말랐습니다. 그 유브라데강 물이 마르자 동방으로부터 왕들이 올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당시 유브라데강 동쪽에는 우수한 유목민족인 파르티아(Parthians)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파르티아군은 유브라데강에서 인더스강까지 전역을 정복하였을 정도로 위용이 있는 군대였습니다. 파르티아군은 터키(튀르키예)제국이 가로막고 있어서 서쪽으로 진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터키제국이 가로막지 않게 되어 그들이 침략해온다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당시 자살했던 네로황제가 다시 살아나 동방에서 파르티안군을 이끌고 유브라데강을 건너 로마제국을 침공할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Sibylline Oracles). 그런 배경들 때문에 파르티아군대가 유브라데강을 건너 로마를 침공할 것에 대한 내용으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 국가나 게르만 민족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한이 말하려는 것은 종말에 마지막 때에 대 결전을 위해 전 세계의 주권자들과 그 군대들이 모일 것에 대한 상징일 것입니다.
둘째,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천하 임금들을 모았습니다. 13-14절에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고 했습니다. '개구리 같은 영'은 '귀신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의 영’을 개구리 같은 영이라고 한 것은 악령의 성격을 말하는 별명입니다. 개구리는 애굽에서는 신성시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부정하게 생각했습니다 (레11:10-41). 개구리는 더러움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악한 영들의 성격을 말할 때 사용되는 동물입니다. 귀신과 마귀와 사탄은 죄를 짓게 하고 추악한 말과 행동을 하게하고 쾌락과 향락을 추구하게 하기 때문에 더러운 영입니다 (막1:23, 3:11, 5:2).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데 그들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라고 했습니다. '용'은 사탄을 가리키고 (12:3,9),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바다에서 나온 짐승으로서, 용의 주장을 받는 적기독국가와 그 왕 곧 적그리스도를 가리키고 (13:1-10), '거짓 선지자'는 어린 양 같이 두 뿔을 가진 땅에서 올라온 짐승으로서, 적그리스도의 사주를 받아 사람들을 미혹하여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게 하고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게 하는 거짓그리스도들와 거짓선지자들을 말합니다 (13:11-17). 곧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에게서 나온 영이 연합하여 온 세상의 왕들을 꾀어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22:19-23에 보면 거짓말하는 영이 선지자의 입에 들어가 아합왕을 꾀어 전쟁을 일으킨 역사가 있었습니다 (마24:24참조).
한편 더러운 영들이 온 천하 왕들을 모으는 수단은 ‘이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을 전쟁을 위해 모은다는 것입니다. 그 이적은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이적일 것입니다 (13:13). 그 이적은 예언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가 되게 하는 것 같은 두 증인의 이적을 모방한 이적일 것입니다 (11:6). 하지만 그것은 생명을 살리려는 두 증인의 이적과는 달리 미혹하려는 이적입니다 (11:13).
셋째, 왕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 아마겟돈으로 모였습니다. 16절에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했습니다. '아마겟돈'(Αρμαγεδων)은 히브리어 '하르 메기돈'(הר מגדון)은 '하르'(작은 산, 언덕)와 '므깃도'(지명 이름)의 합성어로서, 므깃도 산(언덕)을 말합니다. 그곳은 갈멜산 동북쪽 경사면에 있는 나사렛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지점, 곧 이스르엘 계곡의 서쪽 경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므깃도는 평평한 언덕으로 이스르엘 평원에 있습니다. 그 곳은 애굽에서 메소포타미아로 통하는 주요 간선도로상에 있어서 두 무역로가 교차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가나안 왕 야빈과 장군 시스라가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했다가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패배한 곳입니다. 시스라가 야엘의 장막으로 도망했다가 야엘에 의해 말뚝으로 죽임을 당한 지역입니다 (삿4:15-24, 5:19). 또 애굽왕 바로느고가 앗수르왕을 치고자 하여 올라왔을 때 요시야가 그를 방비하다가 패전하여 살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왕하9:27, 23:29, 대하35:22). 그 후에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프랑스 나폴레옹까지 끊임없이 전쟁의 격전지로 사용된 곳이었습니다. 팀 라헤이(Tim LaHaye)에 의하면 나폴레옹은 그곳을 보고 전 세계 군대들이 싸우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은 유대인에게나 현대 종말론을 연구하는 자들에게나 전쟁의 장소 곧 최후의 격전지로 상징되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전쟁을 문자적인 해석을 중시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날 중동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욜3:2, 슥14:2下참조). 오늘날 중동이 석유생산 중심지로서 그리고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최대 분쟁지라는 점은 그 견해를 존중하게 합니다. 그러나 상징의 관점으로 본다면 구체적이 장소를 초월하여 인류의 종말을 가져오게 하는 최종적인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아마겟돈 전쟁은 전 세계적인 마지막 전쟁을 상징으로 말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의 성격을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하나님의 교회와 적그리스도(짐승)의 군대와 전쟁으로 봅니다 (Mounce, Johnson). 그것은 유브라데 강이 이스라엘과 이방과의 국경이라는 점, 아마겟돈(므깃도 산)이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군을 물리친 곳이라는 점, 요한계시록19:19-21과 연결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욜3:12). 그렇지만 이 전쟁의 성격을 하나님의 백성과 적그리스도의 군대로 단정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유브라데 강이 항상 이스라엘의 경계가 아니었고, 아마겟돈(므깃도 산)이 자주 이스라엘이 이방을 물리친 곳이 아닙니다. 요한 시대의 배경을 감안한다면 유브라데 강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경계보다는 로마제국의 경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마겟돈은 역사 전체를 볼 때 단순히 전쟁의 격전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19:19-21의 내용이 본 구절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과 적그리스도의 군대와의 전쟁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주는 구절이라 단정할 수는 없게 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끼리의 전쟁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런 결과를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7대접 재앙은 기본적으로 모두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곧 불신자들이 당할 재앙이라는 암시가 배경이 되어있습니다 (2,10절).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적그리스도의 군대와의 전쟁은 성경 내용으로 보아 '아마겟돈 전쟁'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곡과 마곡 전쟁'의 성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7-10). 여러 정황들을 종합하면 '아마겟돈 전쟁은 로마제국과 동방국가들의 전쟁이 상징하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세상 열국들 간의 전쟁, 곧 불신 군대들끼리의 전쟁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전쟁은 불신세상의 전면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② 신의가 파괴되는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팔재앙에서 보여주었듯이 유브라데 강이 상징하는 경계를 막고 있을 때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경계를 없애고 개구리 같은 영들의 활동을 허락하자 그 영이 세상 주권자들을 격동시켜 전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서로 망하게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나 개구리 같은 영이 역사할 때 싸움과 다툼과 멸망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구리 같은 영'의 특징입니다.
첫째, 기본적으로 가진 성품은 더러움입니다. 개구리는 양서류이기 때문에 더럽습니다. 개구리 같은 영은 더러운 생각과 더러운 말과 더러운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개구리 같은 영에게 미혹 당하는 자는 더러운 삶을 삽니다. 유다서1:4에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롬13:13-14).
둘째, 역사하는 목적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개구리 같은 영은 서로 의심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싸우게 하여 결국 서로 망하게 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기드온에게 70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첩에게서 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비멜렉이었습니다. 그는 세겜 사람들과 뜻이 잘 맞아서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다 죽이고 세겜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요담은 도망을 치면서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을 사르고 세겜 사람에게서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라고 하면서 도망을 쳤습니다. 처음에는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이 잘 지냈지만 나중에 악신이 역사하여 서로 의심이 생기고 심한 질투심으로 결국 서로가 서로를 해쳐서 함께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비멜렉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고 소년의 칼에 찔려죽었습니다 (삿9:21-57). 개구리 같은 영에게 미혹 된 자는 항상 분노하고 싸우려하고 죽이려합니다 .
셋째, 역사하는 수단과 방법은 거짓입니다. 열왕기상22:19-23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합왕은 전쟁에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참선지자였던 미가야는 전쟁에 가면 죽게 된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거짓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전쟁에 나가면 승리하게 되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하는 영이 그 선지자들에게 들어가 거짓을 말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합은 전쟁에 나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개구리 같은 영은 사람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다고 하고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길 수 있다고 하고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믿게 합니다. 그래서 그 영에 미혹된 자들은 한결같이 욕망을 이루기 위해 행동합니다. 마치 여름밤에 개구리 떼가 개굴개굴 울어대는 것처럼 집단적으로 발광합니다. 그들은 욕망을 이루는 것이라면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지 못하고 함께 행동합니다.
15절에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도둑같이 온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생각지 못한 때에 올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살전5:2, 마24:42-44, 롬13:11-12).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우리에게 삶의 결산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은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혀주신 의를 잘 지켜야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을 양보하지 말고 그의 계명인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합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13:13-14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7. 일곱 번째 대접 재앙 (17-21절)
7대접 재앙 중 첫 번째 재앙은 땅의 사람들에게 종기가 나게 하는 재앙이었고 (1-2절), 두 번째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고 (3절), 세 번째 재앙은 강과 샘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고 (4-7절), 네 번째 재앙은 태양이 사람들을 태우는 재앙이었고 (8-9절), 다섯 번째 재앙은 나라가 어두워지는 재앙이었고 (10-11절), 여섯 번째 재앙은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 재앙이었습니다 (12-16절). 일곱 번째 재앙은 공중에서 우박이 내리는 재앙입니다 (17-21절).
대접 재앙은 본문의 일곱 번째 재앙으로 끝이 납니다. 대접 재앙은 대환난의 후반기에 있을 재앙으로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표현으로는 '환난 후'에 있을 재앙입니다 (마24:29).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가 마치는 마지막 재앙입니다 (15:1). 대접 재앙은 아무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내리는 재앙입니다.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을 따르던 자들로서 불택자들에게 내리는 재앙입니다. 2절에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접 재앙을 받은 자들은 재앙을 받을수록 하나님을 더욱 훼방합니다. 9절에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고 했고, 11절에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했고, 21절에도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고 했습니다.
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① 공중에서 우박이 내리는 재앙입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대접을 공기에 쏟을 때 성전 보좌로부터 '되었다'는 큰 음성이 났습니다. 17절에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되었다'(γεγονεν)는 '성취하다' '완성하다'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보좌에서 ‘되었다’는 큰 음성이 난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든 재앙이 내려졌음을 의미합니다. 일곱 번째 대접 재앙으로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에 의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무리들에 대한 진노를 다 쏟으므로 마음의 흡족하다는 뜻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에스겔5:13에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와 우박과 지진이 있었습니다. 18절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고 했고, 21절에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니 공중에서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있었고 무게가 1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우박'은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대적에게 심판 내리실 때 사용된 것입니다 (수10:11). 그런데 마지막에 있을 우박은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무게가 1달란트나 됩니다. '한 달란트'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는데 많게는 100파운드(34kg)입니다. 사람들은 그 우박으로 죽게 되고 건물은 파괴되게 됩니다. 이는 천재지변으로 지상의 피조세계가 파국을 맞게 됨을 표현 것입니다.
그리고 성이 무너지고 섬과 산악이 없어집니다. 19-20절에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 재앙에서 우박과 큰 지진으로 인하여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져 완전히 무너지고 만국의 성들이 무너졌습니다. 각 섬들과 각 산들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베드로후서3:10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온 우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파괴되는 것을 말합니다. '큰 성'은 다음 장부터 나오는 바벨론을 말하고 '만국이 성들'은 바벨론을 따르는 모든 국가를 말합니다. 바벨론은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에 대한 상징입니다. 바벨론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아 재앙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벨론이 각 더러운 귀신의 처소가 되고 왕들이 음행하고 상인들이 치부했기 때문입니다 (18:2-3).
그리고 사람들이 우박재앙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21절에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재앙이 내릴 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욕합니다. 애굽의 바로왕처럼 마음이 더욱 완악해진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듣지 않는 자는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마12:31-32, 요일5:16).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② 정신이 파괴되는 재앙입니다.
18절에서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았다고 했는데, '공중'은 영적으로 볼 때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곳입니다 (엡2:2).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말합니다. '큰 성'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인본주의 세상을 말합니다. '섬'과 '산'은 종교들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탄의 주장으로 인간의 정신세계가 황폐화될 것입니다. 모든 사상의 기초가 흔들리고 종교들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참된 대상을 찾고 참된 가치를 추구하고 참된 삶을 살려는 의지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훼방하는 사상, 곧 사탄적이고 우상적이고 세속적이고 동물적인 사상만 있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3:10-16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結言>
우리가 때로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은 평안하고 잘되고 행복한 것처럼 생각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적당히 우상숭배와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혜롭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접 재앙이 주는 교훈은 세상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따라간 사람들은 반드시 고통과 죽음의 재앙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세상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살아야합니다 (벧후3:13). 그것이 행복이며 성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