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로마서 서론>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머지않아 자신이 직접 로마를 방문하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의 서신 중에서 가장 긴 본서를 기록했습니다. '바울언약'이라고도 불리는 본서는 기독교 교리를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치가 무엇인지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저자

 

  본서는 바울이 기록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분명합니다. 3:20-24, 4:3에 언급된 칭의(稱義)의 교리는 바울서신으로 알려진 갈라디아서2:16, 3:6,11, 딛3:5-7에도 똑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2:5에 묘사된 많은 지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바울의 서신인 고린도전서10:17, 12:12-14,27, 에베소서1:22-23, 골로새서2:19 등에도 일관성 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2:6-8에는 이 지체들이 몸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에게 부여된 재능을 사용해야 된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는데 고린도전서12:15-26,28-31, 에베소서4:11-16에도 동이한 내용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본서신이 기타 바울서신들 사이에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역시 본서의 저자가 바울임을 암시해 줍니다. 더욱이 본서신의 1장과 15장의 인사말이 다른 바울서신과 동일하다는 점은 본서신이 바울에 의해 쓰여졌음을 명백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레니우스(Irenaeus, A.D.140-200)를 비롯한 초대교회 교부들은 하나같이 본 서신의 저자가 바울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역사가였던 무라토리(Muratori, 1672-1750)도 그의 저서 '무라토리 단편'(Muratori Fragment)에서 본서의 저자를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2. 바울의 생애

 

  바울은 원래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으로서 '구하였다''하나님께 청함을 받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바울'이라는 이름은 헬라식 이름으로 '작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은 베냐민지파 출신으로서 (빌3:5) 지중해 북동쪽에 근접한 길리기아(Cilicia)에 위치한 그리이스 문화와 대학의 중심지였던 다소(Tarsus)에서 태어났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집안에 대해 기록한 곳이 거의 없습니다. 제롬(Jerome)이 전하는 한 전승에 의하면 바울의 부모는 본래 갈릴리의 한 마을에 살았으며 B.C.1세기에 로마가 팔레스타인을 폐허로 만들자 다소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족은 이주민이었지만 상당히 유복했습니다.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행16:37-38, 22:25-29)은 그의 집안이 상당한 지위와 재물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예루살렘으로 유학하여 당시 가장 뛰어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Gamaliel)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노동을 병행하는 교육을 받았는데 아마도 그 때 천막을 짓는 기술을 배운 것 같습니다. 유대 본토에서 엄격한 바리새파 교육을 받은 그는 청년이 되면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 증인이 되었으며 (행7:58)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다메섹에까지 박해의 손길을 뻗는데 앞장섰습니다. 그토록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행9:1-19) 그 때부터 그의 생애와 장래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온갖 위험과 죽음의 고비들을 넘기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는데 그의 사상과 신학은 초대교회뿐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최초의 선교사로 세 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을 통하여 이방 지역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였으며 본 서신을 비롯해 13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바울을 기독교 역사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상가였다고 말합니다. 실로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며 목회자이며 선교사였습니다.

 

     3. 기록장소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장소는 고린도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바울이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리아에 있는 교회 일꾼 뵈뵈에게 본 서신 전달 책임을 맡겼던 것으로 보아 분명합니다 (16:1-2). 뿐만 아니라 바울이 거주했던 집주인인 가이오에 대한 언급(16:23)을 한 것도 바울이 그 당시 고린도에 거주하고 있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 이유는 가이오가 바울의 고린도 전도 중에 회심한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전1:14). 또한 고린도시에 재무관이었던 에라스도가 문안하는 내용이 언급된 것도 좋은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16:23). 디모데후서4:20에 의하면 그는 고린도에 거주했으며 1929년에 발견된 고린도의 비문에도 그가 그 지역 공회당의 관장으로 언급되었기 때문입니다.

 

     4. 기록 연대

  

  본 서신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들이 있지만 전통적인 견해는 A.D.57-58년 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52년 봄에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에 갔으며 돌아오는 길에 안디옥에서 겨울을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그는 53년 봄에 에베소로 가서 3년간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행20:31). 그 후 57년 말기에 그는 고린도에서 석 달을 보냈는데 (행20:3), 아마 그 때 본 서신을 기록했으리라고 봅니다. 그가 오순절까지는(A.D.58년 봄)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힘썼으므로 (행20:16) 본 서신은 분명히 58년 초기까지 완성되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5. 기록 목적

 

  우선 선교적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에베소 목회가 2년 이상 계속되고 그 성과가 주변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때 자신의 선교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15:23에 근거해 볼 때 아마도 그는 오래 전부터 로마 전도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이 다른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1:5-6, 13-15) 그 곳에서 자신의 선교적 임무를 (행26:16-18) 수행하고 싶어서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가 본 서신을 쓰게 된 일차적인 목적이 로마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아 미리 준비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뵈뵈 편에 짧은 편지를 보내어도 되었을 텐데 본 서신을 장문으로 보낸 것은 바울이 로마교회에 가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로마를 지나 스페인 지역까지 가기 원했기 때문에 로마교회를 안디옥교회처럼 전도활동의 기지로 삼으려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먼저 로마교인들에게 지난 20여 년간 전파해온 복음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서 그 복음을 이해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자신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준비시킬 목적으로 장문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먼저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진술한 후 결론부분에서 그가 로마로 가기 전에 먼저 유대를 방문할 것인데 그 때 안전하게 그의 일이 성사되도록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을 보아(15:30-32)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불길한 징조를 예견하고 있다는 데도 그 목적이 있습니다. 즉 바울은 만일의 경우 자신이 죽게 될지라도 로마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사역을 바르게 계승하여 전해준 그 복음을 로마제국 끝까지 전파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증적 목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수도이자 당시 모든 기독교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잠재성을 가진 로마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한 올바르고도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본 서신의 서두인 바울의 문안인사(1:1-7)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3:8을 보면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자들에 대하여 자신과 복음을 위하여 변증해야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여집니다.

  교훈적 목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본 서신은 기독교 진리에 대한 체계적인 말씀으로 로마교회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믿음을 계도하고 강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관한 상세한 교훈을 주고자 한 것입니다. 본 서신에 질문과 권유 형태의 문구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특별히 바울은 본서를 통해 율법과 복음의 관계성을 규명하고 이 기반 위에서 각 개인의 구원과 성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자세, 국가와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 세계 열국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등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세세하게 교훈하였습니다.

 

     6. 수신자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게는 본 서신의 서두에 '로마인들에게'라는 간단한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 표제어는 2세기 중 어느 시기에 교회가 본 서신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견해를 첨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몇몇 사본들에는 이 표제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을 이유로 혹자는 본 서신을 특정한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회람 서신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견해는 본 서신의 수신자가 로마교회의 성도들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습니다. 특히 본 서신의 서두(1:8-15)와 결론부분(15:14-33)에 있는 내용은 본 서신이 어느 특정한 교회에 보내는 글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바 그 교회가 로마교회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7. 로마교회

 

  로마교회의 기원에 관해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유세비우스(Eusebius)를 비롯한 몇몇 초대교회 교부들은 베드로가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의 통치 때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설립했을 것으로 주장하지만 그것은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오히려 오순절 성령 강림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행2:10) 예루살렘 순례자들의 일부가 로마에 거주한 자들이었는데 그들을 중심으로 로마교회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니면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의 전도로 회심한 자들이 그 곳에 교회를 세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직접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설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본 서신을 쓸 당시 한 번도 로마에 방문한 일이 없고 보고에 의해서만 로마교회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본 서신에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8,13). 이 로마교회는 약간의 유대인들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이방인들로 구성되었고 급속한 성장을 했습니다. 바울이 본 서신을 쓸 당시에 이 교회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많은 성도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사실(1:8, 15:23-29)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8. 신학적 주제

 

  본서는 구원에 이르는 도리를 가장 체계적이고도 선명하게 밝힌 책으로서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제반 신학적 주제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본서는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신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이란 인간의 의지적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을 말합니다 (3:24, 엡2:8). 바울은 이 구원의 교리가 실제적이며 필요 불가결한 것이고(1-3장) 성경적이며(4장) 열매 맺는 것(5-8장) 임을 보여 준 후에, 이어서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이 믿음을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며 그들 안에서 성취된다는 의미에서 그 구원이 역사적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성화(聖化)에 대해서 밝혔습니다. 본서는 그리스도를 믿은 후 변화되어야 할 성도의 생활, 즉 성화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6-8장). 그 내용인즉 죄의 오염에서 해방되며(6:6)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기까지 점점 나아가기로 작정한 성도(6:11)는 필연적으로 육신의 법과 하나님 법 사이에서 겪는 심각한 내적 갈등에 봉착하게 되는데(7:23-24)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성령의 법에 온전히 의탁해야만 비로소 그 갈등은 해소되고(8:1-10) 성화의 진전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主權)에 대해서 밝혔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구속 사역은 구약시대부터 일관된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본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통한 인류 구속사의 계획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장중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9-11장). 마치 토기장이가 각종 용도에 사용될 토기를 임의대로 만들듯이 구속사역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의 삶에 대해 밝혔습니다. 본서는 구원에 관한 교리뿐 아니라 그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을 담고 있습니다 (12:1-15:13). 즉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과 구원하심을 입은 성도들이 어떻게 이웃과 동료들에 대해 사랑을 실천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수 있는 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9. 본서가 끼친 영향

 

  본서가 역대의 교회사상 영향은 실로 큽니다. 본서는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클레멘트 등 초기 기독교 시대의 교부들을 비롯하여 유명한 신학자들의 여러 문서에서 무수히 인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타가스데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칼타고 대학에 유학하여 수사학을 배웠지만 방탕한 기질로 인해 16-19세 때 무질서하고 방탕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19세에 부모의 동의없이 여자와 동거생활을 하여 아들을 낳기까지 했습니다. 종교적으로 올바른 기독교의 신관을 포기하지 못한 채 철저한 선악 이원론을 주장하는 마니교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방탕한 생활과 그릇된 종교를 버리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386년 어느 날 마니교의 우주론에 의혹을 품고 있으나 옛 생활을 끊어 버리는 결단을 하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을 때 이웃 집에서 '집어 들고 읽어라'(tolle lege)는 어린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그 길로 성경책을 펼쳐 읽게 되었는데 그 부분이 본서의 13:13-14였습니다. 그 내용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입니다. 그는 후일 그의 저서 '참회록'(Confessions)에서 그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14절 마지막 부분을 읽는 순간 밝은 빛이 물밀듯 내 마음 속에 밀려 들어왔고 순간 모든 의혹과 근심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387년 부활절에 당시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391년 히포의 신부로 임명받고 396년에는 단독으로 동 주교구를 지도하는 주교가 되어 34년간 별세할 때까지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또 루터(Luther, 1483-1546)가 있습니다. 루터는 16세기 독일의 위대한 종교개혁자입니다. 그는 1507년에 신학공부를 시작했고 1509년 성경등업사가 되어 수도사들에게 성경을 강의했습니다. 1510년 말부터 1511년 1월까지 로마여행을 하면서 그 곳에서 여러 가지로 실망을 했습니다. 즉 참회자들의 형식적인 모습과 수도사들의 무질서하며 무지한 면모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로마의 빌라도 계단을 입을 맞추며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서 한숨을 토할 때 그의 머리 속에 번개같이 스쳐 가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본서 1:17에 나오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큰 충격을 받고 그 이후로 로마 카톨릭의 금욕주의적 의식을 버리고 종교개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이 성경에 잘못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에 게시하고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실로 본서는 루터를 회심하게 하고 복음주의 개혁교회가 탄생하게 된 주 영향을 준 성경입니다.

  또 칼빈(Calvin, 1509-1564)이 있습니다. 칼빈은 프랑스의 종교개혁자이며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14-19세 때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하였고 오를레앙과 브르줴에서 법학을 3년간 공부했으며 세네카의 '관용론'(De Clementia)를 주석하여 23세에 인류학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종교개혁 사상을 갖기 전에 돌발적인 회심을 체험했는데 그 때 본서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본서를 가리켜 '신약성경의 핵심'이며 특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고 한 말씀은 '복음의 근본교리이자 가장 위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또 웨슬레(Wesley, 1707-1791)가 있습니다. 웨슬레는 1738년 모라비아 형제단의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그 당시 집회에서는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그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만을 그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그리그도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며 거룩한 생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요한 웨슬레의 회심'이라 일컫습니다.

 

     10. 내용분해

 

  본서는 크게 3부로 되어 있는데 제 1부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 제 2부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9:1-11:36), 제 3부는 하나님의 의의 적용(12:1-16:27)로 되어 있습니다. 제 1부인 하나님의 의의 계시(1:1-8:39)는 머리말(1:1-17), 하나님의 의의 필요성(1:18-3:20), 하나님의 의의 전가(3:21-5:21),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6:1-8:39)로 되어 있습니다. 제 2부인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9:1-11:36)은 이스라엘의 과거(9:1-29), 이스라엘의 현재(9:30-10:21), 이스라엘의 미래(11:1-36)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 3부인 하나님의 의의 적용(12:1-16:27)은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 의무(12:1-13:14),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 자유(14:1-15:13), 맺는 말(15:14-16:27)로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