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로마서16:1-27
<題目> 문안 인사와 축복
<序言>
1-11장에서는 구원에 관한 교리에 대해, 12-15장은 성도의 실천적인 생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제 16장은 개인적인 인사로 본서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26명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로마의 성도들이 그들에게 문안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이로 보아 바울이 주 안에서 많은 친구들을 갖고 있었고, 그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자들이었습니다. 내용구조는 편지 전달자 소개(1-2절), 로마 교인들에게 하는 문안인사(3-16절), 로마 교인들에게 하는 권면(17-20절) 로마 교인들에게 전하는 문안인사(21-24절), 하나님께 대한 송축(25-27절)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편지 전달자 소개 (1-2절)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1절에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고 했습니다. '겐그리아'(Cenchreae)는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15km정도 떨어진 항구도시로서 고린도의 주요한 교통 요충지였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고린도에 도착하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고린도교회를 세웠는데 (행18:1-18), 복음이 고린도교회로부터 그 주변의 여러 도시로 전파되었고 그 결과로 세워진 교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겐그리아교회였습니다 (고후1:1). '뵈뵈'(Phebe)는 겐그리아교회의 일꾼이었습니다. '일꾼'에 해당하는 ‘디아코노스’(διακονος)는 '섬기는 자'라는 뜻으로 주로 '집사'로 번역되는 용어입니다. 당시 집사는 교회에서 봉사를 담당하는 직책으로서, 남집사는 교회 기물이나 행사에 관한 부분을 많이 담당하고, 여집사는 심방이나 구제 등을 많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뵈뵈는 겐그리아교회의 여집사로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 믿음의 모범이 될 만한 사역자로 생각됩니다. 바울은 그녀를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추천한다고 했습니다. ‘추천하노니’에 해당하는 원형 ‘쉬니스타오’(συνισταω)는 ‘함께 두다’ ‘소개하다’ ‘추천하다’ 등의 뜻이 있는데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뵈뵈 집사를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맡긴다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 2절에서 바울이 그녀를 합당한 예절로 영접해주고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한 점을 보아서 그렇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쓴 곳은 고린도였습니다. 그의 선교계획은 로마교회에 갔다가 교제 후에 서바나(스페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교회에 가기 전에 급히 예루살렘에 가야했습니다. 이방교회들에서 모금한 구제헌금을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교회에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장에 갈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에 (15:25) 우선 로마교회에 쓴 편지(로마서)를 먼저 보내려했습니다. 그러던 중 겐그리아교회 여집사 뵈뵈가 로마로 떠나려 했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 본 편지를 보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그들에게 뵈뵈 집사를 잘 영접해줄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2절에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뵈뵈를 추천하면서 그를 주 안에서 성도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뵈뵈는 아가야 지방의 작은 도시 겐그리아 출신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로마는 로마제국의 수도였습니다. 로마와 겐그리아는 민족과 국가도 다르고 문화와 문명 수준도 달랐습니다. 교회의 크기도 달랐습니다. 당연히 로마교인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겐그리아교회 출신인 뵈뵈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한 교회 교인처럼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할 것을 권면했고 그녀가 거하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도와줄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바울과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뵈뵈 집사에 대해 자신과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보호자’에 해당된 ‘프로스타시스’(προστατις)는 '조력자' '후원자'라는 뜻입니다. 뵈뵈는 바울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역자들을 도운 자라는 것입니다. 뵈뵈는 바울을 비롯한 사역자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재정적인 후원을 해준 자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사역을 할 때도 루디아가 바울과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행16:14-15). 그로인하여 빌립보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겐그리아에서 사역을 할 때도 뵈뵈가 그런 역할을 해주어 겐그리아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뵈뵈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자들을 헌신적으로 도와 사역이 잘 이루어지게 한 점을 귀하게 여기고 그를 신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교회에 보내는 중요한 편지를 그에게 전달하게 했고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그들 잘 영접하여 도와줄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자들을 돕는 자는 사역자들도 신임하여 기억하지만 하나님도 귀하게 여깁니다. 마태복음10:42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소자’는 제자를 가리킵니다. '이름으로'는 아람어에서 "~때문에"로 해석되기도 하는 단어입니다 (Moffatt). 그렇게 본다면 '제자의 이름으로'를 '제자이기 때문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자의 직책과 사명과 사역을 보고 그들을 보낸 하나님의 일을 돕는 생각에서 그들을 돕는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긴 일에 동참하는 것이므로 그들이 누릴 상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의 수고를 덜어드린 행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시고 상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2. 로마 교인들에게 하는 문안인사 (3-16절)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①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했습니다 (3-4절).
3-5절에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브리스가'(Πρισκιλλα)는 통상적으로 '브리스길라'로 불립니다 (행18:18). 그래서 보통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a) 부부'라고 합니다. 브리길라가 아내이고 아굴라가 남편입니다. 성경에서 이들 부부를 언급할 때 대부분 아내인 브리스길라를 남편인 아굴라보다 앞에 언급했습니다. 아마도 아내인 브리스길라가 진리에 대한 이해도나 믿음의 진보나 사역에 대한 헌신하는 면이 더 앞서서인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먼저 문안인사를 했습니다.
첫째, 그들은 가정교회를 세운 자들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유대인인데 원래 로마(이탈리아, 아달리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제국의 4대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가 A.D.50년경에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글라우디오황제는 헤롯 아그립바1세의 정치적 세력을 배경으로 등극했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호의적이었지만 유대인들의 폭동사건이 일어나자 추방령을 내린 것입니다. 글라우디오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이 내리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를 떠나 고린도(그리스, 아가야)로 이사를 했습니다 (행18:2-3). 그들은 천막을 만드는 수공업자였기 때문에 고린도에서도 천막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다소(튀르키예, 길리기아)에서 자랐습니다. 길리기아 다소는 짐승 가죽으로 피혁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자식에게 생업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한 가지씩 가르치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가정에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바울과 함께 그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자기 가정을 중심으로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갔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있다가 수리아 안디옥(시리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린도 아래 있는 겐그리아를 지나 에베소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그 부부도 함께 에베소(튀르키예, 소아시아)로 갔습니다 (행18:18-19). 그래서 그곳에서 바울을 도왔고 바울이 3개월 후에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그곳에 계속 남아 그곳에서도 전도를 하여 가정교회를 세웠습니다 (고전16:19-20).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 몇 년을 더 머물다가 글라우디오황제가 죽자 로마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롬16:3).
그들은 로마로 돌아가서도 계속 전도하여 자기 집을 개방하여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5절). 당시 교회의 모습은 한 성도의 가정집에서 정기적으로 모였고 그 가정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지역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도 그런 가정교회로 모이는 가정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로 돌아가서 자신의 집을 내놓아 교회로 모인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린도에서, 에베소에서, 로마에서 가는 곳마다 전도사역자를 돕고 전도를 하고 가정교회를 이룬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 일에는 많은 희생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헌신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을 잊지 않고 안부를 물은 것입니다. 비단 바울뿐 아니라 이방교회 곧 고린도와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늘 그들로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4절下).
둘째, 그들은 목회지도자를 기른 자들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튀르키예, 소아시아)에서 바울이 3개월 후에 예루살렘으로 떠난 다음에 에베소에 남아 수년 동안 전도를 하면서 가정교회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볼로(Apollos)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볼로는 유대인이었는데 알렉산드리아(이집트)에서 살다가 에베소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문과 성경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천부적인 언변과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구약 율법 뿐 아니라 신약의 복음을 이미 배워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까지만 알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르쳤습니다 (행18:24-28).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복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배워 고린도(그리스, 아가야)로 가서 사역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추천장을 써줘서 그를 고린도로 보냈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 지역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전했고 이미 세워진 고린도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대한 아볼로의 사역에 대해 자기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고전1~4장). 고린도교회는 베드로와 바울에게 배운 자들이 많아서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나 고린도교회를 잘 성장시킨 것입니다. 그를 훌륭한 목회지도자로 만든 사람들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셋째, 그들은 복음전도자를 도운 자들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을 도와 고린도교회를 세운 자들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아덴(그리스, 아가야)에서 사역을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아덴은 당시 헬라 철학의 중심지로서 에피쿠로스(Epicurus)와 스토아(Stoa)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도 철학에 능한 사람으로서 그들과 공개토론을 해서 이기므로 복음전도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 두 사람에 불과하여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전도 사역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래 지방인 고린도로 내려갔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스스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고린도에서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을 자기 집에서 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하도록 해 주었고 안식일에서는 함께 전도했고 전도된 자들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여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자기들도 로마에서 쫓겨와 힘든 상황에 있었을 텐데 복음을 위해 바울을 도운 것입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3절에서 '동역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1년 6개월 후에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갔을 때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자기들이 일군 터전을 떠나 에베소로 함께 갔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 3개월 동안 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에베소에 와서 3여 년 동안 사역을 했는데 그 기간에 많은 어려운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에베소는 아데미(Artemis)여신상과 아데미 신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은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하는 신(여성상으로서 가슴에 유방이 많이 달려 있음)으로서 그곳 사람들과 그곳을 여행하는 자들은 작은 모형 여신상을 사서 호신부로 지녔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은으로 작은 여신상을 만들어 파는 은(銀) 세공업자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은 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설교를 하면서 아데미를 우상으로 정죄하자 그들은 자기들의 수입원이 끊길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중에 데메드리오(Demetrius)라는 은장색이 선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은장색과 직공들이 온 시내에서 소동을 일으키며 바울의 일행이었던 가이오(Gaius)와 아리스다고(Aristarchus)를 연극장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이 연극장은 극적인 구경거리들이 공연된 노천극장으로서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2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건축물이라 합니다. 바울이 그 사실을 알고 연극장으로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잘 아는 관원으로부터 들어가지 말라는 통보를 해왔고 제자들이 말려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행19:28-3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이 그런 상황에 있을 때에 희생적으로 보호하고 지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4절에서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위험이 닥칠지라도 자기들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바울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문안하면서 로마 교인들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대해 '동역자'라고 소개하고 '자기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은 자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로 올 때 어려움 가운데 있었겠지만 자기 집을 복음전도의 장소로 내놓았습니다. 에베소에서 아볼라를 도와 훌륭한 목회지도자가 되게 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보호해 주었습니다. 차라리 자신들이 죽는 한 이 있더라도 바울을 살리려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위해 살기로 결단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구원을 받고 보니 복음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게 느껴졌고 가장 행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있고 행복한 일이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어려움과 희생이 있더라도 자기의 삶에서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②에배네도에게 문안했습니다 (5절).
5절에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에배네도'(Epaenetus)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지역에 전도하는 과정에서 이방인 가운데 최초로 얻은 회심자였습니다. 그는 회심한 후에 자연스럽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정교회에 속해서 그들과 함께 사역을 돕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로 돌아갈 때 함께 로마까지 갔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서 가정교회를 이룰 때도 역시 그 가정교회에 속해서 사역을 도왔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안부를 물은 것입니다.
③마리아에게 문안했습니다 (6절).
6절에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마리아'(Mary)라는 이름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마1:16, 막6:3, 눅1:41), 막달라 마리아 (마27:56, 막15:40, 눅8:2),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마27:56, 막15:40),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요19:25),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눅10:39, 요11:1).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행12:12), 본절에 나타난 마리아 (롬16:6)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는 모두 한결같이 훌륭한 신앙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본절에 나온 마리아는 바울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로마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녀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수고한'에 해당하는 기본형 '코피아오'(κοπιαω)는 '열심히 일하다' '피로를 느끼다' '쇠약해지다'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리아는 로마교회의 초창기 교인으로서 로마교회를 위해 무언가 극도로 피곤하여 지칠 정도로 헌신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그에게 안부를 물은 것입니다.
④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했습니다 (7절).
7절에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안드로니고'(Andronicus)와 '유니아'(Junia)는 바울이 ‘내 친척’이라고 했습니다. '친척'으로 번역된 '슁게네스'(συγγενης)가 '친족' '동포'라는 의미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친척이라기보다는 유대인으로서 바울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관계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한 것으로 보면 그들은 초대교회 초기부터 일찍 회심한 자들로서 바울보다 먼저 회심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갇혔던’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앙과 사역 때문에 감옥에 갇힐 정도로 불굴의 신앙정신을 가진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라고 한 것처럼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바울 역시 그들의 신앙과 열정을 인정하고 문안한 것입니다.
⑤암블리아에게 문안했습니다 (8절).
8절에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암블리아'(Amplias)라는 이름은 당시 노예들 가운데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Hendriksen). 암블리아가 노예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당시 교회에는 노예의 신분을 가진 성도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들이 계급과 지위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 가운데는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제국 당시 최초의 카타콤이었던 도미틸라(Domitilla) 묘지 비문에서 여러 개의 암블리아의 이름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본절에 나오는 암블리아가 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그가 신앙과 사역에 있어 바울과 상당히 깊은 교제 가운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⑥우르바노와 스다구에게 문안했습니다 (9절).
9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우르바노'(Urbane)는 가이사의 가족명부에서 발견되는 노예의 이름입니다 (Hendriksen). '스다구'(Stachys)는 귀족의 비문에 나타난 이름으로서 황제의 가족에 속한 자입니다 (Gifford). 이들은 바울이 '우리의 동역자' '나의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바울의 복음전도 사역에 동역한 자들로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자들입니다.
⑦아벨레에게 문안했습니다 (10절).
10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아벨레'(Apelles)는 유대인이나 로마인에게서 동일하게 흔히 발견된 이름으로서 바울은 본절에 나오는 아벨레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인정'에 해당하는 기본형 '도키모스'(δοκιμος)는 '인정된' '연단된'의 뜻입니다. 아벨레는 아마도 극심한 시련 가운데 연단을 받았던 자 같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임한 시련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고 그로 인해 교회로부터 신임을 받은 자였던 것입니다
⑧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했습니다 (10절).
10절 하반절에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아리스도불로'(Aristobulus)는 헤롯왕의 손자였으며 아그립바의 형제였습니다. 그는 로마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고 글라우디오황제의 친구였으며 추종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그가 죽은 다음에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른 황제의 집안에 귀속되어 그들의 신분이 유지되었고 그의 집안 사람들은 '아리스도불로 권속'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권속들 가운데 포함된 일꾼들과 노예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생겼던 것 같고 바울은 그들에게 문안을 한 것 같습니다.
⑨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11절).
11절에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헤로디온'(Herodion)을 ‘내 친척’이라고 한 것은 실제 친척이라기보다는 안드로니고처럼 유대인으로서 친밀한 관계에 있던 자라는 의미로 했던 말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선교에 집중했지만 당시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자기의 동족 유대인들에 대해서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서 드물게 기독교인이 되어 헌신하는 사람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⑩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11절).
11절에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나깃수'(Narcissus)는 티베리우스(Tiberius)황제의 노예로 있다가 해방된 자로서 권모술수가 능하며 극악무도한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클라디우스(Claudiys)황제 치하에서 권력을 휘둘렀고 네로(Nero)황제가 즉위한 직후 네로황제의 모친 아그립피나(Agrippina)의 미움을 사서 그녀의 명령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이후 그의 재산은 몰수되고 그의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로 예속되었고 황제 가문의 다른 소유물과 구별하기 위해 나깃수에게 속한 모든 노예들에게 나깃수에게 속한 자들이라는 의미로 나르킷시아니(Narcissiani)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깃수는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그의 권속들 중 일부 가족과 노예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문안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신분과 상관없이 구원받아 헌신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가졌던 것입니다.
⑪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12절).
12절에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드루배나'(Tryphena)와 '드루보사'(Tryphosa)는 어근이 같은 것을 보아 쌍둥이 자매였을 것이고, 그 이름의 뜻이 '화사하다' '우아하다'인 것으로 보아 귀족 집안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 대해 ‘주 안에서 수고한’ 자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은 귀족적인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헌신했던 것 같습니다.
⑫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12절).
12절에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버시(Persis)는 그 이름의 뜻이 '페르시아 여인'인 것으로 보아 노예에서 해방된 여종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나의 사랑하는'이란 표현을 쓰는 대신 그냥 '사랑하는'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독신녀였던 것 같고, '수고하고'(εκοποιασεν)를 과거형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령이 된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가 어려운 처지에서도 믿음생활을 잘하며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문안했던 것입니다.
⑬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13절).
13절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했습니다. '루포'(Rufus)는 마가복음에 언급된 루포와 동일인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입니다 (Harrison, Mayer). 마가복음15:21에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고 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사실에 대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동일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유독 마가복음에서만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이 알렉산더와 루포였음을 밝혔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는데 있어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인들은 당연히 구레네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구레네 시몬의 아들들 곧 알렉산더와 루포 두 사람 가운데 루포에게만 문안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루포가 신앙적인 대표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울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로마교회에 루포만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라고 한 것은 자기를 직접 낳아준 친어머니라는 뜻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을 지극히 돌봐 준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 자기의 가족을 떠나 아라비아에서 전도를 하다가 바나바에 의해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에 그런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Harrison). 당시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이 가족을 떠나 외로운 처지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을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보살펴 주었을 것입니다 (Godet, Moule). 그래서 바울은 그녀를 자기 어머니처럼 여긴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의 신앙적인 면을 보고 더 애틋한 사랑으로 보살폈을 것이고 바울도 루포의 어머니의 신앙적인 면을 보고 친 어머니처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막3:35). 그런 상통한 마음을 가진 루포의 어머니가 로마에 있는 것을 아는 바울은 그에게 문안을 여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로마방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한 것은 자연인 가운데 선택된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려는 것이라 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선택된 신앙과 헌신에 특별한 사람임을 강조하려는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Meyer, Murray, Hodge). 바울은 루포와 그 어머니의 특별한 신앙과 헌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칭송을 했을 것입니다.
⑭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14절).
14절에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아순그리도'(Asyncritus)와 '블레곤'(Phlegon)와 '허메'(Hermas)와 '바드로바'(Patrobas)와 '허마'(Hermes)와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은 혈연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정교회를 이루고 있는 공동체 일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노예이거나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로 노예계급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고 (Dunn, Sanday), 일정한 지역에 거주하면서 동일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Murray).
⑮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15절).
15절에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빌롤로고'(Philologus)와 '율리아'(Julia)는 황제 가문의 묘비에 나타나는 이름이고 황제 가문의 노예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이름입니다 (Lightfood, Lampe).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황제 가문의 노예출신으로서 부부이거나 오누이 간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네레오'(Nereus)와 '그의 자매'는 빌롤로고와 율리아의 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Dunn). 그리고 올름바(Olympas)은 전 로마제국에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라는 표현이 알게 해주듯이 이들은 모두 앞에서 말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가정교회의 일원들이었을 것입니다.
16절에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입맞춤으로 인사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고전16:20, 고후13:11, 살전5:26). 그 인사는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끼리 하는 인사였으며 입을 직접적으로 맞춘 것이 아니라 볼과 볼을 대는 형태로서 결코 세속적인 입맞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인사는 서로 문화의 배경 차이로 발생할 수 있는 이질감을 헐고 서로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인사였습니다. 이는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기능을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그런 친밀한 교제가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그들에게 문안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는 바울이 전도사역에서 세운 이방교회들로서 바울은 그런 교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런 교회들이 로마교회에 대해서도 일체감을 가지고 있음을 전달하는 인사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문안인사를 한 대상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당시 교회는 가정교회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는 누군가가 자기 집을 개방해서 자기 집에서 예배와 성경공부와 기도를 하는 성전으로 내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집을 그렇게 개방하는 데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희생과 헌신의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셀 리더의 헌신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둘째, 가정교회는 서로 동질성을 가진 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전도한 사람들로 구성되었거나 같은 신분 혹은 동료들로서 교제가 용이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셀이 그런 동질성을 가져야 교제를 잘 이룰 수 있습니다. 지역, 성별, 나이, 직능, 상황들 어떤 공동분모를 가진 자들이어야 교제가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가정교회들이 지역 전체의 교회를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가정교회들이 교제를 통해 개인적인 신앙을 성장시켰고 그렇다고 해서 가정교회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연합된 교회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셀 모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전체교회에 대한 압력단체로 변해서는 안 되며 전체교회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합니다. 그렇지 않을 땐 신학과 신앙과 재정과 치리 등의 문제에서 제재와 지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변질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단들이 대부분이 그런 성경공부 모임으로 생겨났음을 알아야합니다. 넷째, 전체교회는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교회는 민족, 성별, 신분, 지위, 직업 등 다양한 가정교회가 연합된 공동체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임을 생각하면서 도그마(δογμα) 문제에서는 목회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아 성경중심으로 나가고, 아디아포라(αδιαφολα) 문제에서는 서로 평가하지 말고 관용해야합니다 (14-15장). 그리고 서로 차별이나 차등 없이 서로 입맞춤으로 친밀한 교제를 이루어야합니다. 오늘날 지상에 있는 교회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한 목적을 가진 공동체임을 생각하면서 서로 관용으로 포용하고 교제로 견고한 교회로 성장시켜야합니다.
3. 로마 교인들에게 하는 권면 (17-20절)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당시 로마교회에는 거짓교사들이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므로 교회가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 서신을 마치기 전에 그에 대한 경고와 권면을 했습니다. 그 거짓교사들은 유대교적 열심분자들로서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성격에 대해 말했습니다. 첫째, 이미 배운 교훈을 거스린다다고 했습니다. 17절 중반절에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로마 교인들이 이미 배운 복음에 대한 바른 진리에 거슬리는 교훈으로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에 대한 바른 진리를 거슬러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교훈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둘째, 순진한 자를 미혹한다고 했습니다. 18절 하반절에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이란 속일 목적으로 하는 칭찬이나 축복 등 듣기에 좋은 말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감언이설로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셋째, 거치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17절 중반절에 “~거치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길 가는 자들을 빠뜨리는 함정과 같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과 같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좋은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성도를 넘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넷째,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17절 중반절에 “~분쟁을 일으키거나_”라고 했습니다. 참 진리와 다른 거짓 진리를 전하여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보다 자기들의 교훈을 따르게 하는 것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도 불사합니다. 다섯째, 자기들의 배만 섬기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18절 중반절에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만 섬기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을 위하는 자들로서 그 욕망 사로잡혀 그것에 종노릇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정욕적이고 세속적인고 마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약3:15).
그리고 바울은 그 거짓교사들에 대해 취해야할 자세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첫째, 그들을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17절 하반절에 “~살피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그들을 주시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그들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에게서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17절 하반절에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교훈을 가르친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즉시 그들에게서 떠나야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거짓교사들을 경계할 것을 엄중하게 권면한 다음 그들의 헌신적인 순종에 대해 칭찬했습니다. 19절에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고 했습니다. 이 순종은 바울이 가르친 교리와 교훈을 잘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사역자를 순종하는 자들은 사역자들로부터 존중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 당시 캐나다장로회 소속 말콤 펜윅(M.C.Fenwick) 선교사는 성경과 학문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순종을 잘하는 전치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펜윅 선교사가 제자들을 시험하고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무를 거꾸로 들고 말했습니다. "모두들 무 1개씩 갖고 나가 밭에 이렇게 심으십시오!" 제자들은 스승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여 무를 들고 나가 밭에다가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방식대로 심었습니다. 펜윅은 거꾸로 심으라 했으나 모두가 그 반대로 즉 제대로 심고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전치규만은 스승의 말에 순종하여 무를 거꾸로 심었습니다. 펜윅은 순종을 잘하는 전치규와 일평생 동역자로 일했습니다. 그 둘은 함께 '원산 번역'이라 불리는 신약성경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전치규는 목사가 되었고 목사가 된 이후에 더욱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는 일제 박해로 인하여 1942년에 투옥되었고 고문 끝에 1944년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의 순종하는 모습을 기뻐한다고 말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19절 하반절에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로마교회에 거짓교사들의 교훈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로마 교인들은 이미 배운 바른 복음진리를 굳게 믿고 이미 배운 바른 진리를 순종하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교인들이 계속해서 거짓교사들의 교훈을 물리치고 바른 진리에 굳게 서 나갈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옳은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데에는 지혜롭기를 바랬습니다. 동시에 잘못된 교훈을 받아들이는 옳지 못한 일에는 미련하길 원했습니다. 고린도전서14:20에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북돋았습니다. 20절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거짓교사들을 통해 로마 교인들을 미혹하고 로마교회를 파괴하려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로마 교인들의 순종에 함께 하여 결국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상하게 하시리라’에 해당하는 기본형 ‘쉰트리보’(συντριβω)는 ‘상처를 내다’ 외에도 ‘산산조각 내다’ ‘완전히 짓이기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사탄의 역사로 거짓교사들이 교인들을 미혹하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이 로마 교인들로 하여금 완전히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4. 로마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문안 (21-24절)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 (없음)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을 한데 이어 자신과 함께 있는 동역자들의 문안을 전했습니다.
①디모데가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21절).
21절에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너희에게 문안하노라”고 했습니다. '디모데'(Timotheus)는 바울이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바울이 각별하게 생각했던 제자였습니다 (딤전1;2, 딤후1:2).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이며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지만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행16:1-2, 딤후1:5). 경건한 가정에서 성장한 믿음의 아들로서 (딤후1:5, 3:15)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동행했고 (행17-18장) 고린도교회 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도왔고 (고전4:17, 16:10) 바울의 집필을 돕기도 했습니다 (고후1:1, 골1:1, 살전1:1, 살후1:1).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동역자로 여겼고 로마 교인들에게 소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소개한 것입니다.
②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21절).
21절에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 이 세 사람에 대해서 '나의 친척'(οι συγγενεις μου)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실제 친척이 아니라 동족이라는 의미로서 유대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그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유대인임을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사역에 형제처럼 동역했던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입니다. 이는 바울이 그들을 각별하게 생각했음을 알게 하는 표현입니다. '누기오'(Lucius)는 안디옥교회에서 선지자나 교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구레네 사람 누기오로 추정됩니다 (행13:1). '야손'(Jason)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바울의 일행을 대접한 집주인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행17:5-9) '소시바더'(Sosipater)는 뵈레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인 것으로 추정기도 하나 그는 베레아 사람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습니다 (행20:4).
③더디오가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22절).
22절에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고 했습니다. '더디오'(Tertius)는 로마 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로서 바울의 편지를 대필한 자입니다. 그는 상당한 학식이 있는 자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서신은 거의 논문처럼 중요한 교리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는데 바울이 그 내용을 대필할 자로 택한 것을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영향으로 눈이 어두웠고 1차 전도여행시 밤빌리아 지방에서 눈병을 얻어 시력이 거의 좋지 않았습니다 (행9:8, 18, 갈4:13-15). 그래서 편지를 쓸 때 다른 사역자에게 대필을 시키고 자신의 글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마지막 부분만 자신이 직접 친밀로 썼습니다. 그런데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바울이 대필자인 더디오가 자기가 직접 문안인사를 하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그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④가이오가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23절).
23절에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이오'(Gaius)는 마게도냐의 가이오나 더베 사람 가이오나 요한3서에 나오는 가이오가 아니고 (행19:29, 20:4, 요삼1;1), '디도 유스도'로서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첫 번째로 회심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세례를 준 인물입니다 (고전1:14). 그에 대해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머물러 있던 집의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울을 묵게 했을 뿐 아니라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들을 잘 영접했고 자기 집을 개방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집회 장소로 모이게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⑤에라스도와 구아도가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23절).
23절에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라스도'(Erastus)는 '이 성의 재무관'이라고 했듯이 고린도의 도시 재산관리인으로서 고린도교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아도(Quartus)는 ‘형제’라는 수식어를 붙였는데 이는 실제 형제라기보다는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말입니다. 구아도에 대햐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에라스도와 관련된 인물로 여겨집니다.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했지만 (고전1:26)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영향력이 있는 사회적 지명인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신앙의 가정에서 성경을 잘 배운 자였습니다. 더디오는 로마서 대필자로서 학식이 있는 자였습니다. 가이오는 자기 집이 있는 자로서 대체로 부유한 자였습니다. 에라스도는 도시의 재무관으로서 관직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당시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26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의미를 말한 것이고 실제로는 실력있는 자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표현 그대로 많지 않았던 것이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울 자신도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를 도운 자들도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뿐 아니라 바울을 도운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능력과 환경을 사용하여 동역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도와 동역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귀한 사역에 동참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한편 24절에는 '(없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본(Codex)상의 차이들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할지어다. 아멘"이라는 문구가 어떤 사본에는 나와 있고 어떤 사본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베자 사본과 보엘네리아 사본 등 몇 사본에는 나와 있고,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과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에프레이 사본 등의 주요 사본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헬라어 성경 스테판본(GTS)에는 나와 있고 (Η χαρις του- κυριου- ημων Ιησου Χριστου μετα παντων υμων. αμην.), 네슬-알랜드본(GNT)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영어성경 KJV, NASB, NIV에는 나와 있고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Amen.), RSV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우리 한글성경 개역판과 개역개정판은 나와 있지 않은 쪽을 택했습니다.
5. 하나님께 대한 송축 (25-27절)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25절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복음'은 복음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 메시지를 말합니다 (2:16, 딤후2:8). 바울이 자기중심적인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한 구원에 대한 메시지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선포한 말씀'을 말합니다 (το κηρυγμα Ιησου Χριστος). 이 선포된 말씀이 앞에서 말한 '나의 복음'인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용어는 로고스(λογος)와 케류그마(κηρυγμα)와 레마(ρημα)가 있습니다.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로고스는 기록된 말씀이고, 케류그마는 선포된 말씀이고, 레마는 적용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파한 것은 케류그마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25-26절에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에 관한 선포된 말씀은 원래 창세 전부터 있었으나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서에 기록하게 하시고 그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나타내시고 모든 민족이 그 복음을 믿게 하려고 그 복음을 복음 전도자들에게 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바울이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26-27절에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앞 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경륜과 목적의 연장선상에서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로마 교인들을 견고하게 해주실 것을 믿고 그에게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結言>
바울은 1-11장까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나타내신 구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그 구원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고히 했습니다. 12-15장까지는 그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교회생활에서 개인생활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16장에서는 권면과 문안과 송축으로 마감했습니다. 송축에서 로마교회에 대한 구원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들에 대한 목적을 끝까지 이루실 것에 대한 암시를 나타내며 마감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완성도 하실 것을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더욱 열심을 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