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고린도전서6:1-20

<題目> 송사와 음행 문제

 

<序言>

  본 장은 어떤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보다는 신앙인들의 삶에 대한 기본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는 표현을 5번이나 사용하여(2,3,9,16,19절)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기시켜 그에 합당한 삶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독교적 삶의 신앙 개요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성도간의 소송문제 (1-11절), 음행죄에 대한 책망 (12-2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성도간의 소송문제 (1-11절)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고린도교인들이 재산문제로 불신법정에 소송한 일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관건은 재판의 종류나 판단의 정확성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불신법정에 재판을 의뢰하는 소송 자체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당시 헬라인들의 법정은 소송이나 배심원 의무로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들의 법정 배심원은 1,000~6,000명에 이르렀고 배심원의 의무는 강제적이었습니다. 그런 법정은 그들에게 오락과 즐거움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성도간의 불신법정 소송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성도끼리 송사하는 것 자체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훈을 버리므로(마5:39, 44) 그리스도의 공동체 의미를 상실한 영적 타락이었고, 성도간의 문제를 불신법정에 송사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성도끼리 해결을 하지 못하여 불신세계에 문제 의뢰를 한 것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교회 공동체의 수준 낮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불신법정의 재판 과정에서 노출되는 교회와 성도의 흠이 노리개 감이 되어 교회 공동체의 거룩성이 모욕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경제적 이해관계와 유산분배를 세상법정에 호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자신이 이미 사랑의 법을 벗어나 다른 논리에서 세워진 건설된 법체계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영적 피폐에서 온 것이며 완연한 허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 바른 지식에 근거한 영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2-3절). 둘째,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5절). 셋째, 주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는 편을 택해야 합니다 (7절). 넷째, 성도의 신분에 맞게 행해야 합니다 (11절).

 

  제가 처음 다녔던 계약신학교(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의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신측은 고신측에서 갈라진 교단입니다. 당시 마산문창교회가 목회자는 총회측에서 왔고 교인들은 고신측에 있어서 분쟁이 일어났고 결국 법정에 소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신측 경기노회에 속해 있던 이병규, 김창인, 최훈 목사 등이 고신총회에서 교회문제를 불신법정에 소송하는 것이 성경에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신총회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자 경기노회가 행정보류를 하였습니다. 경기노회 의 대부분 목사님은 고신총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고 하며 다시 들어갔고 이병규 목사님은 거부하여 잔류하다가 백영희 목사님 등과 함께 서울 아현예배당의 김현봉 목사님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김현봉 목사님이 돌아가시자 이병규 목사님은 계신 교단을 설립했고 백영희 목사님은 총공회 교단을 설립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나가던 교회는 계신측과 총공회측 가입 문제를 두고 분쟁이 있었습니다. 한 교회 예배당 안에서 각기 두 측 인도자가 인도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습니다. 결국 이병규 목사님은 우리 교회 목사님께 거기서 싸우지 말고 나오라고 했고 그 목사님은 사택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계신측을 따르려는 교인들을 데리고 분리했습니다. 그래서 밭을 사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다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문제와 성도문제는 불신 법정에 호소하지 말아야 하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고 분리하는 것이 옳다는 사상을 배우는 계기였습니다.  

 


       2. 음행죄에 대한 책망 (12-20절)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는 구약의 소돔성을 방불케 한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상적인 면으로 보면 두가지입니다.

 

  ① 쾌락주의적 사고입니다.

 

  쾌락주의(Epicureanism)는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것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윤리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둡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쾌락주의 영향을 받아 육체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했으니 율법적 규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한 것입니다. 성도는 죄로부터 자유하고 (롬6:18-23, 8:31-39),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고 (롬7:3-8, 갈2:4, 4:21-31), 육으로부터 자유하고 (롬13:14, 5:17), 죽음으로부터 자유했습니다(15:54-57, 롬6:21).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자유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행할 때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가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빙자하여 그릇된 자기 욕심을 채워서는 안됩니다.

 

  ② 영지주의적 사고입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플라톤철학의 이원론 영향을 받아 이원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분리하고, 깨달은 것과 행하는 것을 분리합니다. 영적인 것은 선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다고 생각하며 영적 사고는 선하나 육적 행동이 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곧 범죄한 것은 육이지 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이 범죄하여 더럽혀져도 영은 범죄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혼과 육체로 나누는 영지주의의 이분법을 극복해야 합니다. 몸은 주를 위해 있습니다 (13절). 몸은 주께서 살리실 몸입니다 (14절). 몸은 주와 연합한 지체입니다 (15절). 몸은 성령이 내주하는 성전입니다 (19절). 그러므로 몸은 정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육체적인 몸인 동시에 영적인 몸입니다. 영과 몸은 뗄 수 없는 관계로서 하나입니다. 영이 더럽혀 지면 몸이 더럽혀지지만 몸이 더럽혀지면 영도 더럽혀 집니다. 생각이 더럽혀지면 행동이 더럽혀지고 행동이 더럽혀지면 생각도 더럽혀 집니다. 그러므로 몸을 더럽혀서는 안됩니다.

 

  음행은 우리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고 몸을 거룩하게 한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몸 안에 거하는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18-19절). 그러므로 음행을 피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0절).

 

<結言>

  송사문제이든 음행문제이든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며 안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서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9-20절에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