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고린도전서7:1-40

<題目> 결혼과 이혼 문제

 

<序言>

  고린도교인들은 육체적 본능과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결혼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결혼생활에서 부부관계의 가장 깊은 것을 완전히 억제하는 것이고, 하나는 독신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인들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성도들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가, 처녀들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본 장의 내용구조는 결혼에 관한 일반적인 교훈(1-6절), 독신생활 문제(7-9절), 이혼 문제(10-16절), 그리스도인의 자유(17-24절), 처녀의 결혼 문제(25-38절), 과부의 재혼 문제(39-4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결혼에 관한 일반적인 교훈 (1-6절)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결혼의 정의는 법적으로 인정된 남녀의 결합입니다. 두 남녀가 부모를 떠나 독립된 개체로서 연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창조 질서입니다 (창2:24, 마19:6). 결혼의 목적은 생물적으로 종족 보존 차원입니다. 자녀출산으로 생육과 번성의 명령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창1:28). 그리고 윤리적으로 성적 타락을 방지하고 순결을 감당하므로 사회에 빛과 소금 역할을 하기 위함입니다 (고전7:1-5). 영적으로는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에 대한 사명을 감당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결혼의 의의는 부부 연합이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밝히는데 있습니다 (마9:15, 25:1-6).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의 일체감, 애정, 실존적 참 사랑을 발견하는데 있습니다 (엡5:21-32).

 

  본문에서 바울은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음행을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음행죄에 빠지기 쉬우므로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도 음행죄를 피하기 위해 서로 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서로 한 몸으로서 자기 혼자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만 생각하고 분방하면 배우자에게 음행이 들어오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등 신앙적 목적으로 분방해야할 때에는 서로 합의 하에 동의를 얻어서 하고 또한 기도를 마친 다음에는 다시 합하라는 것입니다. 결혼 한 자는 서로에 대한 성적 의무를 감당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권면은 주의 명령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신앙적 권면이라고 했습니다. 절대적 계명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울의 권면에서 교훈적인 면을 보면, 첫째는 부부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둘째는 부부는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며, 셋째는 부부생활에서는 자신의 자유에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목적은 사탄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음행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2. 독신생활 문제 (7-9절)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바울은 독신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 선교를 위해 혼자 살 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태에서부터 고자된 자도 있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된 자도 있는데 그런 타고난 고자라야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19:11-12).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성불구자나 성욕결핍자로 태어난 경우가 있습니다. 또 왕실에서 수종 드는 내시 같이 다른 사람에 의해 고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오리겐이나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독신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혼자 살 수 있는 것이고 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면 혼자 살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처럼 할 수만 있으면 혼자 독신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7절). 결혼을 하면 특수한 사명을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둘째, 환난 때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26-28절). 결혼생활 자체에 고난이 많습니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자녀로 인하여 자유가 없어지고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환난 때에는 가족이 생기면 환난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자녀를 위해 울라고 했습니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믿음 생활을 잘하기 위함입니다 (32-34절). 결혼한 자는 어떻게 하면 배우자를 기쁘게 할지를 생각하고 세상 일에 대한 염려를 하므로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나뉜다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하면 그만큼 걱정해야 할 일이 많고 얽매이는 일이 많아서 믿음 생활에 제약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나 과부는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의도는 결혼이나 가정생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서로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실제적인 고자나 하나님이 혼자 살 수 있는 은사를 주신 경우 외에는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정욕에 불타서 절제하지 못하므로 음행죄를 짓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9절). 정욕을 이기지 못해 범죄할 것보다는 결혼하여 범죄하지 않고 성결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당할 은사를 주셨다는 전제 하에 하나님의 사명감당과 믿음생활을 위해서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도 좋고, 하나님 앞에 성결된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을 한다면 그것도 좋다는 것입니다. 곧 결혼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결혼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3. 이혼 문제 (10-16절)

 

   ① 부부가 신자인 경우 (10-11절)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부부가 모두 신자인 경우 이혼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고 아내도 남편에게서 갈라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혹 이미 갈라섰다면 재혼하지 말고 그대로 혼자 지내든지 남편과 다시 합하도록 노력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주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9:4-6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이혼이 허락된 경우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음행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의심하는 것으로 만은 안 되고 실제로 간음죄를 지은 경우에만 해당합니다. 교회정치 조례 66문답 하반절에 "~또한 음행이 있는가 의심하는 것으로서는 이혼서를 주지 못하겠고 실범한 증거가 확실하여야 이혼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5:32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9:9에도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들은 음행이 이혼이 조건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보다는 음행한 경우 외에는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들어 이혼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다시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이는 신명기24:1-4을 근거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 대해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고 한 것은 본질적으로 이혼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리고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마19:7-9). 본래 하나님은 남녀가 부모를 떠나 결혼하고 이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사람의 심성이 워낙 완악하여 남편이 아내를 미워할 경우 힘있는 남편은 다른 여자와 음행을 하고 아내를 미워하여 아내를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한 학대를 했습니다. 심지어 누명을 씌워 죽이려 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 아내는 정상정인 가정생활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아내를 쫓아내는 경우에는 아내들이 타락의 길로 들기도 합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들 곧 더 큰 죄행을 막기 위해 합법적으로 이혼증서를 써주어서 자유를 주고 아내도 합법적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때 써주는 이혼증서란 자기의 아내가 어떤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는 자유의 몸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 문제로 갈리기를 원하는 경우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7:15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가 신앙 문제 때문에 갈리기를 원하는 경우는 이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확대 해석하면 믿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도 배우자가 이단에 속해 있어서 양보하지 않는 경우에도 포함됩니다. 특수한 사역 곧 목회나 선교 사명을 가진 자에게 있어서 배우자가 사역을 반대하는 경우에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상황이 실제적으로 연합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현실적으로 가정생활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되 법적으로 다시 합칠 수 없는 상태에는 이혼이 가능합니다. 예레미야29:4-6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유다 예루살렘이 B.C.586년에 바벨론(바벨론)에 멸망하고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살다가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유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에게 말씀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잡혀가 70년이 차기 전에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니 그 곳에 집을 짓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라고 했습니다. 유다에 아내를 남겨 둔 사람도 그 곳에서 재혼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다시 합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재혼이 허락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제시대 때 징용 가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있고, 6.25전쟁과 관련하여 남북에 서로 갈라져 서로 합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재혼해도 되는 것입니다. 확대 해석하면 배우자가 집을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경우, 혹은 배우자에게 상습적인 구타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 등도 이에 포함 될 것입니다.  

 

   ② 배우자가 불신자인 경우 (12-16절)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이는 배우자가 불신자인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바울의 권면입니다. 성도는 신자끼리 결혼을 하는 것을 원칙입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전6:14-16). 하지만 모르고 했거나 이미 결혼을 한 자라면 그것 때문에 이혼하지 말고 불신 배우자 편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불신 배우자가 신앙 문제 때문에 이혼을 요구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하나님에 대한 신앙까지 양보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를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신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를 따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믿는 배우자가 모범을 보이면 불신 배우자가 신앙을 가져서 구원을 받고 가족 전체가 거룩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이 가정, 결혼, 이혼 문제를 말하려는 요지는 우리의 개인과 가정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혼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인의 자유 (17-24절)

 

  당시 사회에서는 유대인의 종교적 관념 때문에 할례자와 무할례자가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통념 때문에 자유인(주인)과 종(노예)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례자와 무할례자가, 자유인과 종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와 한 형제 자매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함께 앉아 예배를 드리고 함께 교제를 하고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와 교회 사이에서 서로 어색했고 혼동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①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경우 (17-19절)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할례(割禮)'는 유월절(踰越節)과 함께 구약시대의 성례 중 하나입니다. 할례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때에 성기의 끝 표피를 돌칼로 자르는 의식이었습니다. 할례는 육욕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가졌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표징으로 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 안에 있는 자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신약시대에 할례에 대한 관념이 남아 있어서 전통적으로 할례를 받았고 복음을 받아 들인 다음에도 할례에 대한 구약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할례를 받지 않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도 그런 통념을 의식하여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구약의 의식으로서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모든 율법적 의식과 의문을 성취했기 때문에 구약 의식인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할례를 받았든지 받지 않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받아 들여 구원을 받은 자는 할례를 받은 자이든 받지 않은 자이든지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할례자는 무할례자가 되려 하지 말고 무할례자는 할례자가 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구원과 상관 없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지 않은 의식입니다. 갈라디아5:6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② 자유인과 종의 경우 (20-24절)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어떤 사람은 사회에서 자유인(주인)의 위치에 있다가 복음을 받아 들여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종(노예) 위치에 있다가 복음을 받아 들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경우처럼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자유인은 종이 되려 하지 말고 종은 자유인이 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인이나 종의 위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형제 자매들입니다. 자유인이 되고 싶거든 세상에 대해 자유인이 되고, 종이 되고 싶거든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혹 사회에서 자유인이라면 그것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데 활용해야 합니다.  사단과 세상과 물질과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자유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 자유하지 말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에 얽매어야 합니다. 곧 외부적으로는 어떤 신분, 직업, 위치, 형편, 처지, 상황에 있든지 자유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일에 부담을 가지고 얽매이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외부적인 환경이 좋은 조건이라면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일에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산 자들로서 그리스도에 대해 자유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를 순종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5. 처녀의 결혼 문제 (25-38절)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바울은 처녀가 결혼을 하는 것도 좋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미 결혼한 자는 혼자되기를 구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독신된 자라면 재혼하지 말고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의 계명이 아니라 바울의 개인적 의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권하는 이유는 결혼을 하면 7절에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육신의 고난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남편과 자녀로 인하여 신앙생활을 하거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제약을 받게 되고 또한 여러 근심 걱정이 늘어나게 되고 어떤 경우는 학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말세가 되어 환난 때가 가깝기 때문에 자녀로 인한 고통이 더 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4:9에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했고, 이어지는 마태복음24:15-22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21:23에도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 예루살렘이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고 거룩한 곳(성전)에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방 국기)이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예언이 있은 후 약 40여년 후에 로마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할 때에 임신을 한 자나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들은 빨리 도망하지 못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그들을 붙잡아 칼로 임신한 배를 찔러 죽였고 젖먹이 아이는 엄마 품에서 빼앗아 두 발을 잡아 돌에 메어쳐 죽였습니다. 누가복음23:28-31절에는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예루살렘 여인들이 울면서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울지 말고 그들 자신과 자기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했습니다. 푸른 나무에게도 이같이 하는데 마른 나무에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의로운 예수님 자신도 고난을 당하는데 환난 때에 죄인인 사람들은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에는 임신하지 못하는 자, 해산하지 못하는 자, 젖먹이지 못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말에 전무후무한 환난이 있을 것인데 환난이 있을 때에는 자녀 때문에 고통이 심할 것이라는 것이고 자녀들도 고통이 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종말이 가까운 이 때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한 것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바울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한 이유를 위에서는 임박할 환난 때에 고난을 당하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신앙생활을 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염려하고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기혼자들은 그런 세상 염려와 근심 때문에 마음이 갈라져서 주를 온전히 섬기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힘들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혼자들은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는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신앙생활에 매진하여 영과 몸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24:5에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새로 결혼한 자를 군사로 모집하지 말고 어떤 중요한 일도 맡기지 말라고 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 일반적인 명령에 따라 결혼을 하는 것도 좋고, 주께 받은 특수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나 주 앞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환경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사명 감당하기 좋고 신앙생활을 하기 좋지만 원리적으로는 결혼을 하든지 안 하든지 마음 가짐이 중요합니다. 29-31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 했습니다. 남편 있는 자는 남편 없는 자같이,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자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혼하여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있어도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믿음 생활을 잘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지막이 가까왔기 때문에 더욱 그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울만한 일이 있는 자도, 기쁜 가운데 있는 자도, 모든 것을 풍족히 쓰는 매매하는 자도 모두 그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2:15-17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1:24-25에도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형적, 곧 외적 형태들은 모두 지나가고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에 얽매이거나 마음 빼앗겨서 영원한 가치를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에 얽매여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자유하여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더 활용하여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빌립보서4:11-13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6. 과부의 재혼 문제 (39-40절)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과부에 대한 권면입니다. 결혼한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은 남편에게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가 됩니다. 남녀평등, 인권존중 사상입니다. 유교 사상과 다릅니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재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성경에서 허락된 경우 외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간음이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 안에서 해야 해야 합니다. 불신자나 배교자(이단)과 해서는 안됩니다. 불법적인 이혼자와 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남편이 죽었다면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원리에서입니다.  

 

<結言>

  바울은 결혼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난 고자가 아니라면 음행을 피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주께 받은 사명을 위해, 고난을 피하기 위해, 신앙생활에 헌신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것도 좋다고 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외부적으로 결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주를 위해 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현재 할례자이든 무할례자이든, 자유자이든 종이든, 기혼자이든 미혼자이든 그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지나가고 마는 세상 것들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는 가치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