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사사기2:1-23

<題目> 패역한 이스라엘


<序言>

  앞장에서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 대해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사사시대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과 사사시대 전반에 걸쳐 되풀이 되는 범죄들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게 됩니다. 내용구조는 여호와의 사자의 책망(1-5절), 여호수아 세대와 그 이후 세대(6-10절), 이스라엘의 타락(10-15절), 하나님의 구원역사(16-2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여호와의 사자의 책망 (1-5절)

 

  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선포했습니다 (1절).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 비의적 현상일 수도 있고 (13:18, 창22:11, 민22:32, 왕하1:3), 하나님의 선지자 역할을 하는 사람 중 한 사람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수24:33, 대상9:20). '길갈'은 요단강 서편 여리고 근처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굴려 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 초기에 요단강을 건넌 후 최초로 진을 친 곳이고 기념비를 세우고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행한 곳입니다 (수3-5장). '보김'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며 '우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70인역(LXX)에서는 보김을 벧엘과 동일 지역으로 봅니다. 보김을 벧엘의 또다른 이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창세기35:8에 보면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자 야곱이  그 주검을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묻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통곡의 상수리'로서 보김의 뜻인 '우는 자들'과 상통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종교적 활동의 중심지다 길갈에서 보김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벧엘이 사사시대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는 점도 그 근거를 뒷받침 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올라와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 우상의 제단을 헐라고 했는데 어찌 그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나안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그들의 우상이 올무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들을 주셨는데 (출23:20-33, 34:12-17, 수23:6-7),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가나안 땅 거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제단을 헐라는 것이었습니다 (출23:12-13, 수23:7). 언약을 맺지 말고 제단을 헐라는 것은 타협하지 말고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모든 민족에 대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전쟁을 할 때에는 먼저 상대방 성읍에 평화를 선포하여 그들이 평화하기로 화답해 오면 조공을 바치게 하고 같이 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그 성읍을 치라고 했습니다 (신20:10-15). 그러나 가나안 원주민에 대해서는 다르게 대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는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신20:16-18).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토하고 싶을 정도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레18:24-25).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풍속을 본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문명이 이스라엘 보다 발달했고 이스라엘 백성의 기질로 볼 때 그들과 화친하게 되면 그들의 죄를 본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제사장적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다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공존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은 패역한 결과였습니다 (사30:9).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징계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미 경고한 대로 전에는 하나님이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는 전쟁에 함께 했지만 이제는 함께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내내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이 올무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대적이 되어 대항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신이 유혹하여 점점 파멸에 빠지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힘들어서 평안하기 위해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고통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 동시에,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징계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경고한 대로였습니다 (민33:55-56, 수23:12-13).

 

  하나님의 사자의 책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리 높여서 울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4-5절). 죄를 책망받고 회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시51:17, 사66:1-2). 우리에게 범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범죄했다면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일서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고 했습니다.

 


       2. 여호수아 세대와 그 이후 세대 (6-10절)

 

  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전에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모세를 도와 수종들었고 모세가 죽은 자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약 30년 정도 더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다가 110세에 죽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되었습니다. 딤낫 헤레스는 벧엘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진 곳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던 백성들의 장로들은 여호수아 보다 약 20년 정도를 더 살다가 죽은 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큰 일들을 보았습니다 (수24:31). 그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이 행한 일들을 들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이 행한 일들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그 장로들 세대가 살아 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고 그 후세대에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이 행한 일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세대에 와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와와 장로들의 세대가 죽은 후 다음 세대에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행한 일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후 세대 자신들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행한 일들을 경험한 세대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경험한 세대가 후 세대들에게 신앙교육을 바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사사시대의 암흑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전 세대가 신앙교육에 태만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신앙교육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우리가 보고 듣고 안 하나님, 경험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 간증해야 하며 다음 세대에 교육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시대 때처럼 각기 제 길로 행하고 맙니다.  

 


       3. 이스라엘의 타락 (10-15절)

 

  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 때부터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이집트)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팔레스틴)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 때부터 함께 해 온 하나님을 배반하고 (출19:5-8),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가운데서 다른 신 곧 가나안 땅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스다롯 신을 섬겼습니다. 바알은 비와 폭풍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풍요의 남성신입니다. 아스다롯은 전쟁과 성(性)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행복의 여성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방신인 우상들을 섬기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진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이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겨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원주민들이 강해져 이스라엘 백성이 농사한 것과 목축한 것을 자주 약탈해 갔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물리치려 해도 그들을 이기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에게 팔려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강하여 대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수2:9), 이제는 이스라엘이 약해져서 대적이 무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괴로움은 날로 더해 갔습니다 (6:1-6). 하나님이 이미 모세와 여호수아 때 그들이 가시와 올무가 되게 한다고 했던 경고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므로 그들에게 재앙으로 이방 민족에게 붙여 괴로움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세상 문명과 문화에 빠져 범죄할 때에 은밀하게 행한 것들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행동을 보고 계십니다. 범죄자는 하나님이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시33:13-15). 그래서 반드시 징계합니다 (삼하7:14). 물론 그 징계는 심판의 목적이 아니라 바로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서 사랑의 발로라 할 수 있습니다 (잠3:12, 욥5:17, 히12:8). 우리의 환경이 나빠지고 원수가 많아지므로 괴로움을 당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고 즉시 회개하여 돌이켜야 합니다.  

  


       4. 하나님의 구원역사 (16-23절)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에게 압제를 받아 괴로움을 받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사사를 세워 구원했습니다. '사사'(士師)의 히브리어는 '샤파트'(judge)로서 '심판하다' '판결하다' 재판하다'는 뜻입니다. 사사는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민족적 지도자가 죽은 후 그리고 사울이나 다윗같은 왕이 세워지기 전에 각 지파의 지도자로서 정치와 군사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구원자(deliverer)로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3:9,1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압제의 고통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 사사를 일으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 가운데서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사가 죽으면 또다시 그 조상들보다 더욱 이방신인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그들의 마음은 더욱 완고해졌고 그들의 행위는 더욱 타락했습니다. 우상을 선기는 자체로 영적인 음행을 했을 뿐 아니라 실제 우상숭배에서 행해지는 신전의식 중 하나인 음행을 했고 그 분위기로 인해 개인 삶에서도 음행이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은 이방민족을 쫓아내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처럼 여호와의 도 곧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지에 대한 시험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할 때에 재앙을 내리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사사를 통해 구원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본래 변함이 없는 불변의 하나님입니다. 존재와 성품과 계획과 목적과 언약의 말씀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뜻을 돌이킨다는 표현은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 Anthropomorphism)적 표현입니다. 목적은 변하지 않지만 부분적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뜻을 돌이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함'은 '동정하다' '위로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어 성경에서는 '측은히 여기다'(had compassion -NIV) '연민을 느끼다'(moved to pity -LB, RSV)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할 때 징계하시지만 그것은 우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방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돌이켜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뜻을 돌이켜 회복시켜 주시므로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언약을 지켜 나가십니다 (출19:5). 마태복음28:20에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사사기에 나오는 반복적인 공식은 '이스라엘의 범죄-하나님의 징계-이스라엘의 회개-하나님의 구원'의 반복입니다. 이 공식에서 우리 인간의 간사함과 완악함과 패역함을 볼 수 있으며 반대로 하나님의 여전한 긍휼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속이 이 공식에서 벗어나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