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사사기3:1-31

<題目>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序言>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님 명령을 좇아 가나안 거민 모두를 쫓아 내어야만 했습니다 (신7:1-6). 그런데 그들은 불순종했으며 (1:9, 21, 27-36), 그 결과 그들은 남겨 둔 가나안 거민들로 말미암아 많은 고난과 약탈을 당하게 됩니다. 본 장은 그러한 고난의 시작과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하나님의 도우심 등을 설명합니다. 즉 본 장에서부터는 이스라엘이 불순종의 결과로 남겨 둔 가나안 거민을 하나님께서 징계의 도구로 삼으시며, 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면서 다시 구원자를 보내시어 적들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시는 역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사사시대의 역사개관(1-6절), 사사 옷니엘의 행적(7-11절), 사사 에훗의 행적(12-30절), 사사 삼갈의 행적(31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사사시대의 역사개관 (1-6절)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가나안을 정복한 세대가 모두 죽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모르는 세대를 시험하기 위해 이방 민족을 쫓아내지 않고 남겨 두었습니다. 그 민족은 가나안 족속들과 시돈 족속과 블레셋 족속과 히위 족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여호수아 때 이른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않고 남겨 두신 이유는 그들을 징계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시와 올무가 되게 하여 괴롭게 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시험'이라는 의미는 보통 평가(test), 시련(trial), 유혹(temptation)의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의 시험(히. 나사)은 '경험하다'의 뜻을 가진 experience(NASB, NIV)와 '증명하다' '입증하다' '알게 하다'의 뜻을 가진 prove(KJV)의 의미입니다. 2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에서 '그것'은 1절에서 말한 전쟁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신 것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해본 세대에 전쟁을 경험하게 하여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전쟁의 기술을 익히게 한다는 말이라 하기 보다는 내적으로 전쟁이 사람의 수와 병기의 우수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삼상17:47). 또한 죄를 떠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명기8:1-3에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test-NASB, NIV, prove-KJV)  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려운 환경 가운데 두시고 해결해 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 평생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험도 하나님의 경륜이 있는 경험입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 죄를 떠나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지 않고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약한 점을 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후12:7-10).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증하게 하려는, 알게 하려는, 배우게 하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그런 경험을 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 가운데 거하면서 그들과 통혼하면서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방통혼을 금했습니다 (신7:3-4) 그것은 이방통혼을 하게 되면 그들의 풍습을 본받아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이 말기에 이방 후궁들을 많이 들여 우상숭배 죄를 지어 버림받고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이방 공주를 아내로 맞아 온 나라가 우상숭배 죄에 빠지므로 심판받았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신약시대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고후6:14).

 


       2. 사사 옷니엘의 행적 (7-11절)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메소보다미아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넘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산 리사다임에게 8년 동안 압제를 받으면서 우상 섬긴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지파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을 구원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게 했습니다. 옷니엘이 하나님의 성령의 임함을 받아 구산 리사다임의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손에서 구원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옷니엘이 산 40년 동안 평안을 얻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와 다산의 신입니다. '바알'(Baal)은 사람 몸 형상에 소 머리 형상을 한 우상입니다. 가나안 족속의 주신(主神)으로서 농사에 있어서 풍요를 가져다 주는 생산신(生産神)으로 섬겼습니다. '아세라'(Asherah)는 유방과 국부가 강조된 우상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바알과 함께 섬기는 여신(女神)으로서 생산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의 아람'이라는 뜻으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광대한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말합니다. 그 지역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의 동북쪽 지역입니다. 그 지역은 이스라엘의 유다지파가 거주하는 남부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 지역 왕이 이스라엘 남부를 압제했다는 사실은 의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어떤 이는 메소보다미아를 말할 때 간혹 오론테스강이 있는 하맛을 중심으로한 팔레스타인 북방지역까지 포함하여 표현된다고 합니다 (Leon Morris). '구산'은 메소보다미아의 왕호이고 '리사다임'은 왕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에게 붙였기 때문에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압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압제에 극한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더나 우상 섬긴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임사호천(臨死呼天)이라는 말이 있듯이 죽을 고통을 당하게 되니까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옷니엘을 불러 구원자로 세우고 그에게 성령이 임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함께 할 뿐 아니라 그에게 능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옷니엘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따라 구산 리사다임의 군대와 싸워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압제에서 구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는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에게 붙여 고난을 당하게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사사를 통해 그들을 대적에게서 건져 평안을 얻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난과 평안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행위에 달여 있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웃니엘은 한 때 젊었을 때 기럇 세벨을 쳐서 빼앗으므로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한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다른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를 받으며 묵묵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자 평범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엄청난 확신으로 일어섰고 그 엄청난 확신으로 백성들을 설득하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왜 웃니엘을 택했을까요? 당시 웃니엘은 80세가 다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역 중에도 똑똑하고 능력 많은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은퇴한 예비역을 불러 이 귀중한 일을 맡기셨을까요? 왜 젊고 패기 있는 사람도 많은데 퇴물이 된 것 같이 힘을 잃은 다 늙은 노인을 부르셔서 전쟁을 승리하게 했을 까요?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고 하나님은 정신을 중요시 하기 때문입니다. 웃니엘은 가나안 정복 초기에 전쟁을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전쟁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목적과 동기와 방법이 옳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승리한다는 정신이 있습니다. 아무리 평범하고 위기에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회복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정신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때가 되면 사용하시고 높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약적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 결과는 무엇입니까? 11절에 "그 땅이 태평한지 40년에 그나스의 아들 웃니엘이 죽었더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편하게 살고자 했을 때에는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타협하고 양보할 때는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웃니엘의 말을 듣고 싸웠더니 40년간 평화가 온 것입니다. 한 사람만이라도 바로 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통이 평안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 한 사람에게만 부어져도 됩니다. 바른 정신 가지고 있는 사람 한 사람 있으면 가정이 삽니다. 교회와 도시가 삽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바른 정신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이 긍휼 베풀기 시작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빌립보서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3. 사사 에훗의 행적 (12-30절)

 

  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6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20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21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그니라

  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들어와서 다락문들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들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가지고 열어 본즉 그들의 군주가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

  26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27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8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 옷니엘이 살아 있는 동안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평안하게 되자 또다시 범죄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모압왕 에글론에게 붙였습니다. 에글론은 '젊은 황소'라는 뜻입니다. 모압왕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족속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모압 족속은 롯이 첫째 딸과 동침하여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서 (창19:30-38), 이스라엘 자손의 광야 행진시 그들의 지경을 통과하는 것을 거절했고 발람의 꾀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숭배와 간음에 빠지게 한 족속입니다 (삿11:17, 민23:11 24:10, 25:1-3). 암몬 족속은 롯이 둘째 딸과 동침하여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서 (창19:38), 모압 족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광야 행군을 방해했고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신23:3-6, 삼상11:1-3, 왕하24:2).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자손들로서 (창36:15-16), 이스라엘의 광야 통과시 지친 틈을 타 뒤를 공격했던 족속입니다 (신25:17-19, 삼상15:2). 모압왕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과 연합하여 종려나무 성읍 곧 여리고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18년 동안이나 모압왕 에글론을 섬겼습니다 (12-14절). 이스라엘은 모압의 속국이 되어 매년 공물을 세(稅)로 거두어 조공(朝貢)으로 바쳐야만 했습니다 (15절). 곧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의 식민지 생활을 것입니다. 노예 생활을 한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공물을 바치고 나면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겨우 먹고 목숨만 유지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 식민지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왕 에글론 압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훗을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습니다. 에훗은 당시에 이스라엘의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치는 일을 맡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가운데서 구해야 한다는 감동을 시켰습니다 (15, 28절). 에훗은 공물을 바치러 갈 때에 길이가 1규빗(45cm)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오른쪽 다리 속옷에 감추어 차고 갔습니다. 아마도 에훗은 사람들이 보기에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에 칼을 오른 다리에 숨겼다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훗이 공물을 바치러 갔을 때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상태였습니다. 에훗이 공물을 바친 후에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돌려 보내고 다시 모압왕 에글론에게 돌아왔습니다. 그 때 왕은 신하들과 함께 서늘한 다락방에 있었습니다. 에훗은 그에게 은밀하게 고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왕은 에훗이 보안을 요하는 비밀정보를 전하려 하는 줄 알고 신하들을 물러가게 하고 에훗의 말을 들으려 했습니다. 에훗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자 왕이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순간 에훗이 왼손으로 오른발에 숨긴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찔렀습니다. 얼마나 세게 찔렀는지 칼자루까지 들어가 끝이 등 뒤에까지 나갔습니다. 칼은 다시 빼지 않았기 때문에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습니다. 에훗이 왕을 죽인 다음 현관을 잠그고 나왔습니다. 에훗이 나온 후 왕의 신하들이 현관문이 잠긴 것을 보고 왕께서 잠을 잔다고 생각하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오래 기다려도 왕이 나오지 않자 열쇠로 고 들어가 보니 왕이 죽어서 땅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에훗은 이미 돌 뜨는 곳을 지나 나무 살림이 많은 '스이라'로 도망했습니다.

 

  에훗이 모압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으고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감동을 근거로 자신이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인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이 모압을 이스리엘 자손에게 붙이셨다는 확신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훗은 자기를 따르는 무리를 데리고 모압 맞은 편 요단강 나루를 지키고 있다가 모압 사람 10,000명 가량을 죽였습니다. 여리고에서 모압으로 도주하는  모압군들과 모압에서 여리고로 넘어오는 원병을 길목에서 차단하여 죽인 것입니다.  모압의 힘있는 역사와 용사들이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국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은 해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때로부터 80년 동안이나 태평했습니다 (15-30절).

 

  에훗은 왼손잡이라고 했습니다 (15절). 당시 베냐민 지파에는 왼손잡이가 많았는데 에훗은 그 왼손잡이와 다른 왼손잡이었던 것 같습니다. '왼손잡이'(히.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는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오른 손이 힘을 쓸 수 없도록 힘없이 매달려 있거나 자유롭게 쓸 수 없도록 굳어 있거나 해서 누가 보아도 금방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알아 볼 수 있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오른 손을 쓰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른 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왼손 보다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질병이나 사고로 약해진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여간 오른손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장애를 느낀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이었습니다. 육체적 힘으로 살아갔던 당시 문화에서는 장애인이 현대보다 더 무시를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대에 경제의 뿌리는 노동력에 있었기 때문에 강한 나라는 노예를 필요로 해서 전쟁시에 모두 죽이기 보다는 무력을 과시해서 항복을 받아 내고 항복한 포로들을 노예로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노예로서 상품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 장애인은 그 혜택에서도 제외되어 포로 중에서 제일 먼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비애를 안고 있음 직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은 압제국에 조공을 바치는 일을 맡을 수 밖에 없는 에훗을 일으켰습니다. 그에게 감동시켰습니다. 그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어 모압 왕을 죽이게 했습니다. 또한 왕을 죽이는 일에 성공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에훗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확신을 가지고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일으켜 모압을 물리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건강한 사람을 쓰지 않고 장애인인 그를 들어 썼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조공을 모압 왕에게 전달해 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 일은 누구도 하려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압제국에 조공을 거두어 전달하는 일은 매국노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훗은 누구도 맡지 않으려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가 단순히 모압에 빌붙어 돈을 많이 벌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질타를 당할 일이지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기에 맡아서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감동과 지혜와 용기를 주실 때에 그 일을 이용해 모압 왕을 죽이고 이스라엘 족속을 설득하여 모압과 싸워 이기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멸시하는 가운데 있을지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고린도전서1:27-29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부족해도 성실하면,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머리가 나빠도 가난해도 병들어도 성실하면 기회가 옵니다.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원망하며 분노해 있지 말고 성실히 맡은 일에 최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부요하게 살지 못하고 불우한 환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감동시키시면 장애를 극복하고 압제받는 가운데서 해방되어야겠다는 의지가 불 일듯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용기 주시면 적국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고 한 것처럼 담대함 가질 수 있습니다. 지혜 주시면 적국의 왕을 죽일 수 있는 방안이 떠오르고 적은 수로도 적국 군대를 항복 시킬 방안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케 하고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을 지라도 낙심하말아야 합니다. 약하고 부족한 것 때문에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멸시하고 협력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19:26에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막10:27).

 


       4. 사사 삼갈의 행적(31절)

 

  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아낫의 아들 삼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당시 가나안 거민들 중 가장 괴롭혔던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했습니다. 삼갈은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과 함께 6인의 사사로 불려지는 자입니다. 삼갈에 대한 기사는 본절에만 나오고 5:6에서 드보라의 노래에서 한번 언급된 정도입니다. 그는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군사 600명을 죽였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중계무역을 하여 부요했고 해적생활을 통해 붙잡은 사람을 애굽 노예로 파는 일을 했으므로 전쟁에 익숙했다고 합니다. 삼갈이 그런 블레셋 군사들로 더불어 싸워서 하찮은 기구로 600명이나 죽인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사(士師)시대에 가나안 거민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는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남서쪽 지중해변에 위치했습니다. 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들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원래 가나안 원주민은 아닙니다. 그들은 크레타 섬에서 이주한 해양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원주민과 다르게 도시국가를 형성하며 뛰어난 문명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정치 경제 군사 종교면에서 가나안 원주민에 비해 훨씬 우월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강력한 민족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중해 해변길을 피해 광야로 인도했던 것은 그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거쳐 동편으로 올라가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도 이스라엘을 자주 공격하여 식민지화 했습니다. 때때로 사사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부분적으로 그들 가운데서 구원하기는 했지만 그들을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했습니다. 사사이자 제사장인 엘리 때에는 그들이 공격하여 아벡에서 30,000명을 죽이고 법궤를 빼앗아 가고 실로 성소는 불태웠습니다. 그 때 엘리의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사울 왕 때에도 길보아 산에서 엄청난 사람을 죽이고 승리했습니다. 사울과 두 아들도 그 때 죽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다윗왕 때까지 줄곧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하려고 삼갈을 일으켰습니다. 삼갈은 농부로서 평범하게 농사를 짓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정황을 보아 그가 농사에 관한 일을 하고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을을 공격하여 양민을 학살하거나 학대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감동시켰을 것이고 삼갈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들고 있던 소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나가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 때 죽인 블레셋 사람이 600명이나 되었습니다. 소모는 막대기는 당시 팔레스틴에서 사용하던 도구입니다. 길이가 약 2.5m 정도 되는 둥글고 굵은 막대기입니다. 한 쪽 끝은 뾰쪽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다른 한 쪽 끝은 조그마한 삽이 달려 있어서 쟁기에 붙은 흙을 털거나 밭을 손질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무기도 아닌 농기구로 600명을 죽였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감동시키면 가능한 일입니다.

 

  삼갈은 신앙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삼갈을 '아낫의 아들 삼갈'이라고 했습니다. '아낫'은 삼갈의 아버지 이름이 아니라 가나안 여신(女神)의 이름입니다. '아낫'(Anat)은. 가나안 거민들이 섬긴 주신(主神) '바알'(Baal)의 누이이자 아내로서 전쟁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에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대부분 아이가 태어날 때 아이의 상태를 따라 짓거나 부모의 상태에 따라 짓거나 부모가 아이에 대한 소망을 따라 짓습니다. 부모의 상태에 따라 짓거나 부모가 아이에 대한 소망을 따라 지었을 때는 아이가 태어날 당시에 그 부모가 가졌던 가치관이나 신앙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삼갈의 부모가 삼갈을 '가나안 여신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당시 부모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정체성이 없어지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을 따랐다는 증거가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문화와 혼합된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3:12). 3:5-7에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고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삼갈의 부모는 가나안 우상을 섬겼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삼갈의 부모가 삼갈을 '아낫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삼갈이 태어날 때 삼갈을 그 우상이 보내 주었다고 생각했고 삼갈을 그 우상에게 바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삼갈은 우상을 섬기는 부모 아래서 자랐고 우상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부모 아래서 자란 것입니다. 그는 도무지 신앙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리고 삼갈이 '소모는 막대기'로 싸운 것을 보면 그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로 밭을 갈고 막대기로 소를 모는 정도 밖에 없습니다. 도무지 문화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환경에서 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감동시켜 담대하게 했고 용기있게 했습니다. 삼갈은 군사도 아니고 훈련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가 평소에 능숙하게 다루었던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군 600명을 죽이고 학대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한 것과 같습니다 (삼상17:17-54).  

 

  그들은 적어도 그들은 싸움은 사람의 출중한 실력이나 사람 수의 많음이나 무기의 강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입니다. 사무엘상17:45-47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하나님은 아무리 약하고 부족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쓰시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일을 이루게 됩니다 (고전1:27-29). 그 때에는 소 모는 막대기라도, 짐승을 쫓는 물맷돌이라도 강력한 무기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무능함을 보지 말고 자신이 가진 도구의 무력함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강함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날에는 고통스런 환경을 개선하고 역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습니다 (마19:26, 막10:27).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막9:23, 빌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