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사사기4:1-24

<題目> 여사사 드보라의 활약

 

<序言>

  본 장은 에훗이 죽은 후 다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원주민 하솔왕 야빈의 압제를 받던 중 여선지자이면서 여사사인 드보라와 그의 조력자 바락, 그리고 헤벨의 아내 야엘의 활약으로 그 압제에서 구원받은 내용입니다. 본 장에서 특별히 주의를 끄는 것은 드보라나 야엘과 같은 여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들은 항상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출21:7-11). 심지어 여자는 남편의 집에 있을 때, 곧 결혼하여 남편의 보살핌을 받을 때 평안을 얻는 것으로까지 여겨졌습니다 (룻1:9, 3:1).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장에서 드보라는 여선지자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 판결하는 사사의 직위를 얻었습니다. 또한 야엘은 군대장관 시스라를 죽이는 재활약을 보여 주었습니다. 본 장의 내용구조는 하솔왕 야빈의 압제(1-3절), 여사사 드보라의 활동(4-5절), 바락과 이스라엘의 승리(6-16절), 여걸 야엘의 활약(17-24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하솔왕 야빈의 압제 (1-3절)

 

  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이 사사 에훗이 죽은 후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솔의 통치자 가나안 왕 야빈이 군대의 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압제했습니다. '하솔'(Hazor)은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한 북부 가나안 성읍 중 하나로서 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수19:36). 하솔은 여호수아 때에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멸망시켰습니다 (수11:1-14). 그런데 다시 일어나 강한 도시국가가 되었고 강한 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야빈'(Jabin)은 가나안 땅 하솔 지방의 통치자인데 그의 이름이 아니라 칭호입니다. 애굽왕을 바로라고 하고 블레셋왕을 아비멜렉이라고 한 것같이 하솔왕에게도 야빈이라는 왕호를 사용했습니다. 하솔의 왕 야빈은 그의 이름의 뜻이 암시하듯이 지식과 총명이 있었고 당시에 가장 중요한 요새지로 알려진 하솔에 거했고 그는 군대장관 시스라를 두고 있었는데 시스라의 군대는 철병거 900승을 가지고 있는 막강한 화력을 가진 군대였습니다. 군사령관 '시스라'(Sisera)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도 아니고 가나안어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다른 민족의 용병이라는 의미인데 아마도 철병거를 가진 것을 보면 해양민족 헷(Hittites)족속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솔왕 야빈은 그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20년 동안이나 압박하고 학대했습니다. '학대하다'(히.라하츠)는 '비틀어 짜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야빈의 압제가 포도즙을 짜기 위해 밟아 으깨듯이 매우 혹독했음을 암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빈의 압정으로 인해 심히 고통스러워 했고 마침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에서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단계를 보면 세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적입니다. 관계가 서로 좋지 않아 대치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때로 전쟁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둘째는 압제입니다. 군사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정기적인 공물을 바치게 하는 상태입니다. 세번째는 학대입니다. 무력으로 영내에 진입하여 무조건 강제로 빼앗아 가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할 때는 자기들 마음대로 범죄하며 살다가 첫번째 정도 되면 조금 경직되다가 두번째 정도 되면 한탄하다가 세번째 정도 되면 부르짖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경직되어 가면 기도를 하기는 하되 그저 유감 표명 정도로 합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이 오고 그 어려움이 지속되면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신세 한탄 정도로 합니다. 그 때까지도 대부분 하나님께 진정으로 매달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 남이 다 빼앗아 가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금식을 하면서라도 부르짖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집과 집기까지 차압 딱지가 붙고 죽을 병이 걸려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힘들 때 부르짖어야 합니다. 설사 처음엔 원망과 한탄 섞인 기도라 할지라도 뒤에는 성령께서 도와 주셔서 신뢰와 확신과 감사가 있는 기도로 바뀔 것입니다. 시편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은 힘들 때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사사를 내어 구해 주었고 구해준 다음에는 또 범죄하고 범죄하다가 다른 민족의 압제를 당하게 되면 또 부르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구해줍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2. 여사사 드보라의 활동 (4-5절)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본 절에 나오는 드보라(Deborah)는 랍비돗의 아내로서 베냐민 지파에 속한 라마에서 살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9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성읍입니다. 그녀는 선지자였으면서 사사로 활동을 했습니다. 사사(士師)는 전쟁 때에는 이스라엘을 대적에게서 구하는 일을 했지만 평상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송사를 재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는 평시에 사사로서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서 재판 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드보라의 종려나무'는 드보라가 재판 업무를 그 종려나무 아래서 보았기 때문에 그 종려나무가 드보라의 종려나무로 불려졌고 기자는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드보라는 여자였지만 평시에 사사로서 지도자 임무를 감당했지만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의 손에서 건지는 일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가나안 하솔왕 야빈이 군사령관 시스라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20년 동안이나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솔왕 야빈의 압제에서 구원하기 위해 선지자이자 사사였던 드보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락이라는 사람을 독려하여 일으키라라고 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그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락이 리와 스블론 자손 10,000명을 모아 다볼산으로 가면 하나님이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와 그 군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바락에게 붙이시겠다고 했습니다. 바락은 그 말을 듣고도 자신이 없어서 드보라의 동행할 것을 구했고 드보라는 그와 함께 동행하기로 하고 다볼산으로 갔습니다. 드보라는 시스라의 군대가 기손강으로 모이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섭리하는 것으로 확신했고 바락에게 시스라 군대를 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6-16절).

 

  드보라는 여자였지만 하나님의 뜻에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보라는 한 사람의 아내로서 가정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장군과 군사들을 깨우치고 일어나도록 격려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를 인솔해야 할 장수가 자신없어 할 때 하나님 말씀으로 확신을 주었고 그가 하나님이 원수를 붙이는 때가 언제인지 모를 때 확실한 때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여자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이 위기에 닥칠 때 진정으로 분별력과 판단력이 요구될 때가 있습니다. 늘 성령의 인도에 예민하고 말씀을 세워 나가면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여자도 지도자로 쓰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미리암이나 드보라나 훌다 같은 경우는 백성들의 지도자 위치에 있었습니다 (출15:20, 삿4:4-5, 왕하22:14, 대하34:22). 신약시대에도 문헌들을 참고해 보면 예수님 어머니인 마리아 같은 경우도 예루살렘교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남자를 돕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남성을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다고 말합니다 (창2:18, 고전14:34, 딤전2:11-14). 그러나 여성이 남성을 보조하도록 창조했다는 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도 인격적 권리에 관한 요구가 아니라 사역적 위치에 대한 권면입니다. 또한 절대적인 요구가 아니라 보편적인 권면입니다. 하나님이 남성을 만들 때는 육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든 것을 지도하기에 알맞는 특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기에 알맞는 섬세한 성향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역적 위치에 있어서 남성을 보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절대적인 요구가 아니라 당시 사회적 통념을 염두에 둔 보편적인 권면입니다. 특수하게 여성도 개별적으로 지도력이 있는 특질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정치분야에서나 경제적인 분야에서나 종교적인 분야에서도 남자 이상으로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선교단체나 목회자들 중에는 잘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해 왔습니다. 주로 창세기 2-3장과 고린도전서14장과 에베소서5장과 베드로전서3장 설교 등에서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으니 남자에게 종속되었다' '여자는 돕는 보조자로 만들어졌다' '여자는 죄를 세상에 가져왔다'는 등 철저한 주석없이 성 억압적인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 영향으로 가부장적 사회를 이루고 있는데 기독교가 들어와서도 성경해석자가 남자이다보니 동일한 관념에서 해석하기를 좋아하므로 오히려 하나님의 법으로 얽어매서 정신카테고리를 좁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이 여성을 죄의 원인자로 말하거나 남성에게 종속된 위치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었다고 한 것은 창조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지 아담과 하와의 주종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먼저 먹은 자가 하와라고 한 것은 상황 설명이지 결코 하와가 모든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온 범죄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14:34-35)고 한 것은 당시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들어 책망하는 내용이지 교회 사역에서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는 우상숭배가 극심하여 우상숭배와 관련한 풍습이 사회 전반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의 사원에는 고급 창녀인 여사제들이 있어서 그들이 신전과 사원에서 헤게모니를 주도적으로 쥐고 함부로 행동했는데 그런 습관이 교회에서도 당연시 되었된 분위기였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에 신비적 은사를 가진 여자들이 마치 자신이 선지자인 것처럼 행동하여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나서지 말라고 조언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남성의 절대 부권이 일반화 되어 있는 통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복음전도 효과를 위해 사회적 덕을 세워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한 것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인용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의도이지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 관계에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서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삶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기 보다는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해야 할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질서를 강조하면서도 결코 권리 면에서 여성을 비하시키지는 않습니다.       

 

  드보라는 여성으로서 한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정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교제가 있는 자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상담해주고 판단해 주고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 역사를 베푸실 때 무력한 장수와 백성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여성이라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드보라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지 말고 맡은 일에 충실하다가 기회 주실 때 담대하게 일어나면 됩니다. 직접 전선에 나가 싸울 수 없지만 전선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격려하면 됩니다. 그 격려와 지도가 가정과 교회를 살립니다.

 


       3. 바락과 이스라엘의 승리 (6-16절)

 

  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여사사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납달리 지파에 속한 가데스에 있던 바락에게 사람을 보내어 일렀습니다. 그에게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10,000명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나안 하솔왕 야빈의 군대장관과 그 군사와 병거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넘겨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볼산'은 갈릴리 바다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이스르엘 골짜기에 속해 있는데 해발 528m되는 산입니다. 그 곳은 납달리 지파, 스블론 지파, 잇사갈 지파의 경계에 있어서 세 지파의 군사력을 집결하기 좋은 장소였고 하솔왕 야빈의 철병거들이 닿을 수없는 고지대일 뿐 아니라 철병거로 무장한 적을 아래 두고 공격하기에 용이한 장소였습니다. '기손강'은 다볼산 서남쪽 약 16km 지점에 있는 에스드렐론 남쪽 산악지대에서 발원하여 흐르다가 스블론, 납달리, 잇사갈 지파의 지역을 통과하여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입니다. 기손강은 총 연장 40km로서 '굽이치는 급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기에는 강물이 마르는 와디(wadi, 건조천)이지만 우기에는 큰 물이 흐르는 강입니다. 주변에는 넓은 들이 있어서 철병거를 가진 군대가 결집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9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드보라의 말을 들은 바락은 드보라가 같이 가지 않으면 자기도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바락은 자신이 받은 소명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대언을 하는 드보라의 필요성을 느끼고 드보라의 동행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드보라는 자신이 함께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락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지시를 바락에게 대언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드보라는 바락에게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솔왕 야빈의 군사령관 시스라는 죽이는 결정적인 승리는 한 여인(야엘)의 손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7-24절).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다시 게데스로 가서 스블론과 납달리 자손들 10,000명을 모집하여 다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여기에서 갑자가 겐 사람 헤벨의 가정이 나온 것은 앞으로 전개될 전투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한 자가 헤벨의 아내 야엘이기 때문입니다 (17-24절). 헤벨(Heber)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라고 하기도 하고 (출3:1, 4:18, 18:1) 르우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출2:18, 민10:29). 호밥(Hobab)은 모세의 장인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모세의 처남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장인'과 '처남'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동일하게 '호텐'이기 때문입니다.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게데스에서 가까운 사아난임 상수리 곁에 장막을 치고 거했습니다. 모세의 장인이 겐 사람 출신입니다 (1:16), 다른 성경에서는 미디안 사람 출신이라고 했는데 (출2:16, 3:1, 민10:29) 미디안 사람과 겐 사람은 동일인들이었습니다. 겐 사람들은 모세 때부터 모세와 함께 하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될 때 기뻐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이스라엘의 영내에 함께 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겐 족속은 처음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는 유다 지파 경내에 거주했는데 (1:16), 헤벨은 자기 족속을 떠나 납달리 지파 경내인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사아난님'(Zaanaim)은 납달리 지파의 남쪽 변경에 위치한 장소입니다 (수19:32-33). 겐 족은 주로 금속 세공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말 발굽 쇠를 만들거나 철 병거를 수리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사아난님으로 이주한 것은 하솔왕 야빈의 군대에 소용되는 말 발굽 쇠나 칼이나 철병거 등을 수리하는 일로 이득을 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7절). 그런데 하나님은 하벨의 아내 야엘을 통해 야빈의 군사령관 시스라를 살해하게 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바락이 100,00명을 모집하여 다볼산에 집결했다는 말을 들은 하솔왕 야빈의 군사령관 시스라는 하로셋학고임에서 철병거 900대와 모든 군사를 이끌고 기손강으로 집결시켰습니다. 드보라는 시스라 군대가 기손강에 집결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을 확인하고 바락에게 공격할 것을 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시스라를 붙이신 날로서 하나님이 친히 앞서 가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공격을 주문했습니다. 다볼산에서 이스라엘 군사들 10,000명이 기손강으로 치달아 기습하여 칼로 시스라 군대를 혼란케 했고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도망했고 시스라 군사들도 도망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시스라의 군사들을 하로셋학고임까지 추격하여 모두 전멸시켰습니다. 5:20-21에 보면 왜 시스라 군대가 철병거를 가지고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있는 자를 밟았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손강에 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쏟았습니다. 그래서 메말랐던 강이 급류로 넘쳤고 그 주변 평지가 수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병거가 진흙탕에 빠져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우왕좌왕 한 것입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급습하니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도망한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철병거라 해도 강물로 진흙탕이 된 지역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은 병거에서 빠져 나온 자들을 쉽게 죽였고 도보로 도망한 자들을 추격하여 진멸할 수 있었습니다. 철병거 900승도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출14:23-31).

 

  인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헷(Hittites) 족속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들은 합금 기술을 개발하여 막강한 무기를 소유하였고, 가나안 거민들은 그 영향으로 철제 무기들을 사용하였고 시라 군대는 철 병거까지 사용했습니다. 그에 반해 이스라엘은 사울 왕 때 블레셋에 기술에 의존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당시에는 철제 무기 자체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삼상13:22). 철 병거는 고대 전투에서 절대적 승리를 보장하는 무기였습니다. 여호수아 때 유다 지파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철 병거를 가지고 있는 족속은 두려워 하여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삿1:19). 시스라 군대는 철병거가 900대나 되지만 이스라엘은 1대도 없이 칼로만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시스라가 이끄는 가나안 군대를 이겼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유력한 자라고 해서 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9:11). 사람들이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지만 이김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잠21:31). 그런 의미에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삼상17:47).

 


       4. 여걸 야엘의 활약 (17-24절)

 

  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2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가나안 하솔왕 야빈은 군사령관 시스라의 군대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20년동안 압제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학대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선지자겸 여사사인 드보라를 통해 바락 장군을 일으켜 시스라 군대와 전투를 하게 했습니다. 드보라와 바락과 10,000명의 이스라엘 군대는 다볼산에 집결했고 시스라와 그의 군대는 철 병거 900대를 이끌고 기손강 평지에 집결했습니다. 하나님이 폭우로 기손강을 넘치게 하여 시스라 병거는 휩쓸려 진흙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칼로 공격했고 그들은 병거에서 내려 도망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도망하는 군사들을 쫓아 진멸했습니다. 시스라도 병거에서 내려 도망했습니다. 그는 걸어서 사아난님에 거하던 겐 사람 헤벨의 장막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헤벨이 하솔왕 야빈과 좋은 관계에 있었기에 그 집으로 피신하면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스라가 헤벨의 장막에 도착했을 때 헤벨의 아내 야엘(Jael)이 영접하였습니다. 야엘이 시스라를 안심시키고 이불을 덮어 주었습니다. 시스라가 마실 것을 찾자 우유를 주어 마시게 하고 다시 이불로 덮어 주었습니다. 시스라는 누가 찾으면 없다고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야엘은 시스라가 잠이 든 것을 보고 말뚝과 방망이를 가지고 가서 말뚝을 시스라 머리의 관자놀이에 박았습니다. 그 말뚝은 장막을 설치하는데 쓰는 말뚝이고 방망이는 말뚝을 박는 도구였을 것입니다. 얼마나 깊이 박았는지 말뚝이 시스라의 관자놀이를 뚫고 땅에 박힐 정도였습니다. 그로 인해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었습니다. 야엘은 시스라를 추격해온 바락에게 그 시체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기손강 전투는 완전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여세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하솔왕을 야빈을 진멸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대승을 하고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일에는 여사사 드보라의 대언과 장수 바락의 순종이 있었지만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는 데에 겐 족속 헤벨의 아내 야엘의 믿음과 용맹과 지혜에 있었습니다. 야엘의 남편 헤벨은 겐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11절). 겐 족속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것이 아니라 소수 이방 민족이었습니다. 버잘 것 없는 소수 민족으로서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거하면서 대대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돕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킨 족속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때 겐 사람으로 불려졌고 (창15:19, 삿1:16, 대상2:55), 모세 때 미디안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모세의 장인 이드로(르우엘) 후손입니다 (민10:29-32, 삿1:16, 4:11). 모세가 애굽 바로왕의 낯을 피해 미디안 광야에 머물 때 미디안 사람 중 제사장이었던 이드로(르우엘)는 모세의 장인이 되었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올 때 이스라엘 구출을 기뻐했고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과 함께 하면서 모세에게 재판을 위한 행정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출3:1, 4:18-20, 24-26, 18:1-7, 8-28). 그 무리는 모세의 권유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함께 들어갔습니다. 유다지파가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을 쳤을 때 함께 올라갔다가 유다 지파가 아랏 남방 황무지를 점령하고 그 곳에 거주할 때에 그들과 함께 거했습니다. 그래서 사사시대에 유다 지파 경내에 거주했습니다 (삿1:16), 그 무리 가운데 헤벨이라는 사람은 납달리 지파 경내인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삿4:11). 마침 가나안 하솔왕 야빈의 군사령관 시스라의 군대와 이스라엘의 바락의 군대가 전쟁을 하다가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헤벨의 집으로 도망했습니다. 그 때 시스라가 찾아와 잠든 사이 헤벨의 아내 야엘이 말뚝을 방망이로 시스라의 관자놀이를 박아 죽이므로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고 가나안 하솔왕 야빈의 압제에서 벗어났습니다 (삿4:17-24). 그들은 왕정시대에 아말렉 족속과 섞여 살기도 했는데 사울왕이 아말렉을 진멸할 때 그들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삼상15:6). '타는 자'의 의미인 '레갑'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 아들 요나답(여호나답)이 있었습니다 (렘35:6, 대상2:55). 요나답은 예후 시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에 바알 신당을 중심으로 바알 예배가 드려질 때 사마리아로 가서 예후를 도와 바알 예배를 없애는 일을 도왔습니다 (왕하10:15-23). 요나답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아들들에게 자손 대대로 집을 짓지 말고 포도원을 경작하지 말고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그의 후손은 예후 때로부터 약 250여 년 동안 그 명령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당시 패역한 유다 백성을 교훈하는데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후손에게 축복을 선언했습니다 (렘35:1-19). 헤벨의 아내 야엘은 그런 성격을 가진 족속의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에게도 그런 신앙 정신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기 남편은 아마도 직업적 목적으로 자기 민족이 거주하는 곳에서 나와 가나안 왕 야빈과 화친관계에 있었지만 그 아내 야엘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이스라엘에 대한  신앙 정체성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대적 시스라 장군을 담대히 살해 한 것입니다.  

 

<結言>

  본 장에는 여인 두 사람이 나옵니다. 드보라와 야엘입니다. 드보라는 평범한 한 남편의 아내오서 선지자와 사사의 직책을 가지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하솔왕 야빈의 압제를 받을 때 바락을 지도하여 이스라엘이 야빈의 군대를 이기게 했습니다. 야엘도 평범한 한 남편의 아내였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스라엘에 붙어 사는 겐 족속의 남편을 둔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하솔왕 야빈의 군사령관 시스라가 전장에서 도망하여 자기 장막에 찾아왔을 때 안심시키고 잠들게 해서 그의 머리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였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하고 하솔왕 야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성 위주의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여인의 기사를 기록한 것은 평범한 여인이라 해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구원 사역에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