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사사기10:1-18
<題目> 돌라와 야일의 활약
<序言>
앞 장에서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된 이후 3년 만에 자기를 지지한 자들이 일으킨 반역을 진압하던 중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 내의 분위기는 어수선했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주위의 적들로 인해 번번히 괴롭힘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 두 사사 돌라와 야일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돌라와 야일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주위 모든 나라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암몬과 블레셋 족속의 휘하에서 18년 동안 압제를 당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전과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다시 회개했는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전체 사사시대 중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진지하게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회개가 압제로 인한 고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는 여느 때와 별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우상을 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분을 섬겼다는 점에서는 그들의 회개가 매우 진지하고 진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사사 돌라의 활약 (1-2절), 사사 야일의 활약 (3-5절),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범죄 (6-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사사 돌라의 활약 (1-2절)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아비멜렉이 죽은 후 잇사갈 지파 사람 돌라가 사사(士師)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3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돌라'(Tola)는 '곤충' '벌레'라는 뜻입니다. 그는 잇사갈 지파에 속한 자였으나 에브라임 자파의 땅 사밀에서 살았습니다. '사밀'(Shamir)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사마리아와 동일 지역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가 왜 자기 지파 기업을 떠나 다른 지파의 기업에서 살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미디안 사람들의 압제로 인해 그와 그 가족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돌라가 사사로 23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그 활동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표현과 23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는 내용만 짤막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돌라를 소사사(小士師)라 하기도 합니다. 그는 드보라나 기드온처럼 이스라엘을 큰 전쟁에서 구원한 사람도 아니고 입다나 삼손처럼 극적인 모습을 보인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전혀 한 일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은 구속사적 흐름과 관련하여 특기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은 생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돌라는 외국 군대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니고 아비멜렉 사건 이후로 일어난 종족 간의 분쟁을 해결하거나 아비멜렉 사건으로 인해 상처들을 해결했던 것 같습니다.
6~8장에는 대(大)사사 '기드온'이 나왔습니다. 그는 300명으로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그들의 압제 가운데서 구원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 70명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은 '아비멜렉'이라는 사람입니다. 9장 내용을 보면, 그는 세겜에 사는 첩의 아들 서자(庶子) 였습니다. 그가 세겜 사람들을 선동하여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다른 지방 사람 69명의 아들들이 왕이 되는 것보다 자기들 지방 사람 1사람이 왕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아비멜렉이 왕이되도록 지원을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들에게 받은 은 70세겔로 건달패들을 고용하여 오브라 반석에서 이복 형제 69명 가운데 68명을 죽이고 세겜에서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끔찍한 정치 사변입니다. 쿠데타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왕으로 있은지 3연 정도 되었을 때 세겜에서 '가알'이라는 사람이 반역을 도모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당시 세겜 사람들은 바알 우상을 섬겼는데 가알은 그것을 이용해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로서 기드온은 바알을 훼파한 자이기 때문에 그를 섬겨서는 안된다고 선동했습니다. 그 내용을 접한 아비멜렉은 군사를 이끌고 세겜성을 토벌합니다. 1차적으로 가알과 함께 한 주도적 세력을 토벌하고 2차적으로 밭으로 도망 나온 세겜 거민들을 살륙하고 3차적으로 세겜 망대로 도망한 사람들을 살륙했는데 그 때에 죽은 사람만 1,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세겜에 협조한 데베스 성루를 공격하다가 위에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어지고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큰 상처와 분노가 있습니다. 다른 민족들의 압제가 연속된 역사를 살아오면서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일으킨 쿠데타와 그가 자기를 도와준 백성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마 외국 군대의 압제로 인한 분노보다 내전으로 인한 충격이 더 컸을 것입니다. 내전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는 백성들은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돌라는 사사로서 그런 문제들을 잘 해결해 주면서 나라를 평안케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왜 어떤 사람처럼 크게 쓰임받지 못하는가?' '나는 왜 어떤 사람처럼 극적인 체험이 없는가?' '나는 왜 어떤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한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평범할지라도 성실한 생활이 훌륭한 것입니다. 소사사 돌라는 내전으로 인한 상처와 분노로 가득한 이스라엘을 치유했습니다. 큰 역사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에 대한 행정적 사무를 잘 감당하므로 백성들을 죽는 날까지 평안케 했습니다. 우리가 때로 뛰어난 생을 살지 못한 것 때문에 삶을 무료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특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평범한 일상 생황에서도 자기 직무와 위치를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평범하더라도 성실한 사람이라면 영웅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교회에 일원으로서 가정의 일원으로서 위치를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온갖 상처 가운데 여러 갈등을 일으키는 구성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돌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는 소사사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여전히 그가 없이는 안 되는 영웅입니다. 아비멜렉처럼 상처를 주는 사람되지 말고 돌라처럼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2. 사사 야일의 활약 (3-5절)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야일'(Jair)은 돌라처럼 소사사(小士師)에 속합니다. 그는 길르앗 지방에 거하는 므낫세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할하는 성읍이 30개나 되었고 나귀가 30마리였고 아들도 30명이었습니다. 그 아들들이 나귀를 타고 성읍들을 관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성읍들을 '하못야일'( Havvoth Jair, 야일의 성읍)이라고 불렀습니다. 야일이 관할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니고 야일은 조상 야일의 이름을 딴 이름인데 모세 당시에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길르앗 촌락들을 점령한 후 그 성읍들에 붙인 이름입니다 (민32:41, 신3:14). 야일은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다가 가몬이라는 곳에 장사되었습니다. '가몬'(Kamon)은 갈릴리 호수 동남쪽 캄이나 동북쪽 쿠메임 중의 하나일 것인데 그 곳은 야일이 다스리던 성읍들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야일'은 드보라나 기드온처럼 이스라엘을 큰 전쟁에서 구원한 사람도 아니고 입다나 삼손처럼 극적인 모습을 보인 사람도 아닙니다. 구원사적으로 보면 돌라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돌라는 아무 한 것이 없어도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는 말이 있었는데 (1절) 야일에게는 그런 말도 없습니다. 그저 이비멜렉으로 인해 상처받은 백성을 싸매 준 돌라에 이어 22년 동안 백성들을 평안케 하다가 간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22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안정시키고 성장하도록 소임을 잘 감당했습니다. 대사사들에 비해 극적인 구원자는 아니었지만 자녀를 잘 교육하고 자녀들과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복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도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한 영웅이었습니다.
야일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구원사적으로 기념할만한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았지만 자녀를 잘 양육했습니다. 아들이 30명이었는데 그들이 각기 나귀를 타고 다녔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나귀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지위가 높았음을 의미합니다 (5:10, 12:14). 30명의 아들이 30개 소유의 성읍을 다스린 것입니다. 30명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일을 도운 것입니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일에 전적으로 협력한 것은 그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를 도우려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 입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자녀들이 돕고 이어 가려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큰 일을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자녀를 잘 양육한 사람도 영웅인 것입니다. 에베소서6:4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인격적으로 길러야 합니다. 인성이 빈약한 요즘 자녀들에게 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말일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으면 충격과 상처와 분노와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상처와 분노가 일어날 때 자존감에 상처가 될 만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분노가 표출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압박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반항심이 생깁니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부모가 가진 삶의 방식에 의문을 가집니다. 부모가 가진 신앙의 중요한 가치관에 회의를 가집니다. 그 자녀들은 부모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부모가 가진 신앙마저 부정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자녀를 인격적으로 양육하여 자녀가 부모의 생각을 존중하고 부모의 직업을 존중하고 부모의 신앙을 존중하게 된다면, 부모가 가진 삶의 목적과 방법과 행동이 달라도 존중하게 된다면, 부모가 정말로 힘들어서 이해를 구하고 고통 분담을 구할 때 협력하고 도와주는 자가 되게 한다면 다른 사람 보기에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영웅인 것입니다.
야일은 아들들을 잘 양육했을 뿐 아니라 아들들이 자기 일을 잘 협력하도록 했습니다. 야일은 이스라엘 많은 성읍들을 혼자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30명의 아들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그들과 협력했습니다. 이는 모세가 이드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스라엘 군대를 1,000부장과 100부장과 50부장과 10부장을 세워 과중한 업무를 분담한 것과 같습니다. 현대교회에서도 목사와 전도사의 과중한 업무를 장로와 권사와 집사와 권찰과 교사들을 세워 분담합니다. 순복음교단에서 시작한 '구역장 제도'와 침례교단에서 시작한 '목장 제도'와 장로교단에서 활성화 시킨 '순 제도' 등의 셀(cell) 모임들은 짐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방법입니다. 야일은 이스라엘 성읍들을 혼자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30명의 아들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그들과 협력했습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한국사회는 가부장적인 사회로서 가장들에게 절대 권위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가부장적 관념이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성운동이 한몫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부장적 관념이 해체 되면서 가장의 권위는 분배하면서 가장의 의무는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들의 심적 압박이 너무 큽니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가장인 사람들은 자기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 말고 가정의 일원들과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혼자 끙끙 대다가 무능하다고 생각하여 자살하지 말고 힘든 상황과 고통 문제를 가족에게 알게 하고 분담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의 일원들도 가장이 가정을 세우려는 의도만 있다면 존경하고 협력하여 짐을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힘들 땐 아내도 일을 하고, 자녀들도 지출을 아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6:2,5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정이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행복을 유지한다면 그야말로 이 시대의 영웅인 것입니다.
우리는 열악한 환경과 무능력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는 술취한 사람이었고, 아브라함은 너무 노쇠하였고, 이삭은 공상가였고, 야곱은 거짓말장이였고, 레아는 못생긴 자였고, 모세는 말을 잘 못하는 자였고, 라합은 기생이었고, 기드온은 두려워 하는 자였고, 삼갈은 장애인이었고, 삼손은 긴 머리에 바람둥이였고, 나오미는 과부였고, 다윗은 간음한 자였고, 엘리야는 우울증이 있는 자였고, 욥은 파산자였고, 요나는 도망자였고, 세례 요한은 가난뱅이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이 들린 자였고, 사마리아의 여자는 이혼자였고, 삭개오는 키가 작은 자였고, 바울은 포악한 자였고, 디모데는 위궤양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쓰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린도전서1:27-19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는 일이 잘 안되어도 낙심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면 영웅인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반복된 범죄 (6-18절).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8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친 이후 사사 돌라와 야일이 다스리는 동안 45(23+22)년 동안 평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해지자 또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가나안의 주신인 바알,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섬겼고 '아스다롯'은 다산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아람 신들도 섬겼습니다. '아람'(Aram)의 신은 폭풍의 신으로 섬긴 '아닷'과 '테슘'이 있었고 태양의 여신으로 섬긴 '아린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돈의 신도 섬겼습니다. '시돈'(Zidon)은 다산의 신 '아스다롯'과 풍요의 신 '에쉬문'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모압(Moab)의 신들도 섬겼는데 모압은 전쟁의 신 '그모스'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암몬(Ammon)의 신도 섬겼는데 그들은 태양과 천공(天空)의 신 '몰록'(멜렉, 밀곰)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블레셋(Philist) 신도 섬겼는데 그들은 어류와 곡물의 신 '다곤'을 섬겼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블레셋과 암몬 족속이 18년 동안 압제하게 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해 있어서 요단강 서쪽을 압제하고 암몬은 요단강 동쪽에 위치해 있어서 이스라엘의 요단강 동쪽을 압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암몬의 공격과 억압으로 인하여 심히 곤고했습니다.
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족속과 암몬 족속의 압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자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그 신들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시인하면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념에서 나온 회개일 뿐 아직 철저한 회개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과거에 애굽과 아모리와 암몬과 블레셋과 시돈과 아말렉과 마온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었는데 자신을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니 구원해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모세를 통해 인도해 냈고, 출애굽 여정에서 모세를 통해 아모리 사람들을 격멸시켜 주었고, 모압 족속과 동맹하여 괴롭히던 압몬 사람들에게서 에훗을 통해 구원해 주었고, 블레셋 사람들이 압제할 때 삼갈을 통해 구원해 주었고, 하솔왕이 압제할 때 협력한 시돈 사람들에게서 드보라와 바락을 통해 구원해 주었고 출애굽 때 괴롭힌 아말렉 사람들을 여호수아를 통해 진멸해 주었고 마온(미디안) 사람들의 압제로부터 기드온을 통해 구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이 구해 주신 것을 잊어버리고 반복적으로 다른 신들을 섬겼으니 그 신들에게 구원해 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꾸짖음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과거에 여러 차례에 걸쳐 구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을 섬겼으니 구원해 주지 않겠다고 하고 그들 신들에게 구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서의 댓구로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인간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출20:5, 신4:24).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꾸짖음에 자신들의 범죄를 자백하며 하나님이 어떤 처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건져 달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을 제하므로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통이 큼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철저한 회개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 인하여 근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꾸짖어 회개시키기 위해 구원해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자기 백성들의 고통당함과 회개함과 부르짖음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행동에 의해 뜻을 돌이키거나 말씀을 변개하는 것이 아니라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18년 동안 암몬을 섬겨 오다가 회개하고 하나님게로 돌이키면서 그들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길르앗에 진을 쳤고 이스라엘 백성도 그들을 대진하기 위해 미스바에 진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길르앗 방백과 백성들이 누구든지 암몬 족속에게 먼저 나아가 싸우는 자는 자신들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입다가 사사로 등극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結言>
하나님이 사사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 연합군의 압제와 학대와 약탈로부터 구원해 주었습니다. 사사 돌라를 통해 아비멜렉의 내전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 주고 사사 야일을 통해 평안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곧이 잊어버리고 또 다시 여러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을 블레셋과 암몬 족속에게 붙여 18년 동안 압제를 당하게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철저히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자 하나님은 또 다시 입다를 통해 그들을 구원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시51:17). 하나님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벧전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