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사사기11:1-40
<題目> 입다의 활약
<序言>
전 장에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18년 동안 암몬 족속의 압제를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암몬의 길르앗 침입이라는 위기를 앞두고 백성들이 강력한 용사를 갈구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본 장에서는 그런 요구에 의해 길르앗 출신 입다가 사사로 등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내용구조는 사사 입다의 등장(1-11절), 입다와 암몬왕 간의 논쟁(12-28절), 입다의 승리와 실책(29-4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사사 입다의 등장 (1-11절)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사사가 될 입다가 소개되었습니다. '입다'(Jephthah)는 '하나님이 열다'는 뜻입니다. 입다는 길르앗사람이었습니다. '길르앗'(Gilead)은 요단강 동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므낫세 지파의 기업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도 살고 있었고 원주민도 살고 있었습니다. 입다의 아버지는 입다의 아버지는 '길르앗' 사람으로서 지명과 같은 '길르앗'이란 이름을 가진 자였습니다. 길르앗은 아내가 있었고 아내에게서 여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기생(창녀)에게서도 한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가 바로 '입다'였습니다. 길르앗의 아내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자라나게 되자 다른 여인의 자식인 입다가 아버지의 기업(재산)을 받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입다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여러 향제들로부터 길르앗에서 쫓겨난 입다는 고향을 떠나 이방 땅 '돕'이라는 곳에서 살게 됩니다. '돕'(Tob)은 정확히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 므낫세 지파의 지경을 벗어난 지역에 있었으며 아람 사람들과 인근 이방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삼하10:6). 그 이름의 뜻이 '좋은' '선한' '아름다운'라는 뜻을 가진 것을 보아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비옥한 지역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입다가 돕 땅에서 정작하기 위해 잡류들을 가까이 했고 그들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시일이 지나면서 잡류들은 더 모여 들었고 입다는 그들의 지도자 노릇을 했습니다. '잡류'(히.아나쉼 레킴)는 '무가치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도는 불량배들을 의미합니다.
입다는 아버지의 떳떳지 못한 행동에 대해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우상 섬기는 신전에서 제사 의식과 관련하여 음란 행위를 하는 창녀였는지 돈을 벌기 위해 자리를 옮겨 가며 윤락행위를 한 창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일지라도 입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서자로 자라면서 적자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학대 당한 것도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향에서 쫓겨나 이방 땅 돕 땅에서 홀로 살아가면서 환경에 대한 분노도 컸을 것입니다. 유대 관념에서 보면 언약의 자손에서 제외되고 언약의 땅에서 쫓겨나 이방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들지 못한다는 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는 인생에 있어서의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르앗 장로들과 대화에서 보면 돕 땅에서 잡류들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항상 이스라엘 땅 길르앗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11:32에는 그를 믿음의 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큰 용사가 됩니다. 사무엘상16:7에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훌륭한 부모, 좋은 집, 많은 돈,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입다가 돕 땅에서 장성하여 결혼도하고 무남독녀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특히 므낫세지파의 길르앗 지방을 18년 동안이나 압제하던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정복하려고 길르앗 지방에 진을 쳤습니다 (10:17).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들을 막기 위해 미스바에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길르앗 장로들은 이스라엘군을 이끌어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 지도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10:18). 길르앗 장로들은 돕 땅에서 자기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주변 족속들과 전투를 하여 자기들의 땅을 지킨 입다의 무리들에 대해 그리고 그 무리들의 지도자인 입다의 용맹과 지혜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 길르앗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장로들은 돕 땅에 있는 입다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입다에게 암몬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을 장관(군대장관)이 되어 이끌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들도 전쟁을 할 것이고 자기들의 지도자(사사)로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입다는 장로들이 과거에 자신이 길르앗에서 형제들에게 쫓겨날 때에 침묵하더니 이제 환난을 당하니까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암몬 족속들을 자기 손에 넘겨 주어 승리하면 정말로 지도자(사사)로 삼아 주겠느냐고 물었고 길르앗 장로들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한다고 하므로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이스라엘 진이 있는 미스바로 가서 하나님께 자기의 말을 아뢰었습니다. 출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 같습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의 청을 들어 전쟁에 참여한 것은 그들이 제시한 지도자 자리가 탐이 나서가 아니라 다시 이스라엘 길르앗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입니다. 단지 장로들에게 확답을 얻은 것을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와 길르앗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암몬의 침략과 길르앗 장로들의 청은 입다가 사사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召命)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사사 옷니엘(3:9), 에훗(3:15), 드보라와 바락(4:6), 기드온(6:14)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직접적으로 부르지 않고 간접적으로 불렀습니다. 기드온은 당시 상황 속에서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영으로 임하시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사가 되게 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내적 감동으로 부르시기도 하고 외적 추천에 의해 세우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섭리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2. 입다와 암몬왕 간의 논쟁 (12-28절)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길르앗에 진을 쳤고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진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입다가 암몬 족속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왜 이스라엘을 치러 왔는지 물었습니다. 암몬 족속의 왕이 입다에게 사자를 보내어 대답하기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Arnon)에서 얍복(Jabbok)과 요단(Jordan)까지 자기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땅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고 했습니다. 암몬 족속의 왕이 말한 땅은 동편 요단강과 남편 아르논강과 북편 얍복강 사이의 지역을 말합니다. 그 곳은 원래 암몬 족속에게 속한 땅이기는 하나 그들이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긴 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족속을 치고 르우벤지파와 갓지파에 분배한 땅입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암몬 족속에게 빼앗을 땅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은 땅이니 암몬 족속이 돌려 달라는 것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이 모압과 암몬을 치지 말라고 해서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신2:9,19, 민21:24).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18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2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24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25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입다가 다시 암몬 족속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요단강과 아르논강과 얍복강 사이의 땅을 돌려 달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은 암몬 족속의 땅을 빼앗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4-23절). 아모리 족속의 땅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땅을 빼앗은 것도 그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공격했기 때문에 그들과 전투를 해서 정복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할 때 에돔 족속에게 에돔 족속의 땅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이 허락하지 않아 가데스(Kadesh, 가데스 바네아)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압 족속에게 그 땅으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으나 그들도 허락하지 않아 모압 땅에 들어가지 않고 모압 땅의 경계인 아르논강 유역에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모리 족속에게 그 땅으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으나 허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야하스(Jahaz)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족속과 전투를 하여 아모리 족속의 땅 곧 요단강과 아르논강과 얍복강 사이의 아모리 족속 땅을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곧 길르앗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족속에게 정복한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을 정복하게 해 준 것인데 그것을 암몬 족속이 돌려 달라는 것은 옳지 못한 요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든지 쫓아 내고 이스라엘에게 준 땅은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주신 땅은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입니다 (24절). 암몬 족속이 그모스가 차지하게 한 땅을 암몬 족속도 차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이 차지하게 한 땅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모스'(Chemosh)는 모압 족속이 전쟁의 신으로 섬기던 우상이고 암몬 족속들이 섬기는 신은 몰록인데 암몬 족속이 전쟁과 관련한 신이 없었으므로 모압 족속이 섬기는 그모스를 섬겼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전쟁의 신으로 섬기는 신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면 그 땅을 차지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처럼 길르앗 지방도 하나님이 아무리 족속 시혼을 이기게 하여 얻게 하여 주신 땅이니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암몬 왕은 모압 왕 발락보다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25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할 때 암몬 아래에 위치한 모압의 발락(Balak)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스라엘을 두려워 하여 발람에게 뇌물을 주고 이스라엘을 저주했을 뿐 이스라엘을 대적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압왕 발락보다 약한 암몬왕이 감히 이스라엘을 대적하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넷째는 300년 동안은 왜 땅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고 있는 헤스본(Heshbon)과 아로엘(Aroer)과 아르논(Arnon) 지역들이 원래 암몬 족속의 땅이라고 해서 돌려 달라고 한다면 왜 아모리 족속이 차지할 때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고 있는 300여년이 흐르도록 되찾으려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악을 행하려느냐는 것입니다 (27-28절). 입다 개인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암몬 왕과 암몬 족속에게 악하게 한 적이 없는데 어찌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악하게 대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악을 전쟁의 결과를 통해 판결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암몬 왕은 입다의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암몬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스라엘에 패하게 됩니다.
입다와 암몬 왕의 논쟁에서 입다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의식이 있었고, 하나님이 정복하게 하신 땅은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고, 하나님이 전쟁의 결과를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에서 필요한 정신입니다.
3. 입다의 승리와 실책 (29-40절)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는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하여 길르앗 지방과 므낫세 북부 지방까지 다니면서 군사를 모집하여 미스베에 모였습니다. '미스베'(Mizpeh)는 이스라엘 백성이 암몬 족속과 재치하여 진을 친 '미스바를 말합니다 (10:17). 입다가 미스바에서 암몬 족속과 전투를 하러 갈 때에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을 붙여 주시겠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두려움과 위기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을 바라고 서원을 했습니다 (창28:20, 민21:2, 삼상1:11).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고 했습니다 (30-31절).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을 물리치게 해 주시면 평안히 돌아올 때에 집 문에서 제일 먼저 나와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번제(燔祭, 히.올라)는 '올라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인데 제사 용어로 사용될 때는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입다가 서원한 번제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입다가 짐승의 희생제물을 생각하고 한 말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Hervey), 입다가 의도한 번제물은 분명히 인간 제물을 두고 한 말입니다 (Josephus, Augustine, Cundall). 입다가 뒤에 딸이 제일 먼저 나올 때 입다의 행동과 그 딸의 반응과 이스라엘 여인들의 반응을 볼 때 짐승을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고 한 말이 분명합니다. 물론 인간을 생각하고 서원했을지라도 인간을 평생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로 드리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한 말이라는 주장이 있고, 인간을 실제로 불로 태우는 제사로 드리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한 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만일 인간을 실제로 불로 태우는 제사로 드리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라면 그 서원은 잘못된 서원입니다. 서원한 것 자체는 하나님께 헌신의 증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서원의 내용이 잘못된 것입니다. 인신제사는 우상을 섬기는 이방세계에서 행하는 방법이고 하나님은 율법에서 엄격히 금한 방법입니다 (레18:21, 20:1-5, 신12:29-32, 18:9-12). 만일 입다가 인신제사를 생각하고 성원한 것이라면 그가 이스라엘 길르앗 땅에서 쫓겨나 지금까지 이방사람들이 사는 돕 땅에서 살았기 때문에 돕 땅에서 살면서 본 제사의식에 대한 관념에서 하나님의 율법 조항까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입다가 암몬 족속에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암몬 자손을 입다의 손에 붙였습니다. 그래서 입다가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20개의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했습니다. '아로엘'(Aroer)은 에돔 지경 부근의 랍바 앞에 위치한 곳입니다 (수13:25). '민닛'(Minnith)은 암몬의 수도 랍바로 가는 노상의 성읍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아벨 그라밈'(Abel Keramim)은 암몬의 수도 랍바에서 가까운 비옥한 포도원 지역을 말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으나 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입다의 이스라엘군은 암몬 족속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고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에 항복을 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군대장관인 입다가 서원을 하면서 스스로 담대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군사들도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다가 번제에 대한 서원을 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라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입다를 통해 암몬 족속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는 의지와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29절, 대하32:8, 출14:14).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입다가 승전하고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미스바'(Mizpah)는 입다의 고향이기도 하고 돕 땅에서 미스바로 돌아올 때 가족들도 데려와 산 곳입니다 (9, 11절). 그 때에 여인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며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입다의 무남독녀인 딸이 제일 앞에서 소고(텐버린)로 춤을 추며 영접했습니다. 입다가 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옷을 찢으며 슬퍼했습니다. 옷을 찢으며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극한 슬픔이나 고통을 나타낼 때 옷을 찢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37:29,34, 44:13, 민14:6, 삼하1:11, 욥1:20). '참담하게'(히.카라)는 '무릎을 꿇다'의 뜻으로서,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를 공동번역에서는 "네가 내 가슴에 칼을 꽂는구나'로 표준 새 번역에서는 '네가 아버지의 마음을 후벼 파는구나'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네가 내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 놓는구나'로 번역했습니다. 입다가 자신이 서원한 번제물이 무남독녀인 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딸의 죽게 되었다는 사실, 딸이 죽으므로 기업을 이을 자가 없다는 사실(삼상1:10-11),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서원하고 승리의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한 번 서원한 것을 번복할 수 없다는 사실(시56:12, 사19:21, 나1:15)에 통곡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입다의 말에 입다의 딸은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입다에게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36절). 입다의 딸은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으로부터 18년 동안 압제를 받았으나 하나님이 암몬 족속을 붙여 승리하게 하신 일에 감사하며 아버지의 서원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 달만 여유를 주어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게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37절). 고대 히브리인들은 여자가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자녀도 낳지 못하게 된 것을 슬퍼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압다는 딸의 요구를 받아 주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2개월 동안 여자 친구들과 산에서 애곡하고 돌아왔고 입다는 자신의 서원대로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처녀들은 그 처절함에 동참하기 위해 해마다 산에 가서 입다의 딸을 생각하며 나흘씩(4일) 애곡을 했습니다 (38-40절). 그 습관은 본문 저자의 기록 당시까지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입다가 자기 딸을 번제물로 드린 사건은 성경의 난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해석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입다가 딸을 실제로 번제(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로 드렸다는 해석입니다 (Augustine, Luther, Origen). 그 근거는 입다가 서원할 당시에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한 것은 제사의 의미를 생각한 것이고, 딸이 2달 기한을 얻어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다고 했고,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었다고 했고, 여인들이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 애곡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31, 37, 39, 40절). 입다가 어떻게 딸을 인신제사로 드릴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입다가 길르앗에서 추방을 당해 모압 땅 가까운 '돕' 땅에서 살았기에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모압의 종교의식인 인신제사에 익숙해 있었고, 그 관념에서 하나님께 최고의 경배를 드리기 위해 인신제사를 드리겠다고 성원을 했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입다가 딸을 실제로 번제로 드린 것이 아니라 딸을 평생 처녀로 성전 봉사를 하게 했다는 해석입니다 (출38:8, Keil, Lange, Cassel). 그 근거는 '번제'의 히브리어 '올라'(עלה)가 '올려 바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31절). 사도 바울도 로마서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므로 '산 제사'를 실제 죽음을 의미하지 않고 삶을 주께 드린다는 영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입다도 '번제'를 평생 성전에서 봉사하며 사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8-40절에 "이르되 가라하고 두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두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고 했는데,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의 '알 뻬툴레이아'(בתוליה על)는 '처녀됨을 인하여'라는 뜻이고 (38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의 '웨히 로 야데야 이쉬'(איש ידעה לא והיא)가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였다'는 뜻이고 (39절), '애곡하더라'의 '레타노트'(לתנות)는 '애곡하였다'는 뜻도 있으나 '축하했다' '경축했다' '칭송했다' 등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40절). 곧 원어에는 입다의 딸이 죽었다는 말이 없고 친구들이 입다의 딸이 처녀됨을 인하여 칭송했다고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입다가 하나님께서 금한 이방종교의 방법인 인신제사를 드렸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히11:32, 레18:21, 20:2-5, 신12:31, 18:10-11).
저는 두번째 해석에 마음이 갑니다. 하지만 어느 해석이 옳다고 확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해석이 옳든지 분명한 것은 입다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의 필요를 느끼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겠다고 서원했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입다의 서원은 입다의 정신이 반영된 결단입니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밖에 없는 헌신적인 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행동입니다.
<結言>
입다의 딸을 번제로 드렸다는 사건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모두 설득력이 있습니다. 만일 두번째 해석이 맞다면 입다는 서원을 잘못한 것입니다. 번제물의 대상자가 누군지 그리고 번제의 대상자의 뜻도 생각하지 않고 한 생명과 인생을 자기가 결정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신제사는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난 행위였습니다. 그것을 보면 아무리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세속적 통념과 상황에 따라 감정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고전10:12). 그러므로 서원을 할 때는 가능한 것을 서원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뒤에라도 하나님 앞에 잘못된 서원을 했다는 것을 깨달으면 회개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잘못된 서원을 지키려다가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해석 가운데 어떤 해석이 옳든지 분명한 것은 입다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성전 봉사자로 드렸다는 해석을 취하더라도 마치 한나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성전에 드린 것같이 드릴 수 없는 사람을 드린 것입니다. 입다는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고의 헌신적 결단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