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사사기18:1-31
<題目> 단지파의 우상숭배
<序言>
전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한 가정인 미가의 집에서 어떻게 우상숭배가 행해졌는가를 보았습니다. 본 장에서는 블레셋 족속의 압제를 피해 북쪽으로 이주한 단지파가 어떻게 미가 가정의 우상을 자기 지파의 우상으로 숭배하게 되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내용구조는 거할 기업을 찾는 단지파(1-10절), 단지파와 미가의 제사(11-20절), 단지파와 미가(21-26절), 단지파의 라이스 정복(27-30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거할 기업을 찾는 단지파 (1-10절)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의 왕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의 신앙적 타락도 막을 수 없었지만 (17:6) 이스라엘 지파 전체에 대한 정치적인 문제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단지파는 여호수아가 살았을 때 기업을 분배받았습니다 (수19:40-46). 베냐민 지파의 기업 접경 서쪽으로부터 시작하여 지중해까지의 일대를 분배받았는데 그 땅은 대단히 비옥한 평야였습니다. 그런데 단지파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 다른 지파의 땅으로 분산하여 이주되거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곧 단 지파는 분할받은 땅을 취하지 못하므로 정착할 곳을 찾아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요셉 족속이나 유다 지파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아모리 족속이 거하는 땅을 취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땅을 얻지 못하는 지파가 된 것입니다.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소라'(Zorah)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65km 떨어진 곳이고 '에스다올'(Eshtaol)은 소라에서 동북쪽으로 2.5km 떨어진 곳입니다. 이 곳은 유다지파와 단지파의 경계 지역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단 지파는 자기들에게 할당된 땅을 얻지 못하고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 소라와 에스다올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라와 에스다올도 블레셋 족속들로 인해서 평안히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 위해 용맹스러운 5사람을 차출하여 자기들이 정착할 땅을 찾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착지를 찾기 위해 다니다가 에브라임지파의 영역인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마침 17장에 언급된 미가의 집에서 유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미가의 집에서 레위인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으며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는지 물었습니다. 레위인 청년은 미가가 자기를 제사장으로 고용해서 미가 집에서 제사장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5명의 단지파 정탐꾼들은 레위인 청년이 제사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들의 길이 형통할 것이지 하나님께 물어 봐 달라고 했습니다. 레위인 청년은 하나님이 함께 할 것이니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
단지파의 5정탐꾼은 미가의 집에 있던 레위인 청년으로부터 하나님께서 함께 할 것이니 평안이 가라는 말을 듣고 라이스로 갔습니다. '라이스'(Laish)는 오늘날 '텔 엘 카디'(Tell el Qadi)입니다. 그 곳은 팔레스타인 최북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곳은 헤르몬산이 있어서 외침을 받지 않는 곳이고 요단강에서 흘러나온 물로 인해 용수가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 곳 사람들은 시돈 사람들처럼 안전하고 평온했고 부족한 것이 없이 풍족한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시돈 사람들은 동서 교역의 중개를 통해 풍족한 경제생활을 했습니다. 그 곳은 아모리 족속이나 블레셋 족속 같은 압제도 없었고 시돈 사람들의 통치 하에 있기는 했지만 시돈과는 거리가 멀어서 시돈 사람들이 상관하지 않아서 어느 족속으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아서 평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수자원이 풍부하여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단지파의 5정탐군은 레위인 청년 제사장에게 신탁을 받은 상태에서 그런 라이스 상황을 보니 자기들 지파가 정착하여 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파 사람들이 거하는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그 곳은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서 그 땅은 넓고 그 백성들이 강하지 않고 그 곳은 부족함이 없는 곳이니 올라가서 취하자고 했습니다.
단지파는 요셉지파들이나 유다지파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분배받은 땅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모리 족속에게 쫓기고 블레셋 족속에게 압제를 받으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했습니다. 그러다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있는 옳지 않게 세워진 레위인 제사장에게 신탁을 받고 나서 라이스를 보고는 그 곳을 하나님이 주신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곳을 치고 미가의 집에 있던 우상을 그 곳으로 가져가 우상을 숭배하는 원인이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말씀으로 분별하지 않고 보이는 현상으로 분별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2. 단지파와 미가의 제사장 (11-20절)
11 단 지파의 가족 중 육백 명이 무기를 지니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12 올라가서 유다에 있는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 단이며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13 무리가 거기서 떠나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14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 다섯 사람이 그 쪽으로 향하여 그 청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하고
16 단 자손 육백 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20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이스라엘 에브라임지파가 거하는 팔레스타인의 구릉지대(실로와 벧엘 위치)인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Micah)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촌장 역할을 할 정도의 권위가 있었고 가정에 신당을 꾸며 놓을 정도로 부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선기면서도 어머니가 만든 우상들을 신당에 두고 섬겼습니다. 혼합주의에 빠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침 유다지파가 거하던 베들레헴에 한 레위인 청년이 거할 곳을 찾다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미가는 그에게 보수로 1년에 은 10세겔(1세걸은 노동자의 4일 품삯)과 옷 1벌과 먹을 것을 주기로 약속하고 그를 가정 신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17장). 그러던 중 정착지를 얻지 못하고 떠도는 단지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단지파는 여호수아의 땅 분배 때 비옥한 땅을 분배받았으나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 각처로 흩어지고 일부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60여km 떨어져 있는 소라(Zorah)와 에스다올(Eshtaol)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블레셋 족속의 압제로 평안히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할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 5명을 차출하여 새로운 장소를 찾는 소임을 부여했습니다. 5명의 정탐꾼은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렀다가 미가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고 그들은 그 집에 있는 레위인 청년인 가정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앞길이 어떠할지 물었고 청년 제사장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할 것이 평안히 가라는 신탁을 전달했습니다. 그들은 그 신탁을 믿고 떠나 최 북단에 있는 라이스(Laish)를 보게 되는데 라이스는 단지파가 살기에 좋은 장소이고 정복하기에 좋은 성읍이라는 것을 알고 소라와 에스다올에 와서 보고를 합니다 (1-10절).
소라와 에스다올에 거하던 단지파 사람들은 5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라이스를 자기들의 정착지로서 적합하다는 결정을 하고 라이스로 향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전쟁을 할 수 있는 장정이 600명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라이스를 향하여 가다가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기럇여아림에 진을 치고 휴식을 했습니다. '기럇여아림'(Kiriath-jearim)은 '산림의 성읍'이란 뜻을 가진 지명으로서 후에 단지파에 의해 '마하네단'(단의 장막)으로 불려지게 됩니다. 단지파는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라이스로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들르게 됩니다. 미가의 집에 있는 우상들을 취하여 라이스 전투에 앞세우기 위함입니다. 전에 미가의 집에 있는 우상에 의해 청년 제사장으로부터 신탁을 받은 대로 좋은 라이스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 우상과 제사장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제사장을 동행하게 했던 것처럼 자기들을 인도한다고 생각하는 미가 집의 우상과 청년 제사장을 앞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의 집에 들러서 600명의 군사들로 문을 지키게 하고 5명의 정탐꾼이 신당에서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청년 제사장이 가로막고 연유를 묻자 5명의 정탐꾼은 그를 단지파의 제사장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한 가정의 제사장으로 있는 것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으로 있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우상들을 단지파의 신으로 삼고 그 제사장을 단지파의 제사장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청년 제사장은 그것을 좋게 여겨 그 우상들을 받아 단지파 사람들에게로 갔습니다. 한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보수를 받는 것보다 한 부족의 제사장으로 있는 것이 보수나 명예에 있어서 월등하기 때문에 기뻐하여 정탐꾼들의 말을 따른 것입니다.
단지파 사람들이 미가의 집에 들러서 미가가 없는 사이에 우상들을 강탈하고 그 제사장을 데려간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도적 행위입니다. 미가의 집에 있던 청년 제사장도 미가에게 고용된 사람으로서 미가의 허락도 없이 우상들을 내어 주고 그들을 따라간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청년 제사장은 처음부터 레위인으로서의 위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해야 할 레위인으로서 사명을 생각지 않은 채 자신의 생활을 얻기 위해 각지로 찾아 다니다가 미가가 제시하는 품삯을 받기 위해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이 되어 가정 신당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한낱 생활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 율법을 어기고 가짜 제사장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단지파 사람들이 더 많은 지파 제사장으로 제안하자 더 많은 보수와 명예를 기대하여 단지파를 따라 나서 단지파의 제사장이 됩니다. 이 가짜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도덕적인 가치의 기준이 전혀 없이 순전히 물질과 명예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을 연상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민 22장).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되면 타락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약1:15, 막4:19, 딤전6:9).
3. 단지파와 미가 (21-26절)
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22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24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단지파 사람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을 떠나 기럇여아림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들렸습니다. 그 때 미가는 집에 없었습니다. 단지파 사람들은 미가가 만들어서 가정 신당에 둔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가지고 라이스를 정복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물론 미가 집에서 제사장으로 있던 청년 레위인 제사장도 함께 데려 갔습니다. 그들은 가족들과 가축들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미가의 집에서 훔친 우상들을 가지고 라이스로 향했습니다. 라이스 성읍을 공격하여 빼앗아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미가의 집을 떠난 후 미가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단지파 사람들을 뒤쫓아 곧 그들에게 미쳤습니다. 단지파 사람들은 미가의 일행이 왜 뒤쫓아왔는지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왜 따라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미가는 자기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되찾기 위해서 왔는데 다 알고 있을 자들이 오히려 왜 왔느냐고 묻느냐고 항의했습니다. 단지파 사람들은 미가의 말을 가로막고는 공격성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생명을 빼앗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미가는 단지파 사람들에게 자기 우상을 되찾아 가기 위해 쫓아왔지만 힘으로 우위에 있는 그들의 기세에 눌려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가와 단지파 사람들의 대화에서 미가의 신관(神觀)을 알 수 있습니다. 24절에 보면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자기가 만든 신들을 단지파 사람들이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신들을 다 빼앗아 갔으니 자기에게는 남은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자기들도 만들 것이지 왜 자기의 신들을 다 빼앗아 갔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인 자기가 신(神, 히.엘로힘)을 필요에 의해 만들었고 단지파 사람들도 필요에 따라 만들 수 있다는 관념입니다. 미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신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 주권을 가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신을 자기의 필요에 의해 만들 수 있다는 우상적 관념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자존하신 분으로서 누구에게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분이고 절대 주권을 가지고 인간 역사를 다스립니다. 기독교와 타 종교와 다른 점은 기독교는 신본주의(神本主義)이고 타 종교는 인본주의(인本主義)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자기를 인간들에게 계시하여 만든 종교이고 타 종교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연구를 통해 만든 종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에 의해 연구하여 만든 신이 아닙니다. 만들어진 것은 우리를 창조하지도 못하고 주관하지도 못합니다. 사람이 만들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것은 참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종교적 대상으로서 우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타 종교처럼 종교 중 하나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생각하고 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의 관념에 의해 섬겨서는 안됩니다. 영원 자존자로서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서 그의 계시적 요구에 의해 섬겨야 합니다.
4. 단지파의 라이스 정복 (27-30절)
27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단지파 사람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서 우상들을 취하고 제사장을 데려갔습니다. 단지파 사람들은 라이스에 이르러 그 성을 정복했습니다. 라이스 사람들을 칼로 치고 성읍을 불살랐습니다. 라이스 성읍은 베드르훕 가까운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베드르훕'(Bethrehob)은 아람 사람이 거주하는 가나안 북부 성읍입니다. 라이스는 시돈 사람들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시돈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돈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라이스는 다른 민족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지파 사람들이 라이스를 칠 때 도와 줄 자들이 없었습니다. 단지파 사람들은 정복한 라이스 성읍에 거주하면서 그 성 이름을 '단'으로 고쳐서 불렀습니다. 단지파의 성읍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입니다. 그리고 단지파 사람들은 중앙성소인 실로 성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스에 미가가 만든 우상을 세우고 미가 집에서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인 청년 제사장을 지파의 제사장으로 세워 그들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사로잡히는 날'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포로잡혀 갈 때를 말할 수도 있고, B.C. 1,000년 경 이방민족에 의해 침략당한 사건을 두고 한 말일 수도 있고,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에 법궤를 빼앗길 때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단지파의 라이스 정복 사건과 우상숭배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했습니다. 라이스가 단지파의 분배받은 땅도 아닌데 정복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 때 분배해 준 땅은 아모리 족속을 두려워 하여 정복하지 못하고 손쉬운 분배받지 않은 성읍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평안히 살고 있던 라이스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성읍을 불살랐다는 점입니다.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에서 '~만나'(히. 와야보우 알)는 어떤 사람을 갑자기 덮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사용한 표현입니다 (수6:4, 8:19, 11:11). 또한 미가의 집에서 데려온 제사장을 지파의 제사장으로 삼고 미가의 집에서 빼앗아 온 우상을 지파적으로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이 제사장을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이라고 했는데 (30절), 여기에서 '모세'가 히브리어 성경에는 '므낫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KJV)에는 므낫세(Manasseh)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탈무드나 70인역을 보면 '모세'가 분명합니다 (Keil). 그런데 히브리어 필사자들이 '모세'에다가 '눈'이라는 히브리어 자음 한 자를 추가하여 '므낫세'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세를 신성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자가 단지파의 제사장으로서 우상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눈'을 추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Wycliffe). 이런 사실은 본서를 기록한 자나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도 단지파의 라이스 정복과 우상숭배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단지파는 본서 이후에 언급되지 않으며 심지어 역대기에서도 단지파에 속한 인물이 한 명도 기록되지 않았고 요한계시록에도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단지파의 이름이 빠졌습니다 (계7:5-8). 이는 창세기49:17-18에 나오는 야곱의 예언을 생각나게 합니다.
<結言>
단지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때에 분배해준 가나안 땅을 아모리 족속 때문에 취하지 못하고 소라와 에스다올에 있으면서도 블레셋 사람들 때문에 다른 곳을 찾던 중 평안히 살고 있는 라이스 사람들을 잔인하게 치고 성읍을 빼앗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지파의 이름이 성경에서 사라졌습니다. 신앙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해 하나님 나라에서 기념되지 못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