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역대상11:1-47

<題目> 다윗 왕조의 출범


<序言>

  본 장은 사울왕의 죽음 이후 다윗이 왕이 되어 여부스족을 물리치므로 다윗 왕국의 기반이 견고해 졌음을 나타내는 내용입니다. 사울왕의 죽음 이후 헤브론에서의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한 통치(삼하2:10-11), 나머지 지파를 통치한 이스보셋과의 전쟁(삼하2:12-32)에 관한 내용이 생략된채 곧바로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밝은 면을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다윗의 기름부음 받음(1-3절), 다윗왕의 예루살렘 정복(4-9절), 다윗왕의 첫째 3인(10-14절), 다윗왕의 둘째 3인(15-25절), 다윗왕의 30인 용사(26-47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다윗의 기름부음 받음 (1-3절)

 

  1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이르되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있는 왕에게로 나아가니 헤브론에서 다윗이 그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전체 이스라엘 장로들이 헤브론으로 모여 다윗에게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다윗은 자기들의 혈족이하는 것입니다 (1절). 율법에 신정국가의 왕은 반드시 동족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17:15).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동족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다윗은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라는 것입니다 (2절).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에도 지도력을 가지고 전쟁에 자가 군대를 이끌던 자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통치 하에서도 탁월한 지도력을 칭송받았고 사울의 후계자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삼상18:5-16, 23:17, 25:30). 셋째, 다윗은 하나님께서도 주권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2절).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주권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신정국가의 왕은 반드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신17:15). 다윗은 20년 전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삼상16:13). 그것을 하나님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려는 의도로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강권에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과 언약을 세웠습니다(3절). 이는 다윗이 그들에게 자신을 하나님이 세우신 왕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충성을 할 것을 서약한 것입니다. 그 서약으로 인해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3절).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것은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첫번째는 다윗이 사무엘에게 예비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삼상16:13), 두번째는 유다지파의 장로들에게 기름부음을 받았고 (삼하2:4), 세번째는 이번 대관식에서 전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3절). 다윗이 이미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어 7년 6개월 동안 다스렸으나 이젠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33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총 40년간 통치를 왕으로 있게 된 것입니다 (삼하5:4-5). 저자는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이는 다윗이 왕이 된 것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하에 세워졌음을 시사하는 바입니다 (삼상16:1-13).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된 과정을 보면 생략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다윗은 사울왕이 죽은 후 헤브론을 중심으로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지파의 왕은 사울의 막내아들 이스보셋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군사들과 이스보셋의 군사들 간에 내전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스보셋이 신하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이스보셋의 장수 아브넬을 요압이 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스보셋의 통치 하에 있던 전 이스라엘 장로들이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에게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왕임을 선포한 뒤 7년 6개월만에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입니다. 역대기에서는 그런 사실들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다윗이 왕 되기 전에 사울왕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광야로 쫓겨 다닌 행적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고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밧세바를 통간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살인교사한 내용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는 역대기의 기록 목적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세운 다윗왕조 때와 같은 영광을 다시 회복하도록 격려하려는 데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다윗의 역경과 과오는 기록하지 않고 다윗의 공적과 영광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역대기를 기록한 에스라의 의도대로라면 우리 인생이 많은 역경과 과오가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공적을 세우고 영광을 나타낸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난 과정에서 힘들고 실수했던 것에 얽매여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맞는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 다윗왕의 예루살렘 정복 (4-9절)

 

  4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땅의 주민들이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5 여부스 원주민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6 다윗이 이르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

  7 다윗이 그 산성에 살았으므로 무리가 다윗 성이라 불렀으며

  8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성의 나머지는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에 요압 장군을 앞세워 예루살렘을 치고 그 곳을 온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고 그 곳에 거했습니다. 예루살렘(Jerusalem)은 시온산이 있었기 때문에 시온(Zion)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본 이름은 여부스(Jebus)였습니다. 그 곳을 여부스라고 한 것은 아마도 그 곳에 가나안 족속 중 여부스 족속(Jebusites)이 거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 곳에는 원래 여부스족이 살고 있었는데 여호수아 때 유다 지파가 일시적으로 차지하기는 했으나 쫓겨난 여부스족이 다시 차지하였습니다 (수15:63, 삿1:21).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400명 동안 그 땅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그 곳은 지형적으로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가파른 언덕이나 낭떨어지로 되어 있어서 정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부스족은 다윗이 그 곳을 공격하려 할 때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자만했습니다 (삼하5:6). 그런데 다윗이 그 곳을 정복하였습니다. 그 곳에는 기혼 샘에서 흐르는 물을 성 안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파 놓은 수직 갱도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이 그 수구(水口)를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가 그 성을 정복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성을 정복하고 나서 그 곳을 '다윗성'(the city of David)이라고 했습니다 (삼하5:9). 그리고 성의 취약지구인 북쪽의 밀로 성채에서부터 성벽을 쌓아 성을 견고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더욱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수도로 삼고 성을 쌓은 것은 이스라엘을 견고히 하는데 절대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군사적으로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모두 언덕과 절벽(해발 670m)으로 이루어져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이스라엘 남북 무역로의 중심지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느 지파에도 속해 있지 않은 영토로서 이스라엘 전체가 수도로 받아 들여 화합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중심이 될 것이 예언되어 있는 곳으로서 그 곳에 성전을 세울 경우 신앙적인 구심점을 가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왕하19:31, 시87:2-5, 사2:3, 미5:2, 슥14:4-5, 눅24:47). 9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강성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건국의 기반이 견고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는 자에게 따르는 섭리입니다.  

 

  10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점점 강성해가는 해가 되길 바라고 점점 번영해 가는 생애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점령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이스라엘 수도인 예루살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예루살렘이 B.C.1,400여 년 이전에는 여부스 사람들(Jebusites)이 살고 있었습니다 (13:29, 수15:8, 18:16, 대상1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때에 애굽에서 나와서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는데 그 때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 족속을 내어 쫓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 쫓아 내지는 못하고 함께 살다가 다시 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수10:23,26, 15:63, 삿1:8, 21). 그 이후로 그들은 그 성을 더욱 요새화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400여 년이 지나도록 그 성읍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주변 땅을 다 점령하고도 그 성읍 만은 빼앗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성읍이 지형 자체가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그 성읍은 해발 670m 고지대에 있었는데 고원과 접하고 있는 북쪽을 제외하고는 세 방면에 모두 절벽처럼 가파른 언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쪽과 남쪽은 힌놈 골짜기가 있고 동쪽은 기드론 골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00여 년 후에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그 예루살렘 성읍을 정복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을 다윗이 자기들의 성읍을 점령하려는 것에 대해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삼면이 절벽처럼 되어 있고 북쪽 망루에서만 잘 막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그런 성을 정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 해도 이 성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조상 때부터 이 곳에 살면서 한 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고 니네들 조상 여호수아 때도 점령하려 했지만 점령하지 못했고 니네들이 온 이스라엘 땅에 거하면서도 400년 동안이나 점령하지 못했지 않느냐. 너희들쯤이야 소경이나 절름발이라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술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공격해서는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도무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공격을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읍 동쪽 아래에 기혼이라는 샘이 있었습니다. 그 기혼 샘은 간헐천(間歇泉)이었습니다. 더 깊은 곳에 깔때기 모양의 자연동공(自然空同)에 모인 물이 간간히 솟아 오르는 것입니다. 그 물이 약 20m 정도 흘러 직경 3m의 물 탱크에 저수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약 40m 가량의 경사진 지하도로 들어가면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있습니다. 그 자연 지하도의 직경은 1.8m×1.2m였습니다. 다윗은 군사들을 바로 그 지하도를 통해 들어가 성을 점령하게 했습니다. 8절에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라고 했습니다. '물 긷는 데'의 히브리어 '치누르'(צנור)는 '속이 빈' '수구(水口)' '수로'(水路)의 뜻으로서 물을 길어 나르는 빈 지하갱도를 말합니다. 그 곳으로 들어가 소경과 절름발이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자들을 골라서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그들이 소경과 절름발이라도 박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롱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압이 앞장 서서 그 수로를 따라 몰래 들어가서 그들을 쳤습니다.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공격을 하여 정복을 한 것입니다. 9절에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고 했습니다. '밀로'(מלוא)는 양 벽을 흙으로 채운 망대, 망루, 성채가 고유명사화된 것입니다. 이 밀로는 북쪽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부터 모두 성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음에는 4면을 모두 성을 수축한 것입니다. 더욱 견고하게 한 것입니다. 그 후로 그 견고함을 기초로 주변국들을 모두 굴복시켰습니다.

 

  예루살렘 정복은 번영의 발판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제일 먼저 예루살렘부터 정복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군사적으로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북쪽을 제외한 3면이 수 백 미터의 절벽과 골짜기로 되어 있어서 북쪽만 잘 방비하면 어떤 적들도 공략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경제적으로 무역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북쪽 세겜과 남쪽 헤브론과 서쪽 지중해와 동쪽 여리고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였습니다. 셋째, 정치적으로 연합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모든 지파의 중앙에 있었고 어느 지파에도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수도로 받아들여 화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넷째,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중심이 될 것이 예언되어 있는 곳으로서 그 곳에 성전을 세울 경우 신앙적인 구심점을 가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왕하19:31, 시87:2-5, 사2:3, 미5:2, 슥14:4-5, 눅24:47). 그런 좋은 곳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400여 년 동안 정복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땅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땅을 반드시 점령해야만 하나님 나라를 강하게 세우고 하나님이 명령한 성전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영역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잠언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고 했고, 5:8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고 했습니다. 사람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고 살게 됩니다. 그 동안 마음을 사탄과 우상과 세상과 육체와 물질에 내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신앙적인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것들과 동거했습니다. 이제 그것들을 정복하여 쫓아내고 마음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성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믿음, 사명, 비전이 거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견고한 진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조롱합니다. 잠언16:32에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최우선 순위를 두고 열정을 가지면 지혜를 주어 정복할 수 있게 해 주시고 그렇게 하면 생각지도 못하게 다른 것들이 굴복하게 될 것이고 그 동안 이루지 못한 번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3. 다윗왕의 첫째 3인 (10-14절)

 

  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11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삼십 명의 우두머리라 그가 창을 들어 한꺼번에 삼백 명을 죽였고

  12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세 용사 중 하나이라

  13 그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있었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와서 치니 거기에 보리가 많이 난 밭이 있더라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4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다윗은 20여년 동안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광야생활을 하였고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된 이후 7년 6개월 동안 내전을 치르고 비로소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어 여호수아 이후 400년 동안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므로 이스라엘 국가를 견고하게 세웠습니다. 이 일에는 다윗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충성된 많은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본 단락에서는 첫번째 3인의 용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들은 다윗의 군사들의 지휘관들인 30인의 지휘관인 군대 장관들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무엘하23:8-1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야소브암(Jashobeam)입니다. 사무엘하23:8에는 아디노라고 했습니다. 아디노(Adino)는 야소브암의 별명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적군을 한꺼번에 300명을 죽인 사람입니다. 사무엘하23:8에는 800명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어느 숫자가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사무엘서가 더 먼저 기록되었고 뒤에 나오는 두번째 3인의 용사에 속한 아비새가 300명을 죽였다는 것을 참고하면 야소브암은 두번째 3인의 용사보다 더 뛰어난 군장이라는 점에서 800명을 죽인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둘째는 엘르아살(Eleazar)입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바스담밈에 쳐들어왔을 때 도망하지 않고 맞서 싸워 보리밭 가운데 서서 그들을 물리친 자입니다. 셋째는 삼마(Shammah)입니다. 역대상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병행구절 사무엘하23:11에는 3인의 용사에 삼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곳에 보면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였을 때 밭 가운데 서서 물리친 자입니다.   

 

  다윗의 첫번째 3인의 용사는 야소브암과 엘르아살과 삼마입니다. 역대상과 사무엘하의 기사를 종합해서 보면 블레셋이 바스담밈에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 도망한 상황에서 이 3인의 용사가 함께 물리친 것 같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으니"라고 했습니다. 한글성경(개역개정판)에 '그가~서서'라는 표현을 보면 혼자서 싸운 것처럼 번역되어 있는데 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이테야체부'(ויתיצבו -BHS)는 복수로 되어 있고 영어성경들에서도 인칭대명사 복수인 they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And they set themselves -KJV, But they took their stand -NIV). 그런 점을 보면 엘르아살 혼자 싸운 것이 아닙니다. 본문만 보면 엘르아살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물리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무엘하23:8-12에는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야소브암(아디노)이 800명을 쳐 죽였다고 했고, 블레셋 군사들을 두려워 한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 도망했을 때 3인의 용사(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었다고 했고, 삼마도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블레셋 군사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두려워 도망하는 가운데서 이 3인의 용사가 도망하지 않고 그들을 물리친 것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블레셋 국경에 가까운 바스담밈에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바스담밈(Pasdammim)은 그 곳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주 그 곳으로 침략을 해와 그 곳에서 전투를 많이 벌인 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을 '피의 경계선'이라는 의미로 바스담밈이라고 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월맹군과 미군이 고지를 탈환하려고 반복적으로 전투를 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고지가 시체로 가득 차자 그 곳을 '햄버거 힐'이라고 부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추수 때가 가까워 지자 블레셋 군사들이 곡식을 약탈하기 위해 그 곳의 보리밭에 침략해 온 것입니다. 사무엘하23:11에는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이라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많은 수가 무장을 하고 빠르게 돌진해 오자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두 겁에 질려 도망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기가 극도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3인의 군대장관 야소브암과 엘르아살과 삼마는 그 밭 가운데 서서 그들과 싸웠습니다. 사무엘하에 보면 야소브암(아디노)는 창으로 싸웠는데 그들을 800명이나 죽였습니다. 엘르아살은 칼을 가지고 싸웠는데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군사들을 쳤습니다. 손이 칼에 붙었다는 것은 손의 근육이 풀려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많은 군사들을 쳤다는 것입니다. 삼마도 밭 가운데 서서 그들을 쳤습니다. 그러자 도망간 이스라엘 군사들도 용기를 얻어 다시 돌아왔으나 3인의 용사 뒤를 따라가며 죽은 블레셋 군사들을 노략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3인의 용사의 무용이 블레셋 군사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바스담밈 지역과 곡물을 지켰습니다. 3인의 용사 다른 사람들이 다 도망하더라도 혼자서라도 생명 내놓고 싸운 사람들입니다. 결국 다윗에게 그런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살아남아 왕이 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용사를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풀어 배불리 먹여 줄 때 모여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도리를 가르치자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 떠나갔습니다 (요6:66). 예수님이 붙잡히니 다수의 제자들도 도망했습니다 (마14:51-5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니 모두 흩어낙향했습니다 (마26:31, 요21:3). 자신들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때, 자신이 함께 받아야 할 고난이 두려울 때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쓰임 받을 자는 모두 도망하는 가운데서도 생명 내놓고 하나님, 진리, 공동체를 지킵니다. 존재의 목적이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 다윗왕의 둘째 3인 (15-25절)

 

  15 삼십 우두머리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6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은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7 다윗이 갈망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꼬 하매

  18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19 이르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그들이 자기 생명도 돌보지 아니하고 이것을 가져왔으므로 그것을 마시기를 원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20 요압의 아우 아비새는 그 세 명 중 우두머리라 그가 창을 휘둘러 삼백 명을 죽이고 그 세 명 가운데에 이름을 얻었으니

  21 그는 둘째 세 명 가운데에 가장 뛰어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첫째 세 명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22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용감한 사람이라 그가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죽였으며

  23 또 키가 큰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 사람의 키가 다섯 규빗이요 그 손에 든 창이 베틀채 같으나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2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5 삼십 명 중에서는 뛰어나나 첫째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장을 삼았더라

 

  두번째 3인의 용사들이 다윗에게 얼마나 충성스런 장수들이었는지 보여 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5-19절). 이 사건의 배경은 사무엘하5:17-25에 나오는 바알브라심 사건입니다. 블레셋 군대가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두려워 하여 다윗왕을 공격하기 위해 르바임 골짜기에 총 집결하여 사울왕 때 길보아 전투를 통해 빼앗은 것으로 추측되는 베들레헴에 진영을 갖추었습니다. 그 때 다윗왕은 그에 대처하기 위해 아둘람 굴 근처 산성 요새로 갔습니다. '아둘람(Adullam)굴'은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있는 한 산의 중턱에 있는 굴입니다. 다윗왕이 그 곳에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갈망하며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꼬"라고 했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은 깊은 곳에서 솟아 나와 시원한 생수였다고 합니다. 다윗왕이 베들레헴 태생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물을 마셔 봤을 것입니다. 더욱이 현재에 위치해 있는 아둘람 굴 근처의 요새 물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그 물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물론 다윗의 말이 당장 먹어야겠다는 의미로 한 말인지 블레셋을 물리쳐서 그 때 그 곳에 있는 물을 먹어야겠다는 의미로 한 말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3인의 용사는 당장 그 물을 떠다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떠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시키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떠 왔습니다. 아둘람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20km거리로서 왕복 40km인데 그 먼 거리에 있는 물을 떠 왔습니다. 더욱이 그 곳에 가려면 블레셋 진영을 통과해야 하는데 돌아올 때도 그 곳을 통과해야 했을 테니 무려 2번이나 통과하여 물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왕은 그 물을 먹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당시 그 곳에 제단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을 생각하며 땅에 부었을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3인의 먼 거리에까지 생명을 걸고 적진을 돌파하고 가져 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가져온 피와 같은 물을 기쁘게 마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경솔한 태도로 부하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에 대한 회개의 표시이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 생명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 부하들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표시이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것까지도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청종하는 부하들이 있음에 대한 감격과 감사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그런 전시 상황에서 베들레헴 샘의 물을 먹고 싶다고 말한 것은 다윗의 불찰일 수도 있지만 3인의 용사들의 충성을 잘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그들은 다윗왕이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사용하는 자로서 그를 위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는 일이라 생각하고 충성한 것일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충성스런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왕권이 세워지고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런 충성된 자들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4:2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4:10-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목적은 어떤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질까요? 근본적인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재물있는 자, 지식이 있는 자, 재능이 있는 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부족하더라도 오직 하나님 나라 이루는 것을 인생의 가치와 목표로 두고 그 일에 충성하는 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있든지 없든지 오직 충성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세 용사가 있었습니다. 다윗왕은 20여 년 동안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망명생활과 광야생활을 하였고, 사울왕이 죽은 후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는데 7년 6개월 동안 내전을 치른 후에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음에 400년 동안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수도로 삼아 왕권을 견고히 하고 블레셋 암몬 모압 아람 등 주변국들을 정복하여 복종시켰습니다. 그것은 다윗 자신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충성된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왕 때에 이스라엘 정규군의 지휘관 조직도를 보면 다윗왕 아래에 총사령관 1인이 있었고 그 아래 군장 6인이 있었고, 그 아래에 대장 30인이 있었습니다.

 

  *왕

  *총사령관 (1인)

  *군장 (6인: 3+3인)

  *대장 (30인)

 

  본문은 군장 6인 가운데 3인에 관한 언급입니다. 총 사령관 1인 아래 군장 6인이 있었는데 그 중 3인의 용사의 이름은 아비새(Abishai)와 브나야(Benaiah)와 한 사람은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세 용사는 충성스런 부하였습니다. 세 용사는 충성도가 뛰어난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블레셋의 군대가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두려워 하여 다윗왕을 공격하기 위해 르바임 골짜기에 총 집결하여 베들레헴에 진영을 갖추었습니다. 그 때 다윗왕은 그를 대처하기 위해 아둘람 굴 근처 산성 요새로 갔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베들레헴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땅인데다가 더욱이 자기 고향 마을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짓밟힌 것이 너무 안타까워 심히 한탄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먹어 보았던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이 생각났습니다. 그 물은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온 생수였기 때문에 아주 시원했습니다. 현재 자기가 있은 아둘람 굴 근처 요새의 물은 별로 좋지 않은데다가 어렸을 때 그 물을 먹어 보았기 때문에 그 물이 더욱 생각난 것입니다. '아! 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을 마셔 보고 싶구나! 누가 저 물을 떠다 줄 자가 없을까!" 혼자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3인의 용사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야! 다윗 왕께서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을 그렇게도 드시고 싶어 하는데 우리가 떠다가 드리자!" 하면서 왕에게 갔다 오겠다고 말도 하지 않고 부하들에게 시키지도 않고 직접 베들레헴까지 내 달렸습니다. 다윗이 누군가가 블레셋 군대의 진영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아비새 장수와 브나야 장수와 아무개 장수가 왕께서 베들레헴 우물 물을 드시고 싶다고 한다고 그 물을 떠오기 위해서 갔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저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베들레헴을 탈환해서 그 물을 한번 시원히 마셔 보고 싶어서 한말이지 누가 지금 자기들보고 그 물을 떠오라는 말인가? 저것들이 미나리 먹고 미쳤나 도라지 먹고 돌았나 생강 먹고 생각 좀 해 보지!" 마음이 조마 조마 했습니다. 3인의 용사는 20km나 되는 베들레헴까지 갔습니다. 블레셋 군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뚫고 들어가 우물 물을 길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들의 진영을 돌파하며 다시 20km를 돌아왔습니다. "왕이여! 여기 베들레헴 우물에서 길어온 물입니다. 드십시오!" "이런 미친 것들! 내가 언제 니들보고 그 물 떠오라고 했냐~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아이고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함부로 베들레헴 우물 물 먹고 싶다고 하다가 장수들 생명을 잃을 뻔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이 물을 도저히 마실 수 없습니다. 어찌 부하들이 생명을 걸고 떠온 피와 같은 물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저들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떠왔으니 이 물은 하나님이 드셔야 합니다." 하면서 물을 자기가 마시지 않고 땅에 부었습니다. 하나님께 전제로 드린 것입니다 (삼하23:13-17, 대상11:15-19).

 

  세 용사의 행동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왕은 누가 정말로 적진의 진영에 있는 우물 물을 떠오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 용사가 다윗왕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야말로 무모한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 하였습니다. 세 용사는 다윗왕이 적진의 진영에 있는 우물 물을 먹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려서 그의 마음이 흡족해야 전쟁을 잘 지휘하고 그래야 블레셋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을 강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그를 통해 강한 제사장 나라로 세워 이스라엘에 대한 목적을 이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위해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생명의 위험이 있더라도 그 일을 자기들이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그런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윗의 왕권이 견고하게 된 것은 그런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이 이루어진 것은 그런 충성된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교회에 맡긴 사역과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구원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생명도 아끼지 않는 충성된 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들에게 학식과 재능 보다 더 요구되는 것은 그런 충성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4:2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사도행전20:22-24에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인간이 가진 것 중에 가장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물질 육체 마음 재능 은사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로서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사명을 위해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과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 사역과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각오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귀하게 보이는 일을 맡기도 하지만 귀하게 보이지 않는 일도 맡았습니다. 드러나는 일을 맡기도 했지만 아무리 해도 드러나지 않는 일도 맡았습니다. 하찮게 여겨지는 일을 할 때는 칭찬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하고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계속하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열등감이 생기기도 하고 좌절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귀하고 드러나는 일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인정합니다. 귀한 일을 맡았는지 천한 일을 맡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충성하는 정신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고 충성한다면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귀히 쓰실 것이고 높일 것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상처가 나고 분노가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 이제 어떤 일을 맡았든지 생명을 바치는 심정으로 행합시다!

 


        5. 다윗왕의 30인 용사 (26-47절)

 

  26 또 군사 중의 큰 용사는 요압의 아우 아사헬과 베들레헴 사람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7 하롤 사람 삼훗과 블론 사람 헬레스와

  28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29 후사 사람 십브개와 아호아 사람 일래와

  30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렛과

  31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이대와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32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후래와 아르바 사람 아비엘과

  33 바하룸 사람 아스마웻과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34 기손 사람 하셈의 아들들과 하랄 사람 사게의 아들 요나단과

  35 하랄 사람 사갈의 아들 아히암과 울의 아들 엘리발과

  36 므게랏 사람 헤벨과 블론 사람 아히야와

  37 갈멜 사람 헤스로와 에스배의 아들 나아래와

  38 나단의 아우 요엘과 하그리의 아들 밉할과

  39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 잡은 자 베롯 사람 나하래와

  40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41 헷 사람 우리아와 알래의 아들 사밧과

  42 르우벤 자손 시사의 아들 곧 르우벤 자손의 우두머리 아디나와 그 추종자 삼십 명과

  43 마아가의 아들 하난과 미덴 사람 요사밧과

  44 아스드랏 사람 웃시야와 아로엘 사람 호담의 아들 사마와 여이엘과

  45 시므리의 아들 여디아엘과 그의 아우 디스 사람 요하와

  46 마하위 사람 엘리엘과 엘라암의 아들 여리배와 요사위야와 모압 사람 이드마와

  47 엘리엘과 오벳과 므소바 사람 야아시엘이더라

 

  다윗의 용사 가운데 첫번재 3인의 용사와 두번재 3인의 용사에 이어 본 단락에는 30인의 용사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용사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 조직한 30인의 용사입니다 (삼하23:24-39).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 그 30인의 용사에다가 요단 동편 출신의 용사들까지 포함시켜서 군 편제를 조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26-40절에서는 이 30인의 용사가 기록했는데 41-47절에는 요단 동편 출신의 용사들의 명단을 기록했습니다.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자 이스라엘 전체에서 용사들을 발탁한 것 같습니다.

 

  이 용사들 가운데 특이할 만한 사항은 이방인 출신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39절에 암몬 사람 셀렉(Zelek), 41절에 헷 사람 우리아(Uriah), 46절에 모압 사람 이드마(Ithmah), 47절에 소바 사람 야아시엘(Jaasiel) 등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이방 나라를 정복했을 때 전향하여 다윗 왕국 건설에 헌신한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이방여인 라합, 룻처럼 이방인들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려는 것을 알고 다윗의 왕권을 세워 나가는 데에 적극적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이들은 민족주의 관점에서 보면 정복자 나라의 왕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민족주의적 사관에만 얽매여 있었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 나라의 구원 사역에 쓰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과 가정이 가치있는 영원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신본주의적인 가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과 가정과 민족을 사랑하는 것일 것입니다.     

    

<結言>  

  다윗이 20여년 동안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7년 6개월 동안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고 30년 동안 이스라엘 통합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왕이 되어 왕권을 강화하여 나라를 견고하게 하고 성소를 마련하고 성전 건축 준비를 하게 된 데에는 바로 생명 내놓고 함께 하는 용사들 곧 첫번째 3인의 용사와 두번째 3인의 용사와 30인(47인)의 용사들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과 목적을 가진 자들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지도자가 지도력을 발휘하고 협력하는 자들이 지도자의 지도력을 세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