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역대상15:1-29

<題目> 다윗왕의 법궤 운반 2


<序言>

  13장에서 다윗이 법궤를 운반하다가 실패한 내용이 나오고, 14장에서는 다윗의 번영과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내용이 나오고, 본 장 15장에서는 다윗이 다시 법궤를 운반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역대기의 저자의 특별한 의도에서 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이 법궤의 2차에 걸친 운반을 통해 다윗의 신앙을 드러내고 그 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번영케 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윗의 번영과 전쟁 승리 내용을 법궤를 2차에 걸친 운반 사건 중간에 넣은 것입니다. 실제로는 사무엘하5~6장의 기록을 보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어 여부스인들이 거하던 시온성인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왕도로 삼고 왕궁을 건축하고 블레셋과의 2차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2차에 걸쳐 운반한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 장은 다윗이 법궤를 운반하다가 실패한 이후 3개월만에 다시 운반하여 성공한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다윗왕의 법궤 운반 준비(1-15절), 성역에 수종 든 레위인들(16-24절), 성역의 성공적인 완수(25-29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다윗왕의 법궤 운반 준비 (1-15절)

 

  ①다윗왕이 법궤를 모시기 위해 왕궁에 처소를 마련했습니다 (1절).

 

  1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추대된 다음에 2,000여명의 여브스 족속이 거하던 시온산성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왕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온산성을 축조하고 다윗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자기의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이 왕궁은 초기에 건축한 것입니다. 이 왕궁은 14:1에 나오는 두로왕 히람의 도움을 받아 지은 왕궁과는 다릅니다. 본 절에 나오는 초기의 왕궁 건축과 관련하여 사용한 동사 '아사'(עשה)는 건축물을 새로 만든다는 의미이고 히람의 도움을 받아 지은 왕궁 건축과 관련하여 사용한 동사 '바나'(בנה)는 이미 세워진 건축물을 보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절에 나오는 왕궁 건축은 다윗왕 초기에 처음 지은 왕궁이고, 히람의 도움을 받은 왕궁 건축은 이미 있는 왕궁을 더 크게 건축한 왕궁으로서 다윗왕 후기에 지은 왕궁입니다 (Keil, O Zockler).     

 

  디윗왕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왕도로 삼은 다음에 왕궁을 건축하고 그 왕궁 건축과 함께 왕궁 안에 별도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기 위한 장막을 건축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인 법궤(언약궤)가 벧세메스 사건 이후 20년 동안 기럇여아림 산 중턱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법궤를 왕도인 예루살렘으로 모셔서 온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6:4). 그런데 법궤를 운반하다가 웃사가 죽는 사건으로 인해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다시 법궤를 운반한 것입니다.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왕궁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기 위해 장막을 지은 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게 한 대목입니다. 그 열정은 후기에 성전을 건축하려 했던 열정과 같습니다. 사무엘하7:2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을 위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완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시고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②다윗왕이 법궤를 운반할 레위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2-10절).

 

  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3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4 다윗이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5 그핫 자손 중에 지도자 우리엘과 그의 형제가 백이십 명이요

  6 므라리 자손 중에 지도자 아사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이십 명이요

  7 게르솜 자손 중에 지도자 요엘과 그의 형제가 백삼십 명이요

  8 엘리사반 자손 중에 지도자 스마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 명이요

  9 헤브론 자손 중에 지도자 엘리엘과 그의 형제가 팔십 명이요

  10 웃시엘 자손 중에 지도자 암미나답과 그의 형제가 백십이 명이라

 

  다윗왕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추대되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왕도로 삼은 다음 왕궁과 성소를 짓고 20년 동안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언약궤)를 모시려 했습니다. 그런데 나곤(기돈)의 타작마당에서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소가 뛰어 법궤가 흔들리므로 웃사가 그것을 붙잡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다윗왕은 법궤를 옮기는 일을 중단하고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보관하게 했습니다 (13장). 그런데 3개월 후에 오벧에돔의 집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재차 법궤를 운반하려 했습니다 (13:14, 삼하16:4). 그런데 이전에 1차 운반 때 실패 원인을 찾아 2차 운반 때에는 하나님이 정한 법도를 따라 운반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우선 제사장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4절에 보면 다윗이 아론의 자손을 불어 모았다고 했습니다. '아론의 자손'은 대제장들과 제사장들을 말합니다 (출28:41). 당시 대제사장은 사독과 아비아달이 있었습니다 (11절, 삼하15:24). 사독(Zadok)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이고 (삼하15:24), 아비아달(Abiathar)은 아론의 아들이 다말의 후손으로서 엘리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삼상22:20). 두 대제사장 중 아비아달이 먼저 대제사장이 되었으나 뒤에 정통파인 사독이 대제사장 반열에 올랐습니다 (왕상1:8). 그런데 후에 아비아달은 아도니아 반역에 가담하여 솔로몬왕으로부터 대제사장직을 박탈당하고 사독이 단독적으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왕상1:5-7, 2:27,35).  

 

  그리고 각 지역에 있던 레위인들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레위지파 가운데 성막을 담당하는 자들을 불러 모은 것입니다. 그핫(Kohath)자손 중에 120명을 불러 모았는데 그 지도자는 우리엘이었습니다. 그핫은 '고핫'이라 하기도 하는데 레위의 아들입니다. 그 후손들은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는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민4:4-15, 7:9). 므라리(Merari) 자손 중에 220명을 불렀는데 그 지도자는 아사야였습니다. 므라리는 레위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성막의 띠와 널판과 기둥과 받침 등을 운반하는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민3:36-37, 4:31-33, 7:8, 10:17). 게르솜(Gershom) 자손 중에는 130명을 불렀는데 그 지도자는 요엘이었습니다. 게르솜은 '게르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레위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성막의 문장과 뜰의 휘장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민3:23-26, 4:21-28). 엘리사반(Elizaphan) 자손 중에는 200명을 불렀는데 그 지도자는 스마야였습니다. 엘리사반은 고핫의 넷째 아들인 웃시엘의 아들입니다. 헤브론(Hebron) 자손 중에는 80명을 불렀는데 그 지도자는 엘리엘이었습니다. 헤브론은 고핫의 셋째 아들로서 유다지파 갈렙의 후손인 헤브론과는 구분되는 인물입니다. 웃시엘(Uzziel) 자손 중에는 112명을 불렀는데 그 지도자는 암미나답이었습니다. 웃시엘은 고핫의 넷째 아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레위인들을 불러 모은 수가 모두 862명이었습니다.

 

  ③다윗왕이 대제사장과 레위인 지도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11-13절).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다윗왕은 대제사장 사독(Zadok)과 아비아달(Abiathar)을 부르고 레위인들의 지도자인 우리엘(Uriel)과 아사야(Asaiah)와 요엘(Joel)과 스마야(Shemaiah)와 엘리엘(Eliel)과 암미나답(Amminadab)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름받은 모든 레위인들은 몸을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몸을 성결케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직을 수행하기 위해 정결하게 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몸을 물로 씻는 것을 의미할 것이며 성관계를 금하고 시체 접촉을 금하는 등 당시 의식상 부정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로부터 정결을 유지할 것을 포함할 것입니다 (출19:14-15, 레21:13-15). 그리고 법궤를 마련한 성소로 메어 올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법궤는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어 이동시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출25:14-15, 민3:30-31, 4:15, 7:9).

 

  ④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다윗의 지시대로 행했습니다 (14-15절).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대제사장들의 지휘아래 레위인들은 다윗왕의 지시를 따라 몸을 정결케 하고 법궤를 채로 꿰어 어깨에 멨습니다. '채'는 막대기(carrying pole)를 말합니다. 성막 기구는 양편 네 군데에 고리가 있어 이동을 시킬 때는 그 고리에 채를 꿰어 어깨에 메고 이동을 시켜야 했습니다 (출25:13, 민4:10,12). 그것은 부정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물을 손대므로 부정하게 하거나 영광을 촉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왕이 대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불러 모아 법궤를 메어 이동을 시키게 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왕은 법궤를 이동시키는데 있어서 1차 운반 때에 웃사의 죽음으로 인하여 실패했었습니다. 다윗왕은 자신이 방치된 법궤를 예루살렘에 마련한 성소로 옮기려 하는 목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법궤를 옮기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절에 보면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고 했습니다.  13절에도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고 했습니다. 다윗왕이 1차 운반 때 실패한 원인을 깨닫고 수정하여 지시한 내용입니다. 1차 운반 때에는 법궤를 소가 끄는 수레에 실어서 운반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에는 레위지파의 고핫자손이 채로 꿰어 어깨에 메어서 이동시키라고 했습니다. 민수기4:15에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고 했고, 출애굽기25:14에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고 했습니다.

 

  다윗왕이 하나님을 위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평생에 그와 함께 하여 부강하게 했고 그를 통해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법궤 운반 사건에서 실패한 것은 부주의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좋으나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적입니다. 하지만 방법도 잘되어야 인정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10:2에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3:12-15에는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목적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경험했다면 방법이 말씀대로 되었는지 살펴보고 수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때로  바른 정신으로 했는데 안 되는 것을 경험할 때 의문을 가집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 말씀대로 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선진들이 강조해온 바 성도가 기본적으로 행해야 할 3가지는 우상을 버리고,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상을 말씀대로 떠났는지, 주일을 말씀대로 온전히 지켰는지, 십일조를 말씀대로 온전히 드렸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성역에 수종 든 레위인들 (16-24절)

 

  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8 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9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20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21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22 레위 사람의 지도자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인도하는 자요

  23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24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다윗왕은 법궤 운반에 봉사할 레위인들의 지도자들(5-10절)을 불러 찬양을 담당할 자들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찬양사역의 전체 지도자는 헤만과 아삽과 에단 세 사람으로 세워졌고, 그 아래 찬양을 위한 각 부분의 책임자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 모두 14명이 세워졌습니다. 그 중에 헤만(Heman)과 아삽(Asaph)과 에단(Ethan)은 놋으로 만들어진 제금을 치는 자였습니다 (19절). '제금'(提琴)은 타악기로서 오늘날 심벌즈와 같은 악기로서 찬양대를 지위하기 위해 곡의 음조나 박자를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악기입니다. 이 세 사람은 제금으로 찬양대의 전체를 지휘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가랴(Zechariah)와 아시엘(Aziel)과 스미라못(Shemiramoth)과 여히엘(Jehiel,)과 운니(Unni)와 엘리압(Eliab)과 마아세야(Maaseiah)와 브나야(Benaiah)는 비파를 알라못에 맞추어 치는 자들이었습니다 (20절). '비파'(琵琶)는 현악기로서 오늘날 기타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입니다. '알라못'(עלמות)은 원래 '처녀들'이라는 말로서 여성 소프라노에 해당하는 음조로 연주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비파를 알라못에 맞추어 연주했다는 것은 비파로 고음 연주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맛디디야(Mattithiah)와 엘리블레후(Elipheleh)와 믹네야(Mikneiah)와 오벧에돔(Obededom)과 여이엘(Jeiel)과 아사시야(Azaziah)는 수금을 여덟째 음에 맞추어 타서 연주하는 자들이었습니다 (21절). '수금'(竪琴)은 현악기로서 오늘날 하프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입니다. '여덟째 음'은 8현의 마지막 현의 음으로서 저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수금으로 여덟번째 음에 맞추어 탔다는 말은 남성의 베이스 음역으로 연주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나냐(Chenaniah)는 노래를 인도하는 자였습니다 (22절). 그는 노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자로서 노래를 가르치고 지휘했습니다. 그리고 베레갸(Berechiah)와 엘가나(Elkanah)와 오벧에돔(Obededom)과 여히야(Jehiah)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였습니다 (23-24절). 이들은 법궤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법궤에 접근하거나  그것을 만지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제사장 스바냐(Shebaniah)와 요사밧(Jehoshaphat)과 느다넬(Nethaneel)과 아미새(Amasai)와 스가랴(Zechariah)와 브나야(Benaiah)와 엘리에셀(Eliezer)은 법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들이었습니다 (24절). 7명의 제사장은 법궤 앞에서 나팔을 불게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출19:16).  

 

  다윗왕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인 법궤를 이동시키는데 있어서 레위인들 가운데 찬양을 담당하는 자들을 세워 찬양을 하게 했습니다. 어떤 이는 지휘자로, 어떤 이는 노래한 자로, 어떤 이는 악기를 연주하는 자로, 어떤 이는 나팔을 부는 자로, 어떤 이는 지키는 자로 세웠습니다. 이 예가 후에 성전 찬양대로 발전하게 되고 오늘날 교회 찬양단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있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3. 성역의 성공적인 완수 (25-29절)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①다윗왕이 감사제사를 드렸습니다 (25-26절).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시키는 데 있어서 다윗왕은 매우 신중했습니다. 1차 운반 때 하나님이 진노하였기 때문에 2차 운반시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실 지에 대해 예민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하6:13에 보면 법궤를 멘 레위인들이 6보를 행하고 나서 다윗이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법궤를 멘 레위인들이 6보를 행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 여기신 줄 알고 수소 7마리와 수양 7마리로 감사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②다윗왕이 기쁨으로 법궤를 운반했습니다 (27-28절).

 

  법궤를 운반할 때에 다윗왕은 베 에봇을 입었고 법궤를 메는 레위인이나 찬양을 하는 레위인들은 세마포 겉옷을 입었습니다. '베 에봇'(ephod)은 원래 제사장들이 세마포 옷 겉에 입는 옷으로서 소매가 없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겉옷입니다. 다윗이 이 옷을 입은 것은 제사장 나라의 대표자인 제사장직 왕으로서 입은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세마포 겉옷'은 원래 주로 성직을 담당하는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이 입었던 옷으로서 삼이나 아마에서 뽑은 고운 실로 짜서 만든 베옷을 말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백성들이 나팔과 뿔 나팔을 불고 제금을 치고 비파와 수금을 타고 노래를 했습니다. '나팔'은 은으로 만들어진 나팔로서 오늘날 트럼펫과 비슷한 나팔입니다. '뿔 나팔'는 수양의 불로 만든 나팔입니다. '제금'은 동으로 만든 원반모양의 두 심벌을 양손에 하나씩 붙잡고 서로 마주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서 오늘날 심벌즈와 비슷한 악기입니다. '비파'는 현을 튕겨서 고음을 내는 악기로서 오늘날 기타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입니다. '수금'은 현을 튕겨서 저음을 내는 악기로서 오늘날 하프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입니다. '노래'는 연주에 맞추어 부르는 찬양을 말합니다.

 

  ③다윗왕이 춤을 추었습니다 (29절).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에 다윗왕은 너무 기뻐서 법궤 앞에서 춤을 추며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의 딸이자 다윗왕의 아내인 미갈(Michal)이 창으로 다윗이 왕복도 입지 않은 채 춤을 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마음에 다윗왕을 업신여겼습니다 (삼하6:16). 그래서 다윗왕이 가족에게로 가자 미갈이 다윗왕에게 방탕한 자가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체통없이 몸을 드러냈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왕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하6:20-21). 하나님이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게 했으니 하나님 앞에서 너무 기뻐 춤을 춘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너무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사울왕의 불신앙의 영향을 받았는지 다윗왕의 순수한 신앙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했습니다. 언약적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윤리적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에 한낱 체신없는 행동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갈의 행동을 기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삼하6:23). 하나님의 징벌인 것입니다. 자식이 없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징계인 것은 아니지만 미갈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다윗과 미갈이 다툰 것은 근본적으로 시각차이입니다. 언약궤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다윗은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의 가견적 표징으로 생각하여 언약궤를 모심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것이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언약궤를 한낱 종교적 상징물인 하나의 궤짝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언약궤가 들어오는 데 대한 관심보다 다윗의 외부적 행동 더 크게 보인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교만할 수 밖에 없고 그 교만한 말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되게 됩니다.

 

<結言>

  다윗이 평생 소원하는 바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선한 중심에도 불구하고 1차 시기에는 실패하고 2차 시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다윗이 1차에는 율법대로 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을 깨닫고 2차에는 율법대로 합니다. 결국 성공하자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 주시고 온 이스라엘에 주인이 되시기로 했다고 생각하고 체면을 생각지 않고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남다른 시각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