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역대상29:1-30

<題目> 다윗왕의 임종


<序言>

  본 장은 다윗왕이 생애 마지막에 솔로몬에게 건축할 성전의 양식을 설명한 후에 (28:11-21), 자신이 손수 성전건축 완수를 위해 모범을 보이고 백성들도 그 모범을 따라 헌물을 드렸습니다. 내용구조는 다윗왕과 백성들이 드린 헌물(1-9절), 다윗왕의 감사기도(10-19절), 솔로몬의 즉위(20-25절), 다윗왕의 임종(26-3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다윗왕과 백성들이 드린 헌물 (1-9절)

 

  1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며 이 공사는 크도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2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또 마노와 가공할 검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모든 보석과 옥돌이 매우 많으며

  3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4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

  5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다윗왕은 자신이 성전건축을 준비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28장 유언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이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고 솔로몬을 통해 건축할 것이라고 했는데 솔로몬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신이 성전건축을 위해 모든 재료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성전건축과 성전기구를 만들 수 있도록 금 은 동 철 목석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자신이 사유한 금과 은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금 3,000달란트와 은 7,000달란트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각각 약 102톤과 238톤을 드린 것입니다. 금 1달란트는 34kg인데 오늘날 금궤(골드바) 하나는 1kg으로서 싯가로 20,000,000원(2천만원) 정도 되므로 금 3,000달란트는 2,040,000,000,000원(2조4백억원)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거기에다가 은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금액입니다. 고대에 통치자의 사유 재산은 안전과 통치에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윗왕은 그 동안 전쟁에서 얻은 사유재산을 성전건축을 위해 헌금했습니다. 다윗왕은 성전건축을 위해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헌금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모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도 성전건축을 위해 힘써 헌금을 하라고 했습니다.  

 

  6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7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8 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드렸더라

  9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다윗왕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헌금을 드리면서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헌금할 것을 권면하자 그들도 자원하여 즐거움으로 힘써 헌금을 드렸습니다. 금 5,000달란트와 금 1,000다릭(daric은 페르시아 화폐단위)과 은 10,000달란트와 놋 18,000달란트와 철 100,000달란트를 드렸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보석을 드렸습니다. 금의 중량은 190톤이고 은의 중량은 375톤이었으므로 다윗왕이 드린 금과 은의 1.5배를 드린 것입니다. 당시 통치자의 사유재산이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신하들도 적은 금액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다윗왕은 그들이 자원하여 즐거움으로 힘서 드리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했습니다.    

 


        2. 다윗왕의 감사기도 (10-19절)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18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19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다윗왕은 자신이 성전건축을 위해 헌금을 드리고 백성들도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기도의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자기와 백성들은 성전건축을 위해 그 많은 헌금을 드릴 수 없는 자들인데 하나님이 그 많은 재물을 주시고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자기들이 드려 놓고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히 하나님이 주권 가운데 행하신 은혜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성전이 건축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로 마쳤습니다. 다윗왕이 하나님께 얼마나 순순한 신앙을 가졌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3. 솔로몬의 즉위 (20-25절)

 

  20 다윗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매 회중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하고

  21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22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무리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 하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이 되게 하니라

  23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형통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24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 왕의 여러 아들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

  25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다윗왕이 솔로몬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성전건축을 할 것을 유언하고 자신과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위해 사유 재산을 헌납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수많은 제물로 번제와 전제를 드리고 모두 함께 화목을 위해 음식을 나누어 먹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른바 대관식을 행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온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솔로몬을 순종하므로 솔로몬의 위엄이 역대 어떤 왕들보다도 뛰어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삼하7:12, 왕상2:12).

 

  사실 본문에서는 솔로몬이 아무 어려움 없이 왕으로 세워진 것처럼 기록이 되었지만 열왕기상1-2장에 보면 아도니아의 찬탈음모가 있었습니다. 다윗왕에게 여러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낳은 아들이 대략 19명 정도 되었습니다 (대상3:1-9). 다윗와의 아들들 중 첫째는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암논(Amnon)이었데 그는 이복누이 다말을 간통 사건으로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하3:29). 둘째는 갈멜 여인 아비가일에게서 낳은 길르압(Chileab)인데 그는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대상3:1). 셋째는 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낳은 압살롬(Absalom)인데 그는 반란을 일으켜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하18:14). 그리고 네번째가 헤브론에서 학깃에게서 낳은 아도니야(Adonijah)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다윗왕의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가 아도니야였습니다. 그는 장자권에 의해 왕위 계승의 1순위로서 당연이 자신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늙어 기력이 쇠해져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에느로겔에서 왕 됨을 선포하고 대관식을 가지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왕이 그 사실을 듣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대관식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도니야를 따르던 일행이 흩어지고 모반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왕은 아도니야가 성전에 들어가 제단 뿔을 붙잡고 생명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자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또 다시 모반을 꾀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선왕(先王)의 첩을 아내로 삼으므로 후왕(後王)이 왕위를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관습을 이용하기 위해 아도니야가 속내를 숨긴채 솔로몬왕의 모친 밧세바에게 가서 다윗왕을 수종들었던 첩 아비삭을 아내로 줄 것을 요청합니다. 밧바는 눈치 채지 못하고 허락했으나 솔로몬왕은 그 정치적 의도를 알아채고 친위대장 브나야에게 명하여 아도니야를 처형하게 했습니다 (왕상2:13-25). 

 

  그런데 본서에서는 그런 사건을 생략한 채 솔로몬이 왕이 된 사실만 기록하므로 솔로몬이 순조롭게 백성들의 호응 가운데 왕이 된 것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본서인 역대기를 기록한 에스라의 목적대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과 솔로몬의 긍정적인 면을 통해 다시 하나님 나라를 재건해야 할 것을 독촉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지자적 관점보다는 제사장적 관점으로서 오늘날 치유설교와 예언사역의 원형이 될 만한 시각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지만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힘을 얻게 하는 축복의 언어가 많아야 함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한편 22절에 보면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무리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 하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이 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 다음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대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모세 때에 제사장 직무는 아론(Aaron)의 자손들이 담당했습니다. 아론의 자손은 나답(Nadab)과 아비후(Abihu)와 엘르아살(Eleazar)과 이다말(Ithamar)이었는데, 실제로 제사장 직무를 담당한 자손은 엘르아살과 이다말 가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답과 아비후는 아들이 없이 그 아버지 아론 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모세와 70인 장로들과 함께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특권을 받은 자들로서 아론과 함께 제사장 직분이 위임된 자들이었습니다 (출24:1, 9-11, 28:1).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7일간의 위임식 행사가 끝나고 공식적인 제사가 시작되는 8일째되는 날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불로 분향을 하다가 하나님이 내린 불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속죄소에 임한 불이 급작스럽게 나와 죽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 다른 불을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분향할 때에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소의 등불을 정리하고 분향단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 때 사용하는 불은 번제단에서 취한 불이어야 했습니다 (레16:12, 민16:46). 그것은 번제단의 맨 처음 불이 하나님께서 직접 내린 불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이 내린 불을 사용해야 한다는 묵시적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만들거나 고기를 삶을 때 사용한 불로 드린 것 같습니다. 다른 불로 분향 사역을 하다가 징계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10:1-3, 민수기3:2-4). 그래서 아론의 아들들 중에 엘르아살과 이다말 가문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 후반에 이다말의 자손 엘리와 두 아들이 제사장이었는데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성소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범하고 제물을 사욕을 채우는데 이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와 제사를 멸시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이 익명의 선지자를 보내어 엘리 제사장을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경고가 엘리 집안에서 제사장이 끊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상2:27-36). 그 후에 다윗 때에 엘르아살의 후손 사독과 이다말의 후손 아비아달이 대제사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왕 말기에 아비아달은 군대장관 요압과 함께 아도니야의 반역에 앞장섰습니다. 그 일 때문에 아비아달은 대제사장직에서 배재되고 자연히 에르아살의 후손 사독만 대제사장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되면서 사독의 대제사장직을 공적으로 재확인시키기 위해 사독에게 기름붓는 행사를 가진 것입니다 (22절).

 

  사독(Zodok)이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은 것은 아비아달(Abiathar)이 파면당했음을 의미합니다 (왕상2:26-27). 아비아달은 이다말의 후손 엘리의 후손이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직에서 파면당하고 다시는 그 후손 가운데 대제사장이 나지 않은 것은 이미 하나님이 이미 엘리 제사장에게 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왕상2:26-27). 우리는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는 말씀을 긴히 새겨야 합니다 (삼상2:30). 우리는 영적으로 제사장입니다 (벧전2:5,9, 계1:6, 5:10). 하나님을 존중해야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사역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한 목적으로 오직 하나님을 중심하는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4. 다윗왕의 임종 (26-30절)

 

  26 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7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다스렸더라

  28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9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30 또 그의 왕 된 일과 그의 권세와 그와 이스라엘과 온 세상 모든 나라의 지난 날의 역사가 다 기록되어 있느니라

 

  다윗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임종을 했습니다. 다윗왕은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어 7년 동안 다스리다가 예루살렘에서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33년을 다스렸습니다. 다윗왕은 모두 40년을 왕으로 있다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임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에 대한 모든 행적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선견자' (先見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헤'(ראה)와 '호제'(חזה)는 하나님의 이상을 본 자임이 강조된 단어이고 (seer),  '선지자'(先知者)에 해당하는 '나비'(נביא)는 하나님의 이상을 선포하는 자임이 강조된 단어야 할 수 있습니다 (prophet). 사무엘 이전에는 선견자와 선지자를 특별히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후에는 구분하여 사용한 것 같습니다.  

 

  한편 28절에는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왕이 나이가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왕에 대한 아주 긍정적인 평가입니다.

 

  다윗은 평생에 많은 실수와 잘못을 했고 그로 인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다윗은 왕되기 전에 사울왕에게 쫓겨 약 20여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사울왕을 피해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 도망했을 때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침을 흘리며 대문짝을 긁는 미치광이 흉내를 냈습니다 (삼상21:10-15). 왕이 된 다음에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살인교사했습니다 (삼하11:1-25). 그로 인하여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낳자 마자 죽었습니다 (삼하12:15-19). 그리고 첫째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연애하여 강간하고, 셋째아들 압살롬이 암논에 대한 앙심을 품고 암논을 죽이고 그술지방으로 도망했습니다 (삼하13:1-39). 압살롬이 그술 지방에서 돌아온 후 모사 아히도벨과 모의하여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왕위를 찬탈하고 후궁들을 욕보였습니다 (삼하15:10-12, 16:22). 압살롬은 도망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온 군사를 모집하여 마하나임까지 쫓아가 전투를 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하18:14-15, 33). 다윗이 다시 왕위를 회복했을 때 또 다시 베냐민지파에 속한 세바라는 사람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삼하20:1-22). 다윗이 주변국들을 정벌한 후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전염병으로 70,000명이나 죽었습니다 (삼하24:1-15). 임종 직전에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또 다시 넷째아들 아도니야가 군대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여 에느로겔에서 왕됨을 선포하고 대관식을 가지므로 모반을 했습니다 (왕상1:50-53). 다윗은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을 하면서 요압을 죽이라고 하면서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무덤 혹은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고, 자기를 저주했던 시므이를 죽이라고 하면서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왕상2:5-9).  

 

  그러고 보면 다윗은 일생에 많은 잘못을 했고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상에서는 그런 사건들을 모두 배제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잘한 일만 기록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소를 마련하여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 방치되었던 법궤(언약궤)를 이전한 일,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일, 성전건축을 위해 재료와 제도를 준비한 한 일, 임종 때에 솔로몬과 지휘관들과 백성들에게 성전건축을 할 것을 유언한 일, 성전건축을 위해 엄청난 사유재산을 드린 일 등을 부각하여 기록했습니다. 이는 역대기의 목적이 부합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대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필요성이 절실한 때에 에스라(Ezra)가 기록한 것입니다. 에스라는 제사장겸 학사겸 서기관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힘든 상황에 놓인 그들에게 과거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을 알게 하므로 언약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다시 성전을 건축하고 신정국가를 건설해야 할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 가운데 의도적으로 다윗의 잘못과 고난은 배제시키고 잘한 점과 영광과 평안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법궤 이전과 성전 건축에 관한 내용을 가장 절정적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結言>

  에스라의 제사장적 시각은 오늘날 이 시대에 필요한 시각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이 외적 공격과 내적 분열들로 인해 지쳐 있습니다. 열의와 사명을 잃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설교자는 말씀을 선지자 관점에서만 선포할 것이 아니라 제사장적 시각으로 치유와 회복에 관한 메세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과 교회에서 다른 일원에 대해 제사장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위로와 칭찬과 격려와 축복을 해 주는 분위기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사실 지금처럼 국가적으로 힘들 때는 모든 국민이 잘못을 정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