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엘1:1-20
<題目> 재앙의 성격과 의미
<序言>
구약의 선지서는 총 17권인데 그 중에 대선지서는 5권이고 소선지서는 12권입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의 구분은 예언의 분량에 따른 구분입니다. 요엘서는 소선지서에 속한 책입니다. 요엘서는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본장은 그 도입부에 해당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메뚜기 재앙을 수사학적으로 묘사하면서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임한 재해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하에 이루어진 일로서 하나님의 간섭과 경고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재해를 경험할 때에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야한다는 것입니다. 내용구조는 메뚜기 재앙의 상황과 의미(1-12절), 가뭄 재앙의 상황과 의미(13-20절)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메뚜기 재앙의 상황과 의미 (1-12절)
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1절에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요엘서는 선지자 요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요엘’(יואל)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의 8대 왕인 요아스(Jehoash)가 통치하던 때(B.C.835-796년)에 유다에서 활동을 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브두엘의 아들이었습니다. ‘브두엘’(פתואל)은 ‘하나님께서 광대하게 하셨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가 어느 지파에 속하며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의 뜻을 볼 때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신앙인이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2절에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고 했습니다. ‘늙은 자들’에 해당하는 ‘핫제케님’(הזקנים)은 ‘늙은’ ‘장로’의 뜻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장로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elders –NASB, NIV). 이 장로들은 나이 많은 사회적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땅의 모든 주민들’은 유다 땅 전체의 일반 평민들을 가리킵니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면서 나이 많은 사회적 지도자들로부터 모든 평민들까지 귀를 기울여 들어야할 것을 주지시킨 것입니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는 전 국토를 쓸어버린 메뚜기 재앙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 일이 당시 사람들이나 조상들에게는 그 같은 일을 없었다는 것입니다. 3절에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몰아닥친 재앙에 대해 자녀에게 자세히 말하여 대대손손 전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4절에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라고 했습니다.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이는 모두 메뚜기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입니다. ‘팥중이’에 해당하는 ‘까잠’(גזם)은 잘라서 삼키는 모습에서 딴 이름이고, ‘메뚜기’에 해당하는 ‘아르뻬’(ארבה)는 '빠르게 증식하여 많은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에서 딴 이름이고, ‘느치’에 해당하는 ‘이엘레크’(ילק)는 이로 빠르게 갉아 먹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고 ‘황충이’에 해당하는 ‘하씰’(חסיל)은 게걸스럽게 다 먹어치우고 마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요엘이 이런 수사학적 표현을 쓴 것은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비참함을 통해 재앙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다 땅에 몰아닥친 메뚜기 떼는 대규모로 군집을 이루어 이동하면서 농작물을 모두 갉아 먹어치웠습니다. ‘남긴 것을~ 먹고’라는 반복된 표현은 그것들이 농작물을 얼마나 완전하게 황폐화시켰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합니다. 과거 애굽에 내렸던 재앙 중에 메뚜기 재앙을 보면 메뚜기 떼가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면을 덮었고 모든 식물과 채소와 곡식과 심지어 나무까지 모조리 말갛게 먹어치웠습니다 (출10:5,15). 그처럼 당시 메뚜기 떼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메뚜기 떼가 지나갈 때는 그 수가 태양을 가리고 땅을 가릴 정도이고 그 소리가 불타는 소리 같고 모든 녹색은 말갛게 없어진다고 합니다. 메뚜기 떼는 수십억 혹은 수백억마리가 뉴욕시보다 넓은 1,000㎢ 이상 면적으로 이동하는데 하루에 150km를 이동한다고 합니다. 메뚜기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치우기 때문에 하루에 130,000t에 해당하는 농작물을 파괴한다고 합니다.
남유다 5대 왕은 여호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아달랴였습니다. 아달랴는 북이스라엘 7대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달랴는 시돈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 우상숭배를 퍼뜨린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 불경하고 사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남유다를 우상숭배로 오염시켰습니다. 남유다의 여호람왕의 사후에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남유다의 6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남유다 아하시야왕은 북이스라엘 9대 왕 요람과 친분이 두터워 북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북이스라엘의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요람왕이 살해되었고 그것을 본 아하시야왕도 도주하다가 살해되었습니다. 아하시야왕이 죽자 그의 어머니인 태후 아달랴가 정권을 잡기 위해 아하시야왕의 아들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자신의 손자들이기도 한 다윗 가문의 왕자들을 모두 살해한 것입니다. 아하시야왕의 아들들이 모두 살해당하는 가운데 갓난아기였던 요아스만 극적으로 구출됩니다 (왕하11:1-2). 대제사장 여호야가가 갓난아기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양육했고 요아스가 7살 되던 해에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옹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달랴는 살해되었습니다 (왕하11:9-16). 그래서 요아스는 남유다의 8대 왕이 되어 40년을 치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왕은 초기에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을 하며 신앙적으로 바른 통치를 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신앙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기까지 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그의 우상숭배를 질타하자 그를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이는 극악한 일까지 자행했습니다 (대하24:15-22). 물론 당연하게 남유다의 모든 백성도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메뚜기 떼의 습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유다에 메뚜기 떼들이 온 땅의 모든 농작물들을 다 황폐화시키는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재앙으로 인식했고 그것을 모든 유다 백성들이 알도록 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유다 백성이 메뚜기 떼 현상을 하나님이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로 주신 재앙으로 알고 회개하여 바로서기를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재난이 있을 때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하에 일어난 일로 인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있을 때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간섭이 아닌지 돌아보고 바로서는 계기로 삼아야합니다.
5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8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5절에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고 했습니다. ‘취하는 자들’은 포도주로 취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포도주는 일상적으로 먹는 음료의 개념이었으나 여기에서 취하는 자들이란 포도주로 정신을 차질지 못할 정도로 취한 자들로서 술로 방탕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단 포도주’는 새 포도주를 가리키는 말로서 막 딴 포도로 만든 새 포도주는 맛이 신선하고 달콤하기 때문에 단 포도주라고 한 것입니다. 포도주로 방탕하는 자들은 통곡하라고 했는데 이는 이제 메뚜기 재앙으로 포도를 거둘 수 없어서 새 포도주를 만들 수 없고 새 포도주를 마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메뚜기 재앙이 술로 방탕한 것에 대한 징계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그것을 깨달아 회개하여 돌이켜야 할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6절에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민족’은 이방 민족으로서 유다를 점령할 바벨론(Babylonia) 제국을 말합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에서도 바벨론을 사자로 보았습니다 (단7:4). 요엘 선지자는 메뚜기 재앙을 장차 바벨론이 유다 땅을 점령하여 유린할 것에 대한 예시로 본 것입니다. 그들의 이빨은 사자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자사의 어금니 같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모든 농작물을 이빨로 갉아먹어 치웁니다. 사자도 강한 이로 먹잇감을 물어 죽이고 이로 찢어 씹어 삼킵니다. 그처럼 바벨론도 강한 군사력으로 유다를 정복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7절에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무를 말갛게 갉아 먹어버리므로 그 가지가 다 하얗게 되어서 과원이 황폐화되었다는 것입니다. 8절에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처녀가 어렸을 때 약혼한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죽게 된다면 상복인 굵은 베옷을 입고 심히 애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약혼한 자들이 합방은 하지 않았지만 합법적으로 부부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약혼한 남자가 죽은 것은 남편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녀는 갑자기 남편이 죽으면 모든 기쁨이 사라지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9절에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고 했습니다. ‘소제’(素祭)는 밀 같은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키고 ‘전제’(奠祭)는 포도주나 기름이나 물 등의 액체로 부어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메뚜기 떼가 모든 농작물을 황폐화시켜버렸기 때문에 성전 제사에 드릴 제물이 없어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고 그로인하여 제사를 주도하는 제사장들이 슬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밭과 토지가 황폐화되므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1절에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밭과 과원이 황폐화되어 곡식과 포도를 얻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수고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된 농부들이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2절에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각종 과수들이 말라 열매를 얻을 수 없으니 사람들에게 기쁨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에 메뚜기 재앙을 내려 회개하기를 촉구하였는데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바벨론을 통해 더 큰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국가이든 교회이든 개인이든 하나님을 떠나 세속화되면 하나님께서 세상 세력을 통해 징계합니다. 그래서 잘될 줄 알지만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므로 더욱 곤난을 당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므로 영적 곤고함이 옵니다. 예배의 은혜가 없고 사역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영적 양식인 성령의 감동과 말씀의 은혜가 없게 되고 각양 은사들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2:5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계속 돌이키지 않는다면 성전과 예배도 드릴 수 없는 재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가뭄 재앙의 상황과 의미 (13-20절)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5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16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13절에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제사를 주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라고 했습니다. ‘슬피 울지어다’에 해당하는 원형 ‘사파드’(ספד)는 ‘쥐어뜯다’ ‘치다’ ‘소리내어 울다’ 등의 뜻으로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가슴을 치며 애통하라는 의미입니다. ‘제단에서 수종드는 자들’은 성전 제사를 돕는 자들로서 레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굵은 베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으라고 했습니다. ‘ 누울지어다’에 해당하는 원형 ‘룬’(לון)은 ‘머물다’는 뜻으로 밤새도록 성전에 머물면서 애통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사역을 하는 자들은 상복을 입고 밤새도록 통곡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성전에 소제와 전제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소제’(素祭)는 밀 같은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키고 ‘전제’(奠祭)는 포도주나 기름이나 물 등의 액체로 부어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성전에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됨은 재앙으로 인하여 제물이 없어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됨을 말하는 동시에 당시 성전 제사가 타락하여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기 위해 재앙을 내렸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14절에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고 했습니다. 한 날을 구별하여 금식일로 전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했습니다. 공식적인 금식일은 대속죄일인 7월 10일이 있었지만 (레16:29-34),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백성이 회개해야할 필요가 있을 때 임시 금식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에4:16). 금식(禁食)은 모든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을 금하므로 육체를 괴롭게 하여 회개를 하므로 하나님께 기도를 상당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58:4). 제사장에게 금식일을 정하여 집회를 소집하고 장로들과 모든 주민들을 모아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장로’는 나이가 많은 자들로서 사회적으로 백성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입니다.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은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아마 성전에 그 많은 수 전체가 들어올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며 지역적으로 일반 백성들을 대표할 만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미상으로 볼 때 지도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성전에 모여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이는 곧 메뚜기 재앙으로 예견하게 된 미래에 일어날 심판의 때를 의미합니다. 그 때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된 때(B.C.586년)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 멸망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유다의 타락과 죄악상이 하나님의 참혹한 심판을 초래하게 될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멸망’에 해당하는 ‘소드’(שד)는 ‘폭력’ ‘억압’ ‘파괴’ ‘탈취’ ‘황폐’ 등의 뜻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점령하여 약탈하고 방화하고 파괴하고 살육하고 사로잡아가므로 유다를 처참하게 멸망시킬 것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일으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16절에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양식으로 삼을 농작물과 과수열매가 없어져서 생활을 할 수 없는 고통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물로 드릴 농작물이 없어져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므로 기쁨과 즐거움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재앙이 육체적인 기쁨과 영적인 기쁨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미래의 심판도 그런 총체적인 기쁨을 파괴해버릴 것을 암시합니다.
17절에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유다가 메뚜기 재앙에 이어 가뭄으로 황폐화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다는 것은 메뚜기 재앙으로 모든 농작물이 사라진 상황에서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집에 저장해둔 낱알의 씨를 땅에 심었는데 가뭄으로 물이 없어서 그 씨가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창고’와 ‘곳간’은 농기구 저장창고와 곡식 저장창고를 가리킵니다. 창고가 비었다는 말은 ‘비었고’에 해당하는 기본형 ‘솨멤’(שמם)이 ‘파괴하다’ ‘황폐하다’의 뜻인 것으로 보아 농기구 저장창고가 공간적으로 비었다는 말이 아니라 파괴되었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곳간이 무너졌다는 말은 곡식 저장창고가 파괴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곡식이 시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곡식이 다 말라비틀어져 하나도 거둘 것이 없기 때문에 저장창고가 필요 없게 되어 파괴되거나 황폐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고갈된 고통의 삶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절에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목초지가 다 없어졌는데 가뭄이 지속되므로 풀이 새로 나지 않아 목초지가 황폐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축들이 울부짖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소 떼가 소란하고 양 떼가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소 떼와 양 떼가 어쩔 줄 몰라 하고 거의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19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과 이어진 가뭄 재앙으로 유다의 온 땅이 황폐화되어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부르짖으오니’(אקרא)는 미완료형으로 계속적으로 부르짖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오랜 가뭄으로 목초지의 풀과 산의 나무들이 다 메말랐는데 거기에서 공기가 건조해지므로 불이 일어나 그 마른 것들까지도 다 태워 없앴다는 것입니다. 이는 메뚜기 재앙과 가뭄 재앙으로 고통을 당하는 중에 조금의 희망도 없이 모든 것이 황폐화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20절에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가뭄이 지속되므로 하천이나 개울에 물이 다 마르고 풀이 다 불타므로 들의 짐승들도 주를 향해 헐떡인다는 것입니다. ‘헐떡거리오니’에 해당하는 ‘아라그’(ארג)는 ‘고대하다’ ‘갈망하다’의 뜻입니다. 그래서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인다는 것은 들짐승들도 물과 풀이 없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갈망한다는 의미의 의인화된 표현입니다.
우리는 유다의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자들이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산업이 없어지므로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과 말씀의 은혜가 사라져 영적으로 곤고를 당합니다. 아모스8:11-13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합니다. 시편51:17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에스라8:23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