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엘2:1-32
<題目> 임박한 재앙과 하나님의 구원
<序言>
전장에서는 메뚜기 재앙과 가뭄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전했습니다. 본장에서는 메뚜기 재앙을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시켜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미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을 전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하나님의 심판 경고(1-17절), 하나님의 회개 촉구(12-18절), 하나님의 회복 약속(19-27절), 하나님의 성령 약속(28-29절), 하나님의 구원 약속(30-32절)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하나님의 심판 경고 (1-11절)
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3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4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5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6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7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8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9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 오르며 도둑 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11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1절에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이 예시하는 여호와의 날에 대해 예고했습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하라고 했습니다. 나팔은 종교적인 집회를 알리거나 왕이 등극할 때를 알릴 때도 불었지만 적군이 침략해올 때도 불었습니다 (대하13:14, 렘4:19). 적군의 침략이 있을 때 나팔을 부는 것은 성내의 주민들에게 경고를 하고 대비를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방군대가 침략해올 것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나팔을 부는 장소는 시온과 거룩한 산입니다. ‘시온’(Zion)은 요새, 성채의 뜻인데 예루살렘 남동쪽 구릉지대입니다. 본래 여부스인들이 거주했는데 다윗이 점령하여 다윗성이라 부르고 언약궤를 안치하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삼하5:6-9, 12-19, 시48:2, 50:2). 시온은 이후에 예루살렘 성읍을 포함한 말로 사용되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임재한 곳으로 상징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유다의 도성임을 강조하는 명칭이지만 시온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도성임을 강조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거룩한 산’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한 산으로서 시온을 의미합니다. 시온 곧 거룩한 산에서 나팔을 불어 경고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구별하여 임재해 계신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가 임박했음을 알려 떨게 하라고 했습니다. 떨게 하라는 것말 경성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2절에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이 예시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묘사했습니다. 그날은 어둠고 캄캄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짙은 구름이 덮여 대낮에도 캄캄한 것처럼 캄캄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날은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산꼭대기에 오른 새벽빛이 순식간에 산을 비추어 덮이는 것처럼 갑자기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때가 얼마나 큰 심판일지 알게 하는 표현입니다.
3절에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불과 불꽃이 앞뒤에서 태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고대 전쟁에서는 침략자들이 성읍을 불태우는 전략을 많이 사용했던바 적군이 사용한 불로 인하여 황폐화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전에 에덴동산 같았던 땅이 황폐한 들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에덴동산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완벽한 동산이었습니다. 유다 땅이 그처럼 완벽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에 비길 정도로 살기 좋은 복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출3:8, 33:8).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후에는 황페한 광야 같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4절에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는 외모가 말 같았고 그 습격은 달리는 기병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메뚜기 재앙의 예시인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습격할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바벨론 군대의 기동력이 매우 빠를 것을 의미합니다. 5절에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에서 수많은 메뚜기 떼가 습격해올 때 나는 소리를 빙자하여 침략해올 바벨론 군대의 위용을 묘사했습니다.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메뚜기 떼가 산을 넘어올 때 날개를 퍼덕거리며 부딪치는 소리처럼 바벨론 군대가 수많은 말과 병거를 앞세우고 공격해올 때 그런 소리가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검불’은 바짝 마른 지푸라기를 말합니다 (출5:12, 욥41:20). 속이 비어있는 곡초이기 때문에 불에 탈 경우 껍질이 터지면서 강렬한 소리를 냅니다. 수많은 메뚜기 떼가 습격해올 때 날개를 퍼덕거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그 소리와 같은 데 바벨론 군대가 침략해올 때 대규모의 기병대 소리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메뚜기 떼가 대열을 이루어 습격해오는 것처럼 매우 강한 대규모의 바벨론 군대가 조직적인 대오를 갖추는 위용으로 공격해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6절에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습격해올 때 공포에 질려서 얼굴이 하얗게 된 것처럼 무시무시한 바벨론 군대가 침략해올 때도 공포로 떨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7절에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는 매우 강한 용사들이 빠른 속도로 돌진하여 성을 기어올라 성을 정복하는 것같이 무서운 기세로 습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장차 유다를 침공할 바벨론 군대가 무서운 기세로 유다를 점령할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않는다는 말은 잘 조직된 군대가 지휘관의 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공격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8절에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간다는 말은 수많은 군사들이 공격함에도 불구하고 무질서하게 공격하지 않고 각기 정해진 작전대로 공격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않는다는 말은 활을 쏘고 창을 던져도 대열이 흐트러지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공격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9절에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 오르며 도둑 같이 창으로 들어가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성은 성벽이 상당히 넓게 지어져 있어서 그 위에 여러 사람들이 다닐 수 있고 망루(초소)를 세울 수 있고 심지어는 집을 지울 수 있도록 넓었습니다 (수2:15).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린다고 했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그 성벽 위로 올라 무섭게 돌진하며 성읍 내로 돌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기어오르며 도둑 같이 창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이는 약탈과 살육을 위해 무자비하게 공격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10절에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고 했습니다. 땅과 하늘이 떨며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군대의 공격과 약탈과 살육이 너무 무시무시하여 모든 피조세계도 놀라 변화를 일으킨다는 수사학적 표현입니다. 11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고 했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점령하기 위해 원정은 와서 갖춘 진영은 심히 크다고 했습니다. 그 군대의 수가 어마 어마하게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강한 하나님이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명령을 한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을 하나님이 내린 것처럼 바벨론 군대도 하나님이 일으킨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바벨론 군대로 하여금 유다를 공격하도록 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란이 매우 극심하여 심히 두려울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징벌하기 위해 메뚜기 떼로 습격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는 예시대로 미래엔 무시무시한 바벨론 군대로 공격하여 점령하고 약탈하고 살육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종말에 임할 재앙에 대한 음영이기도 합니다. 종말에 하나님의 진노로 누구도 견디기 힘든 큰 환난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6:17에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 앞에 바로서서 감당할 준비를 해야합니다. 베드로후서3:11-12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21:36에는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회개 촉구 (12-18절)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12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날 도래가 임박했으니 유다 전체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것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이제라도’는 모든 것이 황폐화되어 다시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임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늦었다고 생각될지라도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식’(禁食)은 식음을 전폐하고 자기를 괴롭게 하여 하나님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사58:4). ‘마음’은 지정의의 인격적 기관으로서 인간의 본질적인 내면을 말합니다. 그래서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마음을 다해 돌아오라는 것은 겸비하여 죄를 회개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고 했습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죄의 본성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메뚜기 재앙을 내렸는데 계속해서 그렇게 산다면 무시무시한 바벨론 군대를 통해 심판할 것인데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극한 슬픔이 있거나 회개를 할 때 옷을 찢습니다 (창37:34, 수7:6, 왕상21;27). 그런데 형식적으로 옷을 찢는데 그치지 말고 진정 마음으로 회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으로 진정한 통회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호의를 베푸는 분이고 긍휼을 베푸는 분이고 진노하기를 참는 분이고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통회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면 하나님이 내리리라 경고한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출32:14, 삼하24:16). 메뚜기 재앙을 거두시고 미래에 임할 심판을 거두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14절에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회개하여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마음과 뜻을 돌이켜 메뚜기 재앙을 거두시고 미래에 바벨론 침략의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내려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실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소제’(素祭)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고 ‘전제’(奠祭)는 그 위에 포도주나 기름을 부어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되는 것은 메뚜기 재앙으로 황폐화된 땅이 비옥하게 회복되어 농산물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풍성하게 날 것을 말하고, 그것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용납하여 그들의 제사를 받을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15절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했습니다. ‘시온’(Zion)은 본래 예루살렘 남쪽의 구릉지대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예루살렘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나팔’은 1절에서는 적군의 침략에 대한 경고와 대비를 위해 부는 것이었지만 여기에서는 성회로 모이게 하기 위해 부는 나팔입니다. ‘금식일’은 공식적으로는 대속죄일인 7월 10일이었으나 국가적인 기도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지정할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유다 전체가 금식하며 회개할 수 있도록 금식일을 지정하여 성회로 모일 것을 주분한 것입니다.
16절에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금식일로 지정한 성회에는 종교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참여하게 했습니다. ‘장로’ 나이가 많은 자로서 사회적인 지도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단순히 나이가 많은 늙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후자에 속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성회에는 나이 많은 늙은 사람들부터 나이가 적은 어린이나 젖먹이아이까지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기 등의 성회에서는 젖먹이 아이까지 참여해야한다는 규정이 없으나 이 성회에는 참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재앙에는 어린아이들이나 젖먹이아이들까지 참여하게 한 것은 그들도 재앙에 영향을 받는 자들로서 특정 대상을 제외하지 않는 모든 백성이 함께 회개에 참여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갓 결혼한 신랑과 신부도 참여하게 했습니다. 사실 신랑과 신부는 신혼생활을 위해 1년 이내에는 국가적인 전쟁이 일어난 때에도 군대소집에서 면제된 특권이 있었습니다 (신20:7). 하지만 이 회개에는 신랑 신부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앗수르의 니느웨에 멸망을 선포했을 때 남녀노유가 자기들은 물로 심지어는 가축까지 금식시키면서 회개를 할 때 하나님이 재앙을내리실 것을 철회한 일이 있습니다 (욘 3장).
17절에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중재자 위치에 있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중보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낭실’은 현관을 가리킵니다. 성전에 현관은 여러 개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성소 앞(동쪽) 현관을 가리킵니다. ‘제단’은 성전의 성소 앞(동쪽) 뜰에 있는 번제단을 가리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가 드려지는 동안 이 성소 현관과 번제단 사이의 뜰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겔8:16). 요엘 선지자는 선지자들에게 그 뜰에서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릴 것을 주문한 것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기도내용은 첫째는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였습니다. 언약백성을 불쌍히 여겨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둘째는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였습니다. ‘기업’에 해당하는 ‘나할라’(נחלה)는 상속받은 유산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유업으로 얻는 언약백성 곧 유다 백성을 지칭한 말입니다. 유다 백성이 비록 범죄하여 재앙을 당했을지라도 만일 하나님이 선택하여 복 주시려는 목적을 가진 유다 백성을 그대로 둔다면 이방 나라가 유다 백성을 다스리므로 언약백성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이 수치와 치욕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 나라 사람들이 이르기를 유다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다를 선택하여 유다를 지키는 하나님에 대해 능력이 없는 신(神)이라 폄하하거나 하나님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신이라며 모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요엘 선지자가 제사장들에게 요청한 중보기도는 그 내용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 내용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한 중보기도 내용과 흡사합니다. 출애굽기32:12에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고 했습니다.
18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전심으로 회개를 할 때 하나님께서 자기의 땅을 사랑하여 자기의 백성을 불쌍히 여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황폐화된 땅을 소성시키고 백성들을 살게하 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에 바벨론 침략으로 땅이 유린당하지 않게 해주고 백성들이 살육당하거나 사로잡혀가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재앙을 만나거나 닥칠 재앙이 예견될 때 모두가 함께 회개기도를 해야 합니다. 가정에 위기가 있으면 가정 일원 전체가, 교회에 위기가 있으면 교회공동체 일원 전체가, 국가에 위기가 있으면 국가 일원 전체가 회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 위치에 있는 자는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시편51:17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고 했고, 이사야55:7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했고, 역대하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의 회복 약속 (19-27절)
19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19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회개기도와 제사장들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메뚜기 재앙으로 잃었던 곡식을 주어 배불리 먹게 한다는 것입니다. 궁핍에서 벗어나 풍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145:16, 잠27:20). 그래서 다시는 이방나라 백성들에게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북쪽 군대’에 해당하는 ‘하체포니’(הצפוני)에는 ‘군대’라는 말이 없고 ‘그 북쪽’으로 되어 있어서 정확히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단 전체의 내용을 볼 때 유다를 습격한 메뚜기 떼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5절에 보면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라고 했습니다. ‘메마르고 적막한 땅’은 건조하고 황량한 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북쪽에서 온 메뚜기 떼를 살 수 없는 곳으로 무인지경으로 내쫓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앞의 부대’에 해당하는 ‘파님’(פנים)은 ‘얼굴’(앞 부분)을 가리키고 ‘뒤의 부대’에 해당하는 ‘소프’(סוף)는 ‘끝’(뒷 부분)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동해’에 해당하는 ‘하얌 카드모니’(הים הקדמני)는 ‘그 앞선 바다’로 사해를 가리키고, ‘서해’에 해당하는 ‘하얌 하아하론’(הים האחרון)은 ‘그 뒤의 바다’로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앞에 있는 메뚜기 떼는 동쪽 사해로 들어가게 하고 뒤에 있는 메뚜기 떼는 서쪽 지중해로 들어가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썩은 것으로 악취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 큰일은 하나님이 행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21절에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고 했습니다. 땅으로 하여금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메뚜기 재앙과 가뭄 재앙으로 땅도 피폐하여 식물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땅을 의인화하여 땅도 고통을 당한 것으로 여기고 이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비를 내릴 것이므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큰 일’은 온전히 회복시켜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큰 일을 행하실 것에 대해 완료형으로 확실히 성취될 것을 강조하기 위한 예언적 완료(prophetic perfect)입니다.
22절에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고 했습니다. 들짐승들에 대해서도 의인화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20에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고 했었습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들의 풀과 나무들이 다 뜯겼는데 가뭄으로 새싹을 내지 못하고 불이 일어나 완전히 황폐화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들짐승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공포에 질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비를 내려 풀의 싹이 나고 나무들이 열매를 맺어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3절에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여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 곧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메뚜기 재앙과 가뭄 재앙으로 인해 황폐화된 땅에 비를 내려 풀이 나게 하고 나무에 열매가 맺히게 할 것이므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예전과 같이 적당하게 내려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른 비’는 보리나 밀 등의 곡식 씨를 뿌리기 전에 내리는 가을 비를 말하고, ‘늦은 비’는 곡식을 추수를 하기 전에 내리는 봄 비를 말합니다. 그 비를 적절한 시기에 적당하게 내려 곡식을 풍성히 거두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는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고 했습니다. ‘마당’은 곡식을 타작하는 타작마당을 가리키고 (신15:14, 룻3:2) ‘독’은 포도즙이나 감람기름을 짜는 틀이나 통을 가리킵니다 (민18:30, 신15;14, 렘48:33).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신명기11:14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는 자는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시편34:10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5절에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고 했습니다.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는 모두 메뚜기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입니다. ‘메뚜기’에 해당하는 ‘아르뻬’(ארבה)는 '빠르게 증식하여 많은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에서 딴 이름이고, ‘느치’에 해당하는 ‘이엘레크’(ילק)는 이로 빠르게 갉아 먹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고, ‘황충’에 해당하는 ‘하씰’(חסיל)은 게걸스럽게 다 먹어치우고 마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고, ‘팥중이’에 해당하는 ‘까잠’(גזם)은 잘라서 삼키는 모습에서 딴 이름입니다. 메뚜기 떼는 큰 군대가 침략한 것처럼 습격하여 황폐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제 메뚜기 떼가 습격하여 피해를 준 기간만큼 풍족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고통받은 기간만큼 고통받은 정도만큼 온전하게 회복시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26절에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신 것으로 만족하리만큼 풍족하게 먹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출16:12). 그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탁월한 능력으로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할 수도 없는 일을 행하신 것을 경험하고 그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행사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온전한 영적 회복을 가져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7절에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회복을 경험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징계와 회복을 겪으면서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살아계신 분임을 깨닫고 그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임재하여 그들을 인도해주시는 분임을 철저히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언약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출6:7). 그래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순종하므로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바로서면 하나님이 온전히 회복시켜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싸매주시는 분입니다. 욥기5:18에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고 했고, 시편147:3에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출애굽기15:2에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의 성령 약속 (28-29절)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28에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유다를 회복시켜 삶을 풍성하게 한 이후를 가리킵니다. ‘내 영’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부어 주시리니’는 성령님의 임재를 충만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만민’(כל בשר)은 ‘모든 육체’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는 하나님의 언약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곧 성령님을 유다 백성들에게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린이들을 가리킵니다. 어린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장래 일을 말하며 늙은이들이 꿈을 꾸며 젊은이들이 이상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성령을 받은 자들이 장래 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장래 일’에 해당하는 원형 ‘나바’(נבא)는 ‘예언하다’ ‘영감에 의해 말하다’로서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을 말합니다. ‘꿈’(חלום)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꿈을 말합니다. ‘이상’(חזיון)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환상을 말합니다. 모두가 성령님의 은혜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9절에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고 했습니다. ‘그 때에’는 앞절에서 말한 ‘그 후에’로서 유다를 회복시켜 삶을 풍성하게 한 이후를 가리킵니다. 그 때에 성령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종’(עבד)은 ‘하인’ ‘노예’를 가리키고, ‘여종’은(שפחה) ‘하녀’ ‘여자노예’를 가리킵니다. 이는 성령님을 남녀든 여자이든, 주인이든 노예이든 모든 사람에게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앞절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보내주실 것이라고 했는데 이어서 성별이나 신분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보내주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고전12:13, 3:16, 요일2:27). 하나님은 유다 백성 모두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의 역사에 충만함을 입게 해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전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성령님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임하여 성령님께 붙들린 자들이 감동되어 다른 언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2:1-4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현상이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행2:17-18). 그와 같은 성령님의 임재는 사마리아에서도 있었고 (행8:4-25), 가이사랴의 고넬료 집에서도 있었고 (행10:34-46), 에베소에서도 있었습니다 (행19:1-7).
그리고 사도 요한은 종말에도 성령님의 강한 임재와 역사가 있어서 성령님께 붙들린 자들이 능력으로 예언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11:3-6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고 했습니다. ‘증인’과 ‘감람나무’와 ‘촛대’는 교회(성도)를 가리킵니다. 종말에 성령으로 교회(성도)들에 강하게 암하여 역사할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예언의 다중성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회개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해야합니다. 요엘서에서는 회개를 강조했고, 사도행전에서는 기도를 강조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말씀을 강조했습니다. 약속된 성령의 은혜에 충만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5. 하나님의 구원 약속 (30-32절)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30절에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적’에 해당하는 원형 ‘모페트’(מופת)는 ‘증표’ ‘징조’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심판에 대한 표호(sign)를 말합니다. ‘하늘’과 ‘땅’은 자연계를 가리킵니다.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징조를 자연계에 나타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피와 불과 연기라고 했습니다. 이는 심판에 대한 현상적 표징입니다. 과거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을 보면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출7:15-22). 소돔성과 고모라성을 심판할 때 불이 비처럼 내렸으며 연기가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창19:24-28). 종말에 내릴 재앙 중 7나팔재앙에서 첫 번째 재앙을 보면 불이 내려와 땅의 ⅓을 태운다고 했고 (계8:7), 두 번째 재앙에서는 바다의 ⅓이 피로 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8:8). 그 재앙들은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내리는 재앙들이므로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마지막 심판인 7대접재앙에 대한 전조들로 볼 수 있습니다.
31절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마지막 심판 때를 의미합니다 (사13:10, 암8:9). 그때가 오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지막 심판이 있기 직전의 징표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인재앙에서 여섯 번째 재앙을 보면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계6:12-13). 또한 7나팔재앙에서 네 번째 재앙에서 해와 달과 별들의 ⅓이 어두워진다고 했습니다 (계8:12). 그 재앙들은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내리는 재앙들이므로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마지막 심판인 7나팔재앙에 대한 전조들로 볼 수 있습니다.
3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기 직전 징조가 있을 때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행사를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구원할 방편으로 보내신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자신의 죄를 대속해주신 것을 믿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원자로 믿고 그가 십자가 죽음으로 자신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신 사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이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자입니다 (롬10:10, 요일4:15). 그래서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믿음을 가진 자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휴거하여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고 남은 자 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온 산’과 ‘예루살렘’은 동의어로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약속이 있는 곳입니다 (눅24:47). 하나님이 이미 환난 때에 예루살렘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고 그들로 영광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자 곧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서 피하여 구원을 받아 영광 돌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結言>
우리는 종말에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합니다. 고린도후서13:5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깨어 있어야합니다. 로마서13:11에는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5-6에는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성령님의 권능에 사로잡혀 쓰임 받아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