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요엘3:1-21
<題目> 이방 심판과 유다의 회복
<序言>
1:1~2:17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반면에 2:18~3:21은 축복과 희망이 지배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중에서도 본장은 구약에서 모든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가장 잘 묘사한 부분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결과로 젖과 포도주가 넘치고 물이 흐르는 시내와 샘이 흘러나와서 비옥하게 된 땅에 여호와께서 인격적으로 머물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요엘 선지자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지라도 궁극적으로 놀라운 구원이 전개될 것임을 낙관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구조는 이방민족에 대한 심판(1-15절), 유다의 회복(16-21절)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 (1-15절)
1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4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6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7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1절에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라고 했습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포로로 사로잡혀 간 자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할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날’(בימים ההמה)이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이 귀환하게 되는 과정이 여러 날에 걸쳐 있을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는 하나님이 포로상태에 있는 유다 백성을 해방시켜 고토로 돌아오도록 역사할 때를 가리킵니다.
2절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라고 했습니다. ‘만국’은 모든 이방민족을 가리킵니다. ‘여호사밧’(יהושפט)은 ‘여호와께서 판단하심’ ‘여호와께서 심판하심’의 뜻입니다. 여호사밧 골짜기는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아사왕과 히스기야왕과 요시야왕이 우상을 내던져 불태운 곳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아마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왕상15:13, 왕하23:6,12, 대하30:14). 역사적으로 여호사밧왕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암과 암몬과 에돔 연합군을 물리친 골짜기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지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하20:26). 하나님은 그곳에서 유다 백성을 위해 그들을 심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상속받을 언약백성을 가리킵니다. ‘심문’에 해당하는 ‘솨파트’(שפט)는 ‘재판하다’ ‘판결하다’ ‘심판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땅을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언약백성의 땅을 빼앗은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3절에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가 점령한 성읍의 백성들을 사로잡아갈 때 제비뽑아 자기 소유로 확정된 포로를 데려갔습니다 (나3:10). 이방군대가 언약백성을 제비뽑아 사로잡아가서 소년은 팔아 기생을 사고, 소녀는 팔아 술을 사 마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방군대가 언약백성에 대해 비참한 대우를 했다는 것입니다.
4절에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라고 했습니다. ‘두로(Tyre)와 시돈(Zidon)과 블레셋(Palestine)’은 유다의 북쪽과 서쪽에 인접해있는 나라들입니다. 그 나라들은 19절에 언급된 에돔과 애굽과 더불어 유다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블레셋 사방’은 블레셋의 모든 도시들을 말합니다. 블레셋은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이라는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백성을 이다지도 괴롭히는가’의 의미입니다 (Calvin). 그들이 언약백성을 괴롭힌 죄로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할 것임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는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할지라도 그들은 조금도 반항하거나 대항할 수 없고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그들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되갚아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전적으로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5절에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언약백성의 금은보화 등의 재물을 약탈해갔다는 것입니다 (대하21:16-17). 특히 진기한 보물을 자기들 신전으로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는 승전국이 패전국의 신전에 있던 것들을 약탈하여 자기들 신전에 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상5:1-2, 단1:1-2). 그것은 자기들의 신이 우월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었다는 관념이 있었고 패전국의 신이 자기들의 섬기게 하려는 의도나 패전국의 신을 멸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처럼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것들을 약탈하여 가지들 신전에 둔 것입니다. 6절에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두로나 시돈이나 블레셋이 유다 백성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통에서 멀리 떠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헬라 족속’(Greeks)은 야벳의 아들 야완의 후손들입니다 (창10:2, 사66:19). 그 나라는 무역에 능한 나라였습니다 (겔27:13,19). 그 나라는 지금의 그리스 지역에 있었던 나라로서 후에 헬라제국을 이루는 주요역할을 합니다 (B.C.4C). 두로와 시돈은 야완과 마찬가지로 무역에 능한 나라들로서 유다 백성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 이득을 챙긴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이 멀리 떠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팔아서 먼 곳으로 떠난 유다 백성을 하나님은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악행에 대한 보응이 그들에게 돌아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8절에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아들 딸들을 유다 백성들에게 노예로 팔리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 의해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스바 사람’(Sabeans)은 함의 아들 구스의 아들 스바의 후손들로서 (창10:7),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 위치한 지금의 예멘 지역에 자리에서 형성한 나라입니다. 그곳에서는 금을 비롯하여 진귀한 향품과 보물들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왕상10:10, 사60:6). 그들은 자기나라에서 나는 특산품들을 기반으로 무역에 활동을 활발히 했다고 합니다 (욥6:19, 겔27:22, 38:13).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먼 나라에 판 이방 나라 백성들을 먼 나라로 팔리도록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블레셋은 유다에 패한 후 아라비아 등지에 노예로 팔려갔다는 말이 있고 (왕하18:8, 대하26:6-7), 두로와 시돈은 페르시아 제국에 패한 후 각지에 노예로 팔려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백성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먼 나라로 사로잡혀갈지라도 반드시 돌아오게 해주시고 사로잡아간 나라들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언약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절대적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시편17:8에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대적하거나 고통을 준 대상은 하나님이 반드시 국문하여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창세기12:3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9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14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9절에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이 화자(話者)는 요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이 이방나라의 군대를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팔 것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나라 군대는 전쟁을 준비라고 용사를 격려하고 다 가까이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보습’은 쟁기, 가래, 삽 등의 농기구를 말합니다. 보습이나 낫 등의 농기구로 쳐서 칼이나 창 등의 전쟁무기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기반을 동원하여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약한 자도 강하다 하라는 말은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유약한 자라도 전쟁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전쟁을 준비해도 결국 패배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표현들입니다. 11절에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사면의 민족들’은 유다를 둘러싼 이방 민족들로서 북쪽의 두로와 시돈, 서쪽의 블레셋, 남쪽의 애굽, 동쪽의 에돔으로 대표되는 이방민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속히 와서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연합하여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패퇴당할 것이라는 조롱이 암시된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언약백성을 압제한 이방나라 군대들을 물리칠 주의 용사들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주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군대로서 천군천사를 의미합니다 (시68:17, 슥14:5).
12절에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여기의 화자(話者)는 하나님입니다. 언약백성을 압제했던 이방 민족들은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 골짜기’는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아사왕과 히스기야왕과 요시야왕이 우상을 내던져 불태운 곳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아마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왕상15:13, 왕하23:6,12, 대하30:14). 역사적으로 여호사밧왕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암과 암몬과 에돔 연합군을 물리친 골짜기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지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하20:26). 곧 여호사밧 골짜기는 하나님이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기 위해 그들을 모으는 장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서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3절에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추수하는 모습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11절에서 언급한 주의 용사들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천군천사를 가리킵니다. 마치 농부가 추수 때에 낫으로 곡식을 거두고 포도열매를 포도즙 틀에 넣고 밟는 것처럼 이방민족의 군대를 심판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죄악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4절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민족의 군대를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을 할 것인데 그 때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15절에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을 행할 때에는 해와 달과 별들도 빛을 잃어 캄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종말적 예언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14:17-20에 천사의 포도 추수 내용이 나옵니다. 포도송이 추수는 마지막 때에 있을 악인(불신자)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포도가 익을 때 포도 색깔이 붉어지다가 검어지듯이 악인들도 악에 악을 더하여 죄가 관영해집니다. 세상의 악독이 노아시대처럼 하늘에 사무치게 됩니다 (딤후3:1-5, 사5:20). 그래서 천사가 낫을 휘둘러 포도송이들을 거두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집니다. 그 포도주 틀이 성 밖에서 밟히는데 그 피가 말굴레까지 닿고 1,600 스다디온에 퍼진다고 했습니다. 성 밖은 새 예루살렘 밖 곧 이 세상을 말합니다. 구원받는 무리에 들지 못한 이 세상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 동일하게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한 자들이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죽은 사람들의 피가 말굴레까지 닿고 1,600스다디온까지 퍼진다는 것입니다. '말굴레'는 말의 머리에 씌우는 가죽 끈이나 삼 줄로 만든 굴레로서 거기에 고삐줄이나 종이나 장식을 달기도 합니다. '1,600스다디온'은 320km로서 유다의 남북 길이입니다. 상징적으로 1,600=4×4×10×10로서 세상의 만수들과 인간의 만수들입니다. 곧 온 세상 전체를 가리킵니다.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피가 강을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입니다.
요한계시록20:7-20에 보면 곡과 마곡 전쟁이 나옵니다. 천년왕국이 끝날 때 사탄은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그리스도와 성도를 대적하게 합니다. '곡과 마곡'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대적하는 대표적인 왕과 나라입니다. '마곡'은 노아의 손자이며 야벳의 아들로서 후에 이스라엘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이란 족속 혹은 나라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곡'은 그 나라의 왕들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창10:2, 겔38:2). 곧 곡과 마곡은 이스라엘 동북쪽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에 환난을 가져온 대표적인 족속과 왕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곡과 마곡은 인류역사의 최후에 나타날 적기독왕과 적기독국가에 대한 상징적 명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탄에게 미혹된 곡과 그를 따르는 온 백성들이 성도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공격하기 위해 포위합니다. '성도의 진(陣)'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를 행진할 때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출16:13).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성도의 진'은 택한 백성인 성도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23:14). 사탄의 미혹에 들지 않고 믿음에 선 유기체로서의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城)'은 예루살렘 성에 대한 애칭입니다 (시78:68, 87:2). 사탄에게 미혹된 곡과 그의 군대들이 새예루살렘성과 교회를 포위할 때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불살라 멸합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인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악인이 의인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결국 의인이 승리합니다. 악인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포도주 틀이 성 밖에서 짓밟혔습니다. 악인들을 위한 재앙이 임할 때 의인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요한계시록17:14에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연단을 받는 기간 동안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계14:12). 그런 면에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 칼이 아니라 인내인 것입니다 (계13:10).
2. 유다의 회복 (16-21절)
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17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18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19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16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동의어로 하나님의 언약이 있고 하나님이 임재해 있는 곳에 대한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영광과 위엄과 권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모든 인간들뿐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까지도 떨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피난처 곧 산성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자기 언약백성에게 피난처가 되어주고 보호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되지만 자기 백성에게는 구원자와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
17절에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대적들을 심판하고 유다 백성을 구원할 때 유다 백성이 하나님에 대해 체험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성산 시온에 임재하여 거하시는 분인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방사람들은 그 거룩한 예루살렘에 다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약백성과는 달리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전혀 입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8절에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고 했습니다. 이방나라들을 심판한 후에 유다는 엄청난 풍요와 번영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포도가 잘되어 포도주가 넘치고 가축이 잘되어 젖이 넘치고 시내에 물이 넘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에 댄다고 했습니다. ‘샘’이 흘러나온다는 말은 물이 끊임없이 솟구쳐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근원으로 하는 생명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넘쳐 나올 것을 의미합니다. ‘싯딤 골짜기’는 아카시아나무과에 속하는 싯딤나무들이 있는 골짜기를 가리킵니다 (Keil, Henderson). 싯딤나무는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에 댄다는 말은 성전에서부터 나온 생수가 싯딤골짜기에 넘치도록 공급되어 싯딤나무들이 충분한 물을 흡수하므로 무성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죽어가는 언약민을 살게하고 복되게 할 것에 대한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겔47:1).
19절에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유다와는 반대로 애굽과 에돔은 황무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황무한 광야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과 에돔이 그렇게 되는 것은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은 유다 남쪽에 있는 나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을 오랫동안 학대했습니다 (출1-3절). 에돔은 유다 동쪽에 있는 나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적대적이었고 유다 백성이 이방민족에게 고난을 당할 때 형제국임에도 불구하고 팔짱만 끼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유다 백성이 환난과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뻐했고, 도망하는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사63:1-4, 애4:21, 옵1:11-14, 시137:7, 애4:22, 겔25:12, 35:15, 36:5). 그래서 그들에게는 언약백성을 괴롭힌 죄로 하나님의 저주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20절에 보면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애굽과 에돔은 영원히 황폐하게 되겠지만 유다는 영원히 대대로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1절에는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에는 애굽과 에돔 같은 나라가 유다를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합당한 보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보복을 단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시온에 거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백성에게 거하면서 통치하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이 이방 백성에게 고통을 당할 때는 많은 눈물을 흘리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해주십니다 (나1:7-8). 로마서12:19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백성에게는 영육간에 마침내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이사야11:6-9에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1:1-4에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했습니다.
<結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범죄할 때에 징계하지만 자기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엔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십니다. 물리적인 축복 뿐 아니라 영적인 축복까지 주십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자기 백성과의 언약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시1:5-6, 3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