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역대하31:1-21

<題目> 히스기야왕의 성직 회복


<序言>

  남유다의 왕은 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여호람-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로 이어집니다. 29장에서는 히스기야왕이 성전을 정화하고 30장에서는 히스기야왕이 유월절을 회복한 내용이 나왔고 본 장 31장에는 성직 곧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책을 회복시킨 내용이 나옵니다. 히스기야왕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책을 회복시키고 보수 규정을 바로 잡아 그들이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내용은 히스기야왕의 우상 타파(1절), 히스기야왕의 십일조 제도 회복(2-10절), 히스기야왕의 십일조 관리 제도 확립(11-21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히스기야왕의 우상 타파 (1절)

 

  1 이 모든 일이 끝나매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자기들의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남유다 백성과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여 유월절을 지키고 무교절을 두 주간이나 지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미래에 복 주실 것을 느끼며 심히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30:13-27). 그런데 그들이 각기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우상들을 타파했습니다. 산당과 제단을 바알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찍어 없앴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정체성이 회복되니 스스로 우상들을 없앤 것입니다. 이 우상 철폐 행위가 역대하에서는 히스기야왕으로 인하여 유월절을 지킨 백성들이 스스로 한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열왕기하에서는 히스시야왕이 행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열왕기하18:3-4에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고 했습니다. 사실 백성들이 한 것일지라도 히스기야왕의 의지로 되어진 것 결과이니 히스기야왕의 업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에서는 역대기에 기록되지 않은 한 가지가 추가되어 있는데 그것은 놋뱀을 부순 사건입니다. 광야시대에 모세가 만든 놋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놋뱀에 관한 사건은 민수기21:6-9에 나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산에서 에돔 땅을 우회하려다가 길이 험함으로 인해 마음이 상했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여 광야에서 다 죽게 했다고 원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불뱀을 보내어 많은 사람이 죽게 했습니다. 광야에 서식하는 불뱀을 보내어 사람들을 물어 죽게 한 것입니다. '불뱀'의 히브리어 '네하쉼 세라핌'(שרפים נחשים)'불 붙는 뱀'으로서 몸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데 그 뱀에 물리면 강력한 독성으로 인해 즉시 온 몸에 높은 열기가 생기며 죽어간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중보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라고 했습니다. 불뱀에 물린자마다 그 놋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고 그것을 보는 자는 살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자가 살게 된 것은 놋뱀 자체에 살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서 살 수 있는 방편으로 제시한 구리 뱀을 봄으로서 이제 하나님만 좇고 하나님만 순종하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확증이 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로 오는 죽음에서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은 하나님을 순종함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같은 일을 지시하신 것은 장래에 그리스도를 보내 주어 그를 믿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3:14-15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인자(人子)도 들려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인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들려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휩소'(υψοω)는 아람어 '제캅'으로서 '들어 올리다' '교수대에 처형되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들려야 한다는 말은 차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지표에서 들어 올려질 것을 말합니다 (8:28, 12:23). 차적으로는 십자가 구속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을 가리킵니다 (행2:33, 5:31, 빌2:9). 그의 높임받음, 영광받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부활 승천으로 하나님의 계시자로서 하나님됨이 드러나 높임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여 하나님 우편에 올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받는 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됨, 하나님의 상속자됨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이사야42~53장을 행하므로 다니엘7:9-14을 성취하는 인자(人子) 곧 '그 사람의 아들'(ο υιοs του ανθρωπου)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광야의 놋 뱀처럼 종말에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의 방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에 의해 만들어졌던 놋뱀이 우상숭배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모세가 만든 놋뱀이 예루살렘 성전에 계속 보관되었는지 아니면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후대에 놋뱀 형상이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분향을 그 놋뱀 형상에 드렸습니다. 당시 놋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하는 방편이었고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 주어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실 것을 바라보게 하는 예언적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 자체에 능력이나 효험이 있는 것으로 여겨 신물(神物)처럼 여겼고 그것을 신(神)처럼 여겨 숭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던 도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했습니다.

'느후스단'(נחשתן)은 '구리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부른 것은 놋뱀을 아무 것도 아닌 놋 물건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로 경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신앙적으로 사용되었던 것들도 후대에 그 의미를 모른채 우상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들이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도 후대에 우상적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모세의 시체를 없애려 할 때 마귀가 방해 했던 것일 것입니다 (신34:6, 유1:9).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나 수의 같은 것들이 우상적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기념물로 여기는 것은 좋으나 그것에 그 이상의 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모든 성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본래의 의도가 상실된 채 전통과 의식으로만 존재하거나 기복적 신앙의 대상이 되어버린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의 십자가와 성화, 예배의 순서와 형태 등이 그런 오류에 빠져 있지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히스기야왕의 십일조 제도 회복 (2-10절)

 

  2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정하고 그들의 반열에 따라 각각 그들의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휘장 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3 또 왕의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아침과 저녁의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4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

  5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6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여러 더미를 이루었는데

  7 셋째 달에 그 더미들을 쌓기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친지라

  8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쌓인 더미들을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9 히스기야가 그 더미들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10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다윗왕 때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반차를 정해서 성전과 제사 사역을 하게 했습니다 (대상24:1). 그런데 아하스왕 때 성전 문을 닫고 성전에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다윗왕이 세운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왕은 성전을 정결케 하고 유월절을 지킨 다음 다시 성전 제사 사역이 계속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반열을 정해 그 반열대로 직임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상 번제와 안식일 번제와 월삭 번제와 절기 번제 등 여러 종류의 번제를 드릴 수 있도록 자기 재산의 얼마를 정하여 내놓았습니다 (32:27-29). 백성들에게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령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에게 명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몫의 음식을 주어 여호와의 율법에 힘쓰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할당된 몫을 주어 생활비를 충당해 주므로 성전 사역에 전무할 수 있도록 해주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에게 할당된 몫은 제물들 중 일부와 토지에서 나는 첫 열매입니다 (레6-7장, 출23:19, 민18:12-13). 레위인들에게 할당된 몫은 십일조입니다 (5절, 레27:30-33, 민18:21-24). 하나님이 모세 때부터 백성들에게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라고 한 것은 신앙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생활에 염려없이 성전 봉사를 계속하도록 생활비를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신앙이 쇠퇴하여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생활고로 다른 일을 하므로 성전 봉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삿17장). 왕이 백성들에게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령하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이 제사장들의 응식을 위해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헌물로 풍성히 드렸고 또 레위인들의 응식을 위해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백성들도 헌물과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맥추절(맥추감사절)이 있는 3월부터 수장절(추수감사절)이 있는 7월까지 모인 헌물과 십일조가 쌓여 무더기를 이루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이 그 무더기에 대해 물으니 아사랴(Azariah) 대제사장이 대답하기를 백성들이 헌물과 십일조를 드린 뒤부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만족하게 먹고 남은 것이 쌓여 무더기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왕과 방백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칭송하고 백성들을 위해 축복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헌물과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첫 것에 대한 감사헌금을 드려야 하며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십일조헌금으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十一條,조목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신명기14:22에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말3:10). 십일조 규례는 구약시대의 율법 규례이니 신약시대에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예수님도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인정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23에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요14:21).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게 한 신앙적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시편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게 한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기업이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소득은 하나님이 얻게 하신 것이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십일조는 '10'이라는 소득이 하나님 것이고 하나님이 주셨음을 인정하고 그 예표로 '1'을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현재에 얻은 모든 소득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고 소득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며 미래에도 소득을 주실 것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곧 십일조 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지속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삶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바치게 한 실제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 때문입니다. 십일조 제도는 신명기14:22-29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게 한 것은 레위인들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민18:21-24). 모세 때부터 가나안 땅 분배를 말씀하실 때 레위지파에게는 기업(토지)를 주지 않고 다른 지파들이 십일조를 내어 그들의 생활을 충당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생활에 염려없이 성전 봉사에 전무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성전관리가 유지되고 제사사역이 지속되고 율법교수가 지속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려야 복음 사역자들이 사역에 전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세워지고 운영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이 위축될 수 밖에 없어서 교회 운영이 어려워 집니다. 현대에 십일조 제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유럽이나 미주 지역의 목회자들은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는데 유난히 한국 목회자들만 십일조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주일성수와 함께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으니까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교회가 텅 비고 관광명소로 전락한 것 아닙니까? 미주 지역의 교회들은 십일조를 우리처럼 강조하지 않아도 교회가 유지됩니다. 미국인들은 기부문화가 발달하여 자신이 죽을 때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 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교회에 헌납합니다. 그래서 재정이 유지됩니다. 한국인은 유교적 문화 배경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죽을 때 모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줍니다. 매달 소득의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 조차도 땅이나 집을 팔면 그에 대한 십일조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매월 소득의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는다면 교회가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역자를 생각하고 사역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헌신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표를 보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말라기3:10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습니다.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신다'는 말은 필요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정도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지는 말라기3:11-12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신28:1-13, 고후9:7-9). 창세기28장에 보면 야곱이 나옵니다. 야곱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형의 낯을 피해 아버지집을 떠야 했습니다. 그는 홀로 외삼촌이 사는 하란 지방의 밧단아람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마음 속에 무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가다가 무슨 일을 만날런지 외삼촌 집에는 무사히 도착할는지 외삼촌이 반갑게 맞아줄런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런지 고독함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는 길을 가다가 루스(벧엘)라는 지역에서 한 데서 돌 베개를 하고 잤습니다. 하나님이 꿈에서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되게 하겠다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었던 언약적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깬 다음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이 곳에 제단을 쌓아 성전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창28:21-22). 하나님은 야곱을 외삼촌 댁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고 그 곳에서 사는 동안에 거부가 되게 하여 다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는 영육간에 복을 받은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힘들 때라고 해서 안 드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히스기야왕의 십일조 관리 제도 확립 (11-21절)

 

  1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방들을 준비하라 하므로 그렇게 준비하고

  12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들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가 그 일의 책임자가 되고 그의 아우 시므이는 부책임자가 되며

  13 여히엘과 아사시야와 나핫과 아사헬과 여리못과 요사밧과 엘리엘과 이스마갸와 마핫과 브나야는 고나냐와 그의 아우 시므이의 수하에서 보살피는 자가 되니 이는 히스기야 왕과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는 아사랴가 명령한 바이며

  14 동문지기 레위 사람 임나의 아들 고레는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맡아 여호와께 드리는 것과 모든 지성물을 나눠 주며

  15 그의 수하의 에덴과 미냐민과 예수아와 스마야와 아마랴와 스가냐는 제사장들의 성읍들에 있어서 직임을 맡아 그의 형제들에게 반열대로 대소를 막론하고 나눠 주되

  16 삼 세 이상으로 족보에 기록된 남자 외에 날마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그 반열대로 직무에 수종드는 자들에게 다 나눠 주며

  17 또 그들의 족속대로 족보에 기록된 제사장들에게 나눠 주며 이십세 이상에서 그 반열대로 직무를 맡은 레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18 또 그 족보에 기록된 온 회중의 어린 아이들 아내들 자녀들에게 나눠 주었으니 이 회중은 성결하고 충실히 그 직분을 다하는 자며

  19 각 성읍에서 등록된 사람이 있어 성읍 가까운 들에 사는 아론 자손 제사장들에게도 나눠 주되 제사장들의 모든 남자와 족보에 기록된 레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더라

  20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1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왕이 성전을 정화하고 유월절을 지킨 다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직무를 회복시키고 그들의 생활을 위해 백성들에게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명령을 받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헌물과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헌물과 십일조가 산더미처럼 많이 쌓였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창고를 지어 그 곳에 보관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책임자와 조력자들을 임명했습니다. 책임자와 부책임자를 고나냐(Cononiah)와 시므이(Shimei)를 세우고 그 수하에 10명의 조력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분배할 수 있도록 책임자와 조력자들도 세웠습니다. 분배를 위한 책임자는 고레(Kore)로 세웠고 그 수하에 6명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나누어 주게 했고, 또한 제사장의 성읍 곧 여호수아 시대에 정해진 도피성과 48개 성읍 중 히스기야왕이 관할하는 유다 땅에 있는 성읍들에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각 성읍에 흩어져 사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도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재정에 있어서도 관리가 잘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재정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結言>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케 하고 성전관리와 성전제사와 율법교수가 지속되게 하게 위해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직책을 회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지속적으로 사역에 전무하게 할 수 있도록 십일조 제도를 회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생활비가 잘 전달되도록 관리와 분배에 있어서 주밀한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처럼 히스기야왕이 매사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형통하게 했습니다. 시편1:3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