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역대하35:1-27

<題目> 요시야왕의 유월절 준수

 

<序言>

  남유다의 왕은 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여호람-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로 이어집니다. 요시야왕은 역대에 찾아보기 힘든 종교개혁을 행한 왕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고 율법책대로 언약을 갱신했습니다. 이제 그 절정에 행하는 유월절 준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내용구조는 요시야왕의 유월절 준비(1-9절), 요시야왕의 유월절 준수(10-19절), 요시야왕의 죽음(20-27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요시야왕의 유월절 준비 (1-9절)

 

  1 요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유월절을 지켜 첫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

  2 왕이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직분을 맡기고 격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3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4 너희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글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글을 준행하여 너희 족속대로 반열을 따라 스스로 준비하고

  5 너희 형제 모든 백성의 족속의 서열대로 또는 레위 족속의 서열대로 성소에 서서

  6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너희 형제들을 위하여 준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전하신 말씀을 따라 행할지니라

  7 요시야가 그 모인 모든 이를 위하여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 마리와 수소 삼천 마리를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

  8 방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려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 하나님의 전을 주장하는 자 힐기야와 스가랴와 여히엘은 제사장들에게 양 이천육백 마리와 수소 삼백 마리를 유월절 제물로 주었고

  9 또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 곧 고나냐와 그의 형제 스마야와 느다넬과 또 하사뱌와 여이엘과 요사밧은 양 오천 마리와 수소 오백 마리를 레위 사람들에게 유월절 제물로 주었더라 

 

  요시야왕이 성전수리 중에 발견된 율법책의 내용을 알고 나서 율법대로 유월절을 준수해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유월절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성전봉사 직분을 맡기고 그 직무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에게 성막시대 때처럼 언약궤를 운반하는 일을 할 것이 아니니 이젠 성전에서 봉사를 하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또한 솔로몬왕이 정했던 순서를 따라 스스로 정결케 하고 유월절을 행할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3대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수장절(초막절, 장막절)입니다. 그 중에 '유월절'(逾越節)의 히브리어 '페사흐'(פסח)는 '지나감'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해방되던 전날 밤에 양을 잡아 고기는 구워 먹고 피는 문 설주와 인방에 발랐는데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천사가 피가 발라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유월절은 1월 14일(태양력으로로는 3-4월에 해당)에 지켰습니다. 그 때는 많은 제물을 드려 제사를 드리고 고기는 굽고 나머지는 남비에 삶아 온 회중이 나누어 먹습니다 (13절, 출12:7-9, 신16:7). 그리고 일주일동안 누룩없는 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은 처음에는 제물을 바치는 자가 직접 잡았지만 (출12:3-6,21), 바치는 자가 제의적으로 부정했을 때는 레위인이 잡는 경우가 많았고 (30:16-18, 스6:19-20), 후에는 점차 레위인들이 전담하여 잡게 되었습니다 (Keil & Delitzsch). 그래서 레위인들에게 유월절 행사를 위해 정결케 하고 준비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야왕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유월절 행사를 준비시키고 자신이 먼저 유월절 제물을 헌물로 내어 주었습니다. 어린양과 어린염소 30,000마리와 수소 3,000마리를 제물로 내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지도자들인 방백들도 흔쾌히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주장하는 힐기야와 스가랴와 여히엘도 양 2,000마리와 수소 300마리를 제물로 내어 놓았고, 레위인들의 우두머리 고나냐와 스마야와 느다넬과 하사뱌와 여이엘과 요사밧은 양 5,000마리와 수소 500마리를 제물로 내어 놓았습니다. 유월절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제물을 먹는 것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예표합니다 (벧전1: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예배와 전도 등의 행사를 위해 필요한 재원이 있다면 가정 먼저 목회자부터 모범을 보여야 하고 직분자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목회자와 직분자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만 생각해서는 안되고 교인 전체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2. 요시야왕의 유월절 준수 (10-19절)

 

  10 이와 같이 섬길 일이 구비되매 왕의 명령을 따라 제사장들은 그들의 처소에 서고 레위 사람들은 그들의 반열대로 서고

  11 유월절 양을 잡으니 제사장들은 그들의 손에서 피를 받아 뿌리고 또 레위 사람들은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12 그 번제물을 옮겨 족속의 서열대로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소도 그와 같이 하고

  13 이에 규례대로 유월절 양을 불에 굽고 그 나머지 성물은 솥과 가마와 냄비에 삶아 모든 백성들에게 속히 분배하고

  14 그 후에 자기와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하니 이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번제와 기름을 저녁까지 드리므로 레위 사람들이 자기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함이더라

  15 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은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왕의 선견자 여두둔이 명령한 대로 자기 처소에 있고 문지기들은 각 문에 있고 그 직무에서 떠날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였음이더라

  16 이와 같이 당일에 여호와를 섬길 일이 다 준비되매 요시야 왕의 명령대로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제단에 드렸으며

  17 그 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이어서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18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왕들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주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19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요시야왕은 종교개혁을 즉위한지 12년에 시작하여 18년이 되는 해 6년만에 마무리했는데 유월절을 완전히 회복시키므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그의 종교개혁은 예루살렘 지역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 이르기까지 6년간 진행되었으며 (34:4-7, 왕하23:3-13), 즉위 18년 초에 선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으며 (34:8-21, 왕하22:3-13), 크게 회개하고 여선지자 훌다에게 예언을 들었으며 (34:22-28, 왕하22:14-20), 모든 백성을 소집하여 언약을 갱신했으며 (34:29-32, 왕하23:1-3), 다시 한번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에 걸쳐 전국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으며 (34:33, 왕하23:4-20), 최종적으로 율법대로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1-19절, 왕하23:21-23). 요시야왕이 유월절을 행한 것은 남북 열왕시대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모세 이후 여호수아 시대 곧 가나안 정복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유월절을 제대로 지켰습니다. 그 후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유명무실해졌다가 사무엘시대에 다시 회복된 듯 했으나 왕정시대에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점점 퇴색되어 결국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한 때 히스기야왕 때에 다시 회복되었으나 (30:1-22), 그 때는 율법에서 명하는 규례와 어긋난 점이 많았습니다. 율법이 정한 때에 시행되지 않았고 (30:2-3), 규정된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은 채 유월절 양을 먹기도 했습니다 (30:18). 따라서 요시야왕에 의해 율법에서 명한대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유월절은 1월 14일에 지켜졌습니다. 레위인들은 양과 염소와 소를 잡고 제사장들은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번제로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단에 모두 불살라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화목제는 기름 부위만 불사르고 나머지는 회중이 먹는 제사입니다. 양과 염소와 소를 잡아 기름만 사르고 나머지 고기는 굽고 삶고 해서 회중이 잔치로 먹었습니다. 그렇게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그에 이어 일주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무교절은 누룩(효소)을 넣지 않은 떡(빵,피타)을 구워 먹으면서 지켰습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유월절을 1월 14일에 지켰는데 양과 염소와 소를 번제로 드린 다음 화목제로 드리고 화목제물의 고기를 솥과 가마와 냄비에 삶아 먹었습니다. 헌데 레위인들이 그 고기들을 회중에게 다 분배를 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자기들과 제사장들이 먹을 것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14-15절).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계속 제사 사역을 하고 찬양을 맡은 자들도 사역이 마칠 때까지 계속 찬양사역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회중이 다 먹은 다음에 먹은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목회 지도와 직분자들이 먼저 회중을 위해 봉사하고 맨 나중에 자신들을 위해 먹은 것과 같습니다. 목회 지도자와 직분자는 봉사하는 데에는 가장 앞장 서고 먹는 데에는 가장 늦게 먹어야 합니다. 교회 봉사를 통해 유익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봉사로 교회에 유익을 돌리려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공동체와 회중을 위한 자세입니다. 진정 21세기에 가져야 할 지도력인 것입니다 (Servant Leadership).

 


        3. 요시야왕의 죽음 (20-27절)

 

  20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26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27 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요시야왕은 8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지 12년째(20세)에 종교개혁을 단행하였고 18년째(26세)에 종교개혁을 마쳤습니다. 그는 온 나라에 우상을 철폐하고 성전을 수리하고 유월절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31년째(39세)에 므깃도 전쟁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패권을 가지고 있던 앗수르(앗시리아)는 점점 쇠퇴해 가고 바벨론(바빌로니아)가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바벨론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켰고 앗수르 사람들은 서북쪽으로 도망하여 갈그미스(Carchmish)에서 애굽(이집트)에 원군을 청했습니다. 당시 애굽의 왕은 '느고'(Necho)였습니다. 흔히 애굽의 왕호를 함께 붙여서 '바로느고'(Pharaoh Necho)라고 하기도 합니다. 애굽왕 느고는 애굽 군대를 이끌고 유다와 이스라엘을 거쳐 갈그미스로 가서 앗수르와 합쳐서 바벨론을 치려 했습니다. 요시야왕은 애굽 군대가 올라오자 가는 길목인 므깃도(Megiddo)로 나가 애굽 군대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애굽왕 느고는 자신이 유다를 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바벨론을 치려는 것이니 자신을 거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시야왕은 애굽왕 느고가 어떤 의미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애굽이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을 치므로 유다 땅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굽 군대를 막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통해서도 뜻을 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7년 흉년에 대한 꿈을 꾼 것이나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상에 대한 꿈을 꾼 것이나 바사왕 고레스가 하나님으로부터 뜻을 알아 유다 백성에게 귀환령을 내린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41:1, 단2:1, 대하36:23). 바로왕 느고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을 꾸었는지도 모릅니다.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역대하 기자가 22절에서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요시야왕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고 단지 애굽이 유다에 대해 지배권을 가질 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막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시야왕은 므깃도의 산과 산 사이의 넓은 평원에서 애굽 군대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왕이 일반군사처럼 변장을 하고 싸우다가 애굽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신하들이 그를 왕이 탄 병거에서 내려 다른 병거에 옮겨 태워 전장을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요시야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죽게 되었습니다 (24절). 하지만 병행구절 열왕기하23:30에는 므깃도 전장에서 죽어 신하들이 그 시체를 싣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스가랴12:11에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고 한 말씀을 근거로 므깃도나 예루살렘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중에 하다드림몬(Hadadrimmon)에서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히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요시야왕은 므깃도 전투로 죽게 되었고 열조의 묘실에 장사되었는데 그로 인하여 온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이 슬퍼했습니다. 그 때 부른 애가가 후대에까지 불려졌습니다.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 성전을 수리하다가 대제사장 힐기야가 연보궤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사독으로부터 낭독을 받게 되었는데 율법의 말씀을 듣고는 통회 자복을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앗수르에 망하게 했는데 남유다도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망하게 하지 않겠는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 위해 여선지자 훌다에게 신하들을 보내어 묻게 했습니다. 훌다는 하나님이 율법대로 유다를 반드시 망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하며 율법을 듣고 통회하며 기도한 것을 듣고 요시야왕 생전에는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34:23-28, 왕하22:20). 요시야왕이 39세에 므깃도 전투에서 죽은 것은 이 훌다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유다 열왕들이 우상을 숭배했으나 요시야왕 때에는 멸망시키지 않았고 요시야왕의 아들들 대에서 바벨론에 의해 멸망시키게 됩니다. 그들은 비참한 광경을 목도하고 비참하게 끌려가야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시야왕이 므깃도 전쟁에서 죽게 된 것은 불행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삶에서 때론 사건이나 사고나 질병이나 죽음 등 불행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들을 꼭 저주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일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도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57:1에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禍厄: 재앙화,액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고 번역했었습니다. 우리는 무지하여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더 큰 고통을 위해 데려가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꼭 죽음 문제 뿐 아니라 모든 안 좋게 여기는 일들도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한 섭리로 보고 그 고통이 오히려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한 섭리로 여길 수도 있어야 합니다.   

 

<結言>

  남유다의 왕은 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여호람-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로 이어집니다. 많은 왕들이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여호사밧왕과 히스기야왕은 종교개혁을 했지만 요시야왕 같이 대대적으로 완전하게 한 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사밧왕과 히스기야왕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평생에 정직하게 행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유일하게 다윗의 길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34:2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을 단행하되 율법의 말씀대로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책을 발견하여 율법의 말씀을 안 다음에는 율법대로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율법대로 심판 받게 될 것을 두려워 하며 대신 통회 자복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생활 하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