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전도서1:1-18
<題目> 만물의 허무에 관한 성찰
<序言>
전도서는 시문서 중 하나이며 동시에 지혜 문학에 속합니다. 본서는 인간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심오한 책으로서 초막절 제 3일에 낭독되었습니다. 본서는 외견상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경도된 인상을 풍기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와 순종으로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누리도록 촉구하는 교훈입니다. 내용구조는 서언(1-3절), 대자연의 허무함(4-11절), 지혜의 헛됨(12-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서언 (1-3절)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기자는 본서를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1절). 본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솔로몬이 아닌 보다 후대의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솔로몬으로 봅니다. 다윗이 여러 아내와 첩들을 통해 많은 아들들을 낳았는데 (삼하3:2-5, 대상3:1-9) 그 중에 다윗을 계승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아들은 솔로몬입니다 (왕상1:38-53). 본서의 기록자가 지혜롭고 부유했고 많은 첩들을 거느렸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솔로몬의 일생과 일치합니다. 솔로몬을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한 것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도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코헬레트'(קהלת)는 소집자 강연자 설교자 전도자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Preacher-KJV). 솔로몬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말을 가르치는 자였습니다 (왕상4:34, 10:1-10). '말씀'은 '잠언'이나 '지혜'와 동일시 되는 표현입니다 (잠1:1, 10:1, 30:1, 31:1).
전도자가 이르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2절). 이 표현은 마치 본서에서 후렴구처럼 자주 반복되는 표현인데 (2:1,15,19, 5:10, 6:11, 7:6, 8:10,14, 9:9, 11:8, 12:8). 하나님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허망한 것이라는 전도자의 고백이자 핵심 사상입니다. '헛되다'에 해당하는 '하벨'(הבל)은 '숨' '호흡' '증기'를 말하는 바 헛됨이나 무의미함을 의미합니다. '헛되고 헛되며'에 해당하는 '하벨 하발림'(הבלים הבל)은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으로서 무의미함에 대한 최상급으로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거기에다 '헛되고 헛되며'를 두 번이나 반복하고 '모든 것이 헛되도다'에 속한 '하콜 하벨'(הבל הכל)로 맺은 것은 무의미함을 최고로 강조하여 어떤 것도 그 예외에 속한 것이 있을 수 없음을 단언하는 표현입니다.
전도자는 또한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냐고 했습니다 (3절). '해 아래서'는 '하늘 아래서' '세상에서' 등과 같은 뜻입니다.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는 굳이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수사 의문문 형태입니다.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수고'에 해당하는 '아말'(עמל)은 힘든 '노동' '노력' '고생' 등을 의미합니다. 이는 노동 자체를 부정하거나 힘써 노력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표현이 아니라 영원한 목적과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 노력의 무의미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익한고'에 해당하는 '이트론'(יתרון)은 '남겨지다' '남아 있다'는 뜻인 '야타르'(יתר)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는 인생은 어떤 노력과 고생을 해도 그것은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인생은 참으로 허무한 것입니다. 옛 말에 '화무십홍이요 세무십년과'(花無十日紅, 勢無十年過)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10일가는 꽃이 없고 권세도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는 말입니다. 순(舜) 임금이 요(遼) 땅에 갔을 때 요 지방 봉건인에게 '수부다남자하옵소서'(壽富多男子)라는 인사를 받고, '수즉다욕하고 부즉다사하고 다남자즉다구니라'(壽卽多辱 富卽多事 多男子卽多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래 살면 욕만 보고 부요하면 일만 많고 남자가 많으면 두려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이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1:24-25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6:27에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사는 가치있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2. 대자연의 허무함 (4-11절)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다고 했습니다 (4절). 인생의 무상함과 땅의 영원성을 대조한 것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다음 절들의 내용을 보면 인간도 계속 세대를 이어 가고 땅도 계속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해는 뜨고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5절).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또 다시 동쪽으로 가서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6절). 바람이 북에서 남으로 불고 이리 저리 돌다가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다시 남으로 분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틴의 바람은 대부분 동서의 방향으로 부는데 아마 동서의 개념은 앞 절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북남의 방향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른다고 했습니다 (7절). 시냇물과 강물이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른다는 것입니다. 사람, 땅, 해, 바람, 강물에 대한 예가 있었습니다. 인생과 인생에 관련된 것들이 모두 연속적인 단순 반복의 무료함을 보이는 것으로서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내용들입니다.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 없으니 눈은 보아도 만족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8절). 앞 절에서 땅과 해와 바람과 강물의 예를 들었듯이 만물이 다 연속적으로 단순 반복을 하므로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도 죽고 태어나는 연속적인 단순 반복으로 피곤하고 특히 욕망이 가득하여 그 욕망을 따라 사니 더욱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다고 했습니다 (9-10절). 인생의 역사를 보면 유행과 추구. 이론과 논리, 심지어 죄까지도 반복입니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같은 삶이고 결국 피곤할 뿐 모두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11절). 결국 인생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자연인으로서만 산다면 정말로 허무하고 무상한 것입니다 (고후5:17).
3. 지혜의 헛됨 (12-18절)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12-13절). 본서의 저자인 솔로몬왕이 마음을 다해 지혜를 다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피고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모든 인생들에게 주신 것으로서 괴로움 뿐이라는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는데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14절). 인생이 소망하고 추구하고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황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다고 했습니다 (15절). 인생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울 수도 없고 부족한 것을 채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패함과 무능함과 연약함을 철저히 자각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솔로몬은 마음 속으로 자신이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으므로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보다 낫다고 했으니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라고 했습니다 (16절). 자신보다 먼저 왕이 되었던 어떤 사람도 자기보다 지식과 지혜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솔로몬이 자만한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지식과 지혜를 많이 가진 자가 세상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누가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그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17절). 무엇이 지혜롭고 옳은 것인지, 무엇이 미련하고 그른 것인지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롭고 옳은 것을 찾아 따르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허망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이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고 했습니다 (18절). 지식은 어떤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능력이고 지혜는 그 지식을 사용하여 인생의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과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근간이 되는 참된 지식과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세속적인 지식과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지식과 지혜는 피곤하게 하고,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더 많게 합니다. 또한 그것에 대한 욕망을 더 많게 하여 더욱 부족한 것을 많이 느끼게 합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그 때문에 더욱 그것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더욱 피곤하고 그것에 붙잡혀 사는 불행한 생애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것을 적용하는 지혜만이 심령을 기쁘게 합니다. 잠언1:7, 9:10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시11:10, 요17:3).
<結言>
시편90:10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애가 헛된 것 붙잡으려다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