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전도서5:1-20

<題目>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序言>   

  전도자는 지금까지 자연만물과 자신의 경험과 사회적 불의 등을 들어 인생의 허무함을 밝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복종하는 생활을 권고했습니다. 이제 본 장에서는 그 영역을 각 사람의 개인적 삶으로 바꾸어 형식적 생활의 헛됨과 재물의 한계성을 들어 인생의 무상함을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형식적 신앙의 헛됨(1-7절), 권세자들의 학대에 대한 시각(8-9절), 재물의 헛됨(10-17절),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18-2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형식적 신앙의 헛됨 (1-7절)    

 

  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발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1절). '하나님의 집'은 성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발을 삼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부주의하여 경거망동하게 망령되이 행하지 말고 삼가 자신을 잘 지켜 거룩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데 우매한 자들은 말씀을 듣는 것보다 제물을 드리는 것에 집중하고 그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배우고 묵상하고 행하는 것을 포함할 것입니다. '제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제바흐'(זבח)입니다. 이는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리는 제사를 뜻하는 '올라'(עלה)와는 달리 제물을 드린 후 음식을 나누어 먹는 제사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는 제물을 드리는 자체로 의무를 대했다고 생각하거나 물려 나온 제물을 먹을 것을 염두에 두거나 제물을 먹으면서 육체적 즐거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것임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구약의 사사시대에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와 이사야 선지자 때의 제사와 말라기 선지자 때의 제사와 신약의 고린도교회에서 오용했던 성찬(애찬)이 그런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상2:12-30, 사29:13, 미6:6-7, 말1:6-10, 고전11:18-22). 제물을 드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복을 받을 목적으로 드리거나 제물을 먹을 목적으로 드리거나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드리거나 마지 못해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을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사무엘상15:22-23에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절).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의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진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한다는 의식이 부족하여 하나님을 우리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분으로 생각하고 인간을 대하듯이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거룩한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을 많이 해야 들을 줄 알고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6:7). 이방인들처럼 의미없이 주술적으로 반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자랑하려는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에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는데 예수님은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마6:5-6). 셋째, 허탄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장황하게 늘어 놓지만 그것은 허망한 생각이 나타난 결과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3절). 꿈이 많은 것은 걱정이 많기 때문이고 우매한 자의 소리는 말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꿈'과 '우매한 자의 소리'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 허탄한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걱정을 하며 그것이 꿈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옛말에 주사야몽(晝思夜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낮에 생각하는 것들이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낮에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집중하여 심히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겉으로는 표시를 내지 않지만 그것이 뇌리에 남아 있어 밤에 잘 때 뇌의 기억들이 꿈으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Freud). 또한 우매한 사람은 생각하는 것들을 절제하지 못하고 생각하는 것들마다 그대로 말로 표현을 합니다. 하지만 꿈이나 우매한 자의 소리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허탄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믿음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도 그와 같이 허망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도자는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4절). 서원은 하나님께 결단하거나 약속하거나 맹세하는 것으로서 기도와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의식 중 하나였습니다. 서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거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합니다. 율법의 규정에서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으라고 했듯이 (민30:2, 신23:21-23) 서원한 것은 갚기를 더디하지 말고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매한 자는 서원을 해 놓고 갚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매한 자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5절). 서원을 해 놓고 갚지 않으려면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서원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서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5:34-36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한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이므로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없이 하는 서원을 갚을 수 없으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원을 함부로 하는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자기의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신약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밭을 팔아 바치겠다고 서원했다가 정작 밭을 판 후에는 제대로 바치지 못했습니다 (행5:1-11). 그것은 바나바가 성령에 의해 밭을 팔아 바치므로 영광을 받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그 영광을 받고 싶어서 한 것이었습니다. 전도자는 입으로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찌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멸하시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6절). 입으로 서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입(육체)으로 범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서원을 함부로 해 놓고 지키지 못한 후에 천사 앞에서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로 번역된 히브리어 '말르아크'(מלאך)는 '파견하다'는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한 말인데 '사자'(messenger)를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사자(使者)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 선지자, 제사장 등에 사용한 말입니다. 이를 개역성경에서는 '사자'로 번역했으나 개역개정판에서는 '천사'로 번역했습니다. (angel-KJV, messenger-NASB,NIV). 아마도 구약시대에 서원하는 자들이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나 율법을 가르쳐 주는 제사장 앞에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문의 '말르아크'(מלאך)는 천사보다는 선지자나 제사장 같은 사역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Lange, Michael, Eaton). 함부로 서원해 놓고 지키지 못하여 사역자 앞에 실수였다고 하면 옳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잘못된 서원뿐 아니라 변명하는 소리로 인해 진노하여 그 서원을 멸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지라고 했습니다 (7절). 본 절 맨 앞에 '...때문에'의 의미를 가진 접속사 '키'(כי)가 있습니다. 1-6절에서 말한 잘못된 예배에 대한 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잘못 드려지는 제물(1절), 기도(2-3절), 서원(4-6절)의 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꿈을 꾼 대로 말을 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다 헛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망상을 가지기 때문에 잘못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기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제물을 드리고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잘못된 서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탐욕과 외식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권세자들의 학대에 대한 시각 (8-9절)

 

  8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9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8절). 사회적 약자가 학대를 당하고 공정이 무시되는 사회 현상을 보고 당연시 여기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 위에서 그들을 살피고 판단할 권세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그 권세자들을 내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3:1에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가정과 직장과 국가와 교회에서도 하나님이 치리하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기득권을 가진 상태에 있으면서 기득권자들이 행하는 불의와 싸우려 하면 기득권을 가진 불의자들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불의가 시정되지도 않고 자신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되고 공동체 전체에도 막대한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이든 자기 개인이든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합법적으로 기득권을 가진 위치에 있을 때나 여론이 절대적으로 지지할 때에 시정하려 해야 좋습니다. 곧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9절). 하나님이 주신 땅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약한 백성에서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소산을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권세자가 약자를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한 그것을 무시하고 약자를 수탈하는 권세자가 있으면 하나님이 살펴 다스리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약한 백성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재물의 헛됨 (10-17절)

 

  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않으니 이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10절). '은'(כסף)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물물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화폐역할을 했습니다 (창23:16, 37:28). 그래서 영역본(NASB,NIV)에서는 돈(money)으로 번역했습니다. '풍요'(המון)는 부(富)를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를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얻으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얻을수록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 더욱 불만족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과 부를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이나 평안이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자는 또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했습니다 (11절). '먹는 자들'은 식구, 종들(하인들), 일꾼들, 세금징수자들, 권세자들 등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아지면 그에 비례하여 소비량도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루분 양식이 밀가루 30석, 굵은 밀가루 60석, 살찐 소 10마리, 초장의 소 20마리, 양 100마리, 그 외에 숫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찐 새들이 요구되었습니다 (왕상4:22,23, 5:13-16). 그러니 재물의 소유주는 재물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잠깐 즐거워 할 뿐 결코 만족이나 평안이나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또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12절). 부자는 재물이 많으므로 인해 많아지는 일군이나 세금이나 정치적 요구 등 때문에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많습니다. 옛말에 천석군은 천가지 걱정을 하고 만석군은 만가지 걱정을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자는 그 재물을 읽거나 빼앗기거나 도적당할까 봐 늘 노심초사합니다. 재물이 많아질수록 일과 염려 불안이 많아지니 잠도 편안히 잘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를 일해서 먹고사는 노동자는 그만큼 일도 적고 걱정도 적고 불안도 적습니다. 그러니 잠도 잘자고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입을 것과 먹을 것 있으면 만족하라고 했습니다 (딤전6:8-10).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이 돈이나 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돈과 부 자체를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지 하나님 안에서 성실히 일하여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14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 것도 없느니라

  15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해 아래서 큰 폐단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3절). '폐단'(רע)은 해악을 말합니다. 일평생 재산을 모았어도 그 재산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재산 때문에 몸을 상할 수도 있고 염려로 살 수도 있고 재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14절). 어떤 종류의 재난이든 재난은 언제나 올 수 있고 재난이 닥치면 재물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잠23:5). 자식을 잘 키우고 자식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 주려 했을지라도 재난을 당하여 재물을 잃게 되면 자식을 달 키울 돈도 없고 물려줄 돈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감내하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또한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하겠느냐고 했습니다 (15-16절). 재물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재물을 아무리 많이 얻었을지라도 살아서도 고통을 주기도 하고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이므로 재물 얻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17절). 재물 자체를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잠깐의 즐거움이 있을지라도 (2:24, 5:18) 일평생 어두운 데서 먹습니다.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근심과 질병과 분노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할지 무엇을 가치로 여기고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4.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 (18-20절)

 

  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은 인생이 끝없는 욕심을 가지고 재물을 모으려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관계된 인생이 그런 것들을 얻어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주신 바 일평생 먹고 마시며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보았으니 그것이 그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18절). '일평생'을 영어성경 NIV에서는 많지 않은 짧은 날들(the few days of life)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짧은 인생에서 힘든 가운데서도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는 것입니다. 먹고 마실 것만 있어도 감사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먹고 마실 것만 있으면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딤전6:8-10).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19절). 거기에다가 수고하여 재물과 부요까지 얻어 즐겁게 살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라고 했습니다 (20절).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 짧은 생명의 날을 너무 깊이 생각하고 고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結言>

  만일 하나님과 상관없이 산다면 인생은 그 자체가 덧없습니다. 그 인생에서 재물과 권세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은 헛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된 삶을 산다면 가치있는 인생이며 영원히 남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을 받고 내세에 대한 보장을 받으며,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사명을 위해 산다면 영원히 남는 가치있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먹고 마실 것만 있으면 즐거워 하고 거기에 재물가 부요가 더해지면 더욱 즐거워 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짧은 인생에 대해 너무 한탄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가치있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