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전도서8:1-17
<題目>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序言>
세상에서는 악한 자가 형통하고 의로운 자가 멸망하는 부조리한 현실이 있습니다. 본 장은 그런 여러 가지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혼란과 무질서에 대해 심판하시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한다는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겸허하게 복종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왕의 권위에 대한 순종(1-8절),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9-13절), 인간 지혜의 한계성 (14-17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왕의 권위에 대한 순종 (1-8절)
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2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3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5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6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고 하면서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1절). 이 내용을 7장의 결론으로 보는 자도 있으나 8장의 서론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는 진정으로 지혜가 있고 사리를 아는 자는 얼굴을 사납게 하지 않고 광채가 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얼굴을 어둡게 하지 않고 밝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왕의 명령을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다고 했습니다 (2절). 여기에서 왕은 솔로몬 자신을 염두에 둔 것일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이 세우셨고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왕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는 왕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롬13:1). 그리고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고 했습니다.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한다고 했습니다.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3-4절).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고 또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말과 결정과 명령에 시비를 가려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 앞에서 무례하거나 경솔한 말과 행동을 하지 말고 왕을 해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왕자 아도니아와 함께 반역을 도모했다가 낭패와 죽음을 당한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왕상1:50-52). 그리고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라고 했습니다 (5-6절). 어떤 일에나 말에 있어서 그것을 해야 하는 때가 있고 그것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판단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하지 못하므로 많은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그 때와 판단을 잘 하여 화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불이익을 당할까 봐서 바른 말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아닌 데도 경솔하게 반대하다가 화를 당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나단이 사울왕에게, 나단이 다윗왕에게,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에게 하듯이 말입니다 (삼상19:4-6, 삼하12:1, 에7:2-4).
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8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지혜자는 때와 판단을 잘하여 처세를 하므로 다른 사람들처럼 화를 자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고 했습니다 (7절). 아무리 지혜자라 해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의 일을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고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 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8절). 바람을 머무르게 하거나 가둘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연기하거나 피하게 할 수 있는 자도 없고, 전쟁의 때에 혼자 벗어날 수 있는 자도 없고, 악한 일을 해 놓고 그 죄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 낼 수는 없느니라'는 '악'에 해당하는 '레솨'(רשע)가 '범죄'를 말하고 '주민'에 해당하는 '빠알'(בעל)이 '주인'을 말하는 바, 범죄가 그 주인들을 건져 낼 수 없다는 뜻으로서 범죄가 그 범죄한 사람을 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곧 범죄하고서 그 죄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의 연약함과 한계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 때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중요함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9-15절)
9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9절). 권세자들이 피지배인들을 지배하므로 그들을 해롭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그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10절). 악인이 죽어 장사를 지냈는데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악정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성읍 사람들이 그가 행한 일을 다 잊고 칭찬을 늘어 놓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다고 했습니다 (11절). 악인은 100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12절上). 악을 일삼는 자들도 여전히 오래 살고 건강이나 가족이나 거처나 음식이나 의복이나 소득 등에서 여전히 잘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행한 자는 당장에 징벌이 내려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므로 인해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데 있어서 더욱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모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도자는 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며 그 날이 그림자와 같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12-13절). 현실은 악인이 여전히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의인은 잘되고 악인은 잘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박국1:3-4에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유다의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다왕 여호여김 왕(B.C.609-598) 때에 유다는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간악과 패역, 겁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악인이 득세하여 의인을 압제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하박국1:13에는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고 했습니다. 바벨론이 유다 예루살렘을 치고 악행을 한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런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그래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2:4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은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무례하고 뻔뻔하고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내용은 신약의 바울이 사용하였고 (롬1:17, 갈3:11, 히10:38),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등이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한 의미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른바 이신득구(以神得救)의 의미였습니다. 본문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은 어원적인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창15:5-6).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왜차디프 뻬에무나토 이헤이에흐'(יחיה באםונתו וצדיק, but the just shall live by his faith-KJV,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NASB,NIV)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뻬에무나토'(באםונתו)는 남성 3인칭 단수로서 '그의'에 해당하는 '와우'(ו)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by his faith)입니다. '그의 믿음'이 누구의 믿음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를 유대 랍비 70명이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 70인역(LXX)에서는 'ο δε δικαιοs εκ πιστεωs μου ζησεται'으로 번역했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를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εκ πιστεωs μου)로 번역한 것입니다. 언어의 히브리적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의 대표 학자들은 하박국2:4의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를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로 이해한 것입니다. 하박국2:4은 하나님이 하박국 선지자에게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박국 선지자에게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한 것은 '믿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무나'(אטונה)는 '신실함'(언약 백성에 대한 목적을 반드시 이루는 성실함)으로도 번역되는 바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의 의미인 것입니다. 당시 하박국은 유다가 악인이 득세하므로 불만이 있고 갈대아(바벨론) 군대의 공격으로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박국에게 자기의 신실성을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언약적 목적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소유해야 할 자는 하박국이지만 그 믿음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에게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 대한 자기 계획을 알려 주고 그 언약과 관련한 선한 계획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의인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함을 근거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신뢰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인간 지혜의 한계성 (14-17절)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으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4절). 의인이 잘되고 악인이 안되어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의인이 안되고 악인이 잘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희락을 찬양하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짧은 기간을 허락하실 때는 수고하는 것을 주시는 동시에 그것으로 인하여 즐거워 하는 것도 함께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회 현실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도 성실히 수고하고 그것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창3:17-19).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자는 마음을 다해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16절).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고된 일에 대해 수고하고 애쓰니라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17절). 아무리 지혜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알려고 해도 그 오묘하신 역사와 섭리에 대해 능히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성 그리고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結言>
인간 사회는 공평과 정의가 세워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의인이 잘 안되고 악인이 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어느 시대 어느 제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역사하고 있고 사회 구조가 불완전하고 사람들의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의 기간 동안 성실히 일하고 그것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항상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하며 잡을 자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하나님의 경외하며 사는 것만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