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전도서9:1-18

<題目>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序言>   

  전도자는 전 장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해 언급했는데 (8:16-17) 본 장에서도 동일한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여러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최선의 삶 영위(1-10절),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11-12절), 지혜로운 행동의 유익과 한계(13-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최선의 삶 영위 (1-10절)

 

  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미래의 일들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1절).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말합니다 (창9:2, 16:6). 만물과 만사와 만인이 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 있으며 심지어 의인이나 지혜자들 그리고 그들의 행위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관리하시고 보호하고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한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 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의인과 악인, 선한 자 혹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 하는 자가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2절). 다섯 쌍의 대조적인 표현에서 앞의 부분은 좋고 뒤의 부분은 나쁜 것으로 배열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의인과 악인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의인이나 악인이나 구별없이 유사한 상황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의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악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곤경에 내몰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2:14-16). 전도자는 이어서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폐단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나쁜 것이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성이 가득하여 평생 죄에 굶주린 미치광이처럼 살다가 결국 죄의 종착역인 죽음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전도자는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절). 모든 인생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죽게 되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자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속담에 나온 대로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개'는 천하고 경멸의 대상을 나타내는 짐승이었고 (삼상24:14, 삼하3:8, 16:9, 마15:26, 계22:15), '사자'는 존귀하고 권능있는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짐승이었습니다 (창49:9, 욥10:16, 잠30:29-30).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을 잊어버린 바 됨이라고 했습니다 (5절). 적어도 살아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자는 죽기 전까지 삶의 기쁨을 누릴 소망이 있으나 죽은 자는 아예 의식이 없고 기억되지도 않은 바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다고 했습니다 (6절). 죽은 자에게는 사랑도 미움도 시기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수고하여 얻어 누리게 하신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이 죽는다고 해서 또는 모든 인생이 고난도 겪는다고 해서 사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고난도 당연히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수고하여 얻게 하신 것들로 사랑과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기쁨으로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시라고 헸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7절). 죽음이 전제된 허망한 인생을 어떻게 살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사는 것을 권한 것은 죽음에 대한 삶의 상대적 가치에 비중을 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따라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을 주셨을 뿐 아니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8절). 좋은 옷을 입고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몫이라고 했습니다 (9절). 하나님이 정해 주신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이 일을 얻은 대로 힘을 다해 하라고 했습니다.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고 했습니다 (10절).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대로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스올에 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올'(שאול)은 무덤, 음부, 지옥 등의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계를 하늘과 땅과 땅 아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사람이 죽으면 땅 아래에 있는 음부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곳에는 어둡고 침울한 곳이며 삶의 의미를 잃은 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악인이 사후에 가는 지옥으로 보기고 하고,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는 중간상태로 보기도 합니다 (눅16:19-31, 계20:11-15). 결국 사람이 죽게 된 이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살아 있을 때에 성실히 일하여 수고한 대로 얻은 것으로 즐겁게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2.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 (11-12절)

 

  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도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라고 했습니다 (11절). 무엇이든 유능한 자가 얻고 무능한 다가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꼬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능한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무능한 자들에게도 때와 기한이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따른 때와 기회가 주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7:16-18). 그리고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며 거기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12절). '재앙의 날'은 재난이나 죽음을 의미합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새는 공중에서 자유롭게 다니지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물과 올무에 걸리고 맙니다. 그처럼 인생도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재난과 죽음의 때를 연기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지혜로운 행동의 유익과 한계 (13-18절)

 

  13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15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크게 여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했다는 것입니다 (13-16절). '성읍'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건이 일어났던 성읍일 것입니다. 그 성읍은 전력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강한 군대에 의해 함락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가난한 지혜자가 그 성읍을 구출했습니다. 그가 어떤 전술을 사용했는지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의 지혜가 성읍을 구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고 지혜의 가치를 부각시킨 것입니다. 한 지혜자가 지혜로 한 성읍을 구해냈지만 그토록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르자 그의 업적이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혜자가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지혜가 힘보다 낫지만 가난보다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혜자의 말보다 부자의 말을 더 잘 듣습니다. 지혜의 한계를 말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낫고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17-18절). 지혜자의 조용한 말이 우매자의 호령보다,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성읍의 가난한 지혜자와 그 성읍의 미련한 지도자를 비교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미련한 한 지도자가 지혜자의 많은 유익한 방도들을 무시하므로 헛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자의 한계를 말한 것입니다.

 

<結言>

  사람은 재난과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혜자라 해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따라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