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전도서12:1-14

<題目> 사람의 본분


<序言>   

  본 장은 본서의 결론 부분이며 동시에 솔로몬의 인생관인 하나님의 계획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방식이 함축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성을 들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교훈하고 있고, 임간의 본분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말씀에 대한 준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인생의 허무와 하나님의 섭리의 불가해성을 강조해온 것은 이 결론을 유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용구조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1-8절), 전도자 자신의 소개 (9-11절), 인생의 본분(12-14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 (1-8절)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1절). 청년기는 노년기에 비해 힘이 있고 활기차고 소망을 가진 때입니다. 그런 때가 영원히 지속될 줄 알고 그 기간을 의미없는 삶으로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노년기가 금방 찾아오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에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 하라고 했습니다 (1-2절). '곤고한 날'은 노년에 맞게 되는 쇠약하고 괴로운 역경의 날들을 의미합니다. 그 때에는 사는 즐거움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때입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은 '빛'을 어떻게 해석할지 어려운 부분이지만 어떻게 보든지 전체 의미는 노년기에 모든 종류의 빛들이 희미하게 보이는 시각 장애 현상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은 비가 올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인데 비가 그친 다음에 또 다시 구름이 일어나면 다시 비가 올 것이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다시 올 것을 생각하여 마음이 침울해지는 것처럼, 삶의 기쁨을 연이어 빼앗아 가는 악 조건의 쇠약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탈굼역(Targum)은 이를 '네 눈꺼풀이 비 온 뒤의 구름처럼 눈물을 떨어뜨린다'로 번역했습니다. 결국 그런 때가 오기 전에 헛되이 보내지 말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청년의 때가 지나고 노년기에 이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몸의 쇠퇴를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몸을 지키는 손이 힘이 없어져 떠는 현상을 묘사한 것입니다. 둘째,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이는 몸을 지탱하는 다리가 기력이 쇠해져 지탱할 수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셋째,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이는 치아가 빠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을 가리킵니다. 넷째,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눈의 시력이 쇠하여 사물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섯째,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 청각 기능이 장애를 일으켜 외부의 소리를 잘 분간하지 못함을 암시합니다. 여섯째,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치아가 빠져 음식을 씹는 소리가 아주 미약하게 들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치아가 빠지면 음식을 씹지 못하고 오물거려 넘깁니다. 일곱째,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 아침 일찍 새들이 재잘거리기 시작할 때 일어난다는 뜻으로, 신경이 극도로 민감해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게 될 것을 말합니다. 여덟째,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 청각 기능이 쇠해져 음악의 다양한 음조를 듣지 못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아홉째, 높은 곳을 두려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기력이 떨어지고 숨이 차서 집을 나서거나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째, 길에서 놀랄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서 평지의 길도 여행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열한째,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살구나무는 아몬드(almond) 나무를 말합니다. 보통 2-3월 경에 꽃을 피우는데 예루살렘 근방에서는 1월경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꽃 몽우리(망울)는 분홍색을 띠나 만개되면 흰색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연로해지면 머리가 백발이 됨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열둘째,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메뚜기는 작은 것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민13:33). 힘이 쇠약해지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열셋째, 정욕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5절). '정욕'에 해당하는 '아비요나'(אביונה)는 욕망을 뜻합니다. 늙어지면 식욕이나 성욕 등도 그렇지만 모든 의욕이 없어지게 됩니다.

 

  5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노년에 이르러 결국 죽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5절). '자기의 영원한 집'은 무덤을 가리킵니다. '조문객'(הספרים)은 '우는 자들'을 뜻하는데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 죽음을 애도해 주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진다고 했습니다 (6절). '은 줄'과 '금 그릇'은 고대 근동의 부유한 집에서 금으로 된 등잔 그릇을 은 줄로 연결하여 천장이나 기둥에 매어 단 데서 유추한 것으로서 사람이 죽음으로 인해 생활에 필요한 귀한 것들을 정리하는 것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진다는 것은 우물에서 도르래를 이용하여 물을 길어 물동이에 담는 생활 풍습에서 유추된 내용입니다. 물을 담아 나르는 물동이 역할을 하는 항아리가 깨지고 줄에 연결한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우물 위에 설치한 바퀴가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장을 할 때 생존에 가장 필요한 물품들을 깨트려 무덤 속에 매장한 장례절차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Jerry E. Shepherd). 그러니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7절). '흙'은 사람의 육체를 의미하는 바 땅에서 났기 때문에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창2:7, 3:19). '영'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 이후에 대한 결론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는데 (8절),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 사람이 살다가 노년기를 거쳐 죽게 되는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모두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생애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시편103:15에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1:24에도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했습니다. 풀이 봄에 나와 여름에 무성하지만 가을이 되면 곧 시들어 죽게 되는 것처럼 그 꽃이 필 때는 심히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얼마 안가서 시들어 떨어지게 됩니다. 인생이 아무리 건강하고 영화롭게 보여도 곧 지나고 맙니다. 옛 말에 '화무십홍이요 세무십년과라' (花無十日紅, 勢無十年過)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도 지나 놓고 보면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순(舜) 임금이 요(遼) 땅에 갔을 때, 요 지방 봉건인으로부터 '수부다남자하옵소서'(壽富多男子)라는 인사를 받고, '수즉다욕하고 부즉다사하고, 다남자즉다구니라'(壽卽多辱욕보일욕, 富卽多事일사, 多男子卽多懼두려울구)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쿠바 섬 한 해변에 산티아고라고 하는 한 노인이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부였습니다. 작음 돛단배로 시코 만까지 가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84일이 되도록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85일째 되는 날 돛 새치 한 마리가 걸렸습니다. 돛 새치는 너무나 커서 노인이 탄 돛단배를 이리 저리 끌고 다녔습니다. 돛 새치는 시간이 걸려도 힘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줄을 잡아 당기느라 손에 피가 흐를 정도로 사투를 합니다. 고등어를 먹으며 고독하고 힘겨운 싸움을 합니다. 싸움을 한지 3일째에 돛 새치가 힘에 겨워 가끔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노인은 돛 새치에게 작살을 꽂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돛 새치는 쇠진하여 은색 배를 보이며 해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노인은 돛 새치를 배 옆에 붙여 끌고 가려 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상어가 돛 새치의 몸에서 흘린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듭니다. 노인은 처음 달려든 상어를 퇴치합니다. 그러나 상어 떼가 계속 몰려 들었습니다. 노인은 돛 새치를 상어 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사의 싸움을 합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상어 떼에게 뜯 돛 새치를 끌고 포구에 닿았습니다. 배가 포구에 닿았을 때는 돛 새치가 뼈만 앙상히 남아 있었습니다. 노인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침대에 들어가 깊이 잠이 듭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주어질 때 영원히 남는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에 시라큐스라는 이상한 동상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동상의 모습을 묘사해 보면 발에 날개가 붙어 있고 앞머리에는 무성한 머리카락이 있는 반면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였습니다. 이 이상한 동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기회. 왜 날개가 발에 달렸습니까? 빨리 날아다니기 위해. 왜 당신의 앞머리는 그렇게 무성합니까? 그것은 내가 지나갈 때 사람들이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왜 뒷머리는 대머리입니까? 지나가면 다시 붙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예수님은 빛이 있는 동안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12:35-36). 요한계시록에 보면 인치는 사역을 마칠 때까지 천사들이 바람을 불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계7:1-3). 또한 일곱 나팔 재앙이 임하기 전에 반 시 고요한 때가 있었습니다 (계8:1). 영원히 남아 있는 가치있는 일은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 해야 합니다.

 


          3. 전도자 자신의 소개 (9-11절)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전도자는 지혜자여서 여전히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다고 했습니다 (9절). 솔로몬왕은 지혜자였습니다. 그는 지혜로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왕상3:16-28, 4:34, 10:1-25). 그는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잠언을 3,000개나 만들었습니다 (왕상4:32).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여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다고 했습니다 (10절). '아름다운 말들'에 해당하는 '띠브레이 헤페츠'(חפץ רברי)는 문자적으로 '기쁨의 말들' '받을 만한 말들'로서 듣는 자가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합당하게 여겨지고 기쁨과 확신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이치에 맞고 적용할 수 있고 기쁨이 되고 복이 되는 말들을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인간적인 어떤 다른 목적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기록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사역자에게 모범이 되는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1:10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라고 했습니다 (11절). '지혜자들의 말씀들'과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지혜자들의 잠언을 가리킵니다. 그것들은 한 목자이신 하나님이 영감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듣는 자에게 찌르는 채찍들 같고 잘 박힌 못 같습니다. 끝에 날카로운 것이 박힌 채찍으로 맞은 것처럼 심령을 자극하고 잘 박힌 못처럼 심령에 확신있게 남아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했습니다.

 


          4. 인생의 본분 (12-14절)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아들'은 혈통적으로 아들 르호보암을 두고 한 말일 수도 있고 넓게 말씀을 듣는 모든 청중이나 독자를 두고 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권면하기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12절). 하나님을 떠나 아무리 많은 것을 연구하고 그것을 책으로 남겨 놓는다 해도 그 지식과 지혜는 피곤하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1:16-18).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라고 했습니다 (13절). 지금까지 인생의 결국이 어떤 한지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이 결국 다 허무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는 돈, 쾌락, 수고, 지식, 지혜, 철학, 종교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고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분'에 해당하는 '깔 하아담'(האדם כל)은 '사람의 전체'라는 뜻으로 사람이 행할 의무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14절).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지 다른 사람은 그 감추어진 부분까지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고 마지막에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고 그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는 그 행한 것에 비하면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큰 상을 상을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산 자에게는 준엄한 책망이 있을 것입니다 (눅19:12-27, 마25:16-30).

 

<結言>

  인생은 결국 병들어 죽고 평생 수고하여 얻은 것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즐겁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죽고 나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니 가치있는 삶이 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영원히 남아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고 그가 맡긴 사명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 때 고난과 역경이 있을 수 있으나 육신적인 즐거움 보다 더한 내적 기쁨이 있고 또한 하나님 나라에서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상을 얻게 됩니다 (롬8:18, 벧전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