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시편132:1-18
<題目> 성소에 대한 복과 약속
<序言>
본 시는 순례시(the philgrim songs)로서 솔로몬이 지은 시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여호와의 집 건축-다윗에게 주신 약속-전능자의 성소-헌신' 형식의 솔로몬 봉헌기도 형식과 유사고, 더구나 8-10절은 성전 봉헌식 때 솔로몬이 말한 내용과 동일하므로 본 시의 기자는 솔로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 시는 솔로몬이 다윗의 명을 따라 성전을 짓고 나서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다윗에게 베푸신 언약과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간구한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성전에 대한 다윗의 서원(1-5절),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 건축(6-10절), 다윗에 대한 두 가지 약속(11-18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성전에 대한 다윗의 서원 (1-5절)
1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다윗의 모든 겸손을 기억해 달라고 했습니다 (1절). '겸손'에 해당하는 '아나'(ענא)는 고난, 고통, 고초, 고생, 자책, 고뇌, 염려, 겸손 등의 뜻이 있습니다. 개역판에서는 '근심'으로 번역했으나 개역개정판에서는 '겸손'으로 개정했습니다. 영어 성경들에서는 고난과 고통의 의미들로 번역했습니다 (afflictions-KJV,NASV, hardships, endured-NIV). 솔로몬이 말하려는 의미는 아마도 다음 구절들의 내용들을 보아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인한 염려하며 힘들어 했던 마음의 고통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염려하며 헌신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기를 원한 것입니다.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2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맹세하여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했다고 했습니다 (2절). 역사서에서는 다윗이 맹세하거나 서원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여기에서는 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마 했다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는 일과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F.E.Gaebelein). 하나님을 '야곱의 전능자'라고 한 것은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란(밧단아람)으로 가다가 루스(벧엘)에서 꿈으로 이상을 보고. 반드시 함께 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때 야곱은 하나님께 그 곳에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돌이 하나님의 집(성전)이 되게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창28:22).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여 거부가 되어 다시 돌아오게 하셨고 야곱은 그 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35:6-7). 다윗이 그 야곱과 함께 하셔서 제단을 쌓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서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막을 발견하기 전까지 자기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자기 침상에 오르지 않고 자기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않고 자기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3-5절). 성막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편안한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발견하기까지'에 해당하는 기본형 '마차'(מצא)는 '발견하다' '소유하다' '준비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얼마나 성막을 발견하려는 열정이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 당시에 실로 성막은 불타고 언약궤(법궤)는 블레셋에 약탈당해 아스돗 가드 에그론을 거쳐서 유다의 벧세메스로 돌아온 이후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무려 20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습니다 (삼상7:1-2).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었던 언약궤가 한데 있는 것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막을 마련하고 언약궤를 모실 수 있을까 염려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그 일을 가장 절대적으로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그 일을 마치기 전에는 편안한 일상생활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정복한 다음 성 안에 성막을 마련하고 언약궤를 모셔 안치했습니다. 다윗은 언약궤가 바로 모셔지고 있지 못한 것,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지 못하고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신앙양심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요한복음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했고, 6:27에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2.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 건축 (6-10절)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다윗은 언약궤를 찾았는데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고 나무 밭에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6절). '에브라다'(Ephratah)에 해당하는 '에프라타'(אפרתה)는 베들레헴의 다른 이름입니다. 보아스 혈족의 고향으로서 다윗의 고향입니다 (미5:2).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에 해당하는 '쉐마아누하 베에프라타'(באפרתה שמענוה)는 '우리가 그것을 에브라다에서 들었다'로 번역해야 합니다 (we heard of it at Ephratah -KJV, we heard of it in Ephrathah -NASV, We heard it in Ephrathah -NIV). 이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에브라다에 있을 때 언약궤 소식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곧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에브라다에서 언약궤가 나무 밭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무 밭'에 해당하는 '야아르 세데이'(שדי יער)에서 '세데이'(שדי)는 '평지'라는 뜻을 가진 '사데'(שדה)의 복수인데 70인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은 단수로 번역하고 있는 바 어느 특정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한편 '야아르'(יער)는 '숲'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복수는 '여아림'(יערים)입니다. 그런 점에서 많은 학자들은 '나무 밭'으로 번역된 '야아르 세데이'를 '기럇여아림'이라는 지명으로 봅니다 (Gaebelein, Johnson). 그리고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라고 했습니다 (7절). '그의 계신 곳'은 예루살렘에 마련된 성막를 말합니다. '발등상'은 언약궤 앞을 말합니다. 이제 예루살렘이 성도(聖都)로 정하고 성소가 마련되어 기럇여아림의 오벧에돔 집에 있는 언약궤를 모셔 왔으니 이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으로서 하나님과 동일시되었습니다 (수3:14-17, 6:1-7, 삼상4:3).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는 분이지만 언약 백성과 만나는 장소를 정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백성들에게 예배를 받으시는 곳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국가적 신앙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곳을 정하지 않으면 율법을 배우지 못해 자의적으로 예배하다가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산당은 처음엔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었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우상숭배의 장소로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예수님 제자들에게도 기도의 장소를 정하셨습니다 (행1:4).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지만 신앙 공동체가 예배하는 일정한 장소에서 예배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9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일어나 주의 권능으로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 가시라고 했습니다 (8절). 7절의 다윗 시대의 회중적 정서가 8절에서는 솔로몬 시대의 민족적 정서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다윗시대의 정서와 솔로몬시대의 정서를 하나처럼 표현했습니다. 다윗 때 언약궤가 다윗이 예루살렘에 마련한 성막에 들어갈 때에 회중이 찬양했는데 시인 이제 언약궤가 다윗이 예루살렘에 마련한 성막에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으로 들어갈 때 찬양으로 뒤섞어 표현했습니다 (대하5:25). 당시 언약궤는 하나님이 인재해 계신 곳으로 보았기 때문에 언약궤가 들어갈 때에 회중이 하나님께서 권능의 언약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시라고 한 것입니다 (수3:14-17, 6:1-7, 삼상4:3). 그리고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라고 했습니다 (9절). 여기에서 '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공의는 항상 심판과 구원으로 나타나는 바 여기에서는 구원과 승리와 복의 개념으로 사용한 표현일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간 위치에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의를 전달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의를 옷 입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도 즐겁게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10절). '기름부음 받은 자'는 솔로몬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자기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을 기억해 주시고 다윗에게 약속해 주셨던 후손에 관한 언약을 기억하여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유다 왕 아비얌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그 아들을 후사가 되게 하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습니다 (왕상5:4). 히스기야왕 때 유다가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에 포위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다윗을 위하여 그 성을 구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왕하19:34). 우리는 롯이 소돔성에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그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19:29).
3. 다윗에 대한 두 가지 약속 (11-18절)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
하나님이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했으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11절). 이는 사무엘하7:12-16에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이 항상 그의 권좌를 잇게 하시겠다는 것, 곧 다윗 왕조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통치를 위해 다윗과 그 자손을 선택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조건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12절). 조건으로 준 언약과 증거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언약과 다윗에게 주시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구히 유효하며 주권 하에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성취에는 본인들의 이행여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왕국 역사를 보면 다윗의 후손들이 계명을 지키지 않은 왕들이 나왔으나 그 왕권이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계명을 지키지 않으므로 시드시야왕으로 왕권이 끊어지고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성취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순종 관계의 역학 구조는 실로 비밀스러운 것입니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18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13-14절). '시온'은 시온산을 말하는 바 의미상 시온산에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선택하시고 그 곳을 임재하시는 성전을 세우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었던 언약궤가 실로에 있었는데 실로는 그 특권을 포기하므로 벧엘에 얼마 동안 있었고 미스바에 잠깐 머물다가 블레셋 도시들과 밷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졌습니다. 기략여아림에서 20년 동안 있다가 다시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있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하나님이 안식을 누릴 곳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임재하여 좌정하시고 통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15절).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선택했으니 예루살렘에 식료품을 충분히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이 없게 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필요를 비롯하여 구원과 평화와 번영을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16절). 9절의 의가 구원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원은 의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의와 구원을 전달하게 하여 그 은택을 경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17절). '뿔'은 힘과 권능과 번영 등을 상징하고 '등'은 빛을 상징합니다. 이는 다윗을 번영케 하고 그의 후손으로 왕조를 계속 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18절). '수치'는 파멸을 의미하며 '왕관'은 권위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하나님이 다윗의 대적에게는 마멸하게 하고 다윗은 그 권세가 더욱 커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結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아들을 낳게 하며 그 자손을 번성케 하며 그 가운데 왕들이 날 것을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임재하실 장소를 약속하셨습니다 (창17:6, 22:2). 그 약속은 다윗 때에 더욱 구체화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을 통해 나라를 견고하게 하며 그 후손들이 왕권을 이어 갈 것이고, 하나님이 임재하여 통치하실 장소를 마련하게 했습니다 (삼하7:12-16, 대하3:1). 이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예루살렘에서 구속하역을 이루시므로 교회 공동체가 시작되게 한 것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마1:1, 행2:1-4). 하나님은 약속에 조건을 달았고 다윗의 자손들은 이행하지 못하여 참다가 마침내 멸망하운데 두었지만 궁극적으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심은 오늘날 우리 개인에게도 동일한 원리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