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시편137:1-9
<題目> 이스라엘의 슬픈 기도
<序言>
본 시는 작자 미상으로서 장르상 저주시나 비탄시로 분류하며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내용상 바벨론의 포로생활 말기로 짐작됩니다. 본 시는 포로생활의 슬픔과 함께 이스라엘의 대적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기원하는 노래입니다. 내용구조는 시온을 위한 애도(1-3절), 예루살렘을 향한 기억(4-6절), 에돔과 바벨론에 대한 저주(7-9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시온을 위한 애도 (1-3절)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바벨론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1절). '바벨론의 여러 강변'은 바빌로니아의 유프라테스강 지류들을 말한 것 같습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유대인들은 유프라테스강 지류인 그발 강이나 을래 강 근처에 많이 정착했습니다 (겔1:1,3, 3:15, 단8:2). '시온'은 유다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왕하19:21).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예루살렘,성전)을 떠나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정착지의 강변에서 시온을 그리워 하며 울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 했고, 그 곳에서 예배했던 일을 그리워 한 것입니다. 바벨론에는 성전도 없고 예배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바벨론 신들과 바벨론 왕을 위한 제전만 일을 뿐이었습니다. 평생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 생활을 해 오던 그들로서는 그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전에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성전의 예배를 통해 위로받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는 그 힘든 상황에서도 위로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중요성과 예배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한적한 강변에 나가 기도를 하기도 하고 찬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에 성전과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멸시했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이제 성전에서 예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성전과 예배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한 것입니다.
그 중에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었는데 그것은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노래를 청하며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해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부르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3절). '버드나무'는 잎사귀가 은빛이 나며 가지가 가늘고 길어 늘어져 있는 나무입니다. '수금'(竪琴)은 하프(harp)같은 현악기에 속한 악기입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수금으로 시온을 그리며 찬양하다가 그것을 버드나무에 걸었다는 것은 그 연주를 중단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벨론 사람들이 시온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서 기쁨을 청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시온의 노래를 청했다는 것은 자기들의 부르는 바벨론 노래를 요청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불렀던 찬양을 요청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견고함과 안전함과 영원함을 찬양을 하면 (45,46,48,58,74,84,87,122,132편) 그것을 조롱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켜서 영원히 있게 된다더니 망하여 사로잡혀 왔지 않느냐는 식으로 조롱을 한 것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있느냐'는 식의 조롱인 것입니다 (42:3,10).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슬퍼하며 돌아가길 고대하며 찬양하는 그들에게 기뻐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그것 또한 놀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을 향한 기억 (4-6절)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겠느냐고 했고 예루살렘을 잊을진대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 것이라고 했고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않거나 가장 즐거워 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을 노래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할진대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4-6절). '이방 땅'은 근본적으로 불결한 땅이고 음식까지도 불결한 곳으로 간주된 곳입니다 (암7:17, 호9:3). 하나님 위한 찬양과 예루살렘에 대한 찬양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예루살렘에 관한 찬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루살렘을 잊고 찬양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의 연주할 수가 없게 될 것이고 자기의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하면 수금을 연주하지 못하게 되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 노래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찬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에 대해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찬송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또 한번 배반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전에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자신들이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배역하므로 포로 생활을 하게 된 것을 생각하며, 다시 그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살기를 사모하며,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모습입니다.
3. 에돔과 바벨론에 대한 저주 (7-9절)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기자는 하나님께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쳐 달라고 했는데 그것 그들이 '헐어버리라 헐어 버리리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7절).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유다) 민족과 한 형제의 후손인데 오랫동안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돔 족속이 예루살렘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방관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심지어 그 기회를 틈타 예루살렘을 약탈했고 도망자까지 학살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아예 기초까지 헐어버리자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사63:1-4, 애4:21-22, 겔25:12, 35:5, 옵1:1-14).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유다 백성이 그 때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응해 주시기를 구하고 유다 예루살렘의 회복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할 딸 바벨론에 대해 그들이 유다 백성에게 행한 대로 갚는 자가 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 바벨론은 유다 예루살렘을 직접 파괴하고 멸망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대해 '멸망하게 될 운명의 바벨론의 딸'(O daughter of Babylon, who art to be destroyed -KJV)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바벨론을 여성에 비유하곤 했는데 바벨론 제국을 어머니에, 바벨론 국민을 딸에 비유했습니다. 그들이 유다에 행한 대로 그들도 다른 나라에 멸망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에 대한 복수를 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해 심판하여 보복해 주실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인은 이어서 바벨론의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가 복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9절). 시인은 포로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B.C.586년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유린하고 성전을 불태우고 여인을 강간하고 자녀들을 살해하는 것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또한 포로생활 중에도 다른 포로민들에게 더 많은 당시 다른 현장에서의 일들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아기들을 엄마의 품에서 빼앗아 건물 벽 모서리에 머리를 메어 쳐서 머리를 깨트리고 잔인하게 웃어 대거나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모독적인 말을 내뱉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 받기를 구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복수에 불탄 심정을 표출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길 바라는 시적 표현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이 반영된 율법에는 고엘(גאל)제도 가운데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 있었습니다 (출21:23-25, 레24:17-21, 신19:21). 우리의 진정한 고엘 곧 회복자, 구속자, 보수자는 예수님이십니다.
<結言>
시인은 포로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유다 예루살렘을 그리워 하며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바라며 간구한 시입니다. 그 회복은 곧 포로민의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을 말하는 것이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과 권위와 통치가 회복되길 바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