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시편142:1-7
<題目> 피난처이신 하나님
<序言>
본 시는 다윗의 시이며 장르상 비탄시(lament) 혹은 기도시(prayer psalm)라 할 수 있습니다. 본 시는 아마도 다윗이 아둘람 굴이나 엔게디 굴에 피신하여 있을 때 느꼈던 절박한 심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삼상22:1-2, 24:1-7). 표제어에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마스길'(משכיל)은 '교훈적인'의 뜻으로서 다윗이 동굴에서 피신해 있을 때에 상황과 경험에서 깨달은 점을 교훈할 목적으로 지은 시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본 시는 다윗이 강한 사울과 그 군사들의 압박을 받아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 유일한 피난처되신 하나님께 애타게 부르짖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절박한 호소(1-3절上), 적들의 박해와 시인의 곤경(3下-4절), 구원의 요청(5-7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절박한 호소 (1-3절上)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다윗은 소리내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1절).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소원을 알리기 위한 간절한 외침입니다. 원통함과 우환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며 진술한다고 했습니다 (2절). '원통함'의 기본형 '시아흐'(שיח)는 불평, 묵상, 기도 등의 뜻이 있습니다. 원통함을 토로했다는 것은 어떤 원한을 쏟아 놓았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상황들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고 축적된 생각을 큰 소리로 쏟아 간구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충분히 묵상하고 그 고민을 쏟아 놓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원통함'을 70인역(LXX)나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는 '기도'로 번역했습니다. '우환을'의 기본형 '차라'(צרה)는 역경, 비탄, 고난, 고통 등의 뜻입니다. 강한 대적들에게 포위되어 더 이상 도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허물이나 부족함이나 연약함이나 고통함을 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좀처럼 노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현재의 상황과 심정을 자세히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영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자기 길을 아셨다고 했습니다 (3절上). '길'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의인이 고통 가운데 있는 현장에서 멀리 게시거나 모른다고 하지 않고 항상 지켜 보신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처한 환경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십니다.
2. 적들의 박해와 시인의 곤경 (3下-4절)
3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다윗은 대적들이 자기를 잡으려고 자기가 가는 길에 올무를 숨겼다고 했습니다 (3절下). 다윗은 사울왕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계책을 가지고 공격해옴에 대한 표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오른쪽을 살펴보시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아는 이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다고 했습니다 (4절). '오른쪽'은 법정에서 증인이 서는 자리입니다. 법정으로 본다면 피고석에 있는 다윗을 변호해 주기 위해 증인으로 서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홀로 외롭고 절박한 상황에서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힘이 되어 주거나 위로가 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3. 구원의 요청 (5-7절)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하나님은 자기의 피난처이며 분깃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5절). 다윗은 하나님만이 피난처와 분깃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분깃'의 기본형 '헤레크'(חלק)는 할당, 몫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 땅은 그들이 살아가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업으로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계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삶에서 전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기업을 땅이나 다른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으로 여겼습니다. 물질과 사람은 가변적일 뿐 아니라 유한하여 절박한 상황에서 진정한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을지라도 그것이 지속적이지 못하며 더욱이 진정 마음과 영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거나 자기에게 해가 될 것 같으면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뿐만 아니라 도울 마음이 있더라도 능력의 한계 때문에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지할 뿐은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께 상황을 아뢰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핍박하는 대적들은 강하고 자기는 비천한 가운데 있으니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에게서 건져 달라고 했습니다 (6절). '비천한'에 해당하는 기본형 '달라'(דלל)는 '낮아지게 되다' '동등하지 못하게 되다' '허약하게 되다' '가난하게 되다' 등의 뜻입니다. 사울왕은 일국을 호령하는 군주였으며 환심을 사려는 신하들로 둘러 싸여 있었으며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홀로 도망하여 동굴에 숨어 있는 신세였으며 돕는 자가 없었으며 모든 생활 수단이 열악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열악한 상황과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사람의 강함보다 하나님의 약함이 더 강한 것입니다 (고전1:25). 그리고 다윗은 또한 자기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해 달라고 했고 하나님이 갚아 주셔서 의인들이 자기를 두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7절). '옥'은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던 동굴, 고통의 상황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상22:1, 24:1-3). 다윗은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건져 주셔서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구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건져 주시고 의인들이 자기를 두를 것을 확신했습니다. '두르리이다'에 해당하는 기본형 '카타르'(כתר)는 '에워싸다' '관을 씌우다' 등의 뜻으로서 의인들이 자신을 두를 것이라는 것은 다윗이 미래에 경건한 무리들의 호위 하에 왕으로 추대될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비록 현재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지만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그 상황을 벗어나면 감사와 감격이 넘칠 것이고 그 소식을 들은 많은 경건한 자들도 큰 격려와 기쁨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후 계속된 블레셋과의 국지전에서도 전과를 올리자 시기하여 왕궁에서 창으로 던져 죽이려 했으나 다윗이 피하여 집으로 갔습니다. 사울왕이 군사를 보내어 집을 에워싸고 붙잡으려 했습니다. 다윗이 밤중에 나와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라마 나욧으로 도망했다가 돌아온 후 요나단을 만나 사울왕의 진짜 의도를 확인하고 놉 땅으로 도망하여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진설병상에서 물려 낸 떡과 엘라 골짜기에서 빼앗은 골리앗의 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사울왕의 가신 도엑이 본 것을 알고 블레셋 땅 가드로 도망했습니다. 그 곳에서 아기스왕의 신하들이 알아보자 미치광이 흉내를 내어 그 상황에서 빠져 나와 아둘람 굴로 도망했습니다. 그 때 다윗의 가족과 힘든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 400여명 가량 되었습니다. 다윗은 모압 지방으로 가서 가족을 모압왕에게 의탁하고 유다 땅 헤렛 수풀로 숨어 들었습니다. 한편 사울왕은 도엑으로부터 놉 땅의 제사장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보고 받고 도엑과 군사를 보내어 제사장 85명과 놉 성읍의 남여노소를 무론하고 젖먹이 아이와 가축들까지 도륙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의 그일라 비방을 쳐서 타작마당을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 600여명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그일라를 치려 했고 다윗은 십 광야 수풀로 숨어 들었습니다.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보고하여 사울왕이 수색전을 펴자 다윗은 마온 황무지도 이동하고 사울왕은 다윗을 추격하다가 블레셋의 침략 보고를 받고 철수합니다. 다윗은 엔게디 황무지의 굴에 있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물러가자 사울왕은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엔게디 황무지를 수색합니다. 그 때 굴을 발견하고 그 안에 다윗과 무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들어옵니다. 용변을 보러 온 것인지 낮잠을 자러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무리들은 사울왕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의 옷자락 끝만 벱니다. 그 옷은 땅에 끌릴 정도의 긴 옷이기 때문에 용변을 보았다면 벗어 놓고 보았을 것이고, 잠을 잤다면 덮고 잤을 것입니다. 다윗이 옷자락을 베어 멀리 떨어져서 사울왕에게 죽이라 명할 수 있었지만 명하지 않았고 자기는 아무 잘못도 없고 벼룩같은 자기를 왜 죽이려 하는지 말하자 사울왕이 철수했습니다. 다윗은 요새로 돌아갔습니다 (삼상19~24장). 하지만 그 후에도 사울왕은 다시 끊임없이 다윗을 찾아 죽이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은 무려 20여년 동안이나 피해 다닙니다.
<結言>
본 시는 다윗의 시로서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굴은 아둘람 굴과 엔게디 굴 중 한 군데 일 것입니다. 본 시는 굴에 숨어 있을 때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윗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해주시고 오히려 크게 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역경과 절망 중에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