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시편146:1-10
<題目>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
<序言>
본 시는 장르상 찬양시로서 여호와에 대한 신뢰를 장황하게 나열하지 않고 단순 명료한 문체로 표현되어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 시입니다. 기자에 대해서는 본 시 자체에 언급된 바는 없지만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는 학개와 스가랴의 시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그런 견해가 받아들여진다면 시기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곧 에스라 4장에 언급된 바사의 아닥사스다왕이 유다 백성들의 원수들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성 중건 명령을 철회한 당시라고 생각됩니다. 내용구조는 여호와에 대한 고백(1-2절), 여호와만 의지할 것 권면(3-5절), 여호와의 행사 대한 찬양(6-1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여호와에 대한 고백 (1-2절)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시인은 회중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독려하고 또 자신도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독려했습니다 (1절). 자기 생전에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절). 생명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소유가 많든지 적든지, 건강하든지 병약하든지, 하는 일이 잘되든지 잘되지 않든지, 원하는 목적이 이루어지든지 이루어지지 않든지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목적과 섭리를 믿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나 언제까지나 찬양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자기에게 언약관계에서 인자하심(חסד)과 선하심(טוב)과 성실하심(אמונה)과 긍휼하심(רחם)이 느껴지지 않으면 진정으로 찬양할 수 없습니다.
2. 여호와만 의지할 것 권면 (3-5절)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3절). '귀인'은 무엇이든지 원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통치자를 말하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평민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려 할 때 주변 총독들의 방해로 바사왕 아닥사스다왕이 예루살렘성 중건 명령을 철회했고 그로 인해 유다 백성들은 불평하며 포기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정치적인 상황을 보면 아닥사스다왕 같은 통치자와 힘들다고 불평하는 유다인들을 염두에 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 극단적인 고저의 대상들을 언급한 것은 아마도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기법일 것입니다. 곧 모든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절). 인간은 아무리 능력있는 자라해도 죽게 되고 죽게 되면 한 줌의 흙에 불구하고 죽게 되면 그의 계획과 이론과 능력도 다 없어지고 맙니다 (144:4). 한마디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지할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성품도 완전하지 못하고 능력도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족하게 됩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긍휼히 여겨야 할 존재입니다. 오직 성품과 능력에서 영원하신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예레미야17:5-6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고 했고, 이어서 예레미야17:7-8에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시고 야곱을 평생 인도하시고 야곱의 실수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연단의 과정을 거쳐서라도 언약적 목적을 이루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특히 속임수로 형의 장자권을 가로챘다가 형의 분노를 사서 홀로 하란(밧단아람)으로 도망하다가 루스(벧엘)에서 노숙하던 중에 나타나 목적을 이룰 때까지 그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해 주신 그 하나님을 말합니다 (창28:14-15). 시인은 야곱의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5절).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동일하게 함께 해 주시는 분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성 중건이 아닥사스다왕의 중건명령 취소로 인하여 중단되어 절망적인 상황에 있어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약백성을 선택하고 목적을 두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 우리 그리스도인도 힘든 상황에 절망에 빠져 있지만 말고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고 소망을 두고 도움을 삼아야 합니다.
3. 여호와의 행사 대한 찬양 (6-10절)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6절). 인간은 능력에 있어서 제한적이고 성품에 있어서 유한하여 의지할 대상이 못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며 또한 영원히 진실된 품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진실함'에 해당하는 '에메트'(אמת)는 옳은, 참된, 신실한, 확실한, 분명한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는 그는 사역에 있어서도 억눌린 자들에게 정의로 심판하시고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맹인들에게 눈을 여시고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고, 나그네들을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들을 붙드신다고 했으며, 의인들을 사랑하고 악인들의 길을 굽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7-9절). 이사야 선지자는 이 내용을 오실 메시야의 사역으로 제시했고 예수님은 자신이 오시리라 예언된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데에 이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사61:1-3, 눅4:17-19).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는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공의로 판단하여 행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에서 '비굴한 자'에 해당하는 기본형 '카파프'(כפף)는 '구부리다'는 뜻으로서 시련과 고난으로 인한 근심으로 마음이 눌려 있는 자를 말합니다.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는 악인들의 계획과 음모를 실패로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의인들을 사랑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보살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結言>
10절에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영원히 그들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왕의 통치의 목적은 백성들의 평안과 안녕과 번영을 이루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언약적 목적을 두시고 통치하시니 그를 의지하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삶의 현장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