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시편147:1-20
<題目>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
<序言>
작자 미상인 본시는 이스라엘을 회복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성을 중건하고 난 다음 상황으로 생각됩니다 (느12:27-43). 그것은 예루살렘성 재건에 관한 언급이 되어 있고 (2,13절), 그 시제가 과거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내용구조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찬양(1-6절), 이스라엘을 통치하신 하나님 찬양(7-11절), 이스라엘에 율법을 허락하신 하나님 찬양(12-20절)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찬양 (1-6절)
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1절에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한 일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좋고 기쁘고 합당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미의 제사입니다 (히13:15).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이유는 2-3절에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비롯하여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diaspora)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고 성을 재건하게 해주신 일을 상기한 표현일 것입니다 (느6:15-7:3, 12:27-43). 바벨론 포로의 귀환과 유다 예루살렘성의 재건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했던 내용이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신30:1-4, 사11:12, 56:8, 60:17, 61:4-9, 렘31:38-40).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는 하나님이 바벨론 유수를 계기로 세계 각처에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를 본토로 귀환하게 해주심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므로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고 황폐화되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해 주셨고 무너져 황폐하게 된 예루살렘성을 다시 중건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는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고 예루살렘성을 중건하게 해주시므로 마음을 치유해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상심한 자들’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말하는데 ‘상한’에 해당하는 원형 ‘솨바르’(שבר)는 ‘파열하다’ ‘산산이 부서지다’ ‘찢어지다’의 뜻입니다. ‘고치시며’에 해당하는 기본형 ‘라파’(רפא)는 ‘치료하다’ ‘회복시키다’ ‘온전하게 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상처를’에 해당하는 원형 ‘아체베트’(עצבת)는 상처, 슬픔, 아픔, 고통 등의 뜻입니다. ‘싸매시도다’에 해당하는 원형 ‘하바쉬’(חבש)는 ‘둘러싸다’ ‘치료하다’는 뜻입니다. 포로생활을 하는 유다 백성들은 오랫동안 본토를 떠나 포로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생활의 어려움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성전과 제사와 율법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귀환하게 하고 성을 중건하게 하여 회복시켜 주므로 한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감격 속에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분입니다. 아프게 하시다가도 낫게 하시고 고쳐주시는 분입니다 (출15:26, 신32:39, 사19:22, 57:18, 렘30:17). 욥기5:18에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고 했습니다.
그리고 4-5절에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별들을 지으시고 배치하고 운영하신다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권하에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지혜로 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하신 분이하는 것입니다. 이를 언급한 것은 사로잡힌 백성을 본토로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성을 중건하게 된 것이 별들을 지으시고 운영하신 것과 같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능력과 지혜로 하신 것이라는 것을 찬양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린다고 했습니다 (6절). '겸손한 자'에 해당하는 기본형 '아나우'(ענו)는 ‘겸손한’ ‘가난한’ ‘비천한’ ‘억압당하는’ ‘고통당하는’ 등의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이는 2-3절에 나온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 '상심한 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겸손한 자들을 붙드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상심한 언약 백성을 반드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린다고 했습니다. 언약백성을 억압하고 있는 자들을 굴복시켜 비천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언약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언약백성을 반드시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는 분임을 기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아야합니다.
2. 이스라엘을 통치하신 하나님 찬양 (7-11절)
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노래하며 수금으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7절). '수금'(竪琴)은 현악기로서 오늘날 하프(harp)와 비슷한 악기입니다. 8-9절에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준비하여 내리므로 풀이 나게 하고 곤충이 그 풀을 먹게 하고 짐승이 그 곤충을 먹게 하여 모든 생명체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람과 언약 백성을 위한 세심한 보살핌입니다. 호세아2:21-22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않고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않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10-11절). 말은 전쟁에 사용되는 말을 의미하며 사람의 다리는 전쟁에 나가는 군사를 의미합니다. 말의 힘이 세고 군사의 다리가 억세다는 것은 강한 군사력의 상징합니다. 전쟁에서 전마(戰馬)의 강함과 전사의 강함은 승전에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며 그의 사랑과 긍휼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전1:27). 그러므로 전쟁은 군사력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삼상17:47).
3. 이스라엘에 율법을 허락하신 하나님 찬양 (12-20절).
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13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14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9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12절에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ירושלים)은 유다의 수도였으나 여기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리킵니다. ‘시온’(ציון)은 예루살렘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그곳은 예루살렘 옆에 있는 구릉지를 가리키는데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곳이고 다윗이 제단을 쌓은 곳이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중요한 종교적 역사를 상기시키는 지명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시온은 정치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로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지명입니다. 그런데 기자는 그 예루살렘과 시온을 의인화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거민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기자는 이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이유를 나열했습니다. 13-14절에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라고 했습니다. ‘문빗장’은 성문을 견고히 잠그는 도구로서 성의 방어력과 안전을 상징합니다.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성 중건에 대한 반대세력의 음모와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느6:15-16), 예루살렘성의 성벽과 성문을 완공하여 모든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하셨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전쟁의 패배와 멸망으로 자녀들이 죽거나 사로잡혀갔으나 이제 안전하게 해주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경내를 평안하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경내’(גבול)는 경계 안의 모든 영토를 가리키는바 경내를 평안하게 해주셨다는 말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보호해주시므로 평안을 주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밀로 배불리셨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에 해당하는 ‘헬레브’(חלב)는 최상의 ‘훌륭한’ ‘기름진’ ‘살찐’ 등의 뜻입니다. 그같은 밀로 배불리셨다는 말은 밀은 당시 가장 고급 곡물인데 거기에다가 가장 기름진 밀로 배부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린다고 했습니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고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고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15-18절). 이는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돌아봄으로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말씀'과 '명령'은 동의어로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대한 섭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령하여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고 유지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겨울에 눈과 서리와 우박 등을 내리도록 관여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눈과 얼음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 물로 흐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풍족한 물은 번영의 상징입니다 (슥14:8). 하나님이 눈과 서리와 우박 등을 녹여 물로 흐르게 하시는 것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19절). '말씀'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명령을 의미합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동의어로 언약백성을 가리킵니다. '율례'와 '규례'는 율법을 말합니다. 자연계를 통해 인간역사에 주권적으로 관여하시는 하나님이 언약백성의 구속사에도 그같이 주권적으로 관여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포로에서 귀환하고 성벽중건을 완수하고 율법을 회복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민족에게도 그와 같이 행하지 않으셨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20절). 다른 민족에게는 율법을 주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성문화된 법으로서 하나님,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의지, 하나님 백성이 가져야할 표준과 기준 등을 알게 해주는 법입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말씀은 비밀에 속한 것입니다. 마태복음13:11-14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적 소명뿐 아니라 사역적 소명도 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은 성령의 조명 없이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후서1:20-21에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한 삶의 표준과 기준으로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3:15-17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소망이 있는 자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열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結言>
하나님은 자연계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의 역사에도 간섭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백성의 구속역사에도 관여합니다. 그러므로 언약백성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찬양해야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것을 감사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