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아가2:1-17
<題目> 무르익은 사랑의 열매
<序言>
본 장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서로를 향한 열망과 칭찬이 강렬해지면서 사랑이 점점 성숙해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장을 통해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을 사랑의 대화를 음미하면서 그리스도와 성도의 순결하고 긴밀한 애정을 생생하고 풍성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사랑의 찬가(1-7절),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만남(8-17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사랑의 찬가 (1-7절)
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를 사론의 수선화와 골짜기의 백합화에 비했습니다 (1절). '사론'은 팔레스타인 서부지역 곧 지중해 연안 지역의 욥바에서 갈멜산 지역에 이르는 거대한 평원을 말하는데 남북의 길이가 80여km 동서가 10-19km에 달하는 넓은 지역으로서 많은 풀들이 자라는 지역입니다. 북부는 농경지이고 남부는 목초지입니다 (사65:10, 대상27:29). '수선화'는 평원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입니다. 이 꽃을 장미로 번역한 역본들도 있는데 (KJV,NKJV,NIV) 장미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서 볼 수 없는 꽃이었다고 합니다. '백합화'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자생하는 꽃으로서 골짜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말하려는 의도는 자신이 평원에 널려 있는 수선화처럼 평범한 여자이고 골짜기의 백합화처럼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왕궁에 있는 궁녀들과는 달리 한 평범한 여자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솔로몬 왕은 술람이 여인이 여자들 중에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다고 했습니다 (2절). 백합화가 들판이나 골짜기에 흔하게 피어 있는 꽃이기는 하지만 솔로몬 왕이 볼 때는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 같다는 것입니다. 가시나무는 색깔이든 모양이든 어떤 아름다움이나 친근감이 없이 오히려 거부감과 혐오감이 드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백합화는 붉은 색 꽃으로서 가시나무 가운데 있을 때는 그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친근감은 최고에 속합니다.
성도가 스스로 자신을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혹은 그들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도를 자연들과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로 보십니다 (사43:4). 그것은 주께서 선택하고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선한 계획과 목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소아시아에 있는 모든 교회가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 촛대로 보았습니다 (계1:20). 특히 환난과 시련과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는 더욱 존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계14:12, 20:4).
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7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에 대해 찬사를 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에 대해 남자들 중에 사랑하는 자로서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3절). 솔로몬 왕은 다윗 왕의 아들입니다. 다윗 왕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이 여섯(삼하5:14-16),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이 아홉(삼하5:14-16), 그 외에도 첩의 아들들도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용모와 지식과 지혜와 덕과 신앙심에 있어서 그들 가운데 가장 탁월했고 넓게 보면 어떤 젊은 남자들 보다 우월했습니다. '사과나무'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함께 팔레스틴에서 소중히 여기던 나무입니다 (욜1:12). 경작하지 않은 들에 수풀 가운데 있는 사과나무는 향기와 열매로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솔로몬 왕이 그처럼 모든 사람들 가운데 특출한 위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 사과나무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자기 입에 달았다고 했습니다 (3절). 들판의 수풀 가운데 있는 사과나무 한 그루는 사람에게 그늘과 향기와 열매를 제공합니다. 그처럼 술람미 여인에게 있어서 솔로몬 왕은 기쁨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자기를 인도하여 잔칫집으로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자기 위에 깃발이라고 했습니다 (4절). '잔칫집'에 해당하는 '뻬이트 하야인'(היין בית)은 문자적으로 '그 술 집' '그 포도주 집'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포도를 발효시켜 보관했고 그것을 잔치할 때 많이 내놓게 되는데 그 때 내 놓은 것은 포도 발효 액(포도주)와 물을 1:2로 섞은 것이라고 합니다 (요2:1-11).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유용했다고 합니다. '깃발'의 '떼겔'(דגל)은 군기로서 군부대의 표시를 말합니다. 그 깃발이 꽂인 곳은 그 깃발이 상징하는 군대의 진영이거나 접수한 성일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이끄는 사랑의 대화가 달콤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공개적이어서 담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주변 여인들에게 건포도로 힘을 돕고 사과로 시원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건포도'의 '아쉬솨'(אשישה)는 '눌려진 것'의 뜻으로 건포도 빵을 말합니다. 곧 어느 정도 말린 포도를 으깨어 만든 떡을 말합니다. '나를 시원하게 하라'의 기본형 '라파드'(רפד)는 '위로하다' '기운을 회복하다'의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만나지 못해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솔로몬 왕과 함께 있으면서도 사랑의 감정이 너무 강렬하여 심신이 쇠약해질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정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포도와 사과로 자기를 회복시켜 달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자기 왼팔로 자기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자기를 안는다고 했습니다 (6절). 이는 솔로몬 왕의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정 어린 손길로 사랑하며 위로하며 보호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자기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부탁하니 자기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7절). 들이나 산에서 사는 '노루'와 '사슴'은 작은 소리에는 놀라 뛰는 특징이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과의 사랑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그를 깨우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은근히 경고성 있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성인들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분으로서 성도들에게 있어서 평안과 안식을 제공해 주고 생명력을 공급해 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십니다. 또한 위로로 위안을 주시고 능력으로 보해 주십니다. 마태복음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 분과 상호 내주 교통을 통해 사랑의 교제를 누릴 때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2.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만남 (8-17절)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온다고 했습니다 (8절). 그녀는 솔로몬 왕이 어떤 장애라 하더라도 극복하고 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왕궁에 있고 술람미 여인은 헤르몬산 기슭에 있기 때문에 찾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형적인 이유와 시간적 이유도 있겠지만 왕이라는 지위 때문에 쉽지 않고 예루살렘 여인들의 주시 때문에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왕은 그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 왕에 대해 노루와 사슴과 같아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 틈으로 엿본다고 했습니다 (9절). '노루'와 '어린 사슴'은 순수하면서도 빨리 달리는 준족을 지녔습니다. 솔로몬 왕이 빨리 달려와 집안 벽 뒤에서 창살 틈으로 엿본다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는 신분과 지위의 비하, 극한의 고난과 죽음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현재에도 우릴 사랑하여 교제하길 원합니다. 성령으로 찾아오시는데(마28:20, 요14:16, 롬8:26), 죄악의 벽,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의 벽 때문에 탄식만 하십니다' 이사야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롬7:6, 10:2-3, 삼상15:23).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치고 지면에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되고 비둘기 소리가 들리고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에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니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10-13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틴의 겨울은 우기로서 비가 많이 오고 봄이 되면 비가 그칩니다. 그 때에는 들에 야생화들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고 특히 산비둘기들이 소리를 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린 푸른 열매가 익어 향기를 내고 포도나무도 꽃을 피워 향기를 진동합니다. 사랑을 꽃피울 좋은 계절이 왔으니 일어나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미 구속에 관한 약속들이 이루어졌고 오순절 성령께서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여 말씀을 깨닫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가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좋은 때입니다.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가 있을 때 사랑을 나누기 좋은 때입니다 (욜2:28-30, 계11:3-6). 고린도후서6:2에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3:19-20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솔로몬 왕이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듣게 하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14절). '비둘기'는 순결이나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사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팔레스틴의 산비둘기는 바위틈이나 낭떠러지 절벽 사이에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 힘듭니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이 사랑스런 존재로서 수줍어 숨어 있지 말고 빨리 나와 만나 주길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의 순결한 모습을 사랑합니다 (에3:1-6, 단1:8-9, 3:17-18, 계14:2, 20:4, 히11:36-40, 마10:28, 요일5:3). 또한 성도가 주님을 사모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하십니다 (마6:6, 삼상1:9-18, 왕하19:14-19, 20:1-3, 눅18:1-8, 11:8).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의 말에 대해 화답하고 있습니다 (Franz, Delitzsch, Wycliffe). 자기들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으니 자기들을 위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15절).
B.C.950년 경에 이스라엘의 왕은 3대왕으로서 결혼하기 전 젊었을 때 왕이 된 솔로몬 왕이었습니다. 그는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술람미'(Shulammite)는 잇사갈 지파의 이스르엘 근처 헤르몬 산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 수넴 사람을 일컬어 한 말입니다. '수넴'(Shunem)은 오늘날 '솔렘'(Solem)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수넴 여인 '아비삭'(Abishag)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수넴 여인으로서 다윗 왕이 늙었을 때 간호했으며 아도니아가 그를 아내로 얻으려 할 때 솔로몬이 허락하지 않고 그를 처형한 사건 등으로 보아 아비삭이 솔로몬의 사랑의 대상자로서 솔로몬 왕의 아내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왕상1:1-4,15, 2:20-24).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과 교제를 원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수넴 지역까지는 약 80km이며 험한 준령을 넘어야 합니다. 솔로몬 왕은 그 곳까지 찾아가 그 여인의 집 창문 벽에 서서 창문으로 들려다 보며 사랑의 교제를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0-13절).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는 문구가 앞 뒤에 있는 인클루시오(inclusio) 구조입니다. 겨울에 우기로서 비가 많이 오는데 이제 비도 그치고 땅에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무화과 나무의 무화과도 익고 포도나무도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와 함께 거닐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대답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 여우를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고 했습니다 (15절). 포도원은 대개 소유를 표시하고 경계를 표시하고 짐승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높지 않은 담장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담장에는 쥐들이 서식하기에 좋아 쥐들이 많이 삽니다. 그런 쥐같은 설치류를 잡아 먹고 사는 동물은 자칼(jackal)과 여우가 있는데 자칼은 조금 크며 무리를 지어 다니고 여우(fox)는 조금 작으며 무리 짓지 않고 개별적으로 다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우'(שועל)는 여우를 말합니다. '작은 여우'라고 한 것은 여우들 가운데 작은 여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칼 같은 것에 비해 작은 여우라는 의미입니다. 그 여우는 담장 아래에 사는 쥐를 잡기 위해 담장 밑을 파헤치고 도망치는 쥐를 잡기 위해 담장 위를 뛰어 다녀서 담장을 무너지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쥐들이 포도원 안으로 도망하기도 하고 포도나무 위로 도망 다니기도 하기 때문에 여우들이 그 쥐들을 잡느라 포도나무에 부딪히기도 하고 포도나무에 오르기도 하기 합니다. 그로 인해 포도나무의 포도 꽃이 떨어지게 됩니다. 쥐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여우들이 그 쥐들을 잡느라고 활발히 활동할 때가 3~4월인데 그 때가 바로 포도나무 꽃이 필 때이기 때문에 꽃이 다 떨어지고 맙니다. 여우들의 활동으로 포도나무 꽃이 다 떨어지면 포도열매가 맺히지 않게 되고 당연히 포도 수확은 실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여우는 교활한 자에 대한 인식이 있지만 히브리인들은 파괴자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겔13:4, 눅13:31-33). '포도원'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왕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입니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에게 봄이 되어 포도원의 포도나무 꽃도 피어 향기를 발하니 빨리 일어나 포도원을 거닐며 사랑의 교제를 하자고 하는데 술람미 여인은 그러려면 포도원을 허는 여우들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우를 잡지 않고는 포도원 걱정 때문에 기쁨의 교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훼방꾼을 제거하지 않고는 행복한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시골에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고 사촌오빠나 이부오빠들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뙤약볕에서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얼굴이 게달의 장막처럼 검게 그을러 예루살렘 도시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오직 솔로몬 왕이 사랑해주기 때문에 솔로몬 왕만 사모하며 견뎠습니다. 드디어 솔로몬 왕이 시골까지 와서 사랑의 교제를 하자고 일어나 포도원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우가 포도원을 망가뜨려 포도원에 대한 걱정 때문에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방해꾼을 제거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를 암시하고 예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고후11:2, 엡5:22-25, 계19:7-9, 21:9). '포도원'은 복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표로 볼 수 있습니다 (사5:1-7, 요15:1-15). '여우'는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우리가 교제하며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만끽하는 것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교만, 욕심,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 같은 것들입니다. 사울 왕은 교만 때문에, 게하시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욕심 때문에, 가인과 압살롬은 미움과 분노 때문에 그 신앙의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삼상15:1-26, 왕하5:1-27, 행5:1-11, 창4:1-12, 삼하18:1-18).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처럼 눈물 흘리며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이 우릴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시는 것으로 그가 우릴 인정해 주실 것으로 인내하며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성 곧 교만과 욕심과 미움 때문에 분노 때문에 그 사랑을 누릴 수 없습니다. 술람미 여인처럼 제거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할 때 술람미 여인은 사랑의 교제를 하는 데에 방해되는 여우를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술람미 여인이 자기가 여우를 잡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솔로몬 왕에게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생명을 내어 주기까지 사랑합니다. 하늘 보좌를 내놓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빌2:6-8, 롬5:8).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대언자(παρακλητοs: advocate-KJV,NASB)가 되어 주십니다 (요일2:1). 성령을 보내 주어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요14:16-18, 롬8:26). 우리가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위해 연약함을 제거해 달라고 하면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자기에게 속하였고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인다고 했습니다 (16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는 서로의 관심과 애정과 사랑으로 마음이 예속되었음을 말합니다. 백합화 가운데 양 떼를 먹인다는 것은 솔로몬 왕이 목자가 양을 먹인 것처럼 백성들을 다르시는 것을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어서 솔로몬 왕에게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고 했습니다 (17절). '베데르 산'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11km 지점에 위치한 '벧 아놋'으로 봅니다. 산에 있는 동물들이 밤이 되기 전에 동굴같은 보금자리로 찾아 드는 것처럼 솔로몬 왕이 자기를 찾아오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이 왕궁에서 국무를 보고 있는데 속히 자기를 찾아와 사랑을 나누길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結言>
술람미 여인이 시골에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고 사촌오빠나 이부오빠들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뙤약볕에서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얼굴이 게달의 장막처럼 검게 그을러 예루살렘 도시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직 솔로몬 왕이 사랑해주기 때문에 솔로몬 왕만 사모하며 견뎠습니다. 드디어 솔로몬 왕이 시골까지 와서 사랑의 교제를 하자고 일어나 포도원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우가 포도원을 망가뜨려 포도원에 대한 걱정 때문에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를 암시하고 예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고후11:2, 엡5:22-25, 계19:7-9, 21:9). 주님과 상호 내주하는 사랑의 교제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